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119자) · 무진 · 정월 스무날
대문
두 번째 초식은 없다 · 한도윤
만 19세 이상 이용가
무진은 숯 창고에서 잤다. 귀덕이 방을 내주겠다고 했지만, 대문이 보이는 데서 자야 한다고 우기고 숯섬 사이에 거적을 폈다. 숯은 밤새 제 안에 남은 열을 조금씩 뱉어서 창고 안이 바깥보다 따뜻했다. 대신 아침에 일어나면 콧구멍이 새까맸다.
그날 아침에도 무진은 눈을 뜨자마자 몸을 하나씩 눌렀다. 오른 어깨, 왼 옆구리, 뒷목, 왼 무릎, 오른 손등, 정강이. 여섯 군데가 무거웠다. 오른 손등과 정강이는 나흘 전 단하가 마저 불러 주었는데, 손등 것은 빨래 방망이를 잡는 모양이라 귀덕이 한참 웃었다. 허리 두 군데와 명치는 아직 쑤셨다. 열한 해를 이렇게 살았다. 눈 뜨면 어디가 쑤시는지 세는 것으로 하루를 열었다. 이제 세는 것이 둘로 갈렸다. 쑤시는 것과 무거운 것.
무거운 쪽이 낫다고 무진은 생각했다. 쑤시는 것은 남의 것 같았는데, 무거운 것은 들고 있는 제 팔이 느껴졌다.
그는 거적 위에 앉아 스승을 생각했다. 스승은 키가 작고 말랐다. 마당을 쓸 때 늘 오른손 하나로 비를 쥐었고, 무진이 삼백 번을 넘겨 쓸면 비를 뺏으며 화를 냈다. 삼백 번이면 됐다, 더 쓸면 마당이 닳는다고. 스승이 죽기 전날 무진에게 준 서찰에는 한 줄이 적혀 있었다. 잘 도우라. 무진은 그 한 줄을 열한 해 동안 서운함으로 읽었다.
사흘을 앉아 있었다고 했다. 남쪽 끝 절 마당에. 그 성질 급한 양반이.
무진이 열네 살 때였다. 단하가 막 들어와 스승 앞에서 첫 동작을 삼백 번 하던 날, 무진은 비를 들고 마당 가장자리를 돌고 있었다. 스승이 비를 멈추게 하고 무진을 단하의 왼쪽 반 보 뒤로 데려갔다. 스승의 손바닥이 무진의 등에 얹혔다. 마른 손이었는데 따뜻했다.
「거기 서 있어라. 거기가 제일 중한 자리다.」
무진은 그 말을, 앞자리는 네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알아들었다. 열네 살 귀에는 그렇게밖에 안 들렸다. 스승은 그 뒤로 그 말을 다시 하지 않았고, 무진은 스무 해 동안 그 자리에 섰다.
무진은 코를 풀었다. 숯 검댕이 묻어 나왔다.
*
나루에서 사람이 온 것은 해가 한 뼘 떴을 때였다. 바위나루 뱃사람 덕삼이, 무진이 보낸 기별을 받고 고개를 넘어왔다. 덕삼은 은자 열 냥을 헝겊에 싸서 내밀었다.
“배 반 척 값이오. 형님 몫. 선주 영감이 깎자는 걸 내가 안 깎았소.”
“잘했다.”
“근데 형님, 배를 왜 파오? 형님이 그 배 반 척 모으는 데 여섯 해 걸렸잖소.”
“다섯 해 반이다.” 무진이 은자를 받아 품에 넣었다. “나머지 반 해는 술값으로 날렸지.”
덕삼이 돌아간 뒤 무진은 은자를 귀덕에게 건넸다. 귀덕은 받지 않고 한참 무진을 봤다.
“이게 뭐요?”
“다섯 섬 값이오. 쉰두 냥에서 열 냥 빼면 마흔둘. 스물여섯 섬이 스물하나가 되는 거지.”
“당신이 왜 우리 빚을 갚소?”
“누이 빚이 아니고 내 아우 빚이오.” 무진이 말했다. “아우 빚은 사형이 반은 지는 거요. 스승이 그렇게 가르쳤는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그렇게 배운 걸로 하겠소.”
귀덕이 은자를 받아 부엌 선반 제일 높은 데 올렸다. 올리고 나서 부지깽이로 무진의 어깨를 한 번 쳤다. 아프지 않게.
*
소여가 부엌 문턱에 앉아 무진을 보고 있었다. 아이는 요즘 무진을 자주 봤다. 무진이 몸을 누를 때마다 그 손을 따라왔다.
“아저씨도 모르고 살았습니까?”
“열한 해.”
“아팠습니까?”
