2화(5,012자) · 다음 주에는 둘입니다
정오라는 사람
정오의 방송 · 서지오
만 19세 이상 이용가
시장 골목 끝 국숫집은 밤 아홉 시에 문을 닫는다. 우리는 여덟 시 사십 분에 들어갔다. 주인이 행주를 든 채로 우리를 봤다가, 택배 조끼를 보고 말없이 국수 두 그릇을 삶았다. 멸치 국물 냄새가 가게에 가득했다. 불 끄기 직전의 국물이 제일 진하다. 택배 기사는 이 동네에서 제일 늦게 밥을 먹는 사람이다.
“정오입니다.”
그가 말했다. 나는 라디오 목소리인 줄 알았다.
“네?”
“제 이름이요. 성이 정이고 이름이 오. 정오.”
“농담이세요?”
“다들 그래요. 신분증 보여 드릴까요?”
그는 정말로 신분증을 꺼내 국숫집 탁자 위에 놓았다. 다들 그런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닌 듯, 꺼내는 손이 익숙했다. 정오. 서른여섯. 주소 청산동. 나는 신분증을 한참 봤다. 주인이 국수를 내려놓다가 신분증을 보고 웃음을 참았다.
“초등학교 때 별명이 점심이었어요. 군대에서는 열두 시. 지금 택배 앱에서는 기사 이름이 정오라서, 고객들이 배송 시간인 줄 알아요. 정오 도착 예정. 오후 세 시에 가면 항의가 와요.”
그는 국수를 반쯤 먹고 나서야 전단을 꺼냈다. 다음 주에는 둘입니다.
“제가 돌린 거예요. 청산동 원룸 새 입주자 문 밑으로. 한 달에 스무 장쯤. 이 방송이 들리는 사람은 제 귀를 두 번 두드리면 알아요. 석 달 동안 한 사람도 안 나왔어요. 한겸 씨가 처음이에요.”
“둘이 누구예요.”
“다음 주에 이 방송을 듣는 사람 수요. 저하고 한겸 씨. 둘.”
그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이 방송을 처음 만든 사람은 제 형이에요. 정현. 하평화학 환경안전팀 데이터 분석가였어요. 공장 굴뚝에서 뭐가 나가는지, 그게 어느 동으로 가는지, 그 동에서 누가 아픈지를 숫자로 만드는 사람. 형은 이 도시에서 칠 년 살았어요.”
정현은 삼 년 전 봄에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하평으로 와 달라고. 월세는 형이 내겠다고. 이유는 한 가지였다. 네 귀가 필요하다.
“형은 자기 귀로 자기 방송을 못 들었어요. 칠 년 살았으니까. 그래서 제가 왔어요. 토요일 정오마다 제가 듣고, 형한테 들린다고 말해 줬어요. 형은 그걸로 방송이 나가는 걸 확인했어요. 자기 방송을 동생 귀로 확인하는 사람. 웃기죠.”
정오는 웃지 않았다.
“작년 십일월 셋째 주 토요일 정오에 방송은 서정동 열일곱이라고 했어요. 그 주에 서정동에서 열여덟 명이 죽었어요. 열여덟 번째가 형이에요. 서정동 원룸, 자다가. 보일러 배관이 빠져서 일산화탄소가 샜대요. 경찰은 사고라고 했어요.”
“방송 숫자에 형이 없었던 거네요.”
“사고였어요?”
“제가 형 방에 제일 먼저 들어갔어요. 택배 끝나고, 밤 열한 시에. 문 열자마자 머리가 띵했어요. 창문부터 열고 형을 끌어냈어요. 늦었어요.”
정오는 국수 그릇을 옆으로 밀었다.
“보일러실에 배관 이음 너트가 풀려 있었어요. 너트 모서리에 스패너 자국이 새로 나 있었어요. 반짝반짝했어요. 형은 스패너가 없었어요. 형 공구함에는 드라이버 두 개하고 테이프뿐이었어요. 경찰한테 말했어요. 경찰은 보일러 기사가 전에 조인 자국이라고 했어요. 그 보일러 기사는 석 달 전에 다녀간 사람이었어요.”
국숫집 주인이 행주로 옆 탁자를 닦다가 멈췄다. 그리고 우리 탁자에 삶은 달걀 두 개를 놓고 갔다. 아무 말 없이.
