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326자)

반찬 값

무지출 챌린지 단톡방 · 도결애

수요일 새벽 다섯 시⁠, 손수레를 혼자 밀었다⁠. 태언은 방송 촬영 준비로 식당 의자를 닦고 있었고⁠, 나한테 큰길 가까운 열네 집을 맡겼다⁠. 수레 손잡이가 어제보다 무거웠다⁠. 앞에서 끌어 주는 사람이 없으니 바퀴가 이음매마다 더 오래 덜컥거렸다⁠.

대성고시원 뒷문은 초인종이 고장 나 있었다⁠. 문을 두드리자 총무 대신 사장이 나왔다⁠. 예순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고⁠, 내복 위에 패딩 조끼를 입었고⁠, 목에 금목걸이가 늘어져 있었다⁠. 사장은 보온 통 뚜껑을 열어 김을 들이마셨다⁠.

“⁠이야⁠, 오늘 밥 좋다⁠. 유기농 청년들이 지은 밥⁠.⁠”

“⁠유기농이요⁠?⁠”

“⁠빚 말고는 아무것도 안 섞인 애들이잖아⁠.⁠” 사장이 혼자 크게 웃었다⁠. 금목걸이가 내복 위에서 흔들렸다⁠. “⁠우리 집은 밥이 공짜야⁠. 노량진에서 공짜 밥 없으면 방이 안 나가⁠. 대신 방세에 식대 이만 원 얹었지⁠. 다들 좋아해⁠.⁠”

“⁠식대를 받으면 공짜가 아니잖아요⁠.⁠”

“⁠방세는 방세고⁠, 밥은 공짜지⁠.⁠” 사장이 김치 통을 받아 들고 뚜껑을 톡톡 쳤다⁠. “⁠나도 영원하우스에 반찬 값 내⁠. 한 사람에 한 달 만 오천 원⁠. 사람 쓰는 것보다 열 배는 싸⁠. 아가씨네 이사장님이 장사를 할 줄 알아⁠.⁠”

사장은 계산이 끝난 얼굴로 문을 닫았다⁠. 나는 닫힌 문 앞에서 수레 손잡이를 쥐고 숫자를 굴렸다⁠. 세입자는 방세에 이만 원을 얹어 내고⁠, 사장은 그중 만 오천 원을 한솥살림에 냈다⁠. 돈은 위로⁠, 위로 올라갔다⁠. 밥을 지은 손은 숫자 어디에도 없었다⁠. 오늘 새벽 함지 앞에서 찬물에 손이 빨개진 라희의 손도⁠, 곰국의 손도⁠, 내 손도⁠.

노량고시텔 뒷문 옆 게시판에는 새 전단이 붙어 있었다⁠. 「⁠빚 때문에 잠 못 드시나요⁠? 방과 세 끼를 드립니다 — 영원하우스 입소 상담 · 한솥살림⁠」 전단 아래 귀퉁이가 이미 몇 장 뜯겨 나가 있었다⁠. 전화번호가 적힌 귀퉁이였다⁠.

김치 통을 내려놓는데 뒷문이 열리고 트레이닝복 차림의 여자가 나왔다⁠. 손에 경찰 시험 문제집을 들고 있었다⁠. 여자는 내 앞치마의 「⁠영원하우스⁠」 글씨를 보고 목소리를 낮췄다⁠.

“⁠거기 들어가면 진짜 빚이 줄어요⁠?⁠”

“⁠확인서가 나와요⁠.⁠”

“⁠확인서요⁠?⁠”

“⁠남은 빚이 얼마인지 종이로요⁠.⁠” 나는 태언의 말을 그대로 옮겼다⁠. 내 목소리로 옮기니 이상하게 납작했다⁠. “⁠저도 들어간 지 사흘이에요⁠. 아직 한 장도 못 받았어요⁠.⁠”

여자는 전단 귀퉁이를 하나 더 뜯어 문제집 사이에 끼웠다⁠. 고맙다고 고개를 숙이고 들어갔다⁠. 나는 게시판 앞에 남아 뜯긴 귀퉁이 자국을 손끝으로 세다가 그만두었다⁠. 세는 사이에도 하나가 더 뜯길 것이었다⁠.

나머지 집들도 돌았다⁠. 다섯 번째 집 총무가 쪽지를 내밀었다⁠. 나는 받아서 펴 보지 않고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 안에서 어제의 쪽지와 오늘의 쪽지가 서로 부딪쳤다⁠.

