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166자)

손가락 셋

방출 통보 받은 날, 스무 살 신인으로 돌아갔다 · 정이한

예솔은 미트에 핫팩을 넣고 잤다. 그래야 아침에 손을 넣을 때 가죽이 덜 딱딱했다. 3월 초 강화의 아침은 영하 2도였고, 2군 구장 불펜 뒤로 갯벌에서 올라온 바람이 짠 냄새를 싣고 지나갔다. 오키나와의 바람과는 냄새가 달랐다. 오키나와 바람은 맑게 짰고, 강화 바람은 진흙처럼 짰다.

윤석은 불펜 옆 잔디에 누워 고무 밴드를 발에 걸고 다리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오키나와에서 돌아온 뒤로 매일 아침 하는 체조였다. 2군 형들은 그걸 보고 윤석을 할배라고 불렀다. 체조 순서가 이상했다. 엉덩이를 먼저 풀고, 등을 풀고, 어깨는 맨 마지막에 아주 조금만 돌렸다. 다들 어깨부터 돌리는데.

“할배, 오늘도 엉덩이부터 허셔?” 예솔이 미트를 끼며 물었다.

“팔은 엉덩이로 던지는 거야.”

“그건 또 어디서 들었어?”

“유튜브.”

“유튜브에 그런 것도 나와?”

윤석이 밴드를 풀며 일어났다. 일어날 때 손이 허리로 갔다가, 허리에서 그냥 떨어졌다. 예솔은 오키나와 첫날 아침부터 그 손을 보았다. 받칠 것도 없는 허리를 받치려는 손이었다.

둘은 오키나와 마지막 날 이후로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강화로 돌아와 같은 방을 쓰게 되었고, 밥도 같이 먹었지만, 예솔은 아직 화가 덜 풀렸다. 1군 투수들 공을 받아 볼 두 주를 잃었다. 윤석이 혼자 죄를 뒤집어쓴 덕분이라는 것도 알았다. 덕분이라서 더 화가 났다. 고맙다고 해야 하는 일로 손해를 보면 화를 낼 데가 없었다.

*

“결아. 사인 하나 더 만들자.”

불펜 마운드에서 공을 손안에 굴리던 윤석이 말했다. 다른 투수들은 아직 실내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불펜에는 둘뿐이었다.

“무슨 사인? 너 직구하고 슬라이더밖에 없잖여.”

“하나 더 있어.”

윤석이 공을 쥔 손을 예솔 쪽으로 보여 주었다. 엄지와 검지 끝을 붙여 동그라미를 만들고, 나머지 세 손가락으로 공을 감싸 쥔 모양이었다. 공이 손바닥 깊숙이 박혀 있었다.

“체인지업.” 윤석이 말했다. “직구처럼 오다가 홈플레이트 앞에서 힘이 빠져서 떨어지는 공. 팔은 직구랑 똑같이 휘두르는데 공이 손바닥에서 나가니까 늦게 와. 타자는 직구 타이밍에 방망이를 내다가 헛친다.”

“그건 아는디. 니가 그걸 언제 배웠냐고.”

“꿈에서.”

예솔은 미트로 자기 이마를 한 번 쳤다. “그려, 꿈에서. 던져 봐, 꿈 투수.”

첫 공은 홈플레이트 앞 한 뼘에서 뚝 떨어져 흙에 박혔다가 튀어 올라 예솔의 무릎 보호대를 때렸다. 딱 소리가 났다. 예솔이 무릎을 잡고 옆으로 굴렀다.

“아, 이거 뭐여! 떨어진다며! 왜 나한테 떨어져!”

“너무 떨어졌네.”

“너무 떨어지는 건 말이 되고?”

두 번째 공은 덜 떨어졌고, 세 번째 공은 예솔의 미트 바로 아래로 쑥 꺼지듯 들어왔다. 예솔은 그 공을 받고 한참 미트를 들여다보았다. 공이 미트 안에서 늦게 멈추었다. 직구는 미트를 때리고, 이 공은 미트에 내려앉았다.

“이거 진짜여?” 예솔이 공을 꺼내 들고 물었다. “스무 살이 이걸 이렇게 던진다고?”

“사인은 이렇게 하자.” 윤석이 마운드에서 내려와 예솔 앞에 쪼그려 앉았다. “직구는 손가락 하나, 슬라이더는 둘. 체인지업은 셋 내리고 손목을 살짝 흔들어. 그리고 너 무릎 꿇을 때 왼쪽부터 꿇잖아. 체인지업 사인 낸 다음엔 오른쪽부터 꿇어.”

“왜?”

