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214자)

불은 열한 시에 꺼진다

방출 통보 받은 날, 스무 살 신인으로 돌아갔다 · 정이한

강화 2군 숙소의 라커룸 불은 밤 열한 시에 저절로 꺼졌다. 전기를 아끼라고 구단이 타이머를 달아 놓았다. 꺼지기 오 분 전에 형광등이 한 번 깜박였는데, 그걸 아는 선수들은 깜박이는 순간 샤워를 서둘러 끝냈다. 모르는 신인들은 비누칠을 한 채로 어둠 속에 서 있다가 비명을 질렀다.

강현태는 저녁에 라커룸 문간에서 그 한마디만 던지고 나갔다. 경호가 둘 사이에 서려고 하자 강현태는 경호를 보지도 않고 손바닥으로 밀어냈고, 그 소리를 듣고 달려온 구봉수가 문간에 끼어들었다. 강현태는 구봉수의 어깨 너머로 윤석을 보며 말했다. “열한 시. 불 꺼지면 다시 와.”

윤석은 열한 시 오 분에 라커룸 문을 열었다. 안은 깜깜했다. 비상구 표시등의 초록 불빛만 바닥에 길게 깔려 있었고, 그 불빛 끝 벤치에 강현태가 앉아 있었다. 손에 캔맥주를 쥐고 있었다. 발밑에 빈 캔이 두 개 굴러다녔다.

“왔네.” 강현태가 말했다. “안 올 줄 알았다.”

“부르셨잖아요.”

“육성이 마무리가 부른다고 오냐? 너는 진짜 웃긴다.”

강현태가 일어섰다. 비상구 불빛이 그의 얼굴 아래쪽만 초록으로 비추었다. 그는 맥주 캔을 벤치에 내려놓고 윤석에게 걸어왔다. 세 걸음. 그리고 오른손이 아니라 왼손으로 윤석의 멱살을 잡았다. 오른 어깨는 들리지 않았다.

윤석의 등이 라커 문에 부딪혔다. 쇠문이 크게 울렸고, 그 소리가 빈 라커룸의 천장을 한 바퀴 돌았다. 부딪히는 순간 윤석의 오른팔이 저절로 몸 앞으로 접혔다. 팔꿈치를 가슴 쪽으로 감싸는 모양이었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했다.

강현태가 그 팔을 내려다보았다.

“너도 팔이 무섭구나.” 그가 말했다. 멱살을 쥔 손에서 조금 힘이 빠졌다. “다들 그래. 투수는 맞아도 팔부터 감싸. 나도 그래.”

“놔 주세요.”

“단장한테 내 어깨를 판 놈이 놔 달래.” 강현태가 멱살을 놓지 않고 얼굴을 가까이 댔다. 맥주 냄새와 파스 냄새가 한꺼번에 났다. “회전근. 의사가 시즌 끝이래. 수술하면 내년 여름, 안 하면 다시는 9회에 못 선대. 나 이제 마무리 아니다. 알아?”

“압니다.”

“네가 뭘 알아.”

*

강현태는 멱살을 놓고 벤치로 돌아가 앉았다. 캔을 다시 집어 들었는데 비어 있었다. 그는 빈 캔을 손안에서 천천히 구겼다. 알루미늄이 구겨지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길게 났다.

“상필이 형한테 빚이 있다.” 강현태가 말했다. 윤석을 보지 않았다. 구겨진 캔을 보았다. “세 해 전부터. 원정 가서 숙소에서 카드 치다가. 처음엔 형이 대신 갚아 줬어. 이자는 없다고 하더라.”

윤석은 라커에 등을 댄 채 서 있었다. 이자 없는 돈. 오키나와 고깃집에서, 강화 주차장에서 예솔에게 하던 말과 똑같았다.

“어깨 아픈 거 숨기고 1군 버틴 것도 그거 때문이야. 마무리면 연봉이 나오잖아. 연봉 나오면 형한테 조금씩 갚고.” 강현태가 구겨진 캔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형은 아직 나한테 아무것도 안 시켰다. 진짜야. 공 하나 빼 달라는 말 같은 거, 한 번도 안 했어. 마무리는 아껴 두는 카드거든. 큰 경기 9회에 한 번 쓰려고.”

“그런데 이제 마무리가 아니시고요.”

“그래.” 강현태가 고개를 들었다. 초록 불빛 속에서 그의 눈이 젖어 있었다. 맥주 때문인지 다른 것 때문인지는 어두워서 알 수 없었다. “네가 내 어깨 팔아서, 형 손에 든 카드가 하나 줄었어. 형은 그럼 뭘 할 것 같냐? 다른 카드를 찾지. 젊고, 돈 급하고, 아직 아무도 안 보는 놈.”