*

여섯 시 반⁠, 컵밥 골목은 아침 장사로 연기가 올랐다⁠. 학원 첫 수업 전에 밥을 먹으려는 사람들이 노점마다 줄을 이었다⁠. 예림 언니는 밤 장사를 끝내고도 아침 장사에 남아 있었다⁠. 사장 대신 철판을 맡아 계란을 부쳤다⁠.

“⁠언니⁠, 아침까지 해요⁠?⁠”

“⁠아침 장사 하면 한 시간에 만 원 더 줘⁠.⁠” 예림 언니가 계란을 뒤집었다⁠. 노른자가 터지지 않았다⁠. “⁠방세 때문에⁠. 너 알지⁠? 두 달 밀린 거⁠.⁠”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예림 언니가 뒤집개를 철판에 내려놓았다⁠.

“⁠어제 계단에서 알았지⁠?⁠”

“⁠네⁠.⁠”

“⁠왜 말 안 했어⁠?⁠”

“⁠참았어요⁠.⁠”

예림 언니가 웃었다⁠. 웃음에 기름 튀는 소리가 섞였다⁠.

“⁠너 참는 거 진짜 잘한다⁠. 남의 일까지 대신 참아 주고⁠.⁠” 예림 언니가 앞치마 주머니에서 귤 하나를 꺼내 철판 옆에 놓았다⁠. 껍질에 「⁠한솥살림⁠」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어제 그 이사장 왔다 갔어⁠. 귤 한 봉지 들고⁠. 내 보증 빚도 자기네가 사 준대⁠. 동생이랑 같이 살래⁠. 방 하나 둘이 쓰면서 세 끼 먹으래⁠.⁠”

“⁠가지 마요⁠.⁠”

“⁠왜⁠?⁠”

“⁠제가 찾을 때까지만요⁠. 거기 숫자가 이상해요⁠. 확인서 숫자가 너무 빨리 내려가요⁠. 다들 밥 짓고 배달하는데 그 일이 얼마로 쳐지는지 아무도 몰라요⁠.⁠”

“⁠그래서 찾으면⁠?⁠” 예림 언니가 계란을 접시에 옮겼다⁠. 손님이 접시를 받아 갔다⁠. 예림 언니는 손님에게 웃어 주고 나서 나를 보았다⁠. 웃음이 남지 않은 얼굴이었다⁠. “⁠찾으면 그다음엔 누가 밥 줘⁠? 네가 줘⁠? 너 영 원 쓰는 애잖아⁠. 하루 영 원⁠.⁠”

철판 위에서 기름이 튀었다⁠. 나는 후드티 소매로 손등을 가렸다⁠.

“⁠걔 볼 통통해진 거 너도 봤잖아⁠. 나도 거기 가면 볼 통통해져⁠. 둘이 통통해지는 게 그렇게 나빠⁠?⁠”

“⁠언니 볼이 통통해지는 건 좋아요⁠.⁠”

“⁠그럼 됐네⁠.⁠”

“⁠누가 그 볼 값을 내는지 몰라서 그래요⁠.⁠”

예림 언니가 대답 대신 계란 두 개를 한꺼번에 깨뜨렸다⁠. 껍데기가 철판에 튀었다⁠. 노점 사장이 옆 철판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예림아⁠, 계란 껍데기는 손님한테 안 팔아⁠.⁠”

“⁠알아요⁠, 사장님⁠.⁠”

노점 구석 라디오에서 아침 뉴스가 흘렀다⁠. 「⁠청년 연체 채권⁠, 사회적경제 조직이 사들여 탕감⁠… 미담인가 새 시장인가⁠」 예림 언니는 라디오 볼륨을 줄였다⁠. 줄이고 나서 귤을 내 손에 쥐여 주었다⁠.

“⁠이건 지출 아니야⁠. 그 이사장 거야⁠. 네가 먹어⁠.⁠”

나는 귤을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쪽지 두 장 옆에 귤이 하나 들어갔다⁠. 주머니가 둥글게 불룩해졌다⁠.

