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5,112자) · 단하 · 삼월 초하루
천호
두 번째 초식은 없다 · 한도윤
만 19세 이상 이용가
삼월 초하루 아침, 홍매집 대문 앞에 사람이 줄을 섰다. 단하가 이 층 창호를 열었을 때 여섯이었다. 가장 앞에 선 사내는 도끼 자루를 어깨에 걸친 나무꾼이었고, 그 뒤로 젖먹이를 업은 젊은 아낙, 앞치마에 쇳가루가 박힌 대장장이, 열 살 남짓한 사내아이, 지팡이를 짚은 할멈, 그리고 곰배가 서 있었다.
홍매가 국자를 들고 부엌에서 나왔다.
“검객 양반, 이게 다 뭐요? 우리 집이 의원이오?”
“맞은 적 없는 데가 아픈 사람은 검객한테 가 보라고, 저 사공 양반이 장터에서 떠들고 다녔다오.” 맨 앞의 나무꾼이 말했다. “나는 왼 팔꿈치가 여섯 해째 쑤시오. 맞은 적 한 번 없소.”
무진이 술청 안에서 소리쳤다.
“떠든 게 아니고 술 마시다가 말한 거요.”
단하는 내려가서 나무꾼 앞에 섰다. 곽가라고 했다. 여섯 해 전 늦가을, 장터 위 비탈에서 나무를 하다가 굴러떨어지는 돌을 피하려던 검객 하나가 제 바로 앞에서 이상하게 몸을 틀었다고 했다. 그 뒤로 팔꿈치가 아팠다.
단하는 그날을 기억했다. 돌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비탈 위에서 산적 하나가 돌과 함께 굴러 내려왔고, 단하는 팔꿈치를 안으로 접어 그자를 흘렸다. 스승의 셋째였다. 그날 비탈 아래에서 나무꾼 하나가 입을 벌리고 보고 있었다.
단하는 줄을 하나씩 들었다. 아낙은 왼 발목, 대장장이는 목, 사내아이는 오른 엄지, 할멈은 허리였다. 아이는 세 해 전 장터 싸움 때 엄마 치마 뒤에서 봤다고 했다. 할멈은 기억이 흐릿했는데, 아픈 날은 똑똑히 댔다. 동짓달 스무이레. 단하가 청계진에 처음 들어온 날이었다. 그날 장터 입구에서 술 취한 장꾼 하나가 할멈의 광주리를 걷어차려 했고, 단하가 그 발목을 흘려 넘겼다. 할멈은 광주리를 끌어안고 그걸 코앞에서 봤다. 그 뒤로 세 해 동안 겨울마다 허리가 쑤셨는데, 할멈은 그게 광주리를 너무 꽉 끌어안아서 그런 줄 알았다고 했다.
곰배는 맨 뒤에서 머뭇거렸다.
“너는 어디가 아프냐?”
“명치요. 장대가 명치를 맞았잖소. 나는 팔꿈치고. 근데 요즘 명치가 아프오.”
“그건 맞은 거다.”
“맞은 건 장대라니까요.”
“네가 장대 대신 억울해서 아픈 거다.”
곰배가 한참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줄에서 빠졌다. 빠지면서 제 명치를 문질렀다.
찾은 몸이 다섯 늘었다. 무진과 소여까지 일곱. 단하가 흘린 스물셋 가운데 채노를 거쳐 소여에게 간 하나와 무진의 아홉이 열렸고, 이제 청계진에 다섯이 더 있었다. 산적에게 간 둘은 어디 있는지 몰랐다. 남은 여섯은 아직 못 찾았다.
곽가가 제 팔꿈치를 걷어 보였다.
“열어 주면 돈이 되오? 도가에 빚이 석 섬인데.”
단하는 대답하지 못했다. 해운의 말이 귀에 남아 있었다. 알고 쓰는 자는 또 쓰오. 그리고 오늘은 삼월 초하루였다.
*
채노는 여드레 전 새벽에 고개를 넘어갔다. 추방 기한이 찬 날이었다. 짐은 봇짐 하나였고, 매 맞은 등이 아직 덜 아물어서 봇짐을 등에 못 지고 가슴에 안고 갔다. 소여가 장터 어귀까지 따라 나갔다가 거기서 멈췄다고 귀덕이 말했다. 둘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귀덕도 못 들었다. 귀덕이 못 들은 말은 그것 하나뿐이었다.
