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5,658자)

졸업식

무지출 챌린지 단톡방 · 도결애

화요일 아침⁠, 단톡방에 방장 공지가 올라왔다⁠.

「⁠절약왕⁠: 목요일 오전 열 시⁠, 영원하우스 첫 합동 졸업식이 있습니다⁠. SNS로 생중계합니다⁠. 골목 공급은 졸업식 다음 날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공지 아래로 축하 이모티콘이 달렸다⁠. 참여자는 육천을 넘었다⁠. 졸업식을 하면 밥이 다시 나온다는 말에 골목 사람들이 먼저 반겼다⁠. 은행나무고시원 부엌에서 재수생이 빈 밥솥을 두드리며 목요일만 버티자고 했다⁠. 창길이 김치 통 바닥을 긁으며 대답했다⁠. 목요일까지 김치가 버틸지는 모른다고⁠.

태언은 육교에서 헤어진 뒤로 아무 글도 보내지 않았다⁠. 사진 한 장이 다였다⁠. 나는 사진을 휴대전화 앨범 맨 위에 두고 하루에 몇 번씩 열어 보았다⁠. 키보드 위에 얹힌 짧은 손톱을⁠.

화요일 밤⁠, 병원 휴게실에서 예림 언니와 창길과 내가 같은 식탁에 앉았다⁠. 창길이 신발 상자를 무릎에 올렸고⁠, 나는 노동법 기본서와 졸업함에서 갖고 나온 종이 네 장과 공책을 식탁에 펼쳤다⁠. 예림 언니는 팔짱을 끼고 듣기만 했다⁠. 라희는 병실에서 자고 있었다⁠.

“⁠목요일에 들어가요⁠.⁠” 내가 말했다⁠. “⁠카메라 앞에서요⁠.⁠”

“⁠문은 어떻게 열어⁠? 비밀번호 바뀌었을 텐데⁠.⁠” 창길이 물었다⁠.

“⁠모르겠어요⁠.⁠”

“⁠적시가 하나도 없네⁠, 이 계획⁠.⁠” 창길이 상자 뚜껑을 탁 덮었다⁠. “⁠좋아⁠. 나 이런 거 해 보고 싶었어⁠. 적시 아닌 거⁠.⁠”

예림 언니가 팔짱을 풀었다⁠.

“⁠나도 가⁠.⁠” 예림 언니가 말했다⁠. “⁠라희는 생중계로 본대⁠. 휴대전화 들고 누워서⁠. 걔가 언니도 가래⁠.⁠”

“⁠언니⁠, 위험할 수도 있어요⁠. 언니 동의서도⁠—⁠”

“⁠알아⁠. 그러니까 가는 거야⁠.⁠” 예림 언니가 내 공책을 끌어당겼다⁠. 동그라미 쳐진 숫자를 다시 보았다⁠. “⁠라희가 한 달 열흘 일한 값⁠. 네가 계산한 거⁠. 이거 틀리면 너 죽어⁠.⁠”

“⁠안 틀려요⁠.⁠”

“⁠틀려도 죽어⁠.⁠” 예림 언니가 공책을 밀어 돌려주었다⁠. 처음으로 웃었다⁠. 영원하우스에 들어간 새벽 이후 처음 본⁠, 나를 향한 웃음이었다⁠.

휴게실을 나와 병원 앞 벤치에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밤 열한 시였다⁠. 아버지는 대리운전 콜을 기다리며 받았다⁠. 차 소리가 먼저 들렸다⁠.

“⁠아빠⁠, 그 카드 빚 아직 있어요⁠.⁠”

전화 너머가 조용했다⁠. 차 한 대가 지나가는 소리가 다 지나갈 때까지⁠.

“⁠알았다⁠.⁠” 아버지가 말했다⁠. “⁠알고 있었다⁠.⁠”

“⁠목요일에 사람들 앞에서 말할 거예요⁠. 카메라 있는 데서요⁠. 가게 이름도 나올 거예요⁠.⁠”

“⁠그래라⁠.⁠” 아버지가 기침을 했다⁠. “⁠우리 가게 이름 오랜만에 방송 타네⁠.⁠” 아버지가 웃었다⁠. 웃다가 말을 이었다⁠. “⁠하린아⁠, 주방 이모가 너 보고 싶대⁠. 지난달에 시장에서 만났어⁠. 너 손 뜨겁던 거 기억한대⁠.⁠”

“⁠제 손이요⁠? 이모 손이 뜨거웠는데요⁠.⁠”

“⁠둘 다 뜨거웠겠지⁠.⁠” 아버지가 말했다⁠. 콜이 들어왔는지 휴대전화 너머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손님 왔다⁠. 밥 먹어라⁠.⁠”

전화가 끊겼다⁠. 나는 벤치에 앉아 손바닥을 펴 보았다⁠. 찬물에 쌀을 씻느라 튼 손이었다⁠. 뜨겁지 않았다⁠.

