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509자)

만 이천 명

방출 통보 받은 날, 스무 살 신인으로 돌아갔다 · 정이한

유니폼 등에는 「채윤섭」이라고 박혀 있었다.

1군 장비 담당이 그 유니폼을 펼쳐 들고 한참 들여다보다가 얼굴이 하얘졌다. 오후 세 시 반, 해무 파크 1군 라커룸이었다. 등번호는 61번이었다. 육성 십일 번은 오늘 아침 정식 선수로 등록되면서 번호를 새로 받았다.

“아, 이거 공장에서 받침을 잘못 찍었네. 오늘 경기 전까지 새로 못 하는데.” 장비 담당이 유니폼을 뒤집어 보았다. 뒤집는다고 받침이 바뀌지는 않았다. “일단 이거 입어요. 텔레비전에 등 나올 일 없으면 아무도 몰라요.”

“나오면요?”

“그럼 다들 알겠죠, 뭐.”

1군 포수 문기호가 옆 라커에서 웃음을 참다가 실패했다. 서른넷, 해무에서 열두 해를 앉은 베테랑이었다. 그는 윤석의 유니폼 등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윤섭아, 반갑다.”

“윤석입니다.”

“오늘은 윤섭이야. 유니폼이 그렇다잖아.”

윤석은 그 유니폼을 입었다. 강화의 2군 유니폼보다 천이 얇고 가벼웠다. 가슴에 박힌 해무 글씨의 실이 손끝에 도톰하게 걸렸다. 그는 라커 맨 위 칸에 공 하나를 세워 두었다. 매직으로 날짜와 이름과 「마흔 개」가 적힌 공이었다.

문기호가 그 공을 보았다. “그건 뭐냐?”

“포수가 써 준 거예요. 2군 동기요.”

“그래? 그 포수는 오늘 어디 있는데?”

“강화요. 텔레비전 볼 거예요.”

경기 전 사인을 맞출 때 문기호가 물었다. “체인지업 있다며. 사인 뭐로 할래?”

“손가락 셋 내리고 손목 흔들어 주세요.”

“그리고?”

“그거면 돼요.”

무릎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체인지업 사인을 낸 다음 어느 무릎부터 꿇는지는 둘이 짠 것이었다.

*

해무 파크는 다섯 시부터 차기 시작했다. 여섯 시 반 경기 시작 때 전광판에 「오늘 관중 12,000명 매진」이 떴다. 전주 은하와의 시리즈는 해마다 꽉 찼다. 두 구단 팬들이 서로를 싫어하는 데는 이유가 많았는데, 그 이유를 다 아는 사람은 없었다.

윤석은 불펜에 앉아 있었다. 해무 파크의 불펜은 외야 좌측 펜스 뒤에 있었고, 그물 너머로 관중석이 바로 머리 위에 붙어 있었다. 관중석에서 치킨 냄새와 맥주 냄새가 쏟아져 내려왔다. 응원가가 바뀔 때마다 만 이천 명이 한꺼번에 발을 굴렀고, 그 진동이 불펜 벤치까지 내려와 엉덩이를 울렸다. 강화의 여든여덟 명은 발을 구르지 않았다. 확성기 하나가 전부였다.

삼 회쯤 그 확성기 소리가 들렸다. 불펜 바로 위 관중석 어딘가에서.

“십일 버언! 아니, 육십일 버언! 우리 육십일 번 1군 왔다아!”

불펜의 1군 투수들이 일제히 위를 올려다보았다. 꽃무늬 조끼가 관중석 난간에 매달려 있었다. 강화에서 인천까지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오셨을 것이다. 윤석은 모자를 벗어 그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옆에 앉은 1군 불펜 투수가 물었다.

“어머니셔?”

“아니요. 팬이요.”

“1군 첫날에 팬이 있어? 나 3년 차인데 아직 없는데.”

전주 은하의 더그아웃은 3루 쪽이었다. 불펜에서 고개를 빼면 그 더그아웃 끝이 보였다. 흰 유니폼들 사이에 아직 이름도 박히지 않은 유니폼을 입은 키 큰 투수 하나가 앉아 있었다. 경호였다. 오전에 강화를 떠나 전주로 가지 않고 곧장 인천으로 왔다. 전주 은하는 오늘 원정이었다. 경호는 등록 서류를 쓰자마자 원정 더그아웃에 앉았다.

경기 전 몸을 풀 때 둘은 한 번 눈이 마주쳤다. 외야 펜스 앞에서 캐치볼을 하던 경호가 공을 받다 말고 윤석 쪽을 보았다. 경호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손도 흔들지 않았다. 그냥 보고 있다가 다시 공을 받았다.

*

칠 회 초, 4대 3. 해무가 한 점 앞서고 있었다. 해무의 불펜 투수가 안타와 볼넷을 내주어 원 아웃 1·2루가 되었다. 불펜 전화가 울렸다. 염동진이 수화기를 들고 불펜을 둘러보다가 윤석에게서 눈을 멈추었다.