“추운 날마다. 의원한테 여섯 번 갔는데 여섯 번 다 아무것도 없다더라. 여섯 번째 의원은 나더러 꾀병이라고 했다. 그 의원한테는 지금도 약값을 안 냈다.”
소여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무진은 그것을 봤다. 이 아이가 웃는 것을 처음 봤다.
“지금은 안 아픕니까?”
“여섯 군데는 안 아프다. 대신 무겁다.”
“무거운 게 낫습니까?”
무진은 그 물음을 오래 들고 있었다. 아이에게 거짓말을 하면 평생 갈 것 같았다.
“나는 낫다. 아픈 건 남의 거였는데, 무거운 건 내 거거든.”
소여가 제 명치를 눌렀다. 누르고, 무진을 봤다.
“그럼 이것도 제 것입니까?”
무진이 대답하기 전에 울타리 밖에서 발소리가 났다. 여럿이었다.
*
곰배와 장대가 앞장섰고, 그 뒤로 오목이, 그 뒤로 장정 여섯이 몽둥이를 들고 왔다. 곰배는 팔을 매달던 헝겊을 풀었고, 장대는 배를 감싸지 않았다. 이번에는 다 나은 모양이었다.
“때가 됐소. 담보를 도가로 모시러 왔소.” 오목이 말했다. “향회가 허락했소.”
무진은 대문을 가로막고 섰다. 대문이래야 통나무 두 개를 세우고 가로대를 얹은 게 전부라, 그 사이가 한 사람 어깨 너비였다.
“향회가 허락했으면 향회장이 와야지. 청지기가 오면 청지기 허락이지.”
“몽둥이 여섯이 허락이오.”
“셈이 틀렸다. 몽둥이 여섯에 사람 여덟이면 몽둥이 없는 둘이 제일 먼저 맞는다.” 무진이 곰배를 봤다. “너 팔꿈치 다 나았냐?”
곰배가 대답 대신 들어왔다. 몽둥이를 옆으로 휘둘렀다. 무진의 머리가 숙여지면서 몽둥이 밑으로 흘렀고, 흘린 자리에서 팔이 곰배의 팔을 감아 돌렸다. 일곱째였다. 알고 쓰니 몸이 먼저 가는 게 아니라 무진이 몸을 데리고 갔다. 곰배가 대문 기둥에 등을 박고 주저앉았다.
“아, 이번엔 어깨!”
“팔꿈치보다 위냐, 아래냐?” 장대가 물었다.
“지금 그걸 묻냐!”
장대가 창 대신 몽둥이를 곧게 찔러 왔다. 무진은 기우는 쪽으로 더 기울면서 반 보 안으로 들어갔다. 열한째. 장대의 몽둥이가 무진의 옆구리를 스쳐 지나갔고, 무진의 손날이 장대의 손목을 쳤다. 열여섯째. 몽둥이가 눈에 떨어졌다.
싸움은 소리가 두 번 나야 싸움이다. 무진은 두 번째 소리가 나기 전에 끝내고 싶었다. 그런데 장정 넷이 한꺼번에 들어왔다. 둘은 앞에서, 둘은 양옆에서. 무진은 뒤로 물러나야 했다. 넷째가 필요했다.
뒤에 아무도 없었다. 무진의 발목이 흙을 밀려다 멈췄다. 뒤가 비어 있으면 물러나는 몸이 안 움직였다.
그때 등 뒤 반 보 자리에 작고 가벼운 무언가가 와서 섰다. 숨이 무진의 허리께에 닿았다.
소여였다.
무진의 발목이 흙을 밀었다. 몸이 반 자 물러났고, 앞에서 들어오던 몽둥이 둘이 무진의 가슴 앞 허공에서 서로 부딪쳤다. 딱, 소리가 났다. 두 번째 소리였다. 양옆의 둘이 부딪친 몽둥이에 제 손을 찧고 물러섰다.
“아저씨.” 소여가 등 뒤에서 말했다. “뒤에 누가 있어야 물러나지는 거 맞습니다.”
무진은 대답하지 못했다. 목이 막혀서였다. 스무 해를 남의 뒤에 섰던 몸이, 처음으로 제 뒤에 선 사람 덕에 물러났다. 그 사람이 열한 살 계집아이였다. 허리께에 닿는 아이의 숨이 가빠서 무진은 그 숨을 세다가 그만두었다. 세지 않아도 거기 있었다. 등 뒤가 따뜻했고, 그 따뜻한 자리 때문에 앞이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스승이 등에 손바닥을 얹던 그날, 스승 쪽에서 본 제 등이 이랬을지도 몰랐다.