*

목요일 오전 아홉 시 반⁠, 막다른 골목에 방송 차가 들어와 있었다⁠. 카메라 둘⁠, 조명 하나⁠. 구청 사람 셋이 감사패를 들고 서 있었다⁠. 2호점 식구들이 승합차 두 대에서 내렸다⁠. 새 앞치마를 입은 서른두 명이 막다른 벽 앞을 메웠다⁠. 골목 고시원 사장들도 몇 왔다⁠. 대성고시원 사장은 금목걸이를 하고 왔다⁠.

현관 비밀번호는 바뀌어 있었다⁠. 창길이 숫자 넷을 눌러 보았다⁠. 틀렸다는 소리가 났다⁠. 다시 눌렀다⁠. 또 틀렸다⁠.

현관문이 안에서 열렸다⁠. 태언이었다⁠. 남색 바람막이 위에 새 앞치마를 둘렀다⁠. 태언은 나와 창길과 예림 언니를 차례로 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문을 끝까지 열고 한 걸음 비켜 주었다⁠. 우리가 들어가자 문을 닫았다⁠.

식당 벽에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영원하우스 첫 합동 졸업식⁠」 식탁 넷을 벽으로 밀고 의자를 줄지어 놓았다⁠. 맨 앞줄에 곰국이 앉아 있었다⁠. 오늘 졸업하는 다섯 명 가운데 하나였다⁠. 곰국은 넥타이를 맸다⁠. 누가 빌려준 넥타이인지 길이가 짧았다⁠.

짠물이 나를 보고 놀라 입을 막았다⁠. 이백원은 안경을 고쳐 썼다⁠. 반지하왕은 졸업생 자리 뒤에서 박수 연습을 하다 멈췄다⁠.

이사장실 문이 열리고 채묘정이 나왔다⁠. 트렌치코트 대신 짙은 남색 정장을 입었다⁠. 손에 귤이 없었다⁠. 채묘정은 나를 보고 잠깐 멈췄다가 웃었다⁠. 카메라가 돌고 있었다⁠.

*

열 시⁠, 채묘정이 식당 앞으로 나왔다⁠. 카메라를 보고 존댓말을 썼다⁠.

“⁠삼 년 전 이 건물에서 청년 한 명과 밥솥 하나로 시작했습니다⁠. 빚 때문에 밥을 굶던 청년이었습니다⁠. 오늘 이 집에서 다섯 명이 빚 없이 졸업합니다⁠. 노량진과 신림의 고시원 예순여덟 곳이 이 집 부엌의 밥을 먹습니다⁠. 저는 한 번도 이 아이들을 굶긴 적이 없습니다⁠.⁠”

박수가 났다⁠. 구청 사람들이 박수를 쳤고⁠, 2호점 식구들이 박수를 쳤다⁠. 채묘정이 첫 졸업생 이름을 불렀다⁠.

“⁠곰국⁠.⁠”

곰국이 일어났다⁠. 채묘정이 확인서 한 장을 들어 보였다⁠. 「⁠남은 빚 0원 · 졸업⁠」 곰국의 손이 떨렸다⁠. 열다섯 장 옆에 붙일 열여섯 번째 종이였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 종이⁠, 잔액도 영 원이에요⁠?⁠”

식당이 조용해졌다⁠. 카메라 하나가 나를 향해 돌았다⁠. 채묘정은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참을인⁠, 앉아⁠. 오늘은 축하하는 날이야⁠.⁠”

“⁠곰국 오빠 화면 잔액은 천팔백이에요⁠. 열다섯 달 전이랑 똑같아요⁠.⁠” 나는 졸업함에서 갖고 나온 종이를 들었다⁠. “⁠라희도⁠, 짠물도⁠, 저도 그대로예요⁠. 확인서 숫자만 내려가요⁠. 일한 만큼 숙식비로 똑같이 빠져나가서요⁠.⁠”

“⁠회계상 숫자입니다⁠.⁠” 변호사가 앞줄에서 일어났다⁠. 카메라를 의식한 목소리였다⁠. “⁠졸업할 때 한 번에 정리합니다⁠. 그래서 오늘 졸업식을 하는 겁니다⁠.⁠”

“⁠그럼 오늘 곰국 오빠 빚 천팔백을 지우는 거죠⁠. 조합이 원금의 열에 하나도 안 되는 값에 사 온 빚을요⁠. 곰국 오빠는 열다섯 달 동안 하루 아홉 시간씩 밥을 지었고요⁠.⁠”

나는 노동법 기본서를 폈다⁠. 소리 내어 읽었다⁠.

