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440자)

이천백사십만 원

무지출 챌린지 단톡방 · 도결애

목요일 밤 열두 시 십 분⁠, 고해방 입력 칸에는 아직 「⁠참을인⁠: 이천⁠」이 떠 있었다⁠. 나는 침대에 앉아 무릎을 세우고 휴대전화를 무릎 위에 올려 두었다⁠. 창 없는 방은 불을 끄면 끝까지 어두웠고⁠, 화면 불빛만 무릎을 하얗게 비췄다⁠.

이제는 털어놓아야 한다⁠. 내 빚은 이천백사십만 원이다⁠.

스물두 살 겨울⁠, 대전 아버지 가게가 문을 닫았다⁠. 「⁠남궁 순댓국⁠」은 이십 년 된 가게였고⁠, 마지막 해에는 하루 손님이 열 명을 넘지 않았다⁠. 주방 이모와 홀 언니는 마지막 두 달 월급을 못 받은 채 일했다⁠. 아버지는 두 사람에게 줄 돈을 구하러 은행 세 곳에 갔다가 세 번 다 빈손으로 돌아왔다⁠.

나는 아버지 몰래 카드론을 받았다⁠. 대학 사 학년이었고⁠, 신용카드는 하나였고⁠, 한도는 생각보다 높았다⁠. 주방 이모가 봉투를 받으며 내 손을 두 손으로 잡았던 감촉을 나는 지금도 손등으로 기억한다⁠. 이모의 손바닥은 순댓국 뚝배기를 이십 년 나른 손이라 뜨겁고 단단했다⁠.

가게 월세와 밀린 재료 값을 막느라 현금서비스를 몇 번 더 받았다⁠. 졸업하고 취업은 되지 않았고⁠, 연체가 시작됐다⁠. 카드사에서 마지막 안내문이 오더니 빚이 푸른대부라는 대부업체로 넘어갔다⁠. 작년 가을부터 매달 같은 가상계좌 번호로 삼십일만 원을 보냈다⁠. 무지출 챌린지는 다달이 나가는 삼십일만 원을 만들려고 시작했다⁠.

아버지는 내가 다 갚은 줄 안다⁠. 아버지가 그렇게 믿는 척하고 있다는 것까지 나는 안다⁠.

엄지로 나머지 숫자를 쳤다⁠.

「⁠참을인⁠: 이천백사십만 원이요⁠. 아버지 가게 문 닫을 때 직원 두 분 마지막 월급을 카드론으로 드렸어요⁠. 아버지는 다 갚은 줄 알아요⁠.⁠」

전송을 누르자 명치 밑이 텅 비었다⁠. 오래 얹혀 있던 것이 한꺼번에 내려간 배였다⁠. 답은 일 분도 안 되어 달렸다⁠.

「⁠통장잔고요정⁠: 월급 주려고 빚진 사람 처음 봄⁠. 사장님 따님 멋있음⁠」

「⁠딱그때⁠: 적시에 빌렸네⁠. 인정⁠」

「⁠이름없음22⁠: 저도 아빠 가게 빚이에요⁠. 저는 아직 말 못 했어요⁠」

「⁠절약왕⁠: 말해 줘서 고마워요⁠.⁠」

나는 고해방을 닫고 은행 앱을 열었다⁠. 상환 내역 맨 위에 「⁠3월 상환 완료 · 310⁠,000원⁠」이 있었다⁠. 받는 사람 이름은 보지 않았다⁠. 매달 같은 번호로 보내는 돈이었고⁠, 번호는 외우고 있었다⁠.

*

금요일 저녁 다섯 시⁠, 공용 부엌에서 밥을 푸는데 창길이 밥솥 옆으로 왔다⁠. 창길은 내 그릇의 김치를 눈으로 세고 나서 목소리를 낮췄다⁠.

“⁠너 이번 주 일등 확정이야⁠. 고해방에 이천백사십 넘은 사람 없어⁠.⁠”

“⁠총무님⁠, 목소리⁠.⁠”

“⁠낮췄잖아⁠.⁠”

낮춘 목소리가 개수대 앞까지 갔다⁠. 개수대에서 컵을 씻던 예림 언니가 수도꼭지를 잠갔다⁠. 물이 끊기자 부엌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냉장고 모터 소리만 남았다⁠.

창길이 그릇을 들고 슬금슬금 계단으로 사라졌다⁠. 예림 언니가 젖은 손을 앞치마에 닦으며 나를 보았다⁠.