윤석은 숨을 멈추었다.

“네 포수 같은 놈.” 강현태가 말했다. “대전 치킨집 아들.”

비상구 표시등이 낮게 윙윙거렸다. 라커룸 어딘가에서 물이 한 방울씩 떨어졌다. 윤석은 그 소리를 세다가, 세는 것을 그만두었다.

단장실에서 경호를 지키겠다고 내민 것이 강현태의 어깨였다. 그 어깨를 내준 탓에 오상필의 손이 예솔 쪽으로 한 뼘 더 가까워졌다. 오키나와에서 하나를 바꾸자 다른 것이 바뀌었듯, 단장실에서 한 말이 주차장까지 굴러왔다. 윤석은 그 길을 다 볼 수 없었다. 서른다섯의 기억은 지난 생의 길만 알았다. 이번 생의 길은 그가 바꾼 데서부터 전부 처음이었다.

“선배님은 왜 저한테 그 얘기를 하세요?” 윤석이 물었다.

강현태가 웃었다. 비상구 불빛 속의 그 웃음은 지쳐 있었다.

“너 똑똑하잖아. 남 어깨도 보고 남 포수도 보고.” 그가 벤치에서 일어나 원정 가방을 왼쪽 어깨에 멨다. “그럼 이것도 봐라. 나는 이제 9회에 못 서. 그러니까 너라도 봐.”

*

그다음 세 주는 빨리 지나갔다.

마정구는 윤석을 쓰지 않았다. 일정표에서 윤석의 이름이 빠졌고, 윤석은 불펜에서 공을 던지지 않는 날에는 불펜 포수 노릇을 했다. 다른 투수들의 공을 받으면서 그는 그 투수들의 팔꿈치를 보았다. 입이 근질거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하면 누군가의 팔이 누군가의 메모지에 오른다는 것을 이제는 알았다.

광명 원정 버스에서 체인지업을 가르쳐 달라던 2군 형은 결국 그 공을 익혔다. 그는 원정 경기에서만 체인지업을 던졌고, 강화 홈에서는 직구만 던졌다. 마정구는 그것을 알면서 모른 척했다. 어느 날 그 형이 원정에서 체인지업으로 삼진 셋을 잡고 들어오자, 마정구가 더그아웃에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거, 원정 공은 잘 떨어지네.” 그 말을 들은 구봉수가 스피드건으로 입을 가리고 어깨를 떨었다.

밤에 구봉수가 불펜 포수 일을 마친 윤석에게 얼음을 건네며 물었다. “근데 너는 왜 그때 나를 팀장님이라고 불렀냐? 오키나와에서.”

“그냥요. 형은 나중에 팀장 하실 것 같아서요.”

“내가? 그럼 그때 너 잘리지 않게 내가 지켜 줄게.”

윤석은 얼음을 팔꿈치에 대고 웃었다. 열다섯 해 뒤 이 사람은 그를 지키지 못하고 종이를 읽는다. 그래도 미안하다는 말만은 끝까지 할 사람이었다.

5월 마지막 주, 오상필의 검은 승합차가 두 번 주차장에 섰다. 한 번은 화요일 밤, 한 번은 토요일 낮이었다. 윤석은 두 번 다 숙소 2층 창문에서 그 차를 보았다. 두 번 다 예솔은 나가지 않았다. 예솔은 상자 벽 너머 자기 침대에 앉아서 휴대전화를 무릎에 엎어 놓고 있었다. 휴대전화가 울려도 뒤집지 않았다. 윤석은 그것을 상자 너머로 보았다. 앉으면 다 보이는 높이였다.

6월이 되자 강화의 바람이 바뀌었다. 갯벌 냄새에 풀 냄새가 섞였고, 저녁 여섯 시가 넘어도 해가 지지 않았다. 할머니의 확성기는 윤석이 나오지 않는 경기에서도 켜졌다. “십일 번 어디 갔어어!”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았다.

지난 생의 6월 7일 아침, 윤석은 재활군 숙소에서 팔꿈치 보호대를 찬 채로 아침을 먹다가, 텔레비전 자막으로 서경호의 1군 등록 소식을 보았다. 경호는 그날 저녁 해무 파크에서 1군 첫 등판을 했고, 한 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윤석은 그 경기를 재활군 숙소 휴게실에서 혼자 보았다. 화면 속 마운드는 멀었다.

이번 생의 6월 7일 아침은 소리부터 달랐다.

*

아침 일곱 시 사십 분에 슬라이드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윤석은 침대에 누운 채로 받았다.

