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132자)

검지 한 마디

방출 통보 받은 날, 스무 살 신인으로 돌아갔다 · 정이한

검지 끝마디에는 굳은살이 없었다. 직구를 던질 때 실밥을 긁는 자리는 검지와 중지의 첫 마디 안쪽인데, 체인지업을 쥘 때 공에 닿는 자리는 검지의 둘째 마디 옆면이었다. 그 자리는 아직 살이 연했다. 윤석은 숙소 침대에 앉아 공을 쥐었다 풀었다 하며 검지를 실밥 위에서 한 마디씩 옮겨 보았다.

엄지와 검지로 만드는 동그라미를 조금 크게 하면 공이 손바닥에서 더 늦게 빠지고 더 많이 떨어졌다. 동그라미를 작게 하고 검지를 한 마디 위로 올리면 덜 떨어지는 대신 옆으로 조금 휘었다. 오키나와와 강화에서 던진 체인지업은 홈플레이트 앞에서 너무 일찍 떨어졌다. 동그라미가 컸다. 서른 살의 손에 맞춘 동그라미였다. 스무 살의 손가락은 서른 살 때보다 한 마디쯤 짧았다.

“또 공 만지냐?” 예솔이 이불 속에서 물었다. 패전조로 밀린 지 세 주째였다. 그 세 주 동안 윤석은 네 번 나갔고, 네 번 다 지고 있는 경기의 칠 회나 팔 회에 올라가 한 이닝씩을 막았다. 예솔은 그중 두 번만 공을 받았다. 패전조에는 패전조 포수가 따로 붙었다.

“검지를 한 마디 올려 봤어.”

“한 마디 올리면 뭐가 되는디?”

“덜 떨어지고 옆으로 가.”

“그러니께 그걸 감독이 던지지 말라고 했잖여.”

“감독님은 감독님 구장에서 던지지 말라고 하셨어.”

예솔이 이불을 젖히고 윤석을 보았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얼굴이었다. 내일은 광명 원정이었다.

*

광명 북두의 2군 구장은 공장 지대 뒤에 있었다. 외야 너머로 굴뚝 두 개가 서 있었고, 바람이 그쪽에서 불면 구장 전체에 쇠 깎는 냄새가 났다. 관중석에는 강화보다 사람이 적었다. 매점 아주머니가 라디오를 켜 놓고 오징어를 굽고 있어서, 쇠 냄새와 오징어 냄새가 번갈아 들어왔다.

팔 회 말, 해무는 1대 6으로 지고 있었다. 마운드의 2군 형이 연속 볼넷을 내주고 안타를 맞아 원 아웃 만루가 되었다. 마정구가 불펜에 전화를 걸었다. 패전조의 차례였다.

윤석이 불펜에서 뛰어나오는데 더그아웃에서 예솔이 포수 장비를 챙겨 들고 따라 나왔다. 패전조 포수가 칠 회에 파울 타구에 손가락을 맞아 빠졌다. 오늘 예솔이 그 자리에 들어갔다.

마운드에서 예솔이 미트로 입을 가리고 말했다. “니 지금 그거 던질 거지?”

“너 사인 내.”

“나 혼나는 거 알지?”

“혼나면 같이 혼나.”

“그 말 오키나와에서도 들은 것 같은디. 그때 나만 짐 쌌어.”

예솔이 홈플레이트로 돌아가 앉았다. 타자는 광명 북두의 4번 타자였다. 2군에서 홈런을 가장 많이 친다는 덩치였고, 방망이를 휘두를 때마다 바람 소리가 났다. 초구 직구는 바깥쪽으로 빠져 볼. 두 번째 직구는 파울. 세 번째 공은 슬라이더였는데 타자가 참았다. 볼 둘, 스트라이크 하나.

예솔이 손가락 셋을 내렸다. 손목을 흔들었다. 이번에도 오른 무릎이 먼저 내려갔다.

윤석은 글러브 안에서 공을 굴려 엄지와 검지로 작은 동그라미를 만들고, 검지를 실밥 위로 한 마디 올렸다. 손가락 끝에서 실밥의 굴곡이 하나하나 느껴졌다. 팔은 직구와 똑같이 휘둘렀다. 공은 손바닥에서 늦게 빠졌다.

타자의 방망이가 직구 타이밍에 나왔다. 공은 홈플레이트 바로 앞에서 무릎 쪽으로 가라앉으며 바깥으로 반 뼘쯤 휘었다. 방망이가 공 위를 지나갔다. 바람 소리만 크게 났다.

