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133자)
마흔 개
방출 통보 받은 날, 스무 살 신인으로 돌아갔다 · 정이한
송진 가루 주머니는 손바닥보다 작았다. 하얀 천에 싸인 가루가 손가락 사이에서 뽀득 소리를 냈고, 털어 낸 가루가 오키나와의 2월 바람을 타고 불펜 뒤쪽으로 날아갔다. 아침 아홉 시 반, 기온은 영상 15도쯤이었다. 햇볕은 따가운데 바다에서 오는 바람이 차서, 윤석은 왼쪽 볼만 뜨겁고 오른쪽 볼은 서늘했다.
불펜에는 마운드가 다섯 개 나란히 있었다. 신인과 육성선수는 오른쪽 끝 두 개를 썼고, 가운데 세 개는 1군 투수들 차지였다. 오늘 아침 오른쪽 끝 마운드에 처음 오른 사람이 윤석이었다.
“천천히 혀. 첫날이여.” 예솔이 홈플레이트 뒤에 쪼그려 앉으며 미트를 두 번 쳤다. “어깨 다 풀린 겨?”
“풀렸어.”
윤석은 머릿속으로 숫자를 정했다. 오늘은 칠 할만 던진다. 서른다섯의 팔에서 칠 할은 시속 125킬로미터쯤이었다. 그만큼만 쓰면 팔꿈치는 아무 말도 안 할 것이다. 그는 투수판에 오른발을 걸고, 공을 글러브 안에서 한 번 굴려 실밥에 검지와 중지를 얹었다.
와인드업은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왼 다리를 들고, 골반을 닫았다가, 열고.
팔이 나갔다.
공이 손끝을 떠나는 순간 윤석은 알았다. 이건 칠 할이 아니었다. 손가락이 실밥을 긁는 감각이 날카로웠고, 팔이 채찍처럼 몸보다 늦게 따라오다가 한꺼번에 앞으로 쏟아졌다. 미트가 터졌다. 불펜 전체에 소리가 울렸는데, 가죽이 찢어지는 것 같은 그 소리를 윤석은 열다섯 해 동안 남의 공에서만 들었다.
예솔이 미트를 낀 손을 털며 일어났다. “아따. 손바닥 나갔네.”
옆에서 스피드건을 들고 있던 막내 트레이너 구봉수가 화면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147 나왔는데? 이거 고장 났나.”
“팀장님, 그거 고장 아니에요.”
“팀장?” 구봉수가 스피드건을 내리고 윤석을 보았다. “나 얼음 담당이야. 팀장은 무슨. 너 아침에 뭐 잘못 먹었냐?”
“아, 아니요. 그냥, 잘 어울리실 것 같아서.”
“뭐가 어울려. 배도 안 나왔는데.”
열다섯 해 뒤에는 나온다고, 윤석은 말하지 않았다.
*
두 번째 공부터 윤석은 팔을 붙잡았다. 붙잡으려고 했다. 스무 살의 팔은 붙잡히지 않았다. 머리가 칠 할이라고 말하면 팔은 그 칠 할을 지난 생의 칠 할이 아니라 지금 몸의 칠 할로 알아들었고, 지금 몸의 칠 할은 서른다섯의 전력보다 빨랐다. 그는 와인드업을 줄였다. 다리를 덜 들고, 몸통을 덜 비틀고, 손목만 쓰는 것처럼 던졌다. 그래도 141, 143이 나왔다.
구봉수가 숫자를 부를 때마다 가운데 마운드에서 던지던 1군 투수들이 하나둘 고개를 돌렸다. 열다섯 개째에 강현태가 불펜 뒤 철망 쪽에 나타났다. 손에는 아침 식당에서 들라고 했던 그 가방이 들려 있었다. 그는 자기 손으로 가방을 들고 왔다는 사실이 마음에 안 드는 얼굴이었다.
“육성이 몇 개째냐?”
“열다섯입니다.” 구봉수가 대답했다.