“⁠사용자는 전차금이나 그 밖에 근로할 것을 조건으로 하는 전대채권과 임금을 상계하지 못한다⁠. 근로기준법 제21조예요⁠. 일을 시키는 사람이 빌려준 돈을 월급하고 맞바꿔 지우면 안 된다는 뜻이에요⁠.⁠”

“⁠이분들은 근로자가 아닙니다⁠. 봉사 활동에 참여하신 분들입니다⁠.⁠” 변호사가 말했다⁠.

창길이 의자에서 일어나 신발 상자를 열었다⁠. 고무줄로 묶은 영수증 다발을 들어 올렸다⁠.

“⁠은행나무고시원이 한솥살림에 일 년 동안 낸 반찬 값 영수증이요⁠. 한 달도 안 빠졌어요⁠.⁠” 창길이 대성고시원 사장을 보았다⁠. “⁠사장님 고시원도 내셨죠⁠? 한 사람에 만 오천 원⁠.⁠”

대성고시원 사장이 금목걸이를 만지며 고개를 돌렸다⁠.

“⁠봉사로 지은 밥을 고시원 사장님들이 돈 주고 사요⁠?⁠” 내가 물었다⁠. “⁠돈 받고 파는 밥을 짓는 건 일이에요⁠.⁠”

변호사가 입을 다물었다⁠. 피디가 카메라 감독의 어깨를 두드렸다⁠. 두 번째 카메라도 나를 향해 돌았다⁠.

*

나는 식구들을 보았다⁠.

“⁠이번 주 말고⁠, 지난주까지요⁠. 새벽 다섯 시부터 오후 두 시까지 부엌에서 일한 사람 손 들어 주세요⁠.⁠”

아무도 들지 않았다⁠. 손들이 앞치마 위에서 굳어 있었다⁠. 짠물이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백원이 안경을 벗어 앞치마에 닦았다⁠. 다시 쓰고 나서 손을 들었다⁠. 한 손이었다⁠. 천천히 올라갔다⁠.

“⁠나⁠.⁠”

이백원의 손을 보고 짠물이 손을 들었다⁠. 반지하왕이 들었다⁠. 2호점 식구들 사이에서 손이 하나⁠, 둘 올라왔다⁠. 예림 언니가 내 옆에서 손을 들었다⁠. 곰국은 들지 않았다⁠. 확인서를 두 손으로 쥐고 서 있었다⁠.

이백원이 손을 든 채 중얼거렸다⁠. 식당이 조용해서 중얼거림이 다 들렸다⁠.

“⁠하루 아홉 시간⁠. 최저임금으로 치면⁠. 이백 원짜리로 바꾸면⁠.⁠” 이백원이 눈을 감았다⁠. 입술이 숫자를 따라 움직였다⁠. 한참 뒤 이백원이 눈을 떴다⁠. “⁠이거 처음으로 셀 수 있겠다⁠. 받을 돈이니까⁠.⁠”

누가 웃었다⁠. 짠물이었다⁠. 웃다가 울었다⁠. 짠물이 앞치마로 얼굴을 덮었다⁠.

“⁠엄마 병원비요⁠. 삼천이요⁠.⁠” 짠물이 앞치마 밑에서 말했다⁠. “⁠여기 있으면 엄마는 제가 서울에서 취직한 줄 알아요⁠. 취직한 거 맞잖아요⁠. 월급만 없었지⁠.⁠”

카메라 옆 받침대에 태블릿이 세워져 있었다⁠. 생중계 화면이었다⁠. 화면 오른쪽으로 댓글이 빠르게 올라갔다⁠.

「⁠이게 졸업식임⁠?⁠」

「⁠손 든 사람 다 월급 받아야 하는 거 아님⁠?⁠」

「⁠이백원 님 계산 끝나면 알려 주세요⁠」

「⁠고등어반토막⁠: 언니들 화이팅⁠. 나 오늘 방귀 뀜⁠」

예림 언니가 태블릿을 보다가 입을 틀어막았다⁠. 웃음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 피디가 태블릿을 슬쩍 돌려놓았다⁠. 채묘정은 태블릿 화면을 보지 않았다⁠. 보지 않으려고 눈을 다른 데 두는 얼굴이었다⁠.