*
여팔은 싸움이 끝난 뒤에 왔다. 서봉구가 지팡이를 짚고 따라왔다. 여팔은 대문 앞에 주저앉은 곰배를 보고, 떨어진 몽둥이 셋을 보고, 무진을 봤다. 얼굴이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바위나루 사공이라 들었소. 배를 팔았다지요.”
“소문이 빠르오.”
“쌀 장사는 소문 장사요.” 여팔이 말했다. “사공 양반, 아홉 군데 가졌다지. 그중 여섯을 아신다고. 내 도가에 오시오. 수금꾼 채노 자리가 비었소. 배 한 척 값의 열 배를 드리리다.”
“나한테 빚 받으러 다니라고?”
“흉년 세 해에 빚이 안 걷히면 봄에 쌀을 못 놓소. 쌀을 못 놓으면 이 고개 사람 절반이 봄을 못 넘기오. 나는 칼 든 적이 없소, 사공 양반. 쌀을 놓고 받았을 뿐이오. 받으러 다니는 게 아니오. 서 있기만 하면 되오. 사공 양반 같은 분이 문 앞에 서 있으면 빚은 저절로 걷히오.” 여팔이 미소를 지었다. “스무 해를 남 뒤에 서 계셨다면서요. 이제 내 앞에 서 보시오. 앞자리가 값이 더 나가오.”
무진은 대문 기둥에 기댔다. 기둥이 오늘따라 차가웠다. 등 뒤 부엌 문간에서 소여가 아직 서 있는 것이 느껴졌다. 곰배가 기둥 밑에서 제 어깨를 주무르며 「사공 양반, 도가 가면 우리 편 되는 거요?」 하고 물었다가 오목에게 뒤통수를 맞았다.
“어른, 나는 스무 해를 남 뒤에 서 있었소. 그게 짐 지는 자리인 줄 알았는데 받는 자리였더이다.” 그가 말했다. “이제 어디 설지는 내가 고르오. 대문에 서기로 했소.”
“대문은 향회 것이오.” 서봉구가 하품을 하며 말했다. “이 집은 빚 문서에 묶였고, 담보는 삼짇날 도가로 가오. 오늘 일은 청지기가 서두른 거요. 향회는 삼짇날까지 기다리겠소.”
여팔이 처남을 한 번 봤다. 서봉구는 다시 조는 척을 했다. 오목이 곰배를 일으켜 세우려다 곰배가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도로 놓았고, 장대는 제 몽둥이를 주우러 왔다가 무진과 눈이 마주치자 몽둥이를 두고 갔다.
“그거 가져가시오. 땔감이 모자라진 않소.” 귀덕이 부엌에서 소리쳤다.
장대가 돌아와 몽둥이를 주웠다. 줍는 손이 공손했다.
“그러면 삼짇날에 봅시다.” 여팔이 돌아섰다. “검객 양반더러 그 전에 도가에 한 번 들르라 하시오. 새 셈이 있다고. 그 아이 몸에 든 것을 누가 깨우든, 깨우고 나면 셈이 달라지오.”
*
해 질 녘에 단하가 왔다. 도가에 들렀다 오는 길이라고 했는데, 여팔이 무엇을 말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의 장삼 소매에 쌀겨가 묻어 있었고, 걸음이 평소보다 느렸다. 반 보씩 두 번 나던 발소리가 한 번씩 무겁게 났다. 무진은 대문 기둥에 기대 앉아 있었다. 몸의 여섯 군데가 무거웠고, 허리 두 군데와 명치가 쑤셨고, 그 모든 것보다 목이 아직 막혀 있었다.
소여가 단하 앞으로 걸어갔다. 무진이 한 번도 못 본 걸음이었다. 망설임이 하나도 없었다.
“어른.”
“말해라.”
“제 것도 알게 해 주십시오.”
단하가 무진을 봤다. 무진은 고개를 저을 수도, 끄덕일 수도 없었다.
“해운 스님이 막겠다고 하셨다.”
“압니다. 아저씨가 술 드시고 고모한테 다 말했습니다. 고모는 저한테 다 말했고요.”
무진이 대문 기둥에 이마를 찧었다. 단하가 그쪽을 한 번 봤다.
“고모는 뭐든 다 말합니다.” 소여가 덧붙였다. 소여가 말했다. “그래도 알고 싶습니다. 모르는 채로 있다가 또 누굴 붙잡으면, 저도 그 사람처럼 됩니다.”
“여는 자리가 어떤지 아느냐.”
“그날을 다시 세운다고 들었습니다.”
아이가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들이쉰 숨이 명치께에서 걸리는지 어깨가 한 번 떨렸다.
“그러면 객잔 마당에서 해 주십시오. 그 늙은 사람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