“형은 공장 연기 때문에 죽은 게 아니니까요. 그 숫자는 회사가 공장 연기 때문에 죽었다고 자기들끼리 세는 숫자예요. 형은 거기 안 들어가요. 다른 이유로 죽었으니까.”
국숫집 주인이 불을 반쯤 껐다. 우리는 일어섰다. 정오가 계산하려는 걸 내가 막았다. 정오가 신분증을 도로 집어 들다가 말했다.
“형이 죽고 나서도 방송은 계속 나와요. 한 주도 안 빠지고. 목소리도 그대로. 형이 만든 합성 음성이에요. 누가 형 대신 읽고 있어요. 저는 그게 누군지 몰라요.”
월요일 아침 우리는 하평시 보건소에 갔다. 정보공개청구서를 들고. 청구 내용은 한 줄이었다. 최근 칠 년간 하평시 주민 청력 선별검사 결과, 동별·거주 기간별 통계.
보건소 로비 벽에 빛바랜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주민 무료 청력검사, 매월 둘째 주 화요일. 그 위에 종이 한 장이 덧붙어 있었다. 사업 종료, 2019년. 포스터 아래 청력검사 부스는 문이 잠겨 있었고, 부스 유리에 먼지가 손가락 두 마디만큼 앉아 있었다. 정오가 그 먼지에 손가락으로 점을 두 개 찍었다. 둘.
민원 창구 직원은 청구서를 받아 들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십 분 뒤에 나온 사람은 직원이 아니라 보건소장이었다. 조경순. 쉰둘. 흰 가운 위에 카디건을 걸쳤다. 걸음이 빨랐고, 말을 걸기 전에 상대 얼굴을 정면으로 보는 버릇이 있었다. 입 모양을 읽는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는 것을 나는 나중에 알았다. 명찰에 이름이 있었다. 그녀는 우리를 소장실로 데려갔다. 문을 닫았다.
“이 자료가 왜 필요하세요.”
“하평에 삼 년 넘게 산 사람들이 높은 소리를 못 듣습니다. 저는 그걸 재 보고 싶습니다.”
조경순은 청구서를 탁자에 내려놓고 손바닥으로 눌렀다.
“한겸 씨, 이 도시 인구가 십일만이에요. 그중 사만이 공장과 하청에서 일하고, 삼만이 그 사람들한테 밥과 옷과 방을 팔아서 살아요. 청력 선별검사 결과는 개인 의료 정보예요. 통계라도 동별로 쪼개면 사람이 특정돼요. 공개 못 해요.”
“그럼 동을 빼고 거주 기간만.”
“그것도 안 돼요.”
“왜요.”
조경순은 대답하지 않았다. 창밖을 봤다. 보건소 창밖으로 하평화학 굴뚝 여섯 개가 보였다. 그중 셋에서 흰 연기가 올라가고 있었다.
정오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소장님, 저희 형 정현 아시죠. 하평화학 환경안전팀. 작년에 두 번 여기 왔었어요. 같은 청구서 들고.”
조경순의 손가락이 청구서 위에서 멈췄다.
“형은 그 자료를 못 받았어요. 두 번 다. 두 번째 오고 나서 한 달 뒤에 죽었어요. 보일러 사고로.”
“그건 경찰 일이에요.”
“소장님은 그 자료에 뭐가 있는지 아시잖아요.”
“정오 씨.”
조경순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낮아진 채로 단단했다.
“이 자료가 나가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알아요? 집값이 떨어져요. 새 사람이 안 와요. 공장이 소송에 걸려요. 공장이 문 닫으면 사만 명이 일자리를 잃어요. 그 사람들 애들이 이 도시를 떠나요. 귀가 조금 안 좋은 거하고 도시가 죽는 거하고, 뭐가 더 큰 병이에요?”
“귀만 안 좋은 거면 그렇죠.”
정오는 가방에서 서류철을 꺼냈다. 부고 복사본이었다. 서정동, 남산동, 사택동, 청산동. 한 해 치. 날짜마다 형광펜으로 줄이 그어져 있었다. 그 옆에 방송 날짜와 숫자.
“귀가 먼저 가고, 사람이 나중에 가요. 같은 동에서요.”
조경순은 서류철을 보지 않았다.
“소장님.”
내가 말했다.
