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400자)
이호점
무지출 챌린지 단톡방 · 도결애
일요일 아침 여덟 시, 채묘정이 빌린 승합차 운전석에 앉았다. 조수석에는 떡 상자가 실렸고, 뒷자리에 태언과 라희와 내가 앉았다. 예림 언니는 1호점에 남았다. 승합차 문이 닫히기 전에 예림 언니가 라희의 손목을 잡았다.
“너 거기서 자고 와?”
“이틀만. 2호점 부엌 꾸리고 올게.” 라희가 예림 언니의 손등을 두드렸다. “언니, 나 반장 될지도 몰라. 이사장님이 그랬어.”
“반장 되면 밥 천천히 먹어. 반장이 체하면 부엌이 체해.”
예림 언니는 라희의 손목을 놓았다. 손을 놓기 전에 한 번 더 꽉 쥐었다. 나와는 눈을 맞추지 않았다. 승합차가 막다른 골목을 후진으로 빠져나가는 동안 예림 언니는 현관 앞에서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노점 앞치마가 없는 예림 언니의 팔이 가늘었다.
차 안 라디오에서 아침 뉴스가 나왔다. 「사회적경제 조직의 청년 채권 매입, 정부 지원 검토」 채묘정이 떡을 하나 집어 입에 넣고 볼륨을 올렸다.
“들었지? 나라에서도 우리 같은 거 하래.”
“이사장님, 떡 하나만요.” 라희가 뒷자리에서 손을 내밀었다.
“너 아침 두 공기 먹었잖아.”
“떡 들어갈 자리는 따로 있어요.”
채묘정이 웃으며 떡을 뒤로 던졌다. 라희가 받아서 두 입에 먹었다. 먹고 나서 배를 문질렀다. “아, 묵직하다.” 태언이 창밖을 보며 텀블러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
신림 2호점은 큰길 뒤편의 낡은 모텔 건물이었다. 「호텔 그랑」이라는 옛 간판 글자를 흰 시트지로 가리고 「영원하우스 2호점」을 붙였다. 시트지 귀퉁이가 벌써 들떠 바람에 팔랑거렸다.
건물 앞에 줄이 있었다. 줄은 건물 모퉁이를 돌아 골목 끝까지 이어졌다. 가방을 멘 사람, 캐리어를 끄는 사람, 전기밥솥을 품에 안은 사람도 있었다. 나는 줄을 따라 걸으며 머릿수를 세다가 마흔에서 멈췄다. 모퉁이 너머로 줄이 더 있었다.
“밥솥은 왜 갖고 왔어요?” 태언이 밥솥 안은 남자에게 물었다.
“혹시 몰라서요. 밥은 제 밥솥에 해 먹으래도 괜찮아요.”
“밥은 저희가 해요.”
“진짜요?” 남자가 밥솥을 더 꼭 안았다. “그럼 이건 그냥 가족 같은 거예요. 버리고 올 수가 없어서요.”
줄 중간의 여자는 숟가락 하나를 셔츠 주머니에 꽂고 있었다. 자기 숟가락이라고 했다. 남의 숟가락으로 먹으면 체한다고. 숟가락 여자 뒤의 남자는 와이파이가 공짜냐고 물었다. 태언이 공짜라고 하자 줄 뒤쪽에서 작은 환호가 터졌다. 개인 방송을 하는 사람이 셀카봉을 들고 줄을 따라 걸으며 중계했다.
“여러분, 지금 무지출 끝판왕의 집 2호점 앞입니다. 줄이 장난 아닙니다. 다들 빚이 얼마 있으신지 한 분씩 물어보겠습니다.”
“묻지 마세요.” 줄에서 누가 말했다. 셀카봉이 머쓱하게 내려갔다.
*
2호점 사무실은 옛 모텔 카운터였다. 유리 칸막이 너머에 책상과 컴퓨터 한 대가 놓여 있었다. 채묘정이 나를 책상 앞에 앉혔다.
“신청서 받고, 이름 치고, 서류 뽑아. 1호점에서 하던 거.”
첫 번째 신청자의 이름을 쳤다. 화면에 줄 하나가 떴다. 「매입 2027.04.20 · 원 채권자 푸른대부 · 채권액 14,600,000」 두 번째 이름을 쳤다. 「매입 2027.04.20 · 원 채권자 푸른대부」 세 번째, 네 번째. 매입 날짜가 전부 같았다. 지난 화요일이었다. 원 채권자도 전부 푸른대부였다.
나는 화면을 맨 아래까지 내렸다. 4월 20일에 사들인 줄이 삼백 개가 넘었다. 화면 맨 위 제목에 「푸른대부 청년 연체 채권 일괄 매입」이 있었다. 내 빚을 팔았던 대부업체가, 남은 청년들의 빚을 한꺼번에 넘겼다. 아침 방송이 나간 4월 20일이었다.
