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065자)
셋째 날
방출 통보 받은 날, 스무 살 신인으로 돌아갔다 · 정이한
서경호는 자판기에도 사과하는 사람이었다. 동전을 넣었는데 음료가 안 나오면 자판기를 두드리기 전에 “죄송합니다” 하고 두드렸다. 2군 형들은 그걸 보고 경호를 「죄송이」라고 불렀다. 경호는 그 별명에도 죄송하다고 했다.
5월 셋째 주 화요일, 강화 2군 구장. 경호는 그날 선발이었다. 오후 한 시 경기였고, 햇볕이 마운드 흙을 하얗게 말렸다. 흙을 스파이크로 긁으면 마른 가루가 일어나 송진 가루와 섞여 손가락에 붙었다. 경호는 육 회까지 던졌다. 한 점을 주었고, 해무가 두 점을 냈다. 육 회를 마치고 내려왔을 때 투구 수는 아흔두 개였다. 마정구는 고개를 끄덕였을 뿐 칠 회에 나가라고 하지 않았다. 1순위 신인의 팔은 2군 감독이 함부로 쓰지 않았다.
경호는 그게 이상했다. 육성 십일 번의 팔은 함부로 쓰려고 하면서.
팔 회 초, 2대 1. 마정구가 불펜으로 전화를 넣었다. 불펜 문이 열리고 윤석이 뛰어나왔다. 1루 쪽 관중석에서 꽃무늬 조끼가 확성기를 번쩍 들어 올렸다.
“십일 버언! 우리 십일 번 장가가야지이!”
할머니는 개막전 이후로 한 경기도 빠지지 않았다. 응원 문구는 경기마다 조금씩 바뀌었다. 지난주에는 「십일 번 밥 먹었냐」였다. 오늘은 장가였다. 더그아웃의 형들이 배를 잡고 웃었다. 경호도 웃었다. 웃다가 옆자리 예솔이 웃지 않는 것을 보고 웃음을 멈추었다.
예솔은 이제 경호의 포수였다. 공 상자로 벽을 쌓았다는 이야기는 숙소에 다 퍼져 있었다. 그런데 예솔은 윤석이 마운드에 오를 때마다 미트를 무릎에 올려놓고 손가락으로 미트 끈을 꼬았다. 오늘도 꼬았다.
윤석은 공 열다섯 개로 팔 회를 막았다. 직구와 슬라이더만 던졌다. 강화는 마정구의 구장이었다.
그날 밤 경호는 숙소 2층 끝 방의 문을 두드렸다. 승리 투수 요건을 지켜 준 사람에게 음료수라도 하나 건네야 할 것 같았다. 문을 연 사람은 윤석이었고, 문 너머로 소문의 벽이 보였다. 연습구 상자 네 개가 침대 사이에 허리 높이로 서 있었다. 예솔은 상자 너머에서 이어폰을 끼고 등을 돌리고 누워 있었다.
“이거 진짜 있네요.” 경호가 말했다.
“있어. 들어와. 벽 넘어가지만 마. 저쪽은 충청도야.”
상자 너머에서 예솔의 발이 이불 밖으로 나와 상자를 한 번 툭 찼다. 듣고 있었다.
경호는 윤석의 침대 끝에 앉아 캔 음료를 건넸다. 머리맡에 공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매직으로 쓴 날짜와 「마흔 개」라는 글씨가 보였다. 경호는 그 공에 대해 묻지 않았다. 대신 다른 것을 물었다.
“윤석 씨, 지난번에 형들이 그러던데요. 윤석 씨가 화나면 킹받는다고 한다고. 그게 무슨 말이에요?”
“열받는다고. 아주 많이.”
“왜 킹이에요?”
“몰라. 나중에 다들 그렇게 말해.”
“나중에 언제요?”
윤석이 캔을 따다가 손을 멈추었다. 상자 너머에서 예솔이 이어폰 한쪽을 뺐다. 경호는 그 소리를 들었다.
“아무튼.” 윤석이 캔을 마저 땄다. “경호야, 하나만 기억해. 1군 가면 첫해에 슬라이더 너무 많이 던지지 마. 너는 직구가 좋아서 직구로 버티는 투수야. 슬라이더 늘리면 직구가 죽어.”
“1군이요? 제가요?”
“응.”
윤석은 그것을 날씨 이야기처럼 말했다. 내일 비 온대, 하는 말투로. 경호는 캔을 쥔 채 웃었다. 칭찬으로 들었다. 그날 밤에는 칭찬으로만 들었다.