강현태는 철망에 팔을 걸치고 섰다. 그다음부터 윤석은 공을 하나 던질 때마다 뒤통수에 그 눈을 느꼈다. 지난 생에도 그랬다. 그 눈이 뒤에 있어서 윤석은 그날 멈출 수가 없었다. 쉰 개째에 강현태가 한숨을 쉬었고, 여든 개째에 가방에서 사탕을 꺼내 먹었고, 백 개째에 “이제 좀 던지네” 하고 웃었다. 그 한마디를 듣고 싶어서 스무 살의 윤석은 백사십 개까지 갔다. 백서른 몇 개째에 팔꿈치 안쪽에서 뭔가 딸깍 하고 걸렸다. 그때는 그게 뭔지 몰랐다.
서른 개째에 윤석은 오른손을 펴서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 보았다. 검지, 중지, 약지. 다 제대로 접혔다. 팔꿈치 안쪽은 따뜻했고 조용했다.
서른다섯 개째.
마흔 개째 공이 예솔의 미트에 들어갔을 때 윤석은 글러브를 벗었다.
“결아, 오늘 끝.”
“벌써?”
윤석이 마운드에서 내려오자 철망 쪽에서 강현태가 몸을 떼었다. 그는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불펜 안으로 걸어 들어와서, 윤석이 막 내려온 오른쪽 끝 마운드에 그대로 올라섰다. 1군 투수가 신인 마운드에 올라오는 일은 없었다. 다른 신인들이 공 던지던 손을 멈추었다.
“다 던졌으면 비켜. 신인이 마운드 붙잡고 노닥거리지 말고.” 강현태가 투수판에 스파이크를 대고 흙을 긁었다. “근데 마흔 개? 신인이 마흔 개에 숨을 쉬네. 우리 때는 백 개 던지고 밥 먹었다.”
“선배님 때는 그러셨겠죠.”
“지금도 그래.”
“그래서 선배님 어깨가 지금 그런 거고요.”
강현태가 공을 집으려다 말았다. 그는 몸을 돌려 윤석을 정면으로 보았고, 두 사람 사이는 마운드 높이만큼 차이가 났다. 강현태가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윤석은 그 눈을 피하지 않았다. 마흔여섯의 강현태가 창고 방 벽에 기대 휴대전화를 보던 얼굴이 그 눈 뒤에 겹쳐 보였다. 서른하나의 강현태는 아직 그 얼굴을 몰랐다.
“너 오늘 아침부터 왜 자꾸 내 어깨 얘기를 하냐?”
“걱정돼서요.”
“네 걱정이나 해. 육성은 잘리면 끝이다. 1군 마무리는 어깨가 좀 아파도 마무리야.” 강현태가 공을 집어 글러브에 퍽 소리가 나게 넣었다. “백 개 채우고 가. 아니면 짐 싸.”
투수코치 염동진이 그 말을 듣고 가운데 마운드 쪽에서 걸어왔다. 쉰 살쯤 된 사람이었고, 모자 챙에 볼펜을 꽂고 다녔다. 그는 구봉수에게서 기록지를 받아 숫자를 훑었다.
“147, 145, 143. 마흔 개.” 염동진이 기록지를 윤석에게 내밀었다. “공 좋다. 좋은 공 가진 놈이 마흔 개에서 왜 멈춰?”
“첫날이라서요. 팔이 아직 이 속도에 안 익었어요.”
“팔은 던지면서 익는 거야.”
“팔꿈치 인대는 던지면서 익지 않습니다. 쌓이기만 하지.” 윤석은 말해 놓고 아차 싶었다. 2011년의 투수코치에게 투구 수 이야기를 이런 말투로 하는 육성선수는 없었다. “나중엔 다 그렇게 관리할 거예요. 미국은 벌써 그렇게 하고요.”
“여기가 미국이냐?”
“아닙니다.”
“그럼 백 개.”
윤석은 글러브를 다시 끼지 않았다.