스트라이크 둘. 예솔은 같은 사인을 한 번 더 냈다. 이번에는 타자가 방망이를 참으려다 끝을 살짝 대고 말았고, 힘없이 굴러간 공을 윤석이 직접 잡아 홈으로 던졌다. 예솔이 홈을 밟고 1루로 던졌다. 병살이었다. 이닝이 끝났다.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는데 마정구가 벤치 끝에서 일어서 있었다. 패딩은 벗었는데 얼굴은 여전히 겨울이었다.

“그 공, 뭐였냐?”

“체인지업이요. 강화에서 보여 드린 그 공입니다.”

“내가 던지지 말랬지.”

“감독님 구장에서는 안 던졌습니다.” 윤석이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였다. “여기는 광명입니다.”

더그아웃 어딘가에서 누군가 숨을 꾹 참는 소리가 났다. 2군 형 하나가 수건으로 얼굴을 덮었다. 덮은 수건이 들썩였다. 마정구는 한참 윤석을 노려보다가 고개를 돌려 예솔을 보았다.

“포수, 너도 광명이라서 사인 냈냐?”

“예. 아, 아니요. 그게…….”

“둘 다 강화 가서 보자.”

그날 해무는 1대 6으로 졌다. 패전조가 진 경기를 뒤집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돌아가는 버스에서 2군 형 하나가 윤석의 옆자리에 와서 앉더니 자기 손을 내밀었다.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이면서.

“할배, 그거 이렇게 쥐는 거 맞냐? 나도 좀 가르쳐 줘라. 대신 감독님 구장 말고 광명에서.”

*

버스가 강화 2군 구장에 도착한 것은 밤 열한 시가 넘어서였다. 선수들이 짐을 들고 숙소로 흩어지는데 예솔은 숙소 쪽이 아니라 주차장 쪽으로 걸어갔다. 휴대전화를 귀에 대고 있었다. 윤석은 짐 가방을 숙소 계단에 내려놓고 그 뒤를 따랐다.

주차장 끝 가로등 밑에 검은 승합차가 서 있었다. 오키나와에서 신인들을 태웠던 차와 같은 차종이었다. 운전석 창문이 내려가 있었고, 오상필이 팔꿈치를 창틀에 걸치고 있었다. 조수석에 앉은 사람의 얼굴이 가로등 불빛에 반쯤 보였다. 오른 어깨를 조금 내린 채 앉아 있었다. 강현태였다.

예솔이 운전석 창문 앞에 섰다. 오상필이 하얀 봉투 하나를 꺼내 창문 밖으로 내밀었다. 오키나와 골목에서 본 봉투보다 두꺼웠다.

“아버님 가게 이달 말이라며. 이건 그냥 넣어 둬. 갚는 건 천천히, 니 형편 될 때.”

예솔의 손이 봉투 쪽으로 올라갔다. 윤석이 뒤에서 그 손목을 잡았다.

예솔이 놀라 돌아보았다. 윤석은 예솔의 손목을 놓지 않은 채 다른 손으로 오상필의 손에서 봉투를 빼냈다. 그리고 봉투를 운전석 창문 안으로, 오상필의 무릎 위에 도로 떨어뜨렸다.

“또 너냐?” 오상필이 무릎 위의 봉투를 내려다보았다. 화가 난 목소리가 아니었다. 재미있어하는 목소리였다. “너는 매번 남의 돈을 던지는구나. 오키나와에서는 바닥에, 여기서는 내 무릎에.”

“결이한테 그거 주지 마세요.”

“주지 말라고?” 오상필이 봉투를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그럼 네가 줄래? 결이 아버지 가게, 이달 말까지 석 달 치. 네가 갚아 주면 나는 손 뗀다. 오늘 이 자리에서 약속하마.”

윤석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육성선수의 월급은 숙소비와 밥값을 빼면 남는 것이 거의 없었다. 2011년의 윤석에게는 통장도 거의 비어 있었다. 열다섯 해 뒤의 윤석에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못 하지?” 오상필이 웃었다. “그러면 너는 결이 아버지 가게가 넘어가는 걸 보겠다는 거다. 깨끗하게. 나는 적어도 도와주겠다는 거고.”

조수석에서 강현태가 웃음을 터뜨렸다. 어깨를 움찔하며 웃었다. “상필이 형, 쟤 원래 저래. 오키나와에서부터. 남 어깨 걱정하고 남 포수 걱정하고. 정작 자기는 패전조야.”