“⁠복도로 와⁠.⁠”

복도는 형광등 하나가 반쯤 나가 있어서 깜박일 때마다 문 번호가 지워졌다 나타났다⁠. 예림 언니는 209호 문에 등을 붙였고⁠, 나는 207호 문에 등을 붙였다⁠. 두 문 사이가 한 걸음이었다⁠.

“⁠너 들어가려고 그거 올렸지⁠.⁠”

“⁠네⁠.⁠”

“⁠들어가서 뭐 할 건데⁠?⁠”

“⁠라희 데리고 나올 거예요⁠.⁠”

“⁠걔가 나오고 싶대⁠?⁠” 예림 언니의 목소리가 빨라졌다⁠. “⁠하린아⁠, 걔 작년에 하루 한 끼 먹었어⁠. 일 년 내내⁠. 쇼핑몰 망하고 내가 보증 선 거 알고부터 저녁만 먹었어⁠. 내가 떡볶이 사 들고 가면 배부르다고 안 먹었어⁠. 배에서 꾸르륵 소리 나는데 배부르대⁠.⁠”

형광등이 깜박였다⁠. 예림 언니 얼굴이 지워졌다가 돌아왔다⁠.

“⁠걔가 처음으로 밥을 안 굶어⁠. 처음으로⁠. 너 들어가서 이상하다고 들쑤시면 걔 쫓겨나⁠. 쫓겨나면 걔 또 저녁만 먹어⁠.⁠”

“⁠언니는요⁠?⁠” 나는 참았던 말을 꺼냈다⁠. “⁠언니는 저녁도 안 먹잖아요⁠. 언니 배 소리 다 들려요⁠. 벽이 얇아서요⁠.⁠”

예림 언니가 입을 다물었다⁠. 다물었다가⁠, 웃었다⁠. 웃는 얼굴이 이상하게 차가웠다⁠.

“⁠내 배는 내 거야⁠. 걔 배는 걔 거고⁠. 네 배는 네 거⁠. 남의 배 소리 듣지 마⁠.⁠”

예림 언니는 209호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이 닫히는 바람에 복도 형광등이 한 번 더 깜박였다⁠. 나는 207호 문에 등을 붙인 채 한참 서 있었다⁠. 벽 너머에서 예림 언니가 물을 따르는 소리가 났다⁠. 한 컵⁠, 그리고 한 컵 더⁠.

*

토요일 오후⁠, 고시원 옥상에서 창길이 빨랫줄에 운동화를 매달고 있었다⁠. 운동화 끈을 집게로 집으며 창길이 나를 힐끔 보았다⁠.

“⁠너 진짜 갈 거냐⁠?⁠”

“⁠일등 되면요⁠.⁠”

“⁠되지⁠, 이천백사십인데⁠.⁠” 창길이 집게 하나를 입에 물었다가 뺐다⁠. “⁠우리 고시원에서도 몇 명 갔어⁠. 일등 말고 그냥 간 애들⁠. 방세 석 달 밀린 애⁠, 넉 달 밀린 애⁠. 다들 짐 싸서 골목 끝으로 갔고 다들 사진 잘 올려⁠.⁠”

“⁠그냥 간 사람들은 어떻게 갔어요⁠?⁠”

창길이 운동화를 툭 쳤다⁠. 운동화가 빨랫줄에서 빙글 돌았다⁠.

“⁠몰라⁠. 사장님이 알아서 하지⁠.⁠”

옥상 난간에 누가 깔고 앉았던 신문이 바람에 펄럭였다⁠. 경제면 귀퉁이에 짧은 기사가 있었다⁠. 「⁠대부업체 연체 채권 매각 늘어 … 헐값에 넘어가는 청년 빚⁠」 나는 신문을 접어 난간 밑에 끼웠다⁠. 창길은 운동화가 마르는 시각을 계산하고 있었다⁠.

“⁠해 지기 전에 딱 마른다⁠. 오늘 밤 열 시에 신으면 딱 그때야⁠.⁠”

“⁠어디 가요⁠?⁠”

“⁠편의점⁠. 열 시에 도시락 반값 붙어⁠.⁠” 창길이 진지하게 말했다⁠. “⁠너도 거기 들어가면 이런 거 못 해⁠. 반값 스티커 붙는 순간의 짜릿함 같은 거⁠. 무지출은 그걸 몰라⁠.⁠”

창길은 웃었고⁠, 나는 웃다가 배를 눌렀다⁠. 반값 도시락 이야기만으로 배가 울었다⁠.

