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226자)

일곱 이닝의 날

방출 통보 받은 날, 스무 살 신인으로 돌아갔다 · 정이한

2군 개막전 관중은 여든일곱 명이었다. 구봉수가 일 회 초가 시작되기 전에 내야 관중석을 손가락으로 세어서 알려 주었다. 그중 서른 명쯤은 선수 가족이었고, 스무 명쯤은 근처 군부대에서 외출 나온 군인들이었고, 나머지는 강화 읍내 어르신들이었다. 1루 쪽 맨 앞줄에는 꽃무늬 조끼를 입은 할머니 한 분이 확성기를 무릎에 올려놓고 앉아 있었다.

“저 할머니 매년 개막전 오셔.” 구봉수가 말했다. “이름 하나 정해서 경기 내내 부르셔. 작년엔 포수 형이었는데 그 형 잘렸어.”

“올해는 누구요?”

“그건 할머니 마음이지.”

구봉수가 그 말을 하고는 장내 방송실로 뛰어 올라갔다. 장내 아나운서를 맡던 직원이 독감에 걸려서, 오늘은 막내 트레이너가 방송까지 하게 되었다. 잠시 뒤 스피커에서 구봉수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인천 해무 2군 개막전에 와 주신 여든일곱 분, 아니 여든여덟 분, 방금 한 분 더 오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윤석은 불펜에서 몸을 풀다가 웃었다. 열다섯 해 뒤 구봉수는 창고 방에서 인사팀 종이를 읽게 되는데, 지금은 확성기보다 큰 목소리로 관중 수를 세고 있었다.

2011년 4월 5일 화요일. 상대는 대전 청솔 2군이었다. 선발은 육성 십일 번 채윤석.

지난 생에도 이날 선발은 윤석이었다. 그는 그날 일곱 이닝을 던졌다. 백십팔 개였다. 마정구가 육 회가 끝나고 “한 이닝만 더” 했고, 칠 회가 끝나고 “잘했다” 했다. 그날 윤석은 2군 첫 승을 따냈고, 숙소에 돌아와 오른팔에 얼음을 대고 예솔과 컵라면을 먹으며 1군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팔꿈치 안쪽이 그날 밤 처음으로 욱신거렸다. 오키나와에서 딸깍 소리가 난 뒤로 두 달 만이었다.

“어깨 다 풀렸어?” 예솔이 미트를 챙기며 물었다. 지난 주말 예솔은 오상필과 밥을 먹고 왔다. 윤석이 무슨 얘기를 했냐고 묻자 예솔은 밥만 먹었다고 했다. 그 뒤로 더 묻지 않았다. 물으면 또 싸울 것 같았다.

“풀렸어. 오늘 체인지업은 없어. 감독님이 보셔.”

“알어. 직구 슬라이더. 손가락 하나, 둘.”

*

일 회는 공 열한 개로 끝났다. 직구가 시속 145 안팎으로 들어갔고, 대전 청솔의 타자들은 방망이를 늦게 냈다. 세 번째 타자가 헛스윙 삼진을 당하고 돌아설 때 1루 쪽 맨 앞줄에서 확성기가 켜졌다.

“십일 버언! 십일 번 잘한다아!”

할머니가 올해의 이름을 정했다. 이름이 아니라 번호였다. 더그아웃의 2군 형들이 일제히 윤석을 보며 웃었다.

“할배가 할머니한테 찍혔네.”

“천생연분이다, 천생연분.”

윤석은 모자를 벗어 1루 쪽으로 살짝 숙였다. 할머니가 확성기에 대고 한 번 더 외쳤다. “잘생겼다아!” 그건 사실이 아니었지만 윤석은 고맙게 받기로 했다.

이 회와 삼 회도 빨리 지나갔다. 윤석은 공을 던지기 전에 투수판에서 발을 한 번 뗐다가 다시 댔다. 숨을 고르는 버릇이었다. 그사이 머릿속으로 숫자를 셌다. 서른한 개. 마흔다섯 개. 지난 생 이날 삼 회까지 몇 개를 던졌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그때는 세지 않았다. 세는 것을 겁쟁이나 하는 일로 알았다.

사 회에 안타 둘을 맞고 한 점을 주었다. 해무 타선이 사 회 말에 두 점을 내서 점수는 2대 1이 되었다. 오 회를 삼자 범퇴로 막고 더그아웃에 들어왔을 때, 투구 수는 예순여덟 개였다. 윤석은 글러브를 벤치에 내려놓고 구봉수가 방송실에서 내려와 건네준 얼음물을 마셨다.

“다음 이닝도 나가지?” 예솔이 물었다.

