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116자) · 소여 · 이월 초이레

향회

두 번째 초식은 없다 · 한도윤

만 19세 이상 이용가

사당 마당에 멍석이 깔린 것은 해가 두 뼘 올라왔을 때였다. 소여는 고모 손에 끌려 사람들 틈에 섰다. 청계진 사람들이 백 명은 넘게 모여 있었다. 흉년 세 해에 고개를 떠난 집이 많다는데도, 사람 일에 모이는 사람은 줄지 않았다.

사당은 돌담으로 두른 작은 목조 전각이었고, 그 앞마당은 장터보다 좁았다. 처마 끝에 매단 풍경이 얼어서 바람이 불어도 소리를 내지 않았고, 사당 문 안쪽 어둠에서 오래된 향 냄새가 흘러나와 사람들 입김에 섞였다. 멍석은 가을 타작 때 쓰던 것이라 낟알 몇 개가 아직 박혀 있었다. 향회 어른들이 멍석 윗줄에 앉았다. 가운데가 향회장 서봉구였고, 그 곁에 여팔이 앉았다. 여팔은 향회 사람이 아니었는데 아무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오목이 그 뒤에 서서 붓과 종이를 들고 있었다.

채노는 멍석 아래 맨땅에 꿇어앉아 있었다. 새벽에 제 발로 사당 마당에 들어와 앉아서 향회를 열어 달라고 했다고 고모가 말했다. 아무도 부르지 않았는데 아침이 되자 사람들이 모였다. 늙은이의 목덜미에 가는 줄 두 개가 붉게 남아 있었다. 객잔 마당에서 무진 아저씨의 칼끝이 긁은 자국이었다.

검객 어른과 무진 아저씨는 사람들 맨 뒤 돌담에 기대 서 있었다. 검객 어른은 팔짱을 끼고 멍석 쪽을 보고 있었는데, 무엇을 셀 때처럼 입술이 조금씩 움직였다. 해운 스님은 오지 않았다.

*

서봉구가 헛기침을 두 번 했다.

“채노. 무엇을 말하러 왔소?”

“섣달 초아흐레 밤 눈골 객잔 마당에서 숯쟁이 장순이를 내가 찔러 죽였소.” 채노의 목소리가 멍석 끝까지 갔다. “향회는 실족이라고 적었다지요. 실족이 아니오. 내가 찔렀소.”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누군가 「그걸 이제 와서 왜」 하고 말했고, 누군가 「쉬」 했다.

“왜 찔렀소?”

“겁이 나서요. 장순이가 부엌 문고리를 안 놓아서.” 채노가 말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간 것은 도가 어른이 시켜서요. 딸을 데려와라, 아비가 막거든 겁을 줘라. 섣달 초여드레 저녁에 도가 광 앞 상에서 들었소. 오목이 곁에서 붓을 들고 있었소.”

모든 눈이 여팔에게 갔다. 소여도 여팔을 봤다. 흰 얼굴이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내가 겁을 주라 했소.” 여팔이 부드럽게 말했다. “흉년에 빚 안 갚는 집에 겁 주라는 말은 이 고개 쌀 가게라면 다 하오. 찌르라는 말은 안 했소. 칼은 채노가 들고 갔고, 채노가 넣었소. 나는 칼 든 적 없소.”

“오목이 들었소.” 채노가 말했다.

오목이 붓을 든 채 고개를 저었다.

“저는 못 들었습니다. 그날 저녁엔 광 쥐를 잡고 있었습니다.”

“곰배도 있었소.”

서봉구가 곰배를 불렀다. 곰배는 사람들 틈에서 떠밀려 나오다시피 해서 멍석 앞에 섰다. 여팔을 한 번 보고, 채노를 한 번 보고, 제 어깨를 문질렀다.

“곰배. 도가 어른이 무어라 했소?”

“어른이 딸 안 내놓으면 겁 좀 주라고, 필요하면 아비 팔 하나쯤…….” 곰배가 말을 멈췄다. 제 입을 제 손으로 막았다. 막고 나서 여팔을 봤다. “아니, 팔 하나라고는 안 하셨고, 팔을 붙잡으라고…….”

사람들 뒤쪽에서 무진 아저씨가 크게 웃었다. 돌담이 울릴 만큼 컸다.

“향회장 어른, 방금 그 말도 적습니까? 청지기 양반 붓이 멈췄는데.”

오목의 붓이 정말로 멈춰 있었다. 서봉구가 눈을 감았다. 조는 척이었다.