*

일요일 밤 열한 시⁠, 단톡방에 주간 순위가 올라왔다⁠.

「⁠절약왕⁠: 이번 주 일등 — 참을인 님⁠. 연속 백 일⁠, 참은 돈 사만 칠천 원⁠. 축하합니다⁠.⁠」

백 일째 밤이었다⁠. 축하 이모티콘이 화면을 덮었다⁠. 전부 공짜 이모티콘이었다⁠.

「⁠통장잔고요정⁠: 축 졸업 예정⁠」

「⁠거지왕자⁠: 참을인 님 닉네임 따라 참을 인 자 세 번 쓰셨네⁠. 살인도 면하심⁠」

「⁠딱그때⁠: 나도 빚 있는데 왜 나는 안 뽑아 줌⁠」

「⁠거지왕자⁠: 딱그때 님은 빚도 적시에 지셔서 그럼⁠」

「⁠딱그때⁠: 반박 불가⁠」

「⁠컵밥언니⁠: 축하해⁠」

예림 언니의 닉네임이었다⁠. 세 글자짜리 축하에는 이모티콘이 없었다⁠. 벽 너머는 조용했다⁠.

일대일 메시지가 왔다⁠.

「⁠절약왕⁠: 월요일 새벽 네 시에 고시원 뒷문으로 갈게요⁠. 짐은 가방 하나요⁠. 책은 괜찮아요⁠. 휴대전화는 들어와서 맡기시면 돼요⁠.⁠」

나는 가방을 쌌다⁠. 노동법 기본서⁠, 양말 세 켤레⁠, 속옷⁠, 칫솔⁠, 회색 후드티⁠. 기본서를 넣을까 말까 오래 고민했다⁠. 무거웠다⁠. 무거운 걸 들고 가는 게 버릇이라 결국 넣었다⁠. 가방이 다 차고 나서도 방은 별로 비지 않았다⁠. 원래 비어 있던 방이었다⁠.

*

월요일 새벽 세 시 오십 분⁠, 207호 문을 열자 예림 언니가 복도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노점 앞치마를 그대로 두른 채였다⁠. 퇴근하고 방에 들어가지 않은 것이었다⁠.

“⁠진짜 가⁠?⁠”

“⁠네⁠.⁠”

예림 언니가 몸을 일으켰다⁠. 내 가방을 내려다보고⁠, 내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무언가 더 말하려다가 앞치마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꺼낸 것은 조미김 한 봉지였다⁠. 노점에서 컵밥 위에 부숴 올리는 김이었다⁠.

“⁠이거 걔 좋아해⁠. 지출 아니야⁠. 내 거야⁠.⁠”

나는 김을 받았다⁠. 봉지가 바스락거렸다⁠.

“⁠걔 보면⁠, 밥 천천히 먹으라고 해⁠. 걔 너무 빨리 먹어⁠. 굶다가 먹는 애들은 다 빨리 먹어⁠. 그러다 체해⁠.⁠”

“⁠전할게요⁠.⁠”

“⁠그리고⁠.⁠” 예림 언니가 내 후드티 끈을 손가락으로 한 번 잡아당겼다가 놓았다⁠. “⁠걔 거기서 잘 있으면⁠, 너도 그냥 거기서 밥 먹고 살아⁠. 돌아오지 말고⁠. 너도 배 소리 나⁠.⁠”

예림 언니는 209호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문이 조용히 닫혔다⁠.

*

네 시 정각⁠, 고시원 뒷문 밖에 태언이 서 있었다⁠. 손수레는 없었다⁠. 남색 바람막이 주머니에 텀블러가 꽂혀 있었다⁠.

“⁠가방 들어 드릴까요⁠?⁠”

“⁠괜찮아요⁠.⁠”

“⁠금방이에요⁠.⁠”

새벽 골목은 셔터 소리로 열려 있었다⁠. 컵밥 노점들은 비닐을 씌운 채 잠들어 있었고⁠, 학원 건물 입구마다 전단지가 바람에 굴렀다⁠. 우리는 은행나무고시원 앞 은행나무를 지나 골목 안쪽으로 걸었다⁠. 고시원 간판이 차례로 지나갔다⁠. 해오름⁠, 청운⁠, 대성⁠, 노량⁠, 다시 무슨 고시텔⁠. 간판마다 「⁠공짜 밥·김치 제공⁠」이 붙어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간판 밑 글씨들을 하나하나 읽었다⁠.

