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130자) · 단하 · 이월 스무날

삼백 번

두 번째 초식은 없다 · 한도윤

만 19세 이상 이용가

스물넷째는 아홉 동작이다. 스승은 그것을 맨 마지막에 가르쳤고, 가르치는 데 한 해가 걸렸다. 동작 하나에 삼백 번씩, 삼백 번째에 되면 이튿날 다음 동작으로 넘어가고 안 되면 이튿날 같은 동작을 또 삼백 번. 단하는 열여덟 살 봄에 아홉째 동작을 끝냈고, 그해 가을에 스승이 죽었다.

이월 보름 아침, 숯가마 마당에 단하가 금을 그었다. 가마 열기에 녹은 흙바닥에 목검 끝으로 긴 금 하나를 긋고, 그 금에서 반 보 떨어진 자리에 짧은 금 둘을 그었다. 무진과 소여가 짧은 금 위에 하나씩 섰다.

“첫째 동작은 칼이 오는 선에 제 선을 비스듬히 얹는 것이다.” 단하가 목검을 들었다. “막는 게 아니다. 얹는 것이다. 칼은 제 힘으로 오다가 얹힌 데서 미끄러져 나간다. 그게 첫째다.”

그는 한 번 해 보였다. 목검이 허공의 보이지 않는 칼 위에 비스듬히 얹혔다가 흘렀다.

“삼백 번.”

“삼백 번?” 무진이 목검을 들다 말고 물었다. “오늘 다?”

“오늘 다요. 해 지기 전에.”

“스승은 삼백 번을 넘기면 화를 냈잖아. 마당 닳는다고.”

“그건 비질이고요.”

소여는 아무 말 없이 목검을 들었다. 귀덕이 부지깽이 감에서 골라 깎아 준 것이라, 아이 손에는 조금 길었다. 아이는 목검을 한 번 얹고, 두 번 얹었다. 입술이 움직였다. 세고 있었다.

*

해가 한가운데 왔을 때 무진은 백몇십 번째에서 셈을 놓쳤다.

“백사십…… 백사십 몇이었지?”

“백쉰둘입니다.” 소여가 제 동작을 멈추지 않고 말했다.

“너는 네 것 세면서 내 것까지 세냐?”

“아저씨가 백서른부터 입으로 세셨습니다.”

귀덕이 가마 앞에서 숯 조각을 한 줌 가져와 무진의 짧은 금 옆에 놓았다. 열 번마다 한 조각씩 옮기라고 했다. 무진은 그 숯 조각을 옮기다가 두 번 발로 차서 흩뜨렸고, 귀덕이 그때마다 부지깽이로 그의 종아리를 톡 쳤다.

단하는 둘의 동작을 봤다. 한 번 한 번을 다 봤다. 삼백 번을 시키는 동안 가르치는 사람도 삼백 번을 본다. 단하는 그것이 왜 스승의 방식이었는지 열한 해 만에 알았다. 보는 동안 제 몸 안에서도 그 동작이 다시 굳었다. 스물넷째가 단하의 몸 안에서 조금씩 무거워졌다. 아끼던 것이 아니라 들고 있는 것이 되었다.

해 질 녘에 소여가 삼백 번째를 했다. 목검이 허공에 얹혔다가 흘렀는데, 그 흐름이 아침과 달랐다. 아침에는 목검이 흘렀고, 저녁에는 아이의 몸이 같이 흘렀다.

“됐다.”

소여가 목검을 내렸다. 손바닥에 물집이 두 개 잡혀 있었다. 아이는 그것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무진은 해가 다 지고 나서 삼백 번째를 했다. 하고 나서 흙바닥에 드러누웠다.

“내일은 둘째 동작이고, 내일도 삼백 번이냐.”

“예, 둘째 동작을 삼백 번입니다.”

“아홉 동작이면 아흐레냐.”

“다 한 번에 되면 아흐레입니다.”

무진이 하늘을 보고 누운 채로 한참 셈을 했다.

“나는 한 번에 안 된다.”

*

그 닷새 동안 단하는 무진의 남은 셋도 불렀다. 허리 두 군데와 명치였다. 허리 것 둘은 청계진 장터 싸움에서 들어갔고, 명치 것은 무진이 처음 받은 자리로 스승이 죽고 한 해 뒤 산속 절 마당에서 들어갔다. 단하는 그날마다의 거리와 각도를 하나도 틀리지 않고 다시 세웠다. 세는 버릇이 처음으로 쓸모가 있었다. 명치를 여는 날 무진은 오래 앉아 있었다.

“이게 제일 오래 아팠다. 열한 해.” 무진이 명치를 눌렀다. “안 아프니까 이상하다. 여기가 비었나 싶다.”