“현태야, 조용히 해.” 오상필이 손을 들어 강현태를 막았다. 강현태는 그 손짓 하나에 웃음을 멈추었다. 1군 마무리가 브로커의 손짓에 입을 다무는 것을 윤석은 똑똑히 보았다.

오상필이 다시 윤석을 보았다. “윤석아, 하나만 묻자. 넌 왜 나를 처음부터 알았던 사람처럼 대하냐? 결이도 현태도 나를 형이라고 부르는데 너만 나를 경찰 보듯 본다.”

“아는 사람 같아서요.”

“누구?”

윤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열두 해 뒤, 하얀 운동화 앞코에 캔커피를 흘린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오상필이 시동을 걸었다. 창문을 올리기 전에 그는 예솔을 보며 말했다.

“결아, 번호 바뀐 거 아니지? 형한테 연락해. 네 친구 말고 너한테 물어보는 거다.”

승합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미등의 빨간 불빛이 구장 철문을 지나 갯벌 쪽 도로로 사라질 때까지, 예솔은 윤석의 손에 잡힌 손목을 빼지 않았다. 그러다 한 번에 거칠게 뺐다.

“니가 갚아 줄 겨?”

“결아.”

“니가 우리 아부지 가게 살려 줄 거냐고. 못 하잖여. 못 하면 빠져.” 예솔의 목소리가 주차장에 울렸다. “니는 맨날 막기만 혀. 막고 나서 그다음은 없어. 오키나와에서도 그랬고 지금도 그려. 막는 건 너고 짐 싸는 건 나여.”

“그 돈 받으면 너 끝나.”

“안 받으면 우리 아부지가 끝나!”

예솔이 숙소 쪽으로 걸어갔다. 윤석은 주차장 가로등 밑에 혼자 남았다. 아스팔트 위에 승합차가 서 있던 자리만 조금 덜 젖어 있었다. 바닷바람에 그 마른 자리도 금세 젖어 들었다.

*

방에 돌아가니 예솔은 이미 불을 끄고 누워 있었다. 그런데 두 침대 사이에 못 보던 것이 서 있었다. 공 상자였다. 2군 창고에서 빈 공 상자를 네 개 가져와 두 개씩 쌓아서, 침대와 침대 사이에 허리 높이의 벽을 세워 놓았다. 상자 옆면에는 「연습구 120개」라는 글씨가 찍혀 있었다.

“이거 뭐야?”

“벽.” 상자 너머에서 예솔이 말했다. “구봉수 형한테 방 바꿔 달라고 했는디 빈방이 없댜. 그래서 벽.”

“이거 공 상자잖아.”

“그려. 니가 공 좋아하니께 공 상자로 했어.”

윤석은 불 꺼진 방에서 그 벽을 한참 보았다. 허리 높이라서 누우면 서로 얼굴이 안 보이고, 앉으면 다 보였다. 예솔이 일부러 그 높이로 쌓았는지 상자가 넷밖에 없어서 그렇게 됐는지는 알 수 없었다. 윤석은 침대에 누웠다. 상자 너머에서 예솔의 숨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코를 골지 않았다. 잠든 척하는 사람의 숨소리였다.

“결아.”

대답이 없었다.

“지난번에 너 내 무릎 버릇 어떻게 아냐고 물었지.”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윤석은 천장을 보며 말을 고르다가, 고른 말을 전부 도로 넣었다. 열다섯 해 뒤의 대리운전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예솔은 그를 미친놈으로 볼 것이다. 미친놈의 말은 아무도 듣지 않는다.

“잘 자라.”

상자 너머에서 이불이 한 번 부스럭거렸다. 그게 대답이었다.

*

다음 날 아침 불펜에 나가자 마정구가 보온병을 든 채로 철망 앞에 서 있었다. 그 옆에 예솔이 서 있었다. 예솔은 윤석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포수가 너랑 배터리 풀어 달란다.” 마정구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어젯밤의 체인지업보다 이쪽이 더 재미있다는 얼굴이었다. “앞으로 서경호 공 받겠단다. 네 공은 다른 포수가 받고.”

윤석은 예솔을 보았다. 예솔은 미트를 낀 왼손으로 오른손을 쥐고 있었다. 어젯밤 윤석이 잡았던 그 손목이었다.

“결아.”

“감독님한테 말씀드린 거여. 너한테 말한 거 아녀.”

마정구가 보온병 뚜껑을 닫았다. 뚜껑을 돌리는 소리가 길게 났다.

“좋아. 그렇게 하자. 그리고 채윤석, 다음 주에 단장님이 인천으로 부르신다. 혼자 오래.”

6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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