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353자)

상환 확인서

무지출 챌린지 단톡방 · 도결애

일요일 아침⁠, 옥상 빨랫줄에 앞치마 스무 장이 나란히 널려 바람에 펄럭였다⁠. 라희가 집게를 입에 물고 앞치마를 하나씩 털었다⁠. 나는 옆에서 집게를 건넸다⁠.

“⁠라희야⁠, 오늘 확인서 받으면 숫자 그대로 믿지 마⁠.⁠”

라희가 집게를 입에서 뺐다⁠.

“⁠나한테는 말하지 말라고 했잖아⁠.⁠”

“⁠말하는 게 아니라 부탁하는 거야⁠. 숫자 말고 네 손을 봐⁠. 한 달 동안 네 손이 몇 시간 일했는지⁠.⁠”

“⁠내 손은 밥 먹었어⁠.⁠” 라희가 앞치마를 탁 털었다⁠. 물방울이 내 얼굴에 튀었다⁠. 첫날 함지 앞에서 튀던 물방울처럼⁠. “⁠언니⁠, 나 오늘 기분 좋아야 돼⁠. 오늘만 참아 줘⁠. 언니 참는 거 잘하잖아⁠.⁠”

라희는 다음 앞치마를 집게로 집고 빨랫줄 끝으로 걸어갔다⁠. 바람이 앞치마들을 한쪽으로 몰았다⁠. 나는 들고 있던 집게를 손바닥에 꼭 쥐었다⁠. 오늘만 참아 달라는 부탁을⁠, 나는 들어주었다⁠.

*

일요일 오후⁠, 짠물이 식당 식탁에 밥으로 케이크를 쌓았다⁠. 큰 대접에 밥을 꾹꾹 눌러 담아 뒤집으니 하얀 둥근 탑이 나왔다⁠. 짠물은 탑 위에 김치를 동그랗게 둘러 꽃을 만들고⁠, 멸치 두 마리로 숫자를 썼다⁠. 1이 둘이었다⁠. 이백원이 옆에서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왜 십일이야⁠?⁠”

“⁠십일이 아니라 일 일이야⁠. 첫 장 한 장⁠.⁠” 짠물이 멸치를 고쳐 꽂았다⁠. “⁠고등어 첫 확인서 축하 케이크⁠. 재료비 영 원⁠. 원래 부엌에 있던 밥⁠.⁠”

“⁠이 케이크 이백 원짜리 몇 개야⁠?⁠”

“⁠오빠⁠, 축하에는 값 매기는 거 아니야⁠.⁠”

라희는 케이크를 보고 손으로 입을 막았다⁠. 손가락 사이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곰국이 웃는 라희의 머리를 큰 손바닥으로 한 번 눌렀다⁠. 곰국도 오늘 열다섯 번째 확인서를 받는 날이었다⁠.

식당 구석의 공용 태블릿에서 단톡방이 돌아가고 있었다⁠. 태언이 관리인 휴대전화로 주간 순위를 올리는 날이었다⁠. 참여자 숫자가 화면 맨 위에 떠 있었다⁠. 천사백이었다⁠. 방송이 나간 금요일 밤부터 하루에 몇백 명씩 불었다⁠.

「⁠절약왕⁠: 이번 주 일등 — 반지하왕 님⁠. 축하합니다⁠.⁠」

「⁠반지하왕⁠: 저 진짜 가요⁠? 사천이백인데 받아 주세요⁠?⁠」

「⁠거지왕자⁠: 사천이백이면 VIP⁠」

「⁠통장잔고요정⁠: 축 졸업 예정⁠」

축하 이모티콘이 화면을 덮었다⁠. 다음 날 새벽 네 시에 반지하왕은 방을 나갈 것이었다⁠. 사천이백⁠. 고해방에서 가장 큰 숫자였다⁠. 이번 주 고해방에는 참여자가 이백 명 넘게 늘어 있었고⁠, 숫자도 같이 불어 있었다⁠.

*

밤 아홉 시⁠, 흰 차가 현관 앞에 멈췄다⁠. 채묘정이 귤 상자 대신 두툼한 서류철을 안고 들어왔다⁠. 식구들이 식당에 한 줄로 모였다⁠. 확인서를 받는 사람은 라희와 곰국을 포함해 넷이었고⁠, 나머지는 구경하러 나왔다⁠. 손뼉 칠 준비를 한 손들이 앞치마 위에서 꼼지락거렸다⁠.