“비지 않았습니다. 무거우실 겁니다.”

“그래, 무겁다.” 무진이 웃었다. “아홉이 다 무겁다. 배 반 척 판 값으로는 싸게 샀다.”

해운이 사흘째에 숯가마 마당에 왔다. 들어오지 않고 울타리 밖에 서서 목검 소리를 들었다. 삼백 번이 끝날 때까지 서 있었다. 단하는 그가 거기 있는 것을 알았다.

“가르치면 둘이 되오.” 해운이 울타리 너머에서 말했다. “셋이 되오.”

“알고 있습니다.”

“그 막는 것은 그대가 아직 가진 것이오. 가르치기를 다 마치기 전에 그대가 그것을 쓰면 그것도 나가오. 아홉 동작, 동작마다 삼백 번.” 해운이 말했다. “다 마치려면 아무리 빨라도 아흐레, 사공 양반을 보아하니 스무 날은 걸리겠구려.”

“들리십니까?”

“숨소리가 백 번째부터 다르오.”

무진이 흙바닥에서 목검을 짚고 일어나며 해운 쪽에 대고 소리쳤다.

“스님, 반은 계율이라더니 반은 흉보는 거요?”

*

이월 스무날 밤이었다. 낮 동안 녹았던 처마 끝 고드름이 다시 얼면서 가늘게 우는 소리를 냈고, 장터 쪽에서 개 한 마리가 오래 짖다가 그쳤다. 채노는 홍매집 뒷방에 엎드려 있었다. 매 맞은 자리가 곪지 않게 홍매가 쑥물을 끓여 주었고, 소여가 날마다 해 질 녘에 죽 한 그릇을 들고 왔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다. 귀덕이 처음에는 말렸고, 사흘째부터는 죽에 소금을 한 꼬집 더 넣었다. 추방까지는 이틀이 남아 있었다.

소여가 빈 그릇을 챙겨 뒷방을 나오던 참이었다. 주막 대문 빗장이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가 났다. 빗장을 들어 올리는 쇠가 문틀에 부딪는 소리였다. 단하는 이 층에서 그 소리를 들었다. 한 번이 아니었다.

뒷마당 장작더미 쪽에서 발소리가 났다. 여섯이었다. 둘은 걸음이 익었다. 넷은 낯설었다. 낯선 넷은 발을 끌지 않고 앞꿈치로 디뎠다. 돈 받고 사람 베는 자들의 걸음이었다.

단하가 계단을 내려갔다. 일곱 단, 넷째 단은 이제 얼지 않았다. 무진은 이미 술청 문간에 서 있었다.

곰배와 장대가 뒷마당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 뒤로 낯선 사내 넷이 짧은 칼을 뽑아 들고 있었다. 곰배가 무진을 보고 얼굴이 하얘졌다.

“아, 사공 양반 여기 있다고는 안 했잖소.”

“청지기가 사공은 숯가마에서 잔다고 했는데.” 장대가 중얼거렸다.

“오늘은 여기서 외상 술 마시는 날이다.” 무진이 말했다.

낯선 넷 가운데 하나가 곰배를 밀쳤다.

“늙은이 방이 어디냐.”

곰배가 대답하기 전에 뒷방 문이 열렸다. 소여가 빈 그릇을 든 채 문간에 서 있었다. 그 뒤 어둠 속에서 채노가 팔꿈치로 몸을 일으키려다 도로 쓰러지는 소리가 났다.

칼잡이 둘이 뒷방 쪽으로 갔다. 하나는 단하에게, 하나는 무진에게 왔다.

*

단하에게 온 칼은 빨랐다. 옆에서 목을 노리고 가로로 들어왔다.

스물넷째가 있었다. 칼이 오는 선에 제 선을 비스듬히 얹으면 칼은 미끄러져 나간다. 첫째 동작만으로도 이 칼은 흘릴 수 있었다. 그러나 쓰면 나간다. 무진은 아홉 동작 가운데 둘째까지, 소여는 셋째까지 익혔다. 아직 아무도 다 알지 못했다. 단하가 이 자리에서 그것을 쓰면 스물넷째는 단하의 몸에서 나가 가장 가까이서 본 사람 몸에 든다. 가장 가까운 사람은 지금 칼을 든 이 사내였다.

단하는 쓰지 않았다.

그는 초식 없이 몸을 낮췄다. 칼이 머리 위를 지나갔고, 상투 끝이 잘려 나갔다. 단하는 사내의 무릎을 발로 찼다. 초식이 아니라 스승 밑에 들어가기 전, 아홉 살 이전에 장터 아이들과 싸우며 익힌 발길질이었다. 사내가 휘청였다가 다시 칼을 들었다. 두 번째 칼이 단하의 왼팔을 스쳤다. 장삼 소매가 갈라지고 뜨거운 것이 팔을 타고 흘렀다.

