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122자)

단장은 숫자로 말한다

방출 통보 받은 날, 스무 살 신인으로 돌아갔다 · 정이한

해무 파크 정문 경비실의 아저씨는 윤석을 위아래로 훑더니 손가락으로 왼쪽을 가리켰다.

“배달은 저쪽 화물 입구로 가요.”

“배달 아니에요. 선수예요.”

“선수?” 아저씨가 다시 훑었다. 츄리닝 바지에 운동화, 등에 멘 낡은 가방. 아저씨의 눈에 그건 배달원의 차림이었다. “이름이?”

“육성 십일 번 채윤석입니다. 단장님이 부르셨어요.”

아저씨가 출입 명단을 손가락으로 짚어 내려가다가 한 줄에서 멈추었다. 그러고는 미안한 기색 없이 출입증을 내밀었다. “사무동 5층. 엘리베이터 왼쪽.”

강화에서 인천까지는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한 시간 반이 걸렸다. 해무 파크는 인천 바닷가 매립지에 서 있었다. 만 이천 석짜리 구장이었고, 바깥에서 보면 흰 철골 지붕이 갈매기 날개처럼 양쪽으로 뻗어 있었다. 지난 생에 윤석이 이 건물에 들어온 것은 한 번뿐이었다. 2015년 가을, 첫 방출 서류에 도장을 찍으러 사무동 3층 인사팀에 왔을 때였다. 그날 그는 구장 쪽으로 난 복도 창문을 한 번도 보지 않았다. 보면 무너질 것 같았다.

*

단장실은 5층 복도 끝에 있었다. 문을 열자 커피 냄새가 먼저 났고, 그다음에 종이 냄새가 났다. 책상 위에도 소파 탁자 위에도 서류가 탑처럼 쌓여 있었다. 창문 하나가 구장 쪽으로 나 있어서 단장 의자에 앉으면 그라운드가 통째로 내려다보였다.

권상규는 마흔여덟이었다. 금테 안경에 넥타이를 반쯤 풀었고, 윤석이 들어가자 의자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육성선수에게 고개를 숙이는 단장이었다.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앉으세요. 커피 드시겠습니까?”

“아, 네. 아니요. 괜찮습니다.”

“드세요. 저 혼자 마시면 이상하니까요.” 권상규가 종이컵에 커피를 따라 내밀었다. 그리고 책상에서 서류 두 장을 집어 소파 탁자 위에 나란히 놓았다. “이쪽은 마정구 감독님 보고서입니다. 이쪽은 트레이너 구봉수 씨 기록이고요.”

마정구의 보고서에는 굵은 글씨로 「지시 불이행」 「태도 불량」이 적혀 있었다. 구봉수의 기록에는 숫자만 있었다. 등판 날짜, 이닝, 투구 수, 최고 구속, 삼진. 패전조 여섯 번 등판, 여덟 이닝 무실점, 삼진 열하나.

“두 장이 같은 선수 얘기라는 게 재미있어서 불렀습니다.” 권상규가 안경을 밀어 올렸다. “하나 여쭙겠습니다. 왜 이닝을 안 던지십니까? 감독님이 던지라고 하실 때.”

“투구 수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관리요.”

“한 경기 백 개 넘기지 않고, 연투는 이틀까지. 사흘째는 안 던집니다. 그리고 공 하나하나가 회전을 얼마나 먹는지, 같은 직구라도 회전수가 많으면 타자 눈에는 떠오르는 것처럼 보이고…….”

“잠깐만요.” 권상규가 손을 들었다. “회전수요? 공이 날아가면서 몇 번 도는지를 누가 셉니까?”

“언젠가는 다 셉니다. 구장마다 기계를 달아서.”

권상규는 웃지 않았다. 그는 볼펜을 집어 메모지에 무언가를 적었다. 회전수, 라고 적는 것을 윤석은 거꾸로 읽었다. 단장의 볼펜은 투수코치의 볼펜과 달리 모자 챙이 아니라 셔츠 주머니에 꽂혀 있었다.

“재미있는 분이시네요. 그럼 본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권상규가 메모지를 뒤집어 놓았다. “지금 1군 불펜이 비었습니다. 강현태 선수가 2군에 내려가 있고, 마무리 자리를 메운 선수들이 지난주에 세 번 역전을 당했습니다. 6월 전에 불펜 투수 하나를 올려야 합니다.”

윤석은 종이컵을 내려놓았다. 손에 땀이 났다.

