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201자)

고기는 형이 산다

방출 통보 받은 날, 스무 살 신인으로 돌아갔다 · 정이한

귤은 제주산이었다. 상자 옆면에 서귀포 농협 글씨가 찍혀 있었고, 껍질에서 겨울 냄새가 났다. 오키나와 숙소 로비에서 한국 귤 냄새를 맡으니 이상했다. 신인 하나가 귤을 까다가 물었다.

“사장님, 오키나와에도 귤 많던데 이걸 비행기로 들고 오셨어요?”

“여기 귤은 시어. 시콰사라고, 레몬 사촌이야. 한국 애들은 한국 귤을 먹어야 힘을 써.” 오상필이 웃으며 명함을 한 장씩 돌렸다. 「상필스포츠 이사 오상필」. “사장님 말고 형이라고 해. 야구공 팔고 글러브 파는 사람이야. 너희 같은 애들 크는 거 보는 게 낙이고.”

윤석은 엘리베이터 앞에 선 채로 그 명함을 받지 않았다. 지난 생에 받은 명함은 「상필스포츠」가 아니라 「상필기획」이었다. 2013년 봄, 2군 재활군 숙소 앞이었다. 회사 이름만 바뀌었고 웃는 얼굴은 같았다.

오상필의 눈이 로비를 한 바퀴 돌다가 윤석에게서 멈추었다. 귤을 받으러 오지 않은 신인은 그 하나였다.

“너는 누구냐? 귤 싫어해?”

“육성 십일 번 채윤석입니다.”

“채윤석.” 오상필이 이름을 입안에서 한 번 굴렸다. “근데 눈빛이 왜 그러냐? 빚쟁이 보듯이.”

“원래 눈이 이래요.”

“그래? 그럼 그 눈 좀 펴고 토요일에 같이 가자. 캠프 휴일이지? 나하에 고기 잘하는 집 있다. 매니저님한테는 말해 놨어.”

나하는 오키나와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 캠프가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차로 한 시간 반이었다. 신인들이 환호했다. 예솔도 귤을 입에 문 채로 손을 들었다. 윤석은 손을 들지 않았지만, 토요일에 그 승합차에 탈 사람은 자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예솔이 타니까.

*

승합차는 오상필이 직접 몰았다. 해안 도로를 따라 내려가는 동안 오른쪽 창밖으로 산호초 바다가 연두색에서 남색으로 몇 번씩 바뀌었다. 뒷자리 신인들은 처음 한 시간 동안 창문에 이마를 대고 바다만 보았고, 그다음 삼십 분 동안은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었다. 슬라이드폰 카메라는 바다를 회색으로 찍었다.

“형님, 이거 왜 바다가 회색이에요?”

“카메라가 촌놈이라 그래. 너희 1군 가면 좋은 거 사.”

오상필은 운전하면서 신인들에게 하나씩 물었다. 고향이 어디냐, 부모님은 뭐 하시냐, 계약금은 어디 썼냐. 묻는 말투가 다정해서 다들 술술 대답했다. 경호는 계약금으로 부모님 아파트 대출을 갚았다고 했고, 다른 신인은 누나 결혼 자금에 보탰다고 했다. 오상필은 대답마다 “효자네” 하고 웃었다.

예솔 차례가 되었다. 예솔은 창밖을 보며 별일 아닌 것처럼 말했다.

“우리 아버지는 대전에서 치킨집 혀요. 요새 좀 힘들어서, 저는 계약금 그냥 다 거기 넣었어요. 육성이라 얼마 되지도 않지만.”

오상필의 눈이 백미러로 예솔을 보았다. 아주 짧게, 일 초쯤. 그리고 다시 도로로 돌아갔다.

“치킨집 힘들지. 요새 길 건너마다 하나씩 생기니까.” 그가 말했다. “아버님 고생하시겠다.”

윤석은 조수석 뒤에서 그 백미러를 보고 있었다. 그는 일부러 크게 말했다.

“형님은 계약금 얼마 받으셨어요?”

“나? 나는 선수 아니었어.”

“아, 그럼 돈은 어디서 버세요? 글러브 팔아서 오키나와 오는 비행기 값이 나와요?”

차 안이 잠깐 조용해졌다. 예솔이 윤석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오상필은 백미러로 이번엔 윤석을 보았고, 이번에는 일 초보다 오래 보았다.

“넌 참 궁금한 게 많다.”

*

고깃집은 국제거리라는 나하 번화가 뒤편 골목 2층에 있었다. 숯불 연기가 천장 환풍구로 빨려 올라가는 소리가 쉬지 않았고, 불판 위에서 소 혀가 하얗게 오그라들었다. 오상필이 일본어로 주문을 줄줄 했다. 신인들은 그 모습에 반했다.