삼백 미터쯤 걸었을 때 골목이 끝났다⁠. 막다른 벽 앞에 사 층짜리 건물이 있었다⁠. 낡은 간판의 「⁠영원고시원⁠」에서 「⁠고시원⁠」 세 글자를 흰 페인트로 덮고 덧칠한 자리에 「⁠하우스⁠」라고 새로 썼다⁠. 덧칠한 페인트 밑으로 옛 글씨의 자국이 비쳤다⁠.

건물 지하 창살 사이로 김이 올라왔다⁠. 밥 짓는 냄새였다⁠. 새벽 네 시인데 지하에 불이 켜져 있었고⁠, 쇠솥 뚜껑 여닫는 소리와 물 흐르는 소리가 났다⁠. 내 배가 냄새를 알아보고 울었다⁠. 매일 아침 일곱 시 공용 부엌에서 맡던 냄새였다⁠.

이 골목을 나는 석 달 동안 백 번도 넘게 지나다녔다⁠. 막다른 벽 앞까지는 온 적이 없었다⁠. 막다른 데는 갈 일이 없었다⁠.

“⁠여기예요⁠?⁠”

“⁠여기예요⁠.⁠” 태언이 현관 비밀번호를 눌렀다⁠. 삑삑삑삑⁠. 네 자리였다⁠. “⁠다들 여기를 멀리 있는 줄 알아요⁠. 졸업생 사진만 보면 어디 시골 같잖아요⁠.⁠”

현관 안은 차가웠다⁠. 바닥 타일이 운동화 밑창을 지나 발바닥까지 냉기를 밀어 올렸다⁠. 보일러를 꺼 두었다고 태언이 말했다⁠. 밥 짓는 데 가스를 쓰니까 난방은 아낀다고⁠.

1층은 식당이었다⁠. 긴 식탁 넷에 플라스틱 의자가 붙어 있고⁠, 벽에 「⁠한솥살림 사회적협동조합 · 영원하우스⁠」 현판이 붙어 있었다⁠. 현판 옆에 철제 보관함이 있었다⁠. 작은 문이 가로로 여섯⁠, 세로로 넷⁠, 문마다 번호가 찍혀 있었다⁠.

“⁠졸업함이에요⁠.⁠” 태언이 맨 아래 오른쪽 문을 열었다⁠. 스물네 번째 문이었다⁠. “⁠휴대전화는 여기 넣어요⁠. 원하면 언제든 꺼내 가도 돼요⁠. 꺼내면 졸업은 끝나는 거고요⁠.⁠”

“⁠끝나면요⁠?⁠”

“⁠나가는 거죠⁠. 붙잡는 사람은 없어요⁠.⁠” 태언이 웃었다⁠. “⁠근데 아무도 안 꺼내요⁠. 밥이 맛있어서요⁠.⁠”

나는 휴대전화를 들고 화면을 한 번 보았다⁠. 단톡방은 조용했다⁠. 연속 무지출 백 일⁠. 화면을 끄고 스물네 번째 칸에 넣었다⁠. 철문이 닫히는 소리가 식당의 찬 공기를 갈랐다⁠. 태언이 작은 열쇠로 잠그고⁠, 열쇠를 바람막이 안주머니에 넣었다⁠.

철문이 닫힌 바로 뒤⁠, 보관함 어딘가에서 진동이 울렸다⁠. 철판이 웅웅거렸다⁠. 위에서 두 번째 줄⁠, 세 번째 문의 통풍 틈으로 휴대전화 화면 불빛이 새어 나왔다⁠.

“⁠라희 씨 거예요⁠.⁠” 태언이 문에 손바닥을 댔다⁠. 진동이 손바닥을 타고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언니분이 가끔 이 시간에 걸어요⁠. 라희 씨는 안 받아요⁠. 받으면 마음이 흔들린다고요⁠.⁠”

예림 언니는 알고 싶지 않다고 했다⁠. 가 보고 싶어질까 봐 알고 싶지 않다고 했다⁠. 진동은 열한 번 울리고 멈췄다⁠. 통풍 틈의 불빛이 꺼졌다⁠. 식당은 다시 차가워졌고⁠, 지하에서 밥솥 뚜껑이 열리는 소리가 올라왔다⁠. 나는 가방 안에서 조미김 봉지를 꽉 쥐었다⁠. 봉지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졸업함 철문보다 크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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