“다만.” 권상규가 마정구의 보고서를 손가락으로 톡 쳤다. “2군 감독 말을 안 듣는 선수는 1군 감독 말도 안 듣습니다. 저는 그런 선수를 올린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마 감독님이 다음 주에 시험을 해 보시겠답니다. 화, 수, 목. 사흘 연속 등판. 그걸 버티시면 올리겠습니다.”

“사흘째는 안 던진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압니다. 그래서 시험입니다.”

*

권상규는 그 말을 하고 다른 서류 한 장을 꺼내 보다가, 윤석이 보는 앞에서 그 종이를 뒤집어 놓았다. 뒤집기 전에 맨 위 줄이 잠깐 보였다. 「서경호」.

“경호는요?” 윤석이 물었다.

“서경호 선수는 다른 쪽으로 쓰일 겁니다.”

“다른 쪽이 어디요?”

권상규가 안경을 벗어 넥타이 끝으로 닦았다. 그러고는 다시 썼다. 숨기지 않기로 한 얼굴이었다.

“카드입니다. 1군에서 바로 던질 수 있는 불펜 투수를 다른 구단에서 받아 오려면 내줄 게 있어야 하는데, 1라운드 1순위 신인만 한 카드가 없습니다. 아직 아무 데서도 안 던졌으니까 값이 그대로입니다.”

“경호는 1군에서 오래 던질 투수예요. 여덟 해는 던져요.”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그냥 압니다.”

“그냥 아시는 건 숫자가 아닙니다.” 권상규가 말했다. 목소리는 처음과 똑같이 정중했다. “그럼 이렇게 여쭙겠습니다. 채윤석 선수가 서경호 선수 대신 카드가 되시겠습니까? 육성선수는 카드가 안 됩니다. 아무도 안 받아요.”

윤석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가 1군에 오르면 경호가 팔린다. 그가 안 오르면 다른 불펜 투수가 오르고, 경호는 그래도 팔릴 수 있었다. 어느 쪽이든 경호의 자리는 단장의 서류 맨 위 줄에 있었다. 지난 생에는 그 줄이 없었다. 지난 생에는 윤석의 팔이 먼저 나갔고, 단장은 다른 카드를 찾을 필요 없이 경호를 1군에 올렸다.

윤석은 무언가를 내밀어야 했다. 단장이 숫자로 듣는 무언가를.

“단장님, 1군 불펜 투수 하나 받아 오셔도 마무리 자리는 안 메워집니다.”

“왜요?”

“강현태 선배 어깨, 피로가 아닙니다. 회전근 쪽이에요. 어깨 안쪽에서 팔을 돌려 주는 힘줄이요. 공 던지고 나서 오른쪽 어깨만 돌리다가 중간에 멈추는 버릇이 있어요. 아픈 데를 피해서 돌리는 거예요. 6월에 1군 복귀하셔도 7월에 다시 내려오실 겁니다.”

권상규가 볼펜을 다시 집었다. 이번에는 메모지를 뒤집지 않고 그대로 적었다. 적는 손이 빨랐다.

“알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가 말했다. “메디컬 쪽에 한 번 더 찍어 보라고 하겠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윤석은 자기가 무엇을 내놓았는지 알았다. 경호를 지키려고 강현태를 팔았다. 강현태의 어깨는 강현태가 목숨처럼 숨기던 것이었고, 오늘 단장의 메모지에 올랐다. 그 메모지에서 무엇이 시작될지 윤석은 몰랐다.

그리고 하나가 더 있었다. 오상필. 주차장의 검은 승합차와 조수석의 강현태, 예솔에게 내밀던 두꺼운 봉투. 그 이야기를 지금 이 자리에서 하면 단장은 그것도 메모지에 적을 것이다. 그러면 구단은 조사를 할 것이고, 조사는 봉투를 받을 뻔한 육성 포수부터 부를 것이다. 아버지 가게가 넘어가기 직전인 포수부터.

윤석은 입을 다물었다. 오키나와 고깃집에서처럼 말이 먼저 나가지 않았다. 이번에는 말을 삼켰다. 삼키는 것이 옳은지는 알 수 없었다. 열두 해 전에도 그는 삼켰다.

“더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권상규가 물었다.

“없습니다.”

“그럼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버티시면요.”

*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안에서 투수코치 염동진이 나왔다. 모자 챙에는 여전히 볼펜이 꽂혀 있었다. 그는 윤석을 보고 두 걸음을 지나쳤다가 뒤로 돌아왔다.