윤석은 메뉴판을 보다가 무심코 손을 들었다. “여기 하이볼 하나요. 레몬 많이.”

“하이 뭐?” 옆자리 신인이 물었다.

“위스키에 탄산수 탄 거.”

“그걸 왜 섞어 먹어? 아저씨 같다, 너.”

2011년의 스무 살들은 위스키에 탄산을 타지 않았다. 윤석은 손을 내리고 우롱차를 시켰다. 예솔이 키득거리며 그의 잔에 우롱차를 따라 주었다. “아저씨, 천천히 드셔유.”

고기가 두 판째 익었을 때 오상필이 예솔의 잔을 채우며 말했다. 그사이 예솔은 맥주를 두 잔째 마시고 있었다.

“예솔이라고 했지? 포수가 최고야. 투수는 혼자 잘나 봐야 공을 받아 줄 놈이 없으면 끝이거든.” 오상필이 지갑에서 명함을 한 장 더 꺼내 예솔의 손에 쥐여 주었다. 아까 로비에서 준 명함과 같은 명함이었는데, 뒷면에 볼펜으로 휴대전화 번호가 하나 더 적혀 있었다. “아버님 가게 일로 혹시 급한 거 생기면 연락해. 형이 아는 데가 좀 있다. 이자 없는 데.”

“아이고, 아니에요.”

“아니긴. 그냥 넣어 둬.”

예솔이 명함을 지갑에 넣었다. 윤석은 불판 위의 소 혀가 타는 것을 보았다. 타는 냄새가 나는데도 아무도 뒤집지 않았다.

*

오상필이 담배를 피우러 나간 사이 윤석은 따라 나갔다. 계단을 내려가 고깃집 뒤편 골목으로 돌아가니, 오상필은 쓰레기통 옆 환풍기 밑에 서서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환풍기에서 숯불 연기와 기름 냄새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고, 골목 바닥은 기름때로 미끄러웠다.

“담배 피우냐?” 오상필이 갑을 내밀었다.

“예솔이한테 번호 주지 마세요.”

오상필은 갑을 도로 넣었다. “내가 뭘 했는데? 밥 사 준 거? 급할 때 연락하라고 한 거?”

“이자 없는 데라면서요. 세상에 이자 없는 돈이 어디 있어요. 이자 대신 다른 걸 받겠죠. 공 하나라든가.”

말이 너무 많이 나갔다. 윤석은 그것을 알았지만 이미 늦었다. 오상필의 손가락 사이에서 담배가 타들어 갔다. 그는 재를 털지 않았다.

“공 하나.” 오상필이 그 말을 되풀이했다. “스무 살짜리 육성선수가 그런 말을 어디서 배웠냐?”

“야구장 오래 있으면 들려요.”

“너 이번이 첫 캠프잖아.”

윤석은 대답하지 못했다. 오상필이 담배를 쓰레기통 뚜껑에 비벼 끄고, 조끼 안주머니에서 하얀 봉투 하나를 꺼냈다. 봉투가 두툼하지는 않았다. 그는 그 봉투를 윤석의 점퍼 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돌아갈 때 택시비 해라. 신인 용돈. 다들 하나씩 받았어.”

윤석은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오상필의 가슴팍에 던졌다. 봉투가 조끼에 맞고 튕겨 나가 골목 바닥에 떨어지면서 입구가 벌어졌고, 일본 지폐 몇 장이 기름 묻은 바닥으로 미끄러져 나왔다. 환풍기 바람에 지폐 한 장이 들썩였다.

오상필은 화를 내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허리를 굽혀 지폐를 한 장씩 주웠다. 기름이 묻은 지폐를 바지에 문질러 닦으며, 고개를 숙인 채로 말했다.

“윤석아, 형이 이 일 오래 해서 아는 게 하나 있다. 너 같은 놈이 제일 먼저 온다. 정의로운 척하는 놈. 뭘 좀 아는 척하는 놈. 그런 놈들은 빚이 생기면 제일 빨리 무너져. 자기가 깨끗하다고 믿었으니까 더러워지는 데 익숙하지가 않거든.”

그가 허리를 펴고 봉투를 다시 조끼 안에 넣었다.

“그리고 너, 나를 아는 눈으로 본다. 처음 보는데. 그게 제일 궁금하다.”

*

승합차가 숙소 앞에 선 것은 밤 열두 시 사십 분이었다. 오상필은 돌아오는 길에 기름을 넣겠다며 주유소에 한 번, 휴게소에 한 번 차를 세웠다. 휴게소에서는 신인들에게 아이스크림까지 사 주었다. 통금은 자정이었다. 윤석은 주유소에서 시계를 보고 알았다. 오상필이 일부러 늦게 오고 있었다.