한낮이 되기 전에 장터 아래 길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단하가 장터에 나갔을 때 병사들은 이미 장터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었다. 서른이었다. 무명 군복에 가죽 조끼를 덧입었고, 스물은 장창을, 열은 쇠뇌를 들었다. 쇠뇌 시위에 서리가 앉아 있었다. 먼 길을 밤새 걸어온 병사들이라 신발마다 진흙이 무릎까지 튀어 있었고, 몇몇은 창대에 기대 선 채로 졸았다.
말 위에 사내 하나가 앉아 있었다. 마흔 남짓이었고, 얼굴이 바닷바람에 그을려 가죽처럼 굳어 있었다. 왼 귀 끝이 잘려 나가고 없었다. 여팔이 그 말 곁에 서서 고삐를 대신 쥐고 있었다. 오목은 그 뒤에서 종이 뭉치를 안고 있었다.
장터 사람들이 멀찍이 둘러섰다. 소여가 귀덕과 함께 그 틈에 서 있었고, 무진이 그 곁에 섰다.
말 위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크지 않았는데 장터 끝까지 갔다.
“처주 위소 천호 양준이오. 해안이 지난 두 해에 두 번 뚫렸소. 왜구가 배 여섯 척으로 들어와 포구 셋을 태웠소. 위소 군호는 절반이 도망갔고, 남은 절반은 창을 제대로 쥐지 못하오. 새 병사를 한 해 가르치면 그 사이에 또 뚫리오.” 양준이 장터를 한 바퀴 둘러봤다. “이 고개에 한 번 보면 익히는 무공이 있다고 들었소. 그것을 가진 검객과, 그것을 받은 계집아이가 있다고.”
사람들의 눈이 한꺼번에 소여에게 갔다가, 한꺼번에 비켜 갔다.
여팔이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천호 나리께 말씀드렸소. 그 아이는 도가 담보요. 빚이 스물하나 섬 남았고 기한은 모레요. 나라가 그 아이를 데려가면, 담보가 나라 일로 간 것이니 빚은 없던 걸로 하겠소.” 그가 소여 쪽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도가 부엌보다 위소가 낫지 않겠느냐. 거기선 나라 밥을 먹는다.”
귀덕이 소여 곁에서 한 걸음 나섰다. 숯 검댕이 묻은 손이 주먹을 쥐고 있었다.
“나라 밥? 옥분이도 처주 밥 먹었소. 처주 밥이 무슨 밥이었는지 이 장터 사람들이 다 아오.”
장터가 술렁였다. 옥분이 어미가 사람들 틈 어딘가에서 짚신 한 짝을 떨어뜨리는 소리가 났다.
“그 대신 위소 군량 납품은 도가가 맡고.” 무진이 큰 소리로 말했다. “셈이 참 좋소, 어른.”
여팔은 무진을 보지 않았다. 양준이 무진 쪽을 한 번 보고, 여팔을 한 번 봤다. 그 눈에 무언가가 지나갔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사람들 틈이 갈라지면서 지팡이 짚는 소리가 났다. 해운이었다. 그는 양준의 말 앞 여섯 걸음쯤에서 멈췄다. 먹물 장삼 자락이 바람에 날렸다.
“천호 나리. 그것은 모이면 군대가 되지 않소.”
“그럼 무엇이 되오, 스님?”
“한 사람이 되오.” 해운이 말했다. “보고 익힌 자 백이 한자리에 서면, 백이 서로 맞소. 한 사람이 쓰라고 지은 것이라 그렇소. 맞는 백은 한 사람처럼 움직이고, 한 사람처럼 움직이는 무리는 결국 한 사람이 부리오. 그 한 사람이 천호 나리요? 아니면 천호 나리 위의 누구요?”
“나라요.”
“나라도 한 사람이 부리오.”
양준은 말 위에서 오래 해운을 내려다봤다. 화가 난 얼굴이 아니었다. 걸음 수와 바닥과 병기 길이를 먼저 재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입술이 조금씩 움직였다.
“스님 말이 틀리지 않을 거요.” 양준이 말했다. “그런데 포구 셋이 탈 때 거기 있던 사람들은 누가 부려서 죽었소? 한 사람이 부리는 군대가 무섭다는 건 아오. 그런데 아무도 안 부리는 해안에서는 지금도 사람이 죽소.”
해운이 대답하지 못했다. 단하는 노승이 처음으로 대답을 못 하는 것을 봤다.
둘 다 옳았다. 흩어져 있으면 모르는 자가 겁날 때마다 쓰고, 그때마다 사람이 죽는다. 모이면 한 사람이 부리고, 그 한 사람이 틀리면 한꺼번에 죽는다. 어디서 죽느냐만 다르다. 단하는 그 둘 사이에서 이미 한쪽으로 한 걸음 옮겨 서 있었다. 무진의 아홉을 열었고, 소여의 하나를 열었고, 막는 초식을 둘에게 가르치는 중이었다. 해운이 막으려던 것을, 단하는 이 고개에서 벌써 절반쯤 세워 놓았다.