*

그때 사람들 틈에서 여자 하나가 나왔다. 쉰쯤 된 여자였고, 소여도 얼굴을 알았다. 장터 끝에서 짚신을 삼아 파는 옥분이 어미였다. 손가락이 짚에 쓸려 마디마다 굳은살이 박혀 있었다.

“나도 말하겠소.”

서봉구가 눈을 떴다.

“세 해 전 섣달에 우리 옥분이가 도가 부엌일을 하러 갔소. 쌀 열두 섬 담보였소. 부엌일이라고 해서 보냈소.” 여자의 목소리가 떨리다가 멈췄다. 멈춘 다음에는 안 떨렸다. “봄에 가 보니 없었소. 처주 어느 댁으로 옮겨 갔다고 했소. 여름에 처주 다녀온 장꾼이 그러더이다. 옥분이를 기방에서 봤다고.”

마당이 조용해졌다. 소여는 제 손이 고모의 치맛자락을 쥐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옥분이 어미가 문서에 손도장을 찍었소.” 여팔이 말했다. 목소리가 여전히 부드러웠다. “부엌에서 일하다 처주 댁으로 옮겨 간 거요. 처주 댁에서 그 아이를 어디로 보냈는지는 처주 댁 일이오.”

“다른 셋은요?” 옥분이 어미가 물었다. “작년에 간 순덕이, 재작년에 간 막례, 그 아래 개똥이네 둘째.”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여팔은 제 흰 손을 무릎 위에 포개고 있었고, 오목은 붓끝을 입에 물어 먹을 적셨다. 멍석 뒷줄의 향회 어른 하나가 마른기침을 했는데, 그 기침이 끝나기를 모두가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때 사람들 틈에서 사내 목소리가 났다. 소여 아버지와 숯을 같이 굽던 늙은 숯쟁이였다.

“그래서 어쩌자는 거요? 도가가 문 닫으면 봄에 쌀을 누가 놓소?” 사내가 말했다. “나도 도가에 빚이 있소. 우리 집에도 딸이 둘이오. 그런데 봄에 쌀이 안 나오면 딸 둘이 다 굶소. 굶어 죽는 거나 처주 가는 거나…….”

사내는 말을 다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숙인 채로 제 딸들이 선 쪽을 봤다. 사람들이 반으로 갈라지는 것이 소여 눈에도 보였다. 옥분이 어미 쪽으로 한 걸음 다가서는 사람들이 있었고, 도가 쪽을 보며 한 걸음 물러서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러서는 사람들의 얼굴에도 굶은 식구가 있었다.

*

소여는 고모의 치맛자락을 놓았다.

고모가 붙잡으려 했지만 소여는 이미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가 멍석 앞 맨땅, 채노 곁에 서 있었다. 늙은이가 고개를 들어 아이를 봤다.

서봉구가 인상을 썼다.

“어린것이 향회에 끼면 안 되오.”

“저는 담보입니다.” 소여가 말했다. “문서에 적힌 담보가 향회에 끼면 안 됩니까?”

사람들 뒤에서 무진 아저씨가 또 웃었다. 이번에는 혼자만 웃지 않았다.

소여는 여팔 앞으로 한 걸음 갔다. 여섯 걸음쯤 되는 거리였다. 명치가 이제 아프지는 않고 무거웠다. 광에서 처음 뜨거웠던 그 자리에 돌 하나를 얹어 둔 것 같았다. 여팔이 아이를 내려다봤다. 무엇을 셈하는 눈이었다. 오목이 그 귀에 무언가 속삭였고, 여팔의 눈이 소여의 명치로 한 번 내려왔다가 올라왔다.

“어른.”

“말해 보아라.”

“제 아버지 이름을 불러 보십시오.”

여팔이 부드럽게 웃었다.

“숯쟁이…….”

그러고는 말을 멈추고 오목을 돌아봤다. 오목이 종이를 뒤적였다. 그 사이가 길었다. 사람들이 그 사이를 다 봤다.

“장순입니다.” 소여가 말했다.

목소리가 사당 돌담에 부딪쳐 돌아왔다. 소여는 그 소리를 듣고 한 번 더 말했다.

“장순입니다. 서른아홉입니다. 하루에 숯 두 가마를 구웠습니다. 손바닥이 늘 까매서 제 머리는 손등으로만 쓸었습니다. 섣달 초아흐레 밤에 저를 부엌에 밀어 넣고 문을 등으로 막았습니다. 두 사람이 팔을 당겨도 문고리를 안 놓았습니다.” 아이는 거기서 숨을 한 번 쉬었다. “어른 문서에는 숯쟁이라고만 적혀 있습니다. 제 아버지 이름은 장순입니다.”