*

목요일 오전⁠, 방송 촬영팀이 영원하우스 식당을 채웠다⁠. 카메라 두 대와 조명 하나⁠, 마이크를 단 막대가 식당 천장 아래를 오갔다⁠. 식구들은 새 앞치마를 입었다⁠. 앞치마 가슴께에 「⁠영원하우스⁠」 글씨가 수놓여 있었다⁠. 태언이 새벽에 하나하나 다림질한 앞치마였다⁠.

채묘정은 카메라 앞에서 존댓말을 썼다⁠.

“⁠청년들이 스스로 밥을 지어 골목을 먹입니다⁠. 빚 때문에 고개 숙였던 아이들이 이제는 남을 먹여요⁠. 저는 방을 내주고 쌀을 사 줄 뿐이에요⁠.⁠”

스스로⁠. 나는 식당 구석에서 스스로라는 낱말을 입속으로 굴렸다⁠. 스스로 지은 밥은 월급이 없었다⁠.

피디가 이백원에게 한마디를 부탁했다⁠. 이백원은 안경을 고쳐 쓰고 카메라를 오래 보았다⁠.

“⁠이 카메라가 얼마예요⁠?⁠”

“⁠네⁠?⁠”

“⁠이백 원짜리로 바꿔 보려고요⁠.⁠” 이백원이 진지하게 말했다⁠. “⁠제 화폐 단위가 이백 원이라서요⁠.⁠”

촬영팀이 웃었다⁠. 피디가 웃으면서 “⁠그거 좋다⁠, 그거 살리자⁠”라고 말했다⁠. 라희는 함지 앞에서 쌀을 씻는 장면을 세 번 다시 찍었다⁠. 세 번 다 웃었고⁠, 세 번 다 손이 빨개졌다⁠. 카메라가 꺼지자 라희는 손을 겨드랑이에 끼우고 제자리에서 뛰었다⁠. 손이 녹을 때까지⁠.

피디가 함지 앞에서 나를 붙잡았다⁠. “⁠얼굴 안 나오게 손만 찍을게요⁠. 쌀 씻는 손⁠. 그게 그림이 좋아요⁠.⁠”

나는 싫다고 말하지 못했다⁠. 함지에 손을 넣자 카메라가 손등 가까이 다가왔다⁠. 찬물 속에서 쌀알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갔다⁠. 렌즈가 손등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내 손이 이 집의 광고가 되는 동안 나는 숨을 참았다⁠. 피디가 「⁠좋아요⁠」라고 말하고 나서야 손을 뺐다⁠. 손등이 빨갛게 얼어 있었다⁠.

나는 다시 카메라를 피해 다녔다⁠. 태언은 카메라를 피하지 않았다⁠. 식구들 뒤에서 김치 통을 옮기며 화면 가장자리에 계속 걸어 들어갔다⁠. 채묘정이 인터뷰 중간에 태언을 가리켰다⁠.

“⁠우리 첫 졸업생이에요⁠. 빚 천팔백을 다 갚고 지금은 관리인을 해요⁠.⁠”

카메라가 태언을 향했다⁠. 태언은 김치 통을 든 채 어색하게 웃었다⁠. 웃는 눈이 젖어 있었다⁠. 삼 년 동안 믿어 온 것을 남이 대신 말해 줄 때의 얼굴이었다⁠. 나는 태언의 얼굴을 오래 보지 못했다⁠. 태언의 웃음은 진짜였다⁠.

*

목요일 밤⁠, 라희는 2층 방 벽 앞에서 테이프를 이로 끊었다⁠. 침대 머리맡 벽에 손바닥 두 개만 한 자리를 비워 두고⁠, 네 귀퉁이에 테이프 조각을 미리 붙여 놓았다⁠.

“⁠일요일에 확인서 받으면 여기 붙일 거야⁠. 곰국 오빠처럼 일렬로⁠.⁠”

“⁠한 장이잖아⁠.⁠”

“⁠첫 장이니까 가운데 붙이는 거야⁠. 다음 장은 오른쪽⁠.⁠” 라희가 벽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페인트가 일어나 있었다⁠. “⁠방장님한테 부탁해서 사진 찍어 달래야지⁠. 언니한테 보내게⁠. 이천삼백에서 얼마 줄었는지 보여 주게⁠.⁠”

“⁠언니가 좋아하겠다⁠.⁠”

“⁠언니는 울 거야⁠. 울면서 천천히 먹으라고 할 거야⁠.⁠” 라희가 웃었다⁠. “⁠언니도 여기 오면 좋겠다⁠. 둘이 일렬로 붙이면 벽이 꽉 차⁠.⁠”

라희는 테이프를 하나 더 끊어 붙였다⁠. 귀퉁이가 다섯이 되었다⁠. 하나는 틀렸다고 떼어 냈다⁠. 떼어 낸 테이프를 손가락에 감고 라희는 오래 벽을 보았다⁠. 빈 벽을 저렇게 들여다보는 얼굴을 나는 예전에 본 적이 있었다⁠. 은행 앱의 「⁠오늘 지출 0원⁠」을 들여다보던 내 얼굴이었다⁠.