*
수요일에도 윤석은 나갔다. 구 회 초, 3대 2. 이번에는 스물두 개를 던졌다. 마지막 타자를 삼진으로 잡고 내려오는데, 마정구가 더그아웃 앞에서 손바닥을 한 번 쳤다. 칭찬인지 박수인지 모를 소리였다.
경기가 끝나고 경호는 불펜 옆 벤치에서 예솔과 나란히 앉아 얼음주머니를 대고 있었다. 예솔이 경호의 공을 받은 지 세 주째였다. 예솔은 포수로서는 좋았다. 사인이 빠르고, 미트 소리가 크고, 경호가 흔들리면 마운드에 올라와서 사투리로 아무 말이나 하다가 내려갔다. 지난주에는 “경호야, 저 타자 콧수염 봐 봐. 붓으로 그린 것 같지 않여?” 하고 내려갔다. 경호는 그 말에 웃다가 볼넷을 내주었다.
“결이 형.” 경호는 동갑에게도 형이라고 불렀다. 생일이 넉 달 늦었다. “윤석 씨 팔 괜찮대요?”
“나한테 왜 물어?”
“형이 제일 잘 알 것 같아서요.”
예솔이 얼음주머니를 고쳐 댔다. 대답은 한참 뒤에 나왔다.
“이틀 연속은 괜찮어. 저놈은 이틀까지는 던져. 사흘째가 문제여.” 예솔이 갯벌 쪽을 보았다. “근디 내일은 안 던질 겨. 저놈 고집은 내가 알어.”
“그럼 단장님 시험은요?”
“모르지. 나랑 이제 상관없는 사람이여.” 예솔은 그렇게 말하고 얼음주머니를 떼었다. 그리고 숙소 쪽으로 걸어가다가 불펜 쪽을 한 번 돌아보았다. 불펜 마운드에서 윤석이 혼자 고무 밴드로 어깨를 풀고 있었다.
경호는 그 뒷모습들을 보면서 이상한 생각을 했다. 저 두 사람은 싸운 게 아니라,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너무 오래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누가 누구를 기다리는지는 알 수 없었다.
*
목요일은 흐렸다. 갯벌 쪽에서 비 냄새가 올라왔다. 칠 회 말이 끝났을 때 점수는 2대 2였다. 마정구가 불펜에 전화를 걸지 않고 더그아웃 벤치 끝으로 걸어왔다. 윤석은 불펜이 아니라 더그아웃에 앉아 있었다. 오늘은 처음부터 불펜에 가지 않았다.
“채윤석, 팔 회. 나가.”
“오늘은 안 던집니다.”
더그아웃이 조용해졌다. 다들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는데도 조용해졌다. 경호는 벤치 반대쪽 끝에 앉아 있었다. 화요일에 아흔두 개를 던져서 오늘은 쉬는 날이었다.
“단장님 시험인 거 알지?” 마정구가 말했다. 목소리가 낮았다. 패딩은 이제 입지 않았지만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여전히 그 사람에게서 나는 것 같았다.
“압니다.”
“그럼 포기하는 거냐?”
“네.”
“네?” 마정구가 웃었다. 정말 웃겨서 웃는 얼굴이었다. “육성이 1군 콜업을 포기해? 너 이거 한 번 놓치면 다음은 없다. 단장님은 같은 놈 두 번 안 본다.”
“사흘째 던지면 다음이 없습니다. 팔이요.” 윤석이 말했다. 그는 앉은 채로 마정구를 올려다보았다. 일어나지 않았다. “감독님, 지난 이틀 제가 몇 개 던졌는지 아세요? 서른일곱 개입니다. 오늘 스무 개를 더 던지면 사흘에 쉰일곱 개예요. 그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하시겠죠. 그런데 사흘째 공은 첫날 공이랑 달라요. 팔꿈치가 첫날처럼 안 접혀요. 그걸 몸이 억지로 접어서 던지면 인대가 먼저 늘어납니다.”
“너 의사냐?”
“아니요.”
“그럼 닥쳐.” 마정구가 몸을 돌렸다. 그의 눈이 벤치를 훑다가 경호에게서 멈추었다. “서경호. 몸 풀어. 네가 올라가.”
경호는 일어나다가 무릎이 벤치에 부딪혔다. “저요? 저 화요일에 아흔두 개…….”