“그 자료를 안 보셨으면 비공개 결정도 못 하셨을 겁니다. 뭐가 들었는지 모르고 막을 수는 없으니까요. 보셨으면, 보신 대로만 말씀해 주세요. 삼 년입니까?”
조경순은 나를 오래 봤다. 대답 대신 인터폰을 눌렀다.
“민원 창구. 방금 접수된 청구, 비공개 결정으로 처리하세요. 사유는 개인정보.”
그녀는 인터폰에서 손을 떼고 정오를 봤다.
“정오 씨, 택배 어디 소속이죠. 하평물류? 거기 하평화학 계열사예요. 제가 뭐라고 안 해도 알아서들 할 거예요. 이런 청구서 들고 다니는 기사를.”
정오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 나는 그의 팔을 잡았다. 정오가 팔을 뿌리치려다 멈췄다. 팔이 떨리고 있었다. 화가 나서인지 무서워서인지 그 팔만으로는 알 수 없었다.
소장실을 나오면서 나는 뒤를 돌아봤다. 조경순이 창가에 서서 굴뚝 쪽을 보고 있었다. 오후 햇빛이 옆얼굴을 비췄다. 그녀의 오른쪽 귀에 살색 보청기가 걸려 있었다. 작아서, 머리카락에 반쯤 가려서, 소장실 안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보건소 계단을 내려오며 정오가 말했다.
“한겸 씨, 봤어요?”
“봤어요.”
“자기 귀도 재 봤으면서.”
정오는 계단 중간에 멈춰 섰다. 택배 조끼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배송 앱 알림이었다. 그는 화면을 보고 한참 서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화면을 보여 주었다. 하평물류 기사 계약 재검토 안내. 사유, 근무 태도.
“이십 분 걸렸네요. 보건소에서 물류 회사까지.”
그는 화면을 끄고 웃었다. 이번에는 웃었다.
“한겸 씨, 저 이름이 정오잖아요. 정오 도착 예정인데 이제 도착 못 하게 생겼어요.”
나는 웃지 못했다.
그 주 토요일 정오, 정오는 택배 트럭을 시장 입구에 세워 두고 수리점으로 왔다. 계약 재검토 중이라 오전 물량이 반으로 줄었다고 했다. 우리는 라디오 한 대를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았다. 나는 볼륨 다이얼에 눈금 종이를 붙였다. 영부터 십까지.
“정오입니다. 오늘의 명단을 알려 드립니다.”
방송이 시작되자 나는 볼륨을 십에서부터 한 칸씩 내렸다. 들리지 않게 되면 손을 들라고 했다. 정오는 칠에서 손을 들었다. 나는 이까지 내려가서야 목소리가 사라졌다. 칠과 이. 같은 방, 같은 라디오, 같은 목소리. 두 귀 사이에 다섯 칸이 있었다.
“한겸 씨는 이에서 끊겼어요?”
“네.”
“저는 작년 이맘때 사였어요. 형이 재 줬어요. 형도 이렇게 볼륨 다이얼에 종이를 붙였어요.”
정오는 자기 귀를 손가락으로 만졌다.
“일 년에 세 칸이에요. 한 칸 남으면 저도 형처럼 되겠죠. 제 방송을 남의 귀로 듣는 사람.”
방송이 끝나고 떡집 장씨가 절편을 가져왔다. 세 접시. 정오 몫까지. 장씨가 정오를 보고 반가워했다. 「정오 총각! 오늘은 정오에 왔네. 웬일로 제시간에.」 정오가 절편을 받아 들며 대답했다. 「사장님, 저 원래 정오예요.」 장씨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웃었다.
그날 저녁 수리점 셔터 앞에 누가 서 있었다. 목이 짧고 덩치가 큰 사람. 백성환의 세단을 운전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셔터에 붙은 가게 간판을 한참 올려다보다가, 나를 보고 고개를 까딱하고 갔다. 골목 끝에서 한 번 돌아봤다. 옥상 안테나를. 셔터를 내리고 나서 나는 옥상에 올라갔다. 안테나 받침대 볼트 넷 가운데 하나가 반 바퀴 풀려 있었다. 오늘 아침까지는 꽉 조여 있던 볼트였다. 너트 모서리에 스패너 자국이 새로 나 있었다. 반짝반짝했다. 나는 그 볼트를 다시 조이고,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정오가 형의 보일러실에서 본 것과 같은 반짝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