채묘정이 이사장실 문을 열었다⁠. 형광등이 켜지자 서류함 견출지가 하얗게 드러났다⁠. 「⁠채권⁠」 「⁠확인서⁠」 「⁠고시원⁠」 채묘정이 문간에서 나를 손짓으로 불렀다⁠.

“⁠참을인⁠, 들어와⁠. 종이 좀 받아⁠.⁠”

태언이 도장과 인주를 들고 따라 들어왔다⁠. 나는 프린터 옆으로 갔다⁠. 채묘정이 책상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렸다⁠. 모니터가 두 대였다⁠. 왼쪽 모니터에 확인서 양식이 떴다⁠. 오른쪽 모니터에는 표가 떠 있었다⁠. 줄마다 이름과 숫자가 빽빽했다⁠. 채묘정은 오른쪽 모니터를 끄지 않았다⁠.

「⁠상환 확인서 · 한솥살림 사회적협동조합⁠」

「⁠성명 설라희(⁠고등어반토막⁠) · 입소 2027년 3월 22일⁠」

「⁠남은 빚 21⁠,800⁠,000원⁠」

프린터가 웅웅거리며 종이를 밀어냈다⁠. 따뜻했다⁠. 나는 종이를 받아 태언에게 넘겼다⁠. 태언이 붉은 도장을 꾹 눌렀다⁠. 도장을 누르는 손목에 힘줄이 돋았다⁠.

나는 오른쪽 모니터를 보았다⁠. 맨 위 줄에 라희의 이름이 있었다⁠.

「⁠설라희 · 매입 2027⁠.03⁠.19 · 원 채권자 모래알캐피탈⁠」

「⁠채권액 23⁠,000⁠,000 · 잔액 23⁠,000⁠,000⁠」

「⁠비고⁠: 봉사 공제 1⁠,200⁠,000 / 숙식비 상계 1⁠,200⁠,000⁠」

나는 눈을 깜박이고 다시 보았다⁠. 숫자는 그대로였다⁠. 확인서에서는 백이십만 원이 줄었고⁠, 화면에서는 한 원도 줄지 않았다⁠. 봉사로 갚은 백이십만 원이 숙식비 백이십만 원으로 나갔다⁠. 들어온 돈과 나간 돈이 정확히 같았다⁠.

채묘정이 내 눈길을 따라 오른쪽 모니터를 보았다⁠. 화면을 끄지 않았다⁠. 끄는 대신 다음 이름을 쳤다⁠.

*

식당에서 라희가 확인서를 받았다⁠. 두 손으로 받았다⁠. 종이를 읽는 동안 라희의 입술이 숫자를 따라 움직였다⁠. 이천이백⁠, 이천일백⁠, 팔십만⁠. 마지막 숫자에서 라희가 소리 내어 울었다⁠.

“⁠백이십 줄었어⁠. 한 달에 백이십⁠.⁠”

식구들이 손뼉을 쳤다⁠. 짠물이 밥 케이크를 들고 왔다⁠. 이백원이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백이십만 원이면 이백 원짜리 육천 개야⁠. 육천 개를 한 달에 갚은 거야⁠, 고등어⁠.⁠”

“⁠육천 개⁠.⁠” 라희가 울면서 웃었다⁠. “⁠육천 개래⁠.⁠”

곰국은 열다섯 번째 확인서를 받아 들고 조용히 웃었다⁠. 「⁠남은 빚 5⁠,200⁠,000원⁠」 곰국이 종이를 반으로 접어 앞치마 가슴 주머니에 넣었다⁠. 가슴 주머니 위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라희가 태언에게 달려갔다⁠.

“⁠방장님⁠, 사진 찍어 주세요⁠. 언니한테 보내 주세요⁠. 언니 울 거예요⁠.⁠”

“⁠찍어 줄게요⁠.⁠”

태언이 관리인 휴대전화를 들었다⁠. 라희가 확인서를 가슴 앞에 들고 밥 케이크 옆에서 웃었다⁠. 볼이 통통했고 눈가가 빨갰다⁠. 찰칵⁠. 태언이 사진을 보여 주자 라희가 화면을 손가락으로 키워 숫자가 잘 나왔는지 확인했다⁠. 숫자가 잘 나왔다⁠.