“너 체인지업 받을 때마다 왼 무릎이 먼저 내려가. 떨어지는 공 막으려고. 타자가 그거 보고 안다.”

예솔은 입을 다물었다. 자기도 모르는 버릇이었다. 그걸 윤석이 어떻게 아는지 몰랐다. 체인지업을 받은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윤석은 예솔이 체인지업을 백 번쯤 받아 본 사람처럼 말했다.

예솔은 한 가지를 더 알아챘다. 윤석은 사인을 설명하는 동안 예솔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예솔의 손을 보았다. 미트를 낀 왼손이 아니라 맨손인 오른손을. 무언가를 확인하는 눈이었는데, 무엇을 확인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

2군 감독 마정구는 아홉 시 반에 불펜에 나타났다. 쉰넷, 무릎까지 오는 검은 패딩에 보온병을 들었고, 걸을 때마다 패딩이 바스락거렸다. 2군 선수들은 그 소리가 들리면 하던 말을 멈추었다. 마정구는 불펜 철망 앞에 서서 보온병 뚜껑에 커피를 따라 한 모금 마셨다.

“던져.”

윤석이 직구를 던졌다. 미트가 울렸다. 구봉수가 스피드건을 보고 145를 불렀다. 마정구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윤석이 예솔의 손을 보았다. 예솔은 망설이다가 손가락 셋을 내리고 손목을 흔들었다. 그리고 오른 무릎부터 꿇었다.

체인지업이 홈플레이트 앞에서 떨어져 예솔의 미트에 내려앉았다.

마정구가 보온병 뚜껑을 내려놓았다. “방금 그거 뭐냐?”

“체인지업입니다.”

“누가 가르쳤어?”

“혼자 해 봤습니다.”

“하지 마.” 마정구가 철망 문을 열고 불펜 안으로 들어왔다. 패딩이 바스락거렸다. “신인이 무슨 잔재주야. 145 던지는 놈이 왜 공을 빼? 직구로 이겨. 직구로 못 이기는 놈이 변화구 섞기 시작하면 그다음 달에 집에 간다. 내가 이 바닥 서른 해다.”

“직구만 던지면 팔이 먼저 집에 갑니다.”

“뭐?”

“직구는 전력으로 던져야 직구예요. 전력으로 백 개 던지면 팔꿈치가 버티는 날보다 안 버티는 날이 먼저 와요. 체인지업은 팔을 덜 쓰고 타자를 잡는 공이고요.” 윤석은 말하다가 멈추지 않았다. 예솔은 철망 쪽에서 구봉수가 스피드건을 슬그머니 내리는 것을 보았다. “감독님 올해 재계약하시려면 2군 승수가 필요하시잖아요. 제 팔이 오월에 나가면 그 승수 못 채우세요.”

불펜이 조용해졌다. 갯벌 바람 소리만 났다.

마정구의 재계약은 2군 선수들 사이에 소문으로도 돌지 않던 이야기였다. 예솔도 처음 들었다. 마정구의 얼굴이 처음에는 하얗게, 그다음에는 빨갛게 변했다. 그는 보온병을 집어 들었다가 도로 내려놓았다.

“누가 그래?”

“그냥 짐작했습니다.”

“짐작.” 마정구가 그 말을 씹었다. “스무 살짜리 육성이 감독 재계약을 짐작해. 오키나와에서 연락 왔다. 마흔 개짜리 입만 산 놈이 하나 간다고. 강현태가 그러더라. 딱 그놈이네.”

그는 외야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운동장 스무 바퀴. 그리고 그 공은 내 구장에서 다시 던지지 마. 2군에서 던지라는 공만 던져.”

그 손가락이 예솔에게로 옮겨 왔다.

“포수도 같이 뛰어. 사인 같이 짰잖아.”

실내 연습장 창문에 2군 형들 얼굴이 줄줄이 붙어 있었다. 누군가 창문에 입김을 불고 손가락으로 「할배 화이팅」이라고 썼다. 글씨가 거꾸로였다. 안에서 쓴 글씨라 밖에서는 거꾸로 읽혔고, 예솔은 그걸 다 읽고 나서야 자기가 웃을 처지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했다.

*

강화 2군 구장의 외야 한 바퀴는 사백 미터쯤 되었다. 열 바퀴째부터 예솔은 숨 쉴 때마다 목구멍에서 쇠 냄새가 났다. 포수 보호대를 벗지 못하고 뛰라고 해서 무릎 보호대가 정강이를 때렸다. 윤석은 그 옆에서 같은 속도로 뛰었다. 숨소리가 예솔보다 고르게 났다. 몸은 같은 스무 살인데 뛰는 요령이 달랐다. 숨을 둘 들이쉬고 둘 내쉬었다.