“윤섭이, 아니 윤석이. 몸 다 풀었지?”

“네.”

“감독님이 너 쓰래. 지는 경기 말고 이기는 경기에서 보시겠대.” 염동진이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사흘 연속은 아니니까 걱정 마. 오늘 하루다.”

불펜 문이 열렸다.

외야 잔디를 가로질러 마운드까지 가는 길은 생각보다 길었다. 잔디가 스파이크 밑에서 사각거렸다. 조명탑의 불빛이 머리 위에서 쏟아져서 그림자가 발밑에 여러 갈래로 갈라졌다. 그 위로 소리가 내려왔다. 만 이천 명의 소리는 하나가 아니었다. 응원가와 야유와 누군가 부르는 이름과 맥주 캔 따는 소리가 한꺼번에 섞여서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빠졌다. 전광판에 「61 채윤석」이 떴다. 전광판의 글자는 받침이 맞았다.

마운드 흙에 발이 닿았다.

단장실 창문에서 내려다보던 흙, 빈 구장 더그아웃 난간을 쥐고 내려다보던 흙이었다. 그때는 투수판의 하얀 고무가 햇빛에 반짝였는데, 지금은 조명 아래 하얗게 빛났다. 윤석은 오른발 스파이크를 투수판 앞에 대고 흙을 한 번 긁었다. 흙이 생각보다 단단했다. 강화의 흙보다, 광명의 흙보다, 오키나와의 흙보다. 서른다섯 해를 살고 처음 밟은 1군 마운드의 흙은 단단하고 서늘했다.

그는 송진 가루 주머니를 집어 손바닥에서 두 번 튕겼다. 가루가 조명 불빛 속으로 날아갔다. 손이 떨리지 않았다. 떨려야 할 것 같았는데 떨리지 않았다. 대신 오른팔 팔꿈치 안쪽, 흉터가 있던 자리가 따뜻했다.

문기호가 마운드에 올라와 미트로 입을 가렸다. “긴장했냐?”

“아니요.”

“거짓말. 다들 첫날엔 긴장해. 나도 첫날에 오줌 마려웠어.” 문기호가 미트로 윤석의 가슴을 툭 쳤다. “저쪽 대타 나온다. 은하가 원정 와서 대타 쓰는 거 보니 급하네.”

*

전주 은하의 대타는 왼손 타자였다. 대기 타석에서 방망이를 휘두르던 그는 타석에 들어가기 전에 3루 쪽 더그아웃으로 고개를 돌렸다. 더그아웃 끝에 앉아 있던 경호가 몸을 앞으로 빼고 그 타자에게 무언가를 말했다. 짧게, 입을 손으로 가리지도 않고. 타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윤석은 그 입 모양을 보았다. 다 읽을 수는 없었다. 다만 마지막 말은 읽혔다. 떨어져요.

체인지업이 있다는 것을 해무 밖에서 아는 사람은 강화 2군 구장에 있던 사람들뿐이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까지 강화에 있던 경호였다.

초구는 바깥쪽 직구였다. 타자가 지켜보았다. 스트라이크. 전광판에 148이 찍혔고, 관중석이 웅성거렸다. 두 번째 공은 슬라이더였다. 타자가 방망이를 냈다가 파울. 볼 없이 스트라이크 둘이었다.

문기호가 손가락 셋을 내렸다. 손목을 흔들었다. 그리고 무릎을 꿇었다. 왼 무릎부터.

윤석은 타자를 보았다. 타자의 앞발이 아까보다 홈플레이트 쪽으로 반 발쯤 나와 있었다. 방망이를 쥔 손이 어깨에서 조금 내려와 있었다. 떨어지는 공을 기다리는 자세였다. 지난 생에 2군 불펜에서 열다섯 해 동안 남의 공을 받아 주며, 남의 타석을 지켜보며 본 자세였다. 떨어진다는 말을 들은 타자는 몸이 먼저 내려가 기다렸다.

윤석은 고개를 저었다. 문기호가 다시 사인을 냈다. 손가락 하나. 윤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와인드업. 오키나와 첫 불펜에서 몸이 기억해 낸 순서 그대로였다.

공이 손끝을 떠날 때 실밥이 검지와 중지를 날카롭게 긁었다. 오키나와 첫 불펜의 그 감각이었다. 공은 떨어지지 않았다. 타자가 기다리던 자리보다 공 두 개쯤 위로, 몸쪽 높게 파고들었다. 타자의 방망이가 늦게 나왔다. 떨어지는 공 밑을 받치려던 방망이가 떠오르는 공 아래를 허공으로 지나갔다.

미트가 터졌다. 만 이천 명의 소리 속에서도 그 소리는 들렸다.

삼진.