나는 이사장실 문간에 서서 박수를 치지 않았다⁠. 손이 앞치마 주머니 속에서 쪽지 두 장과 귤 하나를 쥐고 있었다⁠. 박수 소리가 차가운 식당 천장에 부딪혀 내려왔다⁠.

*

식구들이 밥 케이크를 나눠 먹으러 식탁에 모였다⁠. 채묘정이 태언에게 말했다⁠.

“⁠태언아⁠, 너도 가서 먹어⁠. 참을인이랑 정리 좀 하고 나갈게⁠.⁠”

태언이 도장을 서랍에 넣고 나갔다⁠. 이사장실 문이 닫혔다⁠. 채묘정이 귤 하나를 꺼내 깠다⁠. 서류철 안에 귤이 들어 있었다⁠.

“⁠봤지⁠?⁠”

“⁠잔액이 그대로예요⁠.⁠”

“⁠그래⁠.⁠” 채묘정은 숨기지 않았다⁠. 귤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확인서는 희망이야⁠. 잔액은 장사고⁠.⁠”

“⁠라희는 한 달 동안 새벽 다섯 시부터 오후 두 시까지 일했어요⁠. 매일요⁠.⁠”

“⁠그리고 하루 세 끼 먹었지⁠. 따뜻한 방에서 잤고⁠. 가스 값⁠, 쌀값⁠, 이 건물 임대료⁠, 다 내가 내⁠.⁠” 채묘정이 귤껍질을 책상 위에 꽃잎처럼 펼쳤다⁠. “⁠고등어 빚은 원금의 열에 하나도 안 되는 값에 샀어⁠. 대부업체는 받을 길 없는 빚을 헐값에 판다⁠. 그 빚을 내가 사서 이자를 없앴어⁠. 독촉 전화를 끊었어⁠. 그게 나쁜 일이야⁠?⁠”

“⁠빚을 헐값에 샀으면⁠, 라희가 갚을 빚도 헐값이어야죠⁠.⁠”

“⁠그건 내가 정해⁠.⁠” 채묘정이 웃었다⁠. “⁠빚은 산 사람이 주인이야⁠. 주인이 이천삼백이라고 하면 이천삼백이야⁠. 대신 나는 굶기지 않아⁠. 밖에서는 이천삼백에 이자 붙고 굶어⁠. 여기서는 이천삼백 그대로고 배불러⁠. 어느 게 나아⁠?⁠”

“⁠라희는 언제 졸업해요⁠?⁠”

“⁠내가 졸업시킬 때⁠.⁠” 채묘정이 오른쪽 모니터를 턱으로 가리켰다⁠. “⁠태언이처럼⁠. 태언이는 졸업하고 관리인 하잖아⁠. 다들 졸업하면 여기 남고 싶어 해⁠. 밖에 나가 봐야 할 게 없으니까⁠.⁠”

나는 화면 속 숫자들을 보았다⁠. 줄이 끝없이 아래로 내려갔다⁠. 잔액 칸의 숫자는 하나도 줄지 않았다⁠.

“⁠왜 저한테 보여 줘요⁠?⁠”

“⁠너는 어차피 볼 애니까⁠.⁠” 채묘정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화면이 내려가다 멈췄다⁠. “⁠그리고 너는 남이 아니니까⁠.⁠”

화면 속 한 줄이 파랗게 칠해졌다⁠.

「⁠남궁하린 · 매입 2027⁠.03⁠.02 · 원 채권자 푸른대부⁠」

「⁠채권액 21⁠,400⁠,000 · 잔액 21⁠,400⁠,000⁠」

「⁠3월 입금 310⁠,000 / 4월 입금 예정 310⁠,000⁠」

목이 말랐다⁠. 침을 삼키려는데 침이 나오지 않았다⁠.

“⁠네 빚은 3월부터 내 거야⁠.⁠” 채묘정이 귤 한 조각을 떼어 내 앞에 놓았다⁠. “⁠3월에 너 삼십일만 원 나한테 보냈어⁠. 같은 계좌 번호로⁠. 받는 사람 이름은 안 봤지⁠? 다들 안 봐⁠. 번호만 외우지⁠.⁠”

나는 은행 앱의 「⁠3월 상환 완료⁠」를 떠올렸다⁠. 받는 사람 이름을 보지 않았다⁠. 매달 같은 번호였고⁠, 번호는 외우고 있었다⁠. 독촉 전화가 끊긴 날짜도 떠올랐다⁠. 3월 첫 주였다⁠.