“알아. 이틀 쉬었잖아. 한 이닝이다.” 마정구가 경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다 들리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어차피 너도 곧 딴 데 갈 놈이니까 팔 아끼지 말고 던져. 여기서 던지는 게 너한테도 이력서다.”
벤치가 얼어붙었다. 마정구 본인도 말을 해 놓고 아차 하는 얼굴이 되었다가, 곧 그 얼굴을 지웠다. 감독은 말을 주워 담지 않았다.
딴 데. 경호는 그 말을 입속으로 따라 해 보았다. 딴 데. 1순위 신인이 갈 딴 데는 하나밖에 없었다. 다른 구단이었다.
경호는 윤석을 보았다. 윤석은 놀라지 않았다. 윤석의 얼굴에는 놀라움 대신 다른 것이 있었다. 미안함이었다. 경호가 가장 잘 아는 표정이라서, 경호는 그것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
경호는 팔 회와 구 회를 던졌다. 공 스물아홉 개. 예솔이 그 공을 받았다. 팔 회에 예솔이 마운드에 올라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경호의 엉덩이를 미트로 한 번 치고 내려갔다. 콧수염 이야기는 없었다. 구 회 말에 해무가 한 점을 내서 3대 2로 이겼다. 경호가 승리 투수가 되었다. 프로에 와서 처음 거둔 구원승이었다.
그 승리를 축하하는 사람은 없었다. 더그아웃에서 형들은 경호의 등을 두드리며 수고했다고 말했지만, 수고했다는 말은 위로처럼 들렸다. 딴 데 갈 놈에게 하는 인사였다.
라커룸에서 경호는 유니폼을 벗지 않고 앉아 있었다. 다들 샤워실로 가고 라커룸에 둘만 남았을 때, 경호가 입을 열었다.
“윤석 씨, 알고 있었죠.”
윤석은 자기 라커 앞에서 스파이크 끈을 풀다가 멈추었다.
“단장님이 저를 판다는 거요. 알고 있었죠. 놀라지도 않았잖아요.”
“지난주에 들었어.”
“왜 말 안 했어요?”
“말하면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경호가 일어섰다. 일어서다가 라커 문에 어깨를 부딪쳤고, 쇠문이 크게 울렸다. 경호는 그 소리에도 사과하지 않았다. 경호가 무언가에 사과하지 않은 것은 처음이었다.
“윤석 씨는 다 아는 얼굴이에요.” 경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처음 만난 날부터 그랬어요. 오키나와 식당에서 저한테 인사할 때도, 얼음 대는 법 가르쳐 줄 때도. 저를 아는 사람처럼 봤어요. 제가 뭐가 될지 아는 사람처럼.”
윤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오늘 윤석 씨가 안 던져서 제가 던졌어요. 윤석 씨가 화요일에 내려와서 제가 선발이 됐고요. 윤석 씨가 한 칸 비키면 제가 들어가요. 근데 그 칸이 어디로 가는 칸인지는 윤석 씨만 알아요.” 경호가 자기 오른팔을 내려다보았다. 아까 던진 스물아홉 개의 열기가 아직 팔꿈치에 남아 있었다. “제 팔이 카드면, 윤석 씨 팔은 뭐예요?”
“경호야.”
“얼음 대는 법은 고마웠어요. 진짜로.” 경호가 라커에서 수건을 꺼냈다. “근데 저 이제 윤석 씨한테 죄송하다는 말 안 할 거예요.”
샤워실 쪽에서 물소리가 났다. 형들의 웃음소리가 김과 함께 새어 나왔다. 윤석은 스파이크 한 짝을 손에 든 채 서 있었다. 경호는 그 손을 보았다. 스파이크를 쥔 손가락 마디가 하얬다.
그때 라커룸 문이 열렸다.
문간에 선 사람은 강현태였다. 1군 원정 가방을 어깨에 메고 있었는데, 왼쪽 어깨에 메고 있었다. 1군에 복귀한 지 아흐레 만이었다. 경호는 어제 저녁 숙소 텔레비전에서 강현태가 구 회에 두 점 차를 지키지 못하고 끝내기 안타를 맞는 장면을 보았다. 그다음 뉴스에서 구단이 강현태를 정밀 검사에 보냈다는 짧은 소식이 나왔다.
강현태는 가방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가방이 바닥에 닿는 소리가 라커룸을 한 번 울렸다. 그는 경호를 보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윤석만 보았다.
“검사 결과 나왔다. 회전근이래.” 강현태가 말했다. “단장이 그러더라. 강화에 눈 밝은 육성이 하나 있어서 알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