무진이 단하 곁으로 와서 낮게 말했다.
“단하야. 저 천호, 너랑 얼굴이 똑같다.”
“어디가 말입니까?”
“셈하는 데가.”
*
양준이 말에서 내렸다. 내리면서 왼 무릎을 조금 절었다. 그는 단하 앞까지 걸어왔다.
“그대가 그 검객이오?”
“단하요.”
“나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오. 그 아이가 제 발로 안 가겠다면 억지로 안 데려가겠소.” 양준이 말했다. “대신 그대가 보여 주시오. 한 번 보면 익힌다면서. 내 병사들 앞에서 한 번만 쓰시오. 그러면 그 아이는 여기 두고 가겠소. 도가 빚은 내 알 바 아니오.”
여팔의 얼굴이 처음으로 바뀌었다. 아주 잠깐이었다.
단하는 셌다. 그의 몸에 남은 것은 스물넷째 하나였다. 무진은 아홉 동작 가운데 넷째까지, 소여는 여섯째까지 익혔다. 아직 아무도 다 알지 못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쓰면 스물넷째는 단하의 몸에서 나간다. 나가서 여섯 걸음 안에서 가장 가까이, 정면으로 본 병사 한 사람 몸에 든다. 그 병사는 받은 줄 모르고 처주로 돌아간다. 겁이 나는 날 모르고 쓰고, 그것은 또 옮겨 간다. 위소 병사들 사이로, 해안으로, 왜구의 배로.
안 쓰면 소여가 간다. 아이가 제 발로 안 가겠다고 해도, 모레 삼짇날이면 도가 부엌으로 간다. 스물하나 섬은 모레까지 한 톨도 안 줄어 있을 것이다.
“한 번만이오.” 양준이 말했다. “해안에서는 한 번이면 사람 백이 사오.”
단하는 소여를 봤다. 아이는 귀덕 곁에서 단하를 보고 있었다. 명치에 손을 대지 않고 있었다. 이제 아프지 않은 자리였다.
“쓰겠소.”
해운이 지팡이로 땅을 한 번 찍었다. 무진이 한 걸음 나왔다가 멈췄다.
양준이 손을 들었다. 병사들이 움직였다. 서른이 장터 한가운데에 둥글게 섰다. 단하를 가운데 두고, 여섯 걸음 떨어져서. 창을 든 스물은 창끝을 세우고, 쇠뇌를 든 열은 시위를 당긴 채 땅을 겨눴다. 서른의 눈이 한꺼번에 단하에게 왔다. 여섯 걸음 안에서 정면으로 보는 눈이 서른이었다.
그 가운데 누가 가장 가까운가. 단하는 그것을 셀 수 없었다. 둥글게 선 서른은 모두 여섯 걸음이었다.
“누가 먼저 가겠느냐.” 양준이 말했다.
맨 앞의 병사 하나가 창을 고쳐 쥐었다. 열여덟이나 됐을까. 수염이 아직 안 났다. 창끝이 떨렸다. 소년병의 입술이 파랬다. 저 아이가 받으면 저 아이는 처주에서 무엇이 될까. 단하는 그것도 셀 수 없었다.
소년병이 창을 겨누고 들어왔다. 창은 곧게 오는 것만 빠르다. 곧게 왔다.
단하의 손이 검집을 잡았다. 스물넷째의 첫째 동작이 몸 안에서 먼저 일어섰다. 칼이 오는 선에 제 선을 비스듬히 얹는 것. 스승이 열여덟 살 봄에 끝까지 가르친 것. 스무 해를 아꼈고, 보름 동안 날마다 삼백 번씩 남에게 가르쳐 준 것.
섣달 그 밤에 단하는 여섯 걸음을 세고, 세 걸음을 세고, 남은 것 둘을 세다가 늦었다. 이월 스무날 밤에는 세기를 끝내기 전에 장작을 들었고, 아무도 죽지 않았다. 「이번엔 안 늦으셨습니다.」 그 말이 창끝보다 먼저 귀에 왔다. 지금 세면 늦는다. 안 세면 서른 가운데 하나가 받는다.
그때 등 뒤 반 보 자리에 작고 가벼운 누군가가 와서 섰다. 숨이 단하의 허리께에 닿았다.
단하는 돌아보지 않았다. 창끝이 네 걸음, 세 걸음 앞으로 왔다. 여섯 걸음 안에 서른이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