줄을 선 사람들은 자기가 신청했다고 믿었다. 신청하기 전에 빚 주인이 바뀌어 있었다. 이들의 독촉 전화도 지난주에 끊겼을 것이었다. 끊긴 전화는 고마운 일이었을 것이고, 고마운 사람들이 방송을 보고 줄을 지었다.
“이사장님.” 나는 유리 칸막이 너머의 채묘정을 불렀다. “이 사람들 빚, 다 사 오셨어요?”
“묶음으로 싸게 나왔어.” 채묘정이 떡을 씹었다. “방송 덕에 대부업체가 먼저 전화했더라. 우리한테 팔면 이미지가 좋아진다고. 서로 좋은 일이야.”
*
나는 사무실 문을 열고 나갔다. 줄 맨 앞에 서서 목소리를 높였다.
“여러분, 빚이 푸른대부에 있었던 분들 손 들어 보세요.”
줄이 웅성거렸다. 손이 하나, 둘 올라가더니 금방 수십 개가 되었다. 밥솥 안은 남자도 한 손을 들었다.
“그 빚, 지난주에 여기 이사장님한테 팔렸어요. 독촉 전화 끊겼죠? 이사장님이 끊은 거예요. 여기 들어가면 밥은 줘요. 진짜 밥이에요. 근데 빚은 안 줄어요. 확인서에서만 줄어요. 매일 새벽 다섯 시부터 아홉 시간 일하는데, 일한 돈이 전부 밥값으로 나가요.”
줄이 조용해졌다. 셀카봉이 나를 향해 다시 올라왔다. 채묘정이 사무실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서두르지 않았다. 손에 귤 대신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다. 승합차 트렁크가 열려 있었고, 태언이 트렁크에서 도시락 상자를 내리고 있었다.
“점심 먹고 생각해요.” 채묘정이 카메라 앞에서 존댓말을 썼다. 도시락을 하나씩 줄에 나눠 주었다. 따뜻했다. 뚜껑 위로 제육볶음 냄새가 올라왔다. “공짜예요. 먹고 마음에 안 들면 집에 가셔도 돼요. 아무도 안 붙잡아요.”
도시락이 줄을 따라 넘어갔다. 손에서 손으로. 받은 사람들은 뚜껑을 열었다. 줄 여기저기서 젓가락 뜯는 소리가 났다. 숟가락을 꽂고 온 여자가 셔츠 주머니에서 제 숟가락을 꺼냈다.
“그쪽은 들어가 있잖아요.” 밥솥 안은 남자가 도시락을 받아 들며 나에게 말했다. 화난 목소리가 아니었다. 지친 목소리였다. “거기서 밥 먹으면서 그런 말 하는 거 쉽네요. 저는 어제 점심도 못 먹었어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남자의 말이 맞았다. 나는 오늘 아침에도 두 공기를 먹고 왔다. 줄은 도시락을 골랐다. 아무도 줄에서 빠지지 않았다. 태언이 도시락 상자를 다 비우고 줄 끝까지 걸어가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물을 따라 주었다. 텀블러에서, 종이컵으로.
“괜찮아요, 공짜예요.”
태언의 목소리는 진짜였다. 줄의 얼굴들이 태언을 보며 풀렸다. 내 목소리로는 풀지 못한 얼굴들이었다.
*
오후 내내 라희는 2호점 지하 부엌에서 취반기를 설치했다. 1호점보다 좁은 부엌이었다. 옛 모텔 세탁실을 비운 자리라 바닥에 배수구가 많았다. 라희는 업자들 사이를 뛰어다니며 솥 서랍 높이를 맞췄다. 땀을 흘렸고, 웃었고, 가끔 손바닥으로 배를 눌렀다.
“배 아파?”
“체했어. 아침에 떡 빨리 먹었어.” 라희가 배꼽 근처를 문질렀다. “괜찮아. 매실 갖고 왔어. 1호점에서 한 병 챙겼어.”
점심으로 남은 도시락을 먹을 때도 라희는 빨랐다. 반을 먹고 수저를 내려놓았다. 라희가 밥을 남긴 것은 처음이었다.
저녁에 채묘정이 2호점 식당에 새 식구 서른두 명을 모아 놓고 라희를 불러 세웠다.
“2호점 부엌 반장, 고등어.”
새 식구들이 박수를 쳤다. 라희가 귀까지 빨개졌다. 반장이라는 말을 두 손으로 받듯 고개를 숙였다. 채묘정이 라희의 어깨를 두드렸다.
“반장은 새벽 네 시에 나와. 밤에 쌀도 불려 놓고.”
“네!”
라희의 대답이 식당을 울렸다. 나는 박수를 치지 않았다. 라희의 하루가 새벽 네 시부터 밤까지로 늘어나는 소리였다.