숙소 로비에는 매니저 김형래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그 옆에 투수코치 염동진이 있었다. 오상필은 신인들을 내려 주고는 “매니저님, 제가 늦게 모셔서 죄송합니다” 하고 고개만 꾸벅하고 차를 몰고 가 버렸다. 남은 것은 신인 다섯이었다.

“누가 가자고 했어?” 김형래가 물었다. “누가 주도했냐고?”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경호가 입을 열려고 했다. 경호는 거짓말을 못 하는 사람이었다. 오상필 이름이 나오면 그 이름이 캠프 보고서에 오르고, 1순위 신인이 브로커와 어울렸다는 소문이 붙고, 예솔이 지갑에 명함을 넣었다는 사실까지 따라 나올 것이다. 그러면 구단은 예솔을 먼저 자른다. 육성 포수는 1순위 투수보다 자르기 쉬웠다.

“제가 가자고 했습니다.” 윤석이 말했다.

다들 윤석을 보았다. 예솔이 가장 크게 놀랐다.

“아는 형님한테 제가 부탁했어요. 나하 구경 가고 싶다고. 늦은 것도 제가 더 있자고 해서고요.”

염동진이 모자 챙에서 볼펜을 뽑았다. 이번에는 아무것도 적지 않고 그냥 손가락 사이에서 돌렸다.

“열 번째 정해졌네.” 그가 말했다. “월요일 비행기. 벌금은 삼십만 원.”

“네.”

“그리고 포수 하나 같이 보낸다. 2군 캠프에 공 받을 놈이 모자라.” 염동진의 볼펜 끝이 예솔을 가리켰다. “너.”

“예? 저는 왜요?”

“너 둘이 룸메이트잖아. 같이 놀았으면 같이 가.”

방으로 돌아온 예솔은 불도 켜지 않고 침대에 앉았다. 한참 있다가 그가 말했다.

“니가 왜 뒤집어써? 고마운 줄 알라는 겨?”

“아니.”

“그럼 뭐여. 나 오키나와 2주는 더 있을 수 있었어. 1군 투수들 공 받아 볼 수 있었다고.” 예솔의 목소리가 떨렸다. 화가 나서 떨리는 것이었다. “니가 뭔디 맨날 다 아는 것처럼 굴어?”

윤석은 그 질문에도 답을 못 했다. 다 알아서 그런다고 말할 수 없었다.

일요일 아침 식당에서 강현태가 낫토 그릇을 들고 신인 탁자 옆을 지나가다 멈추었다. 소문은 밤사이 숙소를 한 바퀴 다 돌았다.

“육성, 가방 안 들더니 네 짐 들고 가게 생겼네.” 강현태가 낫토를 젓가락으로 한 번 길게 늘어뜨렸다. “한국 가면 2군 감독이 마정구다. 그 양반은 마흔 개 던지고 내려오는 놈 보면 그 자리에서 마운드에 묶어 놔.”

“묶이면 풀고 내려오겠습니다.”

“말은 잘해.” 강현태가 어깨를 돌리려다 그만두고, 그릇을 든 채 창가로 걸어갔다. 이번에는 아무도 웃지 않았다. 신인 탁자에서 웃을 일은 아니었다.

*

월요일 오후 나하 공항을 떠난 비행기는 구름 위로 올라가자 조용해졌다. 예솔은 창가 자리에서 이륙하자마자 잠들었다. 오키나와 마지막 날까지 예솔은 윤석에게 말을 세 마디밖에 안 했다. 밥 먹어, 짐 싸, 비켜.

예솔의 무릎 위에 있던 슬라이드폰이 기체가 흔들릴 때 바닥으로 미끄러졌다. 윤석은 허리를 숙여 그것을 주웠다. 떨어지면서 화면이 위로 밀려 올라가 있었고, 화면 불이 켜져 있었다. 연락처 저장 화면이 떠 있었다. 이름 칸에 예솔의 반듯한 글씨체 대신 자판으로 찍은 글자가 보였다.

「상필이 형 (급할 때)」.

윤석은 화면을 내리고 휴대전화를 예솔의 무릎 위에 도로 올려놓았다. 예솔은 코를 골았다. 경운기 소리가 기내의 낮은 엔진 소리와 겹쳤다. 지난 생에 오상필의 번호가 예솔의 휴대전화에 들어간 것은 2013년이었다. 이번에는 두 해가 일렀다.

3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

고기는 형이 산다 · 방출 통보 받은 날, 스무 살 신인으로 돌아갔다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