단하는 셌다. 걸음 수, 바닥, 칼 길이, 어깨 높이. 셈이 끝나기 전에 단하는 장작 하나를 집어 사내의 칼 쥔 손을 내리쳤다. 셈이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은 것은 처음이었다. 칼이 떨어졌다.

무진 쪽은 소리가 두 번 났다. 한 번은 칼잡이가 무진의 머리를 노리고 칼을 내리친 소리였고, 한 번은 무진의 머리가 숙여지면서 팔이 감겨 칼잡이가 장독에 처박힌 소리였다.

“싸움 맞네.” 무진이 말했다.

뒷방 문간 쪽이 문제였다.

칼잡이 둘이 뒷방으로 들이닥쳤다. 소여가 문간에 서 있었다. 빈 죽그릇을 든 채였다. 앞의 사내가 아이를 밀치려다 말고 그대로 칼을 곧게 뻗었다. 아이 너머 방 안에 엎드린 채노를 향해서였다.

소여가 없어졌다.

단하의 눈에는 문간의 어둠이 한 번 흔들린 것만 보였다. 다음 순간 아이는 방 안쪽, 엎드린 채노와 칼 사이에 서 있었다. 문간에서 거기까지 걸음이 없었다. 그리고 아이가 들고 있던 빈 죽그릇이 칼이 오는 선 위에 비스듬히 얹혔다. 첫째 동작이었다. 칼끝이 그릇 바닥에 얹혀서 미끄러져 나가 방 벽에 박혔다. 사기그릇이 두 조각으로 갈라져 방바닥에 떨어졌다.

사내가 벽에 박힌 칼을 뽑으려고 두 번 당겼다. 뽑히지 않았다. 그 사이에 무진이 뒤에서 사내의 뒷덜미를 잡아 끌어냈다.

남은 하나는 칼을 든 채 뒷방 문간에 서서 아이를 봤다. 제가 무엇을 봤는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그러다 뒷걸음질을 쳤다. 장작더미에 걸려 넘어졌고, 일어나서 담을 넘어 달아났다.

*

곰배와 장대는 끝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곰배가 두 손을 들고 먼저 말했다.

“우리는 길만 가르쳐 줬소. 칼 든 건 저 넷이오. 청지기가 은자를 줬소. 어른 은자요. 늙은이가 고개 밖으로 나가기 전에 입을 닫게 하라고. 위소에서 사람이 오기 전에.”

“위소에서 언제 오오?” 단하가 물었다.

“삼월 초하루. 천호가 직접 온다고 청지기가 그러더이다.” 장대가 말했다. 그는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한마디를 더 보탰다. “나는 명치 맞은 뒤로 어른 일에 정이 떨어졌소.”

홍매가 부엌에서 나와 쓰러진 칼잡이 셋을 새끼줄로 묶었다. 묶는 솜씨가 좋았다. 날마다 장작을 묶는 손이었다.

단하는 뒷방 문간에 앉았다. 왼팔에서 흐른 피가 손가락 끝에서 떨어져 문턱에 점을 찍었다. 명치는 아프지 않았다. 스물넷째는 아직 몸 안에 무겁게 있었다. 안 썼다. 안 쓰고도 아무도 죽지 않았다.

소여가 두 조각 난 죽그릇을 주워 들고 단하 앞에 섰다. 아이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그릇 조각 두 개를 맞춰 보았다. 금이 반듯하게 맞았다.

“어른.”

“말해라.”

“이번엔 안 늦으셨습니다.”

단하는 대답하지 못했다. 팔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느끼면서, 섣달 그 밤 이후 처음으로 셈 없이 숨을 쉬었다. 숨이 명치를 지나가는데 아무것에도 걸리지 않았다. 목이 뜨거워졌다. 그는 고개를 숙였다. 문턱에 떨어진 제 피가 얼어 가는 것을 봤다.

방 안에서 채노가 엎드린 채 웃었다. 매 맞은 등이 울려서 웃다가 신음했고, 신음하다가 또 웃었다.

무진이 문기둥에 기대 서서 셈을 했다.

“삼월 초하루. 삼짇날까지 이틀. 스물하나 섬. 막는 초식 아홉 동작 중에 나는 둘, 저 아이는 셋.” 그가 손가락을 꼽다가 멈췄다. “단하야, 이거 셈이 되냐?”

“안 됩니다.”

“그럼 됐다.” 무진이 말했다. “셈이 되면 네가 또 세다가 늦는다.”

10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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