채묘정이 한 걸음 나왔다⁠. 정장 단추를 하나 풀었다⁠. 카메라를 보지 않고 나를 보았다⁠. 존댓말이 사라졌다⁠.

“⁠다들 이 애 말 들어⁠. 이 애가 누군지 알아⁠? 빚이 이천백사십이야⁠. 대전에서 순댓국집 하다 망한 집 딸이야⁠. 망하면서 직원 월급도 제대로 못 준 집⁠.⁠” 채묘정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부드러울수록 날카로워졌다⁠. “⁠남의 월급 떼먹은 집 딸이 너희 월급 얘기를 해⁠.⁠”

식당의 눈들이 나에게 왔다⁠. 카메라 두 대와 식구 쉰여섯 명과 사장들과 구청 사람들의 눈이었다⁠. 나는 후드티 지퍼를 내렸다⁠. 안에 받쳐 입은 회색 후드티 등판이 드러났다⁠. 흐려진 「⁠남궁 순댓국⁠」

“⁠월급 주려고 빚졌어요⁠.⁠”

목소리가 크게 나왔다⁠. 석 달 동안 아무에게도 하지 않은 말이었고⁠, 고해방에 한 번 올린 말이었다⁠. 오늘은 입으로 했다⁠.

“⁠가게 문 닫을 때 주방 이모님하고 홀 언니가 두 달 치 월급을 못 받았어요⁠. 제가 카드론 받아서 드렸어요⁠. 그 빚이 이천백사십이에요⁠. 그 빚을 이사장님이 백오십에 사 오셨어요⁠. 저는 석 달 동안 하루 영 원을 써서 매달 삼십일만 원을 보냈고⁠, 3월부터는 그 돈이 이사장님 계좌로 들어갔어요⁠.⁠”

채묘정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알아요⁠. 월급은 빚이랑 못 바꿔요⁠. 바꿀 수 있었으면 저 카드론 안 받았어요⁠. 이모님한테 남은 순대 한 솥 드리고 끝냈어요⁠.⁠”

곰국이 확인서를 쥔 손을 내렸다⁠. 넥타이가 짧아서 셔츠 단추 하나가 드러나 있었다⁠.

“⁠나는 여기 있을래⁠.⁠” 곰국이 느리게 말했다⁠. “⁠월급 나올 때까지는 밥 먹어야지⁠. 나 밖에 나가면 오늘 저녁부터 굶어⁠.⁠”

곰국 옆의 졸업생 둘이 고개를 끄덕였다⁠. 2호점 식구 몇이 손을 내렸다⁠. 손을 든 사람과 내린 사람이 같은 식당에 섞여 앉아 있었다⁠. 누구도 틀리지 않았다⁠. 그래서 식당이 무거웠다⁠.

*

채묘정이 몸을 돌렸다⁠. 졸업함 앞에 서 있는 태언을 보았다⁠.

“⁠태언아⁠.⁠”

태언이 고개를 들었다⁠. 앞치마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었다⁠.

“⁠부엌 근무표는 봉사 기록이지⁠? 네가 쓴 거잖아⁠. 봉사 시간 적은 거⁠.⁠” 채묘정이 말했다⁠. “⁠그리고 참을인 데리고 나가⁠. 퇴소한 애야⁠. 남의 졸업식이야⁠.⁠”

태언이 앞치마 주머니에서 손을 뺐다⁠. 손에 작은 열쇠가 쥐여 있었다⁠. 졸업함 열쇠였다⁠. 다른 손으로 바람막이 가슴께에서 지갑을 꺼냈다⁠. 지갑 안에서 네 번 접은 종이를 꺼내 폈다⁠. 접힌 자리가 닳아 하얗게 일어난 종이였다⁠. 「⁠남은 빚 0원 · 졸업⁠」

태언은 종이를 졸업함 철문에 대고 손바닥으로 폈다⁠. 철문에 종이가 붙지 않고 미끄러졌다⁠. 태언이 다시 폈다⁠.

“⁠이사장님⁠.⁠” 태언의 목소리는 끝까지 부드러웠다⁠. 웃음은 없었다⁠. “⁠제 잔액 보셨어요⁠?⁠”

채묘정이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식당의 카메라 두 대가 동시에 태언을 향했다⁠. 태언의 배에서 소리가 났다⁠. 아침도 반 공기였던 배였다⁠. 이번에는 태언이 배 소리를 가리지 않았다⁠.

14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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