마당에 아무 소리도 없었다. 그러다 옥분이 어미가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

“장순이.”

늙은 숯쟁이가 따라 말했다.

“장순이.”

사람들 틈 여기저기서 그 이름이 크지 않게 났다. 한 사람이 한 번씩 입 안에서 굴리듯 말했다. 소여는 그 소리들을 하나씩 들었다. 아버지가 죽고 나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아버지 이름을 부르는 것을 처음 들었다. 무릎이 떨렸다. 떨려서 그 자리에 주저앉을 것 같았는데, 곁에 꿇어앉은 채노가 손을 뻗어 아이의 짚신 끝을 가만히 눌러 주었다. 소여는 그 손을 내려다보지 않았다. 그래도 서 있을 수 있었다.

*

판결은 해가 한가운데 오기 전에 났다. 서봉구가 눈을 뜨고, 여팔을 한 번 보고, 사람들을 한 번 보고, 오래 헛기침을 했다.

“채노는 제 입으로 사람을 죽였다고 했으니 볼기 쉰 대에, 보름 안에 고개 밖으로 나간다.” 서봉구가 말했다. “장순의 죽음은 실족이 아니라 채노가 찔러 죽인 것으로 고쳐 적는다.”

오목이 붓을 들었다가 여팔을 봤다. 여팔이 고개를 아주 조금 끄덕였다. 오목이 적었다.

“도가 어른은 겁을 주라 했을 뿐 칼 든 일이 없으니 죄를 묻지 않는다. 옥분이 일은 처주 댁 일이니 향회가 따질 일이 아니다. 담보 문서는 그대로 두고, 기한은 삼월 삼짇날이다.”

옥분이 어미가 주저앉았다. 누구도 그 여자를 일으키지 않았는데, 한참 뒤에 늙은 숯쟁이가 가서 팔을 잡았다.

채노의 볼기는 사당 담 밖에서 쳤다. 소여는 가지 않았다. 고모가 가지 말라고 했고, 소여도 가고 싶지 않았다. 매 소리가 담을 넘어 들려왔다. 한 대, 두 대. 소여는 세지 않으려고 했는데 저절로 세어졌다. 스무 대를 넘어가면서 늙은이의 소리가 끊겼고, 매 소리만 났다. 쉰 대가 끝났을 때 검객 어른이 담 밖으로 나가는 것을 봤다.

한참 뒤 소여가 고모를 따라 사당 마당을 나설 때, 검객 어른이 늙은이를 등에 업고 장터 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늙은이의 두루마기 자락이 검게 젖어 검객 어른의 장삼 허리까지 물들어 있었다. 업힌 늙은이의 팔이 검객 어른의 어깨 너머로 힘없이 늘어져서, 한 걸음마다 흔들렸다. 무진 아저씨가 그 곁에서 늙은이의 신짝 하나를 들고 따라갔다. 신짝 하나가 매 맞을 때 벗겨진 모양이었다.

소여는 그 뒷모습을 오래 봤다.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 아버지 대신 매를 맞은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아버지 이름이 고쳐 적힌 것은 저 늙은이가 제 입으로 말했기 때문이었다. 두 가지가 한 사람 몸에 같이 들어 있었다. 소여는 그 둘을 한꺼번에 들고 있기가 무거웠다. 명치에 든 것만큼 무거웠다.

*

사람들이 흩어질 때 여팔이 소여 곁을 지나갔다. 걸음을 멈추지 않고 말했다.

“장순이. 기억해 두마.” 그가 말했다. “삼짇날에 보자. 그날은 향회도 문서도 아니다.”

소여는 대답하지 않았다. 여팔의 털 깃 겉옷 자락이 아이의 뺨을 스쳤다. 들기름 냄새와 쌀겨 냄새가 났다.

해 질 녘에 소여는 고모와 비탈을 오르다가 장터 아래 길로 말 한 필이 내려가는 것을 봤다. 오목이 타고 있었다. 품에 봉한 편지를 넣었는지 한 손으로 가슴께를 누르고 있었다.

곰배가 길가 주막 앞에 서서 그 말을 배웅하고 있었다. 소여가 지나가자 곰배가 먼저 말을 걸었다. 향회 이후로 곰배는 이상하게 소여를 어려워했다.

“처주로 간다더라, 위소로.”

“위소가 뭡니까?”

“나라 군사 있는 데.” 곰배가 제 어깨를 문질렀다. “어른이 편지에 네 얘기를 썼대. 눈 감았다 뜨면 코앞에 오는 계집아이가 있다고.”

9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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