“너, 마흔 개.”

“채윤석입니다.”

“알아. 오키나와 열 번째.” 염동진이 단장실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단장님이 너 숫자 갖고 오라고 해서 나도 불려 왔다. 패전조 여덟 이닝 무실점이라며. 그 숫자 들고 1군 감독님한테 갔더니 뭐라신 줄 아냐?”

“모르겠습니다.”

“지는 경기 숫자는 숫자가 아니래.” 염동진이 볼펜을 뽑아 손가락 사이에서 한 번 돌렸다. “이기는 경기에서 던져 보래. 사흘 연속으로. 감독님들은 다 똑같아. 1군이나 2군이나.”

“코치님 생각은요?”

“내 생각?” 염동진이 볼펜을 다시 모자에 꽂았다. “나는 오키나와에서 너한테 백 개 던지라고 한 사람이다. 내 생각 물어볼 거면 다른 코치한테 가.”

그는 그 말을 남기고 단장실 쪽으로 걸어갔다. 엘리베이터 문은 그사이 닫혀 버렸다. 윤석은 버튼을 다시 누르려다 말고 복도 끝 비상구 표시를 보았다. 계단으로 내려가면 1층에서 구장 안으로 이어지는 문이 있다는 것을 그는 지난 생에 들어서 알았다. 들어서만 알았다. 그는 계단으로 내려갔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문을 열자 짧은 통로가 나왔고, 통로 끝에 1루 쪽 홈 더그아웃이 있었다. 낮 세 시, 경기가 없는 날이었다. 더그아웃 계단을 올라서자 만 이천 석이 한꺼번에 눈에 들어왔다.

빈 구장은 소리가 없었다. 아니, 소리가 있었다. 외야에서 잔디 깎는 기계가 낮게 돌았고, 갈매기 몇 마리가 지붕 철골에 앉아 울었고, 바닷바람이 관중석 의자 사이를 지나가며 플라스틱을 아주 작게 떨게 했다. 갓 깎은 잔디 냄새에 바다 냄새가 섞였다. 강화의 갯벌 냄새보다 맑고, 오키나와 바람보다 무거웠다.

마운드는 더그아웃에서 생각보다 가까웠다. 그는 더그아웃 난간에 두 손을 얹고 그 흙더미를 내려다보았다. 투수판의 하얀 고무가 오후 햇빛에 반짝였다. 서른다섯 해 동안 이 자리에서 저 흙을 본 적이 없었다. 2군과 독립구단을 열다섯 해 돌면서, 라디오와 텔레비전으로만 이 마운드를 보았다. 텔레비전 속 마운드는 늘 더 멀었다.

난간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손가락 마디가 하얘졌다. 그는 그 손을 펴지 않았다.

“어이! 거기 누구야!”

외야에서 잔디 깎던 아저씨가 기계를 세우고 소리쳤다. “선수 아니면 나가요! 더그아웃 들어오면 안 돼!”

“선수예요!”

“선수가 왜 츄리닝이야!”

윤석은 난간에서 손을 떼고 모자를 벗어 아저씨 쪽으로 꾸벅 인사했다. 오늘 이 구장에서 그를 선수라고 믿어 준 사람은 출입 명단 하나뿐이었다. 그는 통로로 돌아 나가며 한 번 더 뒤를 보았다. 마운드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

강화에 도착한 것은 저녁 여덟 시였다. 숙소 현관 옆 게시판에 다음 주 일정표가 붙어 있었다. 2군 선수들이 일정표 앞에 모여 웅성거리다가, 윤석이 들어오자 길을 비켜 주었다. 그 비켜 주는 모양이 이상하게 조심스러웠다.

일정표 맨 아래 칸에 마정구의 글씨로 한 줄이 따로 적혀 있었다.

「불펜 대기 — 화·수·목 채윤석」

그 옆에 누군가 볼펜으로 작게 낙서를 해 놓았다. 「할배 화이팅」. 이번에는 거꾸로가 아니었다. 글씨체가 반듯했다.

윤석은 그 글씨를 오래 보았다. 그 반듯한 글씨를 그는 매직으로 쓴 공에서 처음 보았다.

계단 위에서 마정구가 보온병을 들고 내려오다가 그를 보았다.

“왔냐? 단장님이 다 말씀하셨지?” 마정구가 말했다. “화요일은 강화 홈이다. 내 구장. 체인지업은 여전히 안 된다.”

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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