“니 진짜 뭐 숨기는 거 있지.” 예솔이 헐떡이며 물었다. “감독 재계약을 어떻게 알어? 내 무릎 버릇은 어떻게 알고?”

“결아.”

“말 돌리지 말고.”

“나중에 누가 너한테 돈 빌려주겠다고 하면, 나한테 먼저 말해.”

예솔이 뛰다 말고 섰다. 윤석이 두 걸음 더 가다가 돌아보았다.

“그건 또 뭔 소리여?”

“그냥. 이자 없는 돈 준다는 사람 있으면.”

“니가 우리 아부지여?” 예솔의 얼굴이 바람에 빨갰다. “나 오키나와에서 너 땜에 짐 싸서 왔어. 감독한테 찍혀서 지금 스무 바퀴 뛰고 있어. 근디 너는 이유는 하나도 안 말해 주고 맨날 이래라저래라여.”

윤석은 할 말을 찾다가 찾지 못했다. 외야 펜스 너머로 갯벌에 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회색 진흙 위로 물이 얇게 번지며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예솔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윤석이 따라왔다. 남은 아홉 바퀴 동안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스무 바퀴를 다 뛰고 불펜으로 돌아오자 구봉수가 종이컵 두 개에 따뜻한 보리차를 따라 주었다.

“둘이 왜 뛰었는지는 묻지 않을게.” 구봉수가 말했다. “근데 윤석아, 너 아까 그 공 한 번만 더 보여 주면 안 되냐? 나 스피드건 들고 그런 공 처음 봤다. 132 찍히는데 타자는 145처럼 보이겠더라.”

“감독님이 던지지 말래요.”

“그러니까 내가 안 볼 때 던져.” 구봉수가 보리차를 후후 불었다. “아, 나 안 볼 때 던지면 내가 못 보는구나.”

예솔은 보리차를 마시다가 웃음이 터졌다. 화가 아직 안 풀렸는데 웃음이 먼저 나와서, 예솔은 더 화가 났다.

*

밤 열 시에 아버지 전화가 왔다. 예솔은 2군 숙소 복도 끝 비상구 계단으로 나가서 받았다. 계단참 창문에 김이 서려 있었다.

“결아, 밥은 먹었냐?”

“먹었어유. 아부지는?”

“나야 뭐, 닭 튀기다 남은 거 먹지.” 아버지가 웃었다. 그 웃음 뒤에 한참 말이 없었다. 기름 솥이 끓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작게 들렸다. 가게를 닫은 시간인데도 솥에 불이 켜져 있었다. “다른 게 아니고, 건물주한테서 종이가 왔어. 내용증명이라는 거. 석 달 밀렸으니께 이달 말까지 안 되면 나가 달라고.”

예솔은 계단 난간을 잡았다. 철제 난간이 얼음처럼 찼다.

“얼마여요?”

“너는 신경 쓰지 말어. 아부지가 알아서 혀. 그냥 너한테 말은 해 둬야 할 것 같아서.”

“얼마냐고요.”

아버지가 숫자를 말했다. 예솔이 받은 육성 계약금보다 컸다. 그 계약금은 이미 가게에 들어가 있었다.

“괜찮어유, 아부지. 제가 어떻게 해 볼게요.”

“네가 뭘 어떻게 혀. 공이나 잘 받어.”

전화가 끊긴 뒤에도 예솔은 한참 계단참에 서 있었다. 창문의 김에 손가락으로 아무 글자나 쓰다가 지웠다. 윤석이 낮에 한 말이 떠올랐다. 누가 돈 빌려주겠다고 하면 나한테 먼저 말해.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예솔은 몰랐다. 다만 윤석이 그 말을 할 때 예솔의 오른손을 보던 눈이 떠올랐다. 미트를 끼지 않는 손. 무언가를 받는 손.

휴대전화가 손바닥 안에서 짧게 떨었다. 문자였다. 보낸 사람 칸에 뜬 이름은 오키나와 비행기에 오르기 전 예솔이 직접 저장한 그 이름, 급할 때 찾으라던 상필이 형이었다.

「결아, 형이다. 아버님 가게 일 들었다. 이번 주말에 강화 근처 갈 일 있는데 밥이나 먹자. 형이 도울 수 있는 게 있을 거다.」

예솔은 그 문자를 열어 둔 채 화면이 꺼질 때까지 보았다. 계단 아래층에서 누군가 문을 여닫는 소리가 났다. 아버지는 가게 사정을 예솔 말고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상필은 알고 있었다.

4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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