“아니.”

“니 지금 2대 1이여. 이기고 있다고. 한 이닝만 더 던지면 승리 투수 요건 채우고도 여유 있잖여.”

“오 회 채웠으니까 요건은 이미 됐어. 그리고 다음 이닝 나가면 일곱 회까지 나가게 돼.” 윤석은 얼음물 컵을 손안에서 돌렸다. “난 그게 어떻게 되는지 알아.”

*

마정구는 윤석이 다음 이닝 준비를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벤치 끝에서 패딩을 바스락거리며 걸어왔다. 4월이 되었는데도 그는 무릎까지 오는 패딩을 벗지 않았다.

“어이, 신인. 왜 앉아 있어? 육 회 나가.”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네가 정하냐?”

“예순여덟 개입니다. 첫 등판이고요. 다음 등판까지 닷새 쉬려면 오늘 여기서 끊는 게 맞습니다.”

마정구의 얼굴이 굳었다. 더그아웃이 조용해졌다. 2군 형들이 서로 눈치를 보았고, 예솔은 미트를 무릎에 올린 채 굳어 있었다. 구장 스피커에서 구봉수가 “육 회 초, 대전 청솔의 공격입니다” 하고 방송했다. 해무 수비수들이 그라운드로 뛰어나가는데 마운드만 비어 있었다.

마정구가 공 하나를 집어 들고 마운드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마운드 위에서 돌아서서, 더그아웃에 앉은 윤석을 손가락으로 불렀다.

윤석은 글러브를 끼고 마운드로 걸어 나갔다. 여든여덟 명의 관중이 무슨 일인가 하고 웅성거렸다. 마운드 위에서 마정구가 공을 윤석의 가슴팍에 대고 눌렀다.

“던져. 한 이닝만. 너 오늘 이기면 2군 개막 첫 승이 내 구장에서 육성 신인한테 나오는 거다. 그거 그림 좋잖아. 단장도 좋아하고.”

“감독님 그림이요.”

“그래, 내 그림이다. 감독 그림이 팀 그림이야.”

윤석은 공을 받지 않았다. 대신 자기 글러브 안에 들어 있던 공을 꺼내 마정구의 손에 쥐여 주었다. 마정구가 가슴팍에 대고 누르던 공 위에, 윤석의 공이 하나 더 얹혔다. 감독의 손에 공이 두 개가 되었다.

“감독님, 저는 오월에도 던지고 싶습니다. 유월에도요.” 윤석이 말했다. “오늘 칠 회까지 가면 오월에 못 던집니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알아요.”

마정구가 공 두 개를 쥔 채로 윤석을 노려보았다. 1루 쪽에서 확성기 소리가 났다. “십일 번 왜 그래애!” 관중석 어르신 몇이 웃었다.

마정구는 공을 쥔 손을 내리고 불펜 쪽을 향해 손짓했다.

“강현태 올려.”

*

강현태는 일주일 전 2군으로 내려왔다. 1군 개막 시리즈에서 두 번 등판해 두 번 다 안타를 맞았고, 구단은 어깨 피로라고 발표하고 2군 재활 등판을 지시했다. 오늘이 그 첫 재활 등판이었다. 그는 불펜에서 몸을 풀다가 갑자기 호출을 받았다. 원래는 칠 회에 한 이닝만 던지기로 되어 있었다.

마운드에 오른 강현태는 윤석과 엇갈리며 어깨를 부딪쳤다. 세게는 아니었다. 딱 지나가는 사람이 모를 만큼.

“육성이 감독을 마운드로 불러냈냐? 너 진짜 대단하다.”

“선배님, 몸 덜 풀리셨으면 천천히 하세요.”

“네 걱정이나 하라고 했지.”

강현태의 첫 공은 시속 138이었다. 1군 마무리의 공이 아니었다. 그는 공을 던지고 나서 어깨를 돌리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돌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어깨가 더그아웃에서도 보였다. 첫 타자에게 볼넷, 두 번째 타자에게 안타, 세 번째 타자에게 2루타. 순식간에 두 점이 들어왔다. 네 번째 타자가 친 공은 좌중간 펜스를 넘어갔다.

2대 5.

확성기도 조용해졌다. 더그아웃에서 누군가 벤치를 발로 찼다. 2군 형 하나가 윤석을 보지 않은 채로 말했다. “잘한다, 할배. 네가 내려오니까 저렇게 됐다.”

윤석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가 내려와서 강현태가 올라갔고, 강현태가 무너졌다. 그 순서는 사실이었다. 지난 생 이날 윤석은 칠 회까지 던져 이겼고, 강현태는 이날 2군에 없었다. 윤석이 하나를 바꾸자 그날의 다른 것이 같이 바뀌었다.