*

금요일 새벽 한 시⁠, 나는 맨발로 1층에 내려갔다⁠. 양말을 신으면 계단에서 미끄러질 것 같았고⁠, 슬리퍼를 신으면 소리가 났다⁠. 맨발에 닿는 타일이 얼음 같았다⁠. 발가락이 저려 오는 것을 참으며 식당을 가로질렀다⁠.

이사장실 문에는 손바닥만 한 유리창이 있었다⁠. 식당 비상등 빛이 유리창 너머로 조금 들어갔다⁠. 책상⁠, 모니터 두 대⁠, 철제 서류함⁠. 서류함 서랍마다 견출지가 붙어 있었다⁠. 맨 위 서랍에 「⁠채권⁠」⁠, 가운데 서랍에 「⁠확인서⁠」⁠, 맨 아래에 「⁠고시원⁠」

문손잡이를 돌렸다⁠. 잠겨 있었다⁠. 한 번 더 돌렸다⁠.

“⁠보고 싶으면 말하지 그랬어요⁠.⁠”

뒤에서 태언의 목소리가 났다⁠. 놀라서 돌아보자 태언이 식당 식탁에 앉아 있었다⁠. 불 꺼진 식당에서 텀블러를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있었다⁠. 언제부터 앉아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말하면 보여 줘요⁠?⁠”

“⁠저도 열쇠 없어요⁠.⁠” 태언이 텀블러를 내려놓았다⁠. “⁠이 방 열쇠는 이사장님만 있어요⁠. 저는 밥 일이라고 했잖아요⁠.⁠”

“⁠방장님은 이 방에 들어가 봤어요⁠?⁠”

“⁠일요일 밤마다요⁠. 확인서 뽑는 날⁠. 한 달 채운 식구가 있으면 이사장님이 와서 문을 열고 확인서를 뽑아요⁠. 저는 옆에서 도장 찍는 걸 도와요⁠.⁠”

“⁠방장님 숫자는요⁠? 화면에서 봤어요⁠?⁠”

태언이 나를 보았다⁠. 비상등 빛이 텀블러 표면에서 미끄러졌다⁠.

“⁠졸업할 때 영 원 확인서 받았어요⁠. 제 방 벽에 붙어 있어요⁠. 그걸로 충분해요⁠.⁠”

“⁠화면은요⁠?⁠”

“⁠하린 님⁠.⁠” 태언이 몸을 일으켰다⁠. 키가 커서 몸을 펴자 비상등 빛이 태언의 얼굴을 놓쳤다⁠. “⁠확인서 숫자를 의심하는 사람은 여기서 밥을 못 먹어요⁠. 의심하면 배가 아파요⁠. 저는 여기서 삼 년 밥을 먹었어요⁠. 배 한 번 안 아팠어요⁠.⁠”

태언의 배에서 작게 소리가 났다⁠. 저녁도 반 공기만 먹은 배였다⁠. 태언은 배 소리를 못 들은 척 텀블러를 들었다⁠.

“⁠이번 일요일에 라희 씨 첫 확인서가 나와요⁠. 한 달 채웠거든요⁠.⁠” 태언이 계단으로 걸어가다 멈췄다⁠. “⁠하린 님도 들어와요⁠. 이사장님이 부르셨어요⁠. 공부한 사람이 하나 있으면 좋다고요⁠.⁠”

태언은 계단을 올라갔다⁠. 나는 맨발로 잠긴 문 앞에 남았다⁠. 유리창 너머 「⁠채권⁠」 서랍의 견출지가 비상등 빛에 하얗게 떠 있었다⁠. 발바닥이 타일에 얼어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일요일까지 이틀이었다⁠. 나는 이틀을 참아야 했고⁠, 참는 것은 언제나 내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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