“⁠독촉 전화도 내가 끊었어⁠.⁠” 채묘정이 말했다⁠. “⁠너는 일등을 해서 들어온 게 아니야⁠. 태언이한테 내가 데려오라고 했어⁠. 은행나무 총무가 너 노동법 책 들고 다닌다길래⁠. 이 조합에 서류 보는 애가 하나 필요했거든⁠.⁠”

“⁠고해방은요⁠? 제가 숫자 털어놓은 건요⁠?⁠”

“⁠그건 네가 한 거지⁠. 고마웠어⁠. 일이 쉬워졌거든⁠.⁠”

배 속이 뒤집혔다⁠. 저녁에 먹은 밥이 위로 밀려 올라왔다⁠. 나는 책상 모서리를 붙잡고 참았다⁠. 속이 불편해서 이마에 땀이 났다⁠. 채묘정이 휴지 한 장을 뽑아 내밀었다⁠. 나는 받지 않았다⁠.

“⁠얼마에 샀어요⁠?⁠”

“⁠네 거⁠?⁠” 채묘정이 귤을 씹었다⁠. “⁠백오십⁠.⁠”

이천백사십만 원에는 아버지 가게 주방 이모의 뜨겁고 단단한 손이 들어 있었고⁠, 대학 사 학년 겨울의 카드론과 석 달의 영 원이 들어 있었다⁠. 모두 백오십만 원에 팔려 화면 한 줄이 되어 있었다⁠. 화면 속 줄은 파랗게 칠해진 채 깜박이지도 않았다⁠.

*

채묘정이 서랍에서 열쇠 하나를 꺼내 책상 위에 놓았다⁠. 작은 놋쇠 열쇠였다⁠.

“⁠내일부터 너는 부엌 말고 여기서 일해⁠. 확인서 뽑는 일⁠. 식구들 확인서⁠, 2호점 서류⁠, 새로 오는 애들 서류⁠.⁠” 채묘정이 열쇠를 손가락으로 내 앞까지 밀었다⁠. “⁠네 손으로⁠.⁠”

“⁠싫으면요⁠?⁠”

“⁠싫으면 졸업함에서 전화 꺼내 가⁠.⁠” 채묘정이 귤껍질을 모아 쓰레기통에 털었다⁠. “⁠대신 이천백사십 한 번에 갚아⁠. 빚 주인은 나니까⁠, 언제 다 갚으라고 할지도 내가 정해⁠. 이 골목 고시원 사장들은 내 김치 먹고 사니까⁠, 너 받아 줄 방도 없을 거고⁠.⁠”

프린터 위에 아까 뽑다 남은 확인서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아직 따뜻했다⁠. 나는 열쇠를 쥐지 않았다⁠. 확인서를 쥐었다⁠. 종이의 온기가 손바닥으로 번졌다⁠. 문밖 식당에서 식구들이 밥 케이크를 자르며 웃었고⁠, 라희가 “⁠육천 개⁠!⁠” 하고 외쳤다⁠. 손바닥 안의 종이는 금방 식었다⁠.

*

밤 열한 시⁠, 2층 방에서 라희가 확인서를 벽 가운데에 댔다⁠. 목요일 밤에 붙여 둔 테이프 네 조각이 기다리고 있었다⁠. 라희가 종이를 양손으로 받치고 나를 돌아보았다⁠.

“⁠언니⁠, 귀퉁이 좀 눌러 줘⁠. 나 손이 떨려⁠.⁠”

나는 일어나 벽 앞으로 갔다⁠. 확인서의 네 귀퉁이를 엄지로 하나씩 눌렀다⁠. 위 왼쪽⁠, 위 오른쪽⁠, 아래 오른쪽⁠. 마지막 귀퉁이에서 엄지가 「⁠남은 빚 21⁠,800⁠,000원⁠」 바로 옆에 닿았다⁠. 종이 너머로 벽의 냉기가 엄지에 스며들었다⁠. 나는 꾹 눌렀다⁠. 테이프가 차가운 벽에 붙었다⁠.

“⁠됐다⁠.⁠” 라희가 뒤로 물러나 벽을 보았다⁠. “⁠예쁘다⁠.⁠”

라희는 침대에 누워 벽을 보다가 잠들었다⁠. 나는 엄지를 오래 내려다보았다⁠. 이 집에서 내 손이 처음 한 일은 쌀을 씻는 일이었고⁠, 오늘 한 일은 가짜 숫자를 벽에 붙이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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