전광판에 151이 떴다. 관중석이 한꺼번에 일어났다. 발 구르는 진동이 마운드 흙까지 내려왔다. 다음 타자는 초구 직구를 쳐서 유격수 앞으로 굴렸고, 2루에서 주자가 잡혔다. 이닝이 끝났다. 공 다섯 개였다.

윤석은 3루 쪽 더그아웃을 보았다. 경호는 일어서 있었다. 대타에게 귀띔을 한 그 자리에서. 경호의 얼굴에 무엇이 있는지는 거리가 멀어서 보이지 않았다. 경호는 한참 서 있다가 앉았다.

*

마운드에서 내려와 1루 쪽 더그아웃으로 걸어가는 길에 포수 뒤 그물이 있었다. 그물 바로 뒤, 가장 비싼 테이블석 맨 앞줄에 등산 조끼가 앉아 있었다. 까만 머리에 귀밑 흰머리 몇 가닥. 손에 캔커피를 들고 있었다.

“윤석아.”

오상필이 그물에 얼굴을 바짝 대고 불렀다. 만 이천 명이 떠드는 소리 속에서 그 목소리는 이상하게 또렷했다. 윤석은 걸음을 멈추었다. 그물 한 겹을 사이에 두고 둘은 한 뼘 거리에 있었다.

“첫 등판 축하한다. 151. 형이 다 봤다.”

“여기 왜 계세요?”

“야구 보러 왔지. 표 샀어.” 오상필이 캔커피를 들어 보였다. “근데 아까 그 대타 말이야. 전주 애가 네 공 불러 주더라. 떨어진다고. 너도 봤지? 걔 오늘 아침까지 네 동기였잖아.”

“경호한테 손대지 마세요.”

“나는 아무한테도 손 안 댄다. 밥만 사지.” 오상필이 웃었다. 그 웃음은 오키나와 로비에서 귤을 나눠 주던 웃음과 같았다. “근데 윤석아, 너 하나 착각하는 게 있다. 형이 인천 해무만 다니는 사람인 줄 알지? 전주도 가고, 대전도 가고, 광명도 간다. 트레이드 된 애들이 제일 외롭거든. 새 동네에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윤석의 손이 그물을 쥐었다. 철망이 손가락 마디를 파고들었다. 1루 쪽 더그아웃에서 문기호가 “윤섭아, 들어와!” 하고 불렀다.

“가 봐. 1군 선수가 관중이랑 얘기하면 기자들이 좋아한다.” 오상필이 그물에서 얼굴을 뗐다. “그리고 네 포수한테 안부 전해라. 요즘 전화를 안 받네.”

*

경기는 5대 3으로 끝났다. 윤석은 홀드를 하나 받았다. 1군에 올라와 처음 받은 기록이었다. 라커룸에서 문기호가 그의 유니폼 등을 사진 찍으려고 휴대전화를 들이댔다. 「채윤섭」은 칠 회 내내 텔레비전에 나왔다고 했다. 장비 담당은 라커룸 구석에서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라커 앞에 앉아 슬라이드폰을 열자 부재중 전화가 하나 떠 있었다. 아홉 시 십이 분. 윤석이 마운드에 서 있던 시각이었다. 「결이」.

윤석은 바로 다시 걸었다. 신호가 두 번 가고 예솔이 받았다. 뒤에서 2군 숙소 휴게실 텔레비전 소리가 났다.

“봤어.” 예솔이 말했다. 인사도 없이. “마지막 공. 그 1군 포수가 체인지업 사인 내고 왼 무릎부터 꿇더라. 타자가 그거 다 봤을 겨. 니가 고개 저은 거, 그거 때문이지?”

“응.”

“거 봐. 내 거라니께. 아무한테나 주면 안 된다고.” 예솔이 잠깐 말을 멈추었다. 텔레비전 소리가 작아졌다. 예솔이 휴게실에서 복도로 나가는 소리였다. “근디 윤석아.”

“어.”

“상필이 형한테 오늘 또 문자 왔어. 아부지 가게 이달 말이라고. 형이 아는 데가 이제 전주에도 있다고.”

“결아, 그거…….”

“안 받았어. 아직.” 예솔이 말했다. “아직이여. 니가 1군 갔으니께, 이제 나도 니한테 먼저 말한 거여. 니가 하라던 거.”

전화가 끊긴 뒤에도 윤석은 한참 휴대전화를 쥐고 있었다. 라커 맨 위 칸의 공이 형광등 불빛에 하얗게 보였다. 「마흔 개」의 번진 글씨 가장자리가 그 불빛에 조금 더 진해 보였다.

휴대전화가 다시 짧게 떨었다. 문자였다. 모르는 번호였다.

「1군 첫 등판 축하합니다, 채윤석 선수. 오상필 씨는 우리 쪽 사람 중 하나일 뿐입니다. 리그는 생각보다 넓습니다. 조만간 인사드리겠습니다.」

윤석은 그 문자를 오래 보았다. 서른다섯 해의 기억 어디에도 이 번호는 없었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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