“채윤석 선수시죠. 권상규입니다.”

윤석이 일어나 앉았다. 상자 너머에서 예솔이 고개를 들었다.

“오늘 오후 세 시까지 해무 파크로 오십시오. 1군 등록합니다.” 권상규의 목소리는 단장실에서처럼 정중했다. “먼저 말씀드리면, 시험은 떨어지셨습니다. 사흘째 안 던지셨으니까요.”

“그런데 왜요?”

“사흘째 대신 올라간 서경호 선수가 이겼습니다. 그 경기 영상을 다른 구단에서 보고 값을 더 쳐주겠다고 했고요. 덕분에 원하던 불펜 투수를 받아 왔습니다. 그런데 받아 온 투수가 6월 말까지 허벅지 부상입니다. 한 자리가 빕니다.” 권상규가 잠깐 말을 멈추었다.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마 감독님 보고서와 구봉수 씨 기록을 다시 봤습니다. 사흘째 안 던지겠다고 버틴 선수가, 이틀 동안 서른일곱 개로 두 경기를 지켰습니다. 저는 그 숫자가 마음에 듭니다.”

“경호는요?”

“서경호 선수는 오늘 오전에 전주 은하로 갑니다. 오늘 발표합니다.”

윤석은 휴대전화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권상규는 그 침묵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세 시입니다. 늦지 마십시오.”

*

오전 열 시, 숙소 주차장에 차 두 대가 서 있었다. 하나는 윤석을 인천에 데려다줄 구단 승합차였고, 하나는 경호를 전주로 데려갈 전주 은하의 승합차였다. 두 차는 나란히 서 있었다. 차 문 색깔만 달랐다. 해무의 남색과 은하의 흰색.

경호는 짐 가방 두 개를 들고 나왔다. 2군 형들이 줄줄이 나와 경호의 등을 두드렸다. 경호는 형들 하나하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는 하지 않았다. 고맙습니다, 만 했다.

윤석은 해무 승합차 옆에 서 있었다. 경호가 마지막으로 그 앞에 왔다.

“축하해요, 윤석 씨. 1군.”

“경호야.”

“저 오늘 아침에 단장님 전화 받고, 제일 먼저 뭐 생각했는지 알아요?” 경호가 웃었다. 오키나와 식당에서 동기에게 반쯤 존대를 섞어 인사하던 그 얼굴로. “슬라이더요. 윤석 씨가 1군 가면 슬라이더 너무 많이 던지지 말라고 했잖아요. 그때 윤석 씨는 제가 해무 1군에 갈 줄 알았던 거죠? 그런데 저 지금 전주 1군에 가요. 은하 불펜이 비었대요.”

윤석은 대답하지 못했다.

“슬라이더 많이 안 던질게요.” 경호가 말했다. “그건 윤석 씨 말 들을게요. 그것만요.”

경호가 흰 승합차에 올랐다. 문이 닫혔다. 차가 먼저 출발했다. 갯벌 쪽 도로로 나가는 흰 차의 꽁무니를 윤석은 끝까지 보았다. 지난 생의 6월 7일에 경호는 남색 유니폼을 입고 해무 파크 마운드에 섰다. 이번 생의 6월 7일에 경호는 흰 차를 타고 전주로 갔다. 두 6월 7일 사이에, 윤석이 비키지 않은 한 칸이 있었다.

“야.”

뒤에서 예솔의 목소리가 났다. 예솔은 츄리닝 차림으로 숙소 계단에 서 있었다.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 둘은 공 상자 벽 이후로 처음 마주 보았다.

“1군 포수한테 니 무릎 버릇 얘기 하지 마.” 예솔이 말했다. “그거, 체인지업 사인 낼 때 오른 무릎부터 꿇는 거. 그건 우리 둘이 짠 거여.”

“알았어.”

“그리고 니 그 공, 1군 가서 인터뷰할 때 들고 혀. 내가 써 준 거.”

예솔은 그 말만 하고 계단을 올라갔다. 휴대전화가 츄리닝 주머니에서 울렸다. 예솔은 걸음을 멈추고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을 보았다. 윤석이 서 있는 곳에서는 화면이 보이지 않았다. 예솔은 받지도 끄지도 않고, 울리는 휴대전화를 도로 주머니에 넣고 계단을 마저 올라갔다.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몇 번 더 이어지다 멎었다.

구단 승합차 운전석에서 기사가 창문을 내렸다. “채윤석 선수, 가셔야죠. 오늘 1군 홈경기예요. 상대가 마침 전주 은하라 구장 꽉 찬대요.”

9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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