*
월요일 오후, 2호점 사무실 책상에 새 서류철이 놓였다. 「신림 고시촌 반찬 공급 계약」 채묘정이 귤을 까며 서류철을 내 앞으로 밀었다.
“신림 고시촌 마흔 곳이랑 계약했어. 다음 주부터 여기 부엌에서 밥 나가. 계약서 사본 뽑아 놔.”
“마흔 곳이요?”
“노량진은 스물여덟이었지. 신림이 더 커.” 채묘정이 귤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다음은 대학가야. 대학가 원룸촌. 거기도 공짜 밥 좋아해.”
나는 계약서를 한 장씩 뽑았다. 고시원 이름이 바뀌어도 계약서의 숫자는 똑같았다. 세입자 한 사람에 한 달 만 오천 원. 노량진 골목 하나에서 시작한 밥이 신림 고시촌으로, 대학가로 번져 나가고 있었다. 번지는 밥을 짓는 손은 오늘 줄을 선 마흔 명의 손이었다.
저녁에 태언의 관리인 휴대전화로 1호점에서 전화가 왔다. 태언이 전화를 나에게 넘겼다. 예림 언니였다.
“라희 바꿔.”
“지금 부엌에서 쌀 불려요.”
“밤에? 걔 새벽 네 시에 나간다며.” 예림 언니의 목소리가 빨라졌다. “밥은 먹어? 천천히 먹어?”
“오늘 점심에 반 남겼어요. 체했대요.”
전화 너머가 조용해졌다. 예림 언니가 숨을 길게 쉬는 소리가 났다.
“걔 밥 남기는 애 아니야.”
“알아요.”
“알면 네가 좀 봐.” 예림 언니가 말했다. 나에게 무언가를 부탁하는 것은 영원하우스에 들어온 뒤 처음이었다. “너 남의 배 소리 잘 듣잖아.”
전화가 끊겼다. 나는 꺼진 화면을 태언에게 돌려주었다. 태언은 휴대전화를 받아 바람막이 주머니에 넣으며 지하 부엌으로 가는 계단을 내려다보았다. 계단 아래에서 라희가 쌀을 휘젓는 소리가 올라왔다.
*
월요일 밤, 2호점 옥상에서 태언을 만났다. 옥상 바닥에 새 식구들의 이불이 널려 있었다. 모텔 이불이라 전부 하얗고 전부 똑같았다.
“마흔 명이 밥 먹었어요.” 태언이 이불 사이에 쪼그려 앉았다. “하린 님이 줄 앞에서 말할 때, 저 솔직히 무서웠어요. 다들 돌아갈까 봐요.”
“아무도 안 돌아갔어요.”
“네.” 태언이 이불 귀퉁이를 펴 주었다. “하린 님 말이 틀려서가 아니에요. 배가 고파서예요. 하린 님도 알잖아요.”
“알아요. 그래서 무서워요.”
태언은 대답하지 않았다. 바람이 이불들을 한꺼번에 들어 올렸다가 내려놓았다. 태언의 배에서 소리가 났다. 오늘 점심 도시락을 다 나눠 주고 자기 몫은 남기지 않은 배였다.
*
화요일 새벽 두 시, 2호점 3층 방 화장실 문틈으로 불빛이 새어 나왔다. 라희와 나는 같은 방을 썼다.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라희의 목소리가 났다. 웃음이 섞여 있었다.
“언니, 나 또 체했나 봐.”
문을 열자 라희가 변기 옆 바닥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이마에 땀이 맺혔고, 두 손이 배를 감싸고 있었다. 반장 앞치마를 아직 입은 채였다. 세면대 위에 매실 병이 놓여 있었다. 반쯤 비어 있었다.
“얼마나 아파?”
“조금.” 라희가 웃었다. 입꼬리만 웃었다. “밤에 쌀 불리다가 갑자기. 배꼽 근처가 쿡쿡 쑤셔. 매실 두 컵 마셨어. 이제 좀 나아.”
“병원 가자.”
“병원비 빚에 얹는대.” 라희가 고개를 저었다. “이사장님이 그랬어. 본인이 원하면 가는 거래. 나 안 원해. 체한 거 갖고 무슨 병원이야. 언니, 나 일 년 동안 배 아프면 물 마시고 참았어. 매실은 물보다 좋잖아.”
라희가 내 팔을 붙잡고 몸을 일으켰다. 일으키다가 한 번 허리를 굽혔고, 다시 폈다.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거울을 보며 땀을 닦았다. 거울 속 라희가 나를 보고 웃었다.
“봐. 괜찮잖아. 반장이 체하면 부엌이 체한대. 언니가 그랬대.”
라희는 침대로 가서 손바닥을 배 위에 얹고 누웠다. 나는 화장실 불을 끄지 못하고 세면대 위 매실 병을 들여다보았다. 병 바닥에 가라앉은 매실 알갱이가 형광등 아래에서 갈색으로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