경기는 3대 6으로 끝났다.

*

경기가 끝나고 마정구는 더그아웃 앞에 선수들을 세웠다. 길게 말하지 않았다.

“채윤석. 선발 로테이션에서 뺀다. 다음 주부터 불펜. 지고 있을 때 나가는 데.” 마정구가 패딩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렇게 팔 아끼고 싶으면 아껴. 질 때만 던지면 팔 쓸 일도 별로 없을 거다.”

패전조. 지고 있는 경기의 남은 이닝을 메우는 자리였다. 지난 생에 윤석은 그 자리를 2군에서만 여섯 해 지켰다. 스물아홉부터 서른다섯까지.

“예.”

“네 자리는 서경호가 들어간다. 다음 주 화요일 선발.”

줄 끝에 서 있던 경호가 고개를 들었다. 경호는 오키나와 캠프를 끝까지 치르고 지난주에 2군으로 내려왔다. 1순위 신인을 2군에서 선발로 돌려 보라는 것이 구단의 뜻이라고 했다. 경호의 얼굴에는 기쁜 기색이 없었다. 기뻐해도 되는지 몰라서 표정을 정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선수들이 흩어진 뒤 경호가 윤석에게 다가왔다. 손에 얼음주머니 두 개를 들고 있었다.

“윤석 씨, 이거요. 대고, 빼고, 다시 대고.” 경호가 얼음주머니 하나를 내밀었다. “윤석 씨 방식이에요.”

“알아. 내가 가르쳤어.”

“그리고 저, 선발은 제가 달라고 한 거 아니에요.”

“알아.”

“그래도 미안해서요.”

윤석은 얼음주머니를 받아 팔꿈치에 댔다. 차가운 것이 살에 닿자 팔이 저절로 움찔했다. 지난 생에도 경호는 이렇게 미안해했다. 6월에 1군 콜업 소식을 듣고 재활군 숙소로 찾아와서, 보호대를 찬 윤석의 팔을 보고 울 것 같은 얼굴로 미안하다고 했다. 그때 윤석은 대답을 안 했다. 이번에는 했다.

“경호야, 너는 잘 던지면 돼. 미안해하는 데 힘 쓰지 말고.”

예솔이 옆에서 주먹을 쥐었다 폈다. 숙소로 걸어가는 동안 예솔은 한 마디만 했다.

“니가 맞는지 틀린지는 모르겄다. 근디 오늘 나는 니 공 다섯 이닝 받고, 형들한테는 니 편 들었다고 욕먹었어.”

“미안하다.”

“미안하다는 말 좀 그만혀. 그건 니가 한 말 중에 제일 재미없어.”

*

샤워실은 김이 자욱했다. 윤석은 맨 끝 칸에서 뜨거운 물을 오른 어깨에 맞히며 서 있었다. 팔꿈치 안쪽은 조용했다. 예순여덟 개를 던진 팔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확인하는 데 오 분쯤 걸렸다. 지난 생 이날 밤의 욱신거림이 오지 않았다.

옆 칸에서 물이 멈추었다. 강현태였다. 그는 수건을 목에 걸고 윤석의 칸 앞에 섰다. 김 너머로 오른 어깨에 붙인 커다란 파스 두 장이 보였다. 1군 마무리의 어깨에 붙은 파스는 2군 신인들의 파스보다 컸다.

“너 때문에 오늘 내 재활 일정 꼬였다.” 강현태가 말했다. “칠 회에 한 타자만 던지면 됐는데.”

“그 어깨로 칠 회에 던졌어도 똑같았을 거예요.”

강현태가 웃었다. 오늘 들은 강현태의 웃음 중 처음으로 진짜 웃음 같았다. 웃음 끝이 조금 지쳐 있었다.

“너 정말 웃긴다. 하나만 알려 줄까?” 그가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말했다. “상필이 형이 너 안부 묻더라. 강화에 눈빛 이상한 육성 하나 있지 않냐고. 잘 지내냐고.”

윤석은 물을 끄지 않았다. 뜨거운 물이 계속 어깨를 때렸는데, 등줄기로 찬 것이 흘러내렸다.

“선배님이 그분을 어떻게 아세요?”

“이 바닥에서 상필이 형 모르는 사람 있냐?” 강현태가 수건을 어깨에 걸치고 샤워실 문 쪽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서 그는 돌아보지 않고 덧붙였다. “형이 밥 한번 먹재. 너랑, 나랑, 네 포수랑.”

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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