염동진은 한참 그를 보다가 모자 챙에서 볼펜을 뽑았다. 기록지 맨 아래, 윤석의 이름 옆에 무언가를 적었다. 그리고 그 볼펜을 다시 모자에 꽂았다.
“다음 주 월요일에 1차로 열 명 한국 보낸다. 2군 캠프로.” 염동진이 말했다. “방금 아홉 명 됐다. 열 번째는 이번 주에 볼게.”
마운드 위에서 강현태가 첫 공을 던졌다. 미트가 울렸다. 윤석이 던진 공보다 소리가 작았다. 강현태 본인도 그걸 들었는지, 두 번째 공을 던지기 전에 어깨를 한 번 돌렸고, 이번에도 오른쪽만 돌렸다.
*
점심은 구장 옆 천막에서 도시락으로 나왔다. 윤석이 젓가락으로 계란말이를 반 가르고 있을 때 서경호가 도시락을 들고 옆에 앉았다. 경호는 오늘 오전에 백 개를 던졌다. 다들 그랬다. 캠프 첫 주에 신인이 백 개를 던지는 것은 인사 같은 일이었다.
“윤석 씨, 아까 147이요.” 경호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힘 하나도 안 들어간 것처럼 보였어요. 그거 어떻게 해요?”
“힘이 들어갔어. 안 들어간 척한 거지.”
“저는 백 개 던졌는데 141이 제일 빨랐어요.” 경호가 오른팔을 내려다보았다. “지금 좀 뜨거워요, 팔이.”
윤석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경호의 팔을 보았다. 지난 생에 경호는 팔을 다치지 않았다. 경호는 6월에 1군에 올라갔고, 그 뒤로 여덟 해를 던졌다. 크게 이름을 날리지는 못했지만 오래 던졌다. 윤석이 2군 불펜에서 라디오로 듣던 그 이름이었다.
“얼음 해. 이십 분 하고 빼고, 또 이십 분. 한 번에 오래 대면 오히려 안 좋아.” 윤석은 말하다 보니 손가락으로 경호의 팔꿈치를 짚어 가며 설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저녁에 따뜻한 물로 샤워할 때 팔을 이렇게 쭉 펴고, 손목을 뒤로 젖혀서, 십 초. 열 번. 매일.”
경호가 눈을 깜박였다. “윤석 씨, 우리 아버지 같아요.”
“…….”
앞자리에서 예솔이 계란말이를 물고 웃다가 사레가 들렸다.
“윤석이 쟤 오늘 아침부터 그려. 허리 짚고 일어나고 스쿼트하고, 나보고 요즘 애들은 어쩌고 하고.” 예솔이 물을 마시고 덧붙였다. “내가 그 요즘 애여. 동갑인디.”
윤석은 계란말이를 입에 넣었다. 달았다. 오키나와 도시락의 계란말이는 한국 것보다 설탕이 많이 들어갔다는 것을 그는 열다섯 해 만에 다시 알았다.
*
저녁에 방으로 돌아오자 예솔이 가방에서 오늘 불펜에서 쓴 공 하나를 꺼냈다. 마흔 번째 공이었다. 받자마자 주머니에 넣어 왔다고 했다.
“첫 불펜이잖여. 기념이여.”
예솔이 매직 뚜껑을 이로 물고 공을 돌려 가며 하얀 가죽에 날짜를 적었다. 2011, 2, 10. 오키나와 첫 불펜. 받은 사람 이름을 쓰다가, 예솔은 매직 끝을 잠깐 공에 댄 채로 멈추었다.
“근디 이번엔 이것도 써 놓자. 마흔 개. 니가 아까 코치 앞에서 버틴 거. 그거 나 좀 멋있었어.”
“쓰지 마. 그거 귀국 후보 된 숫자야.”
“그러니께 쓰는 겨. 나중에 1군 올라가서 인터뷰할 때 이거 들고 하라고. 마흔 개 던지고 짐 쌀 뻔한 놈이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고.”
예솔이 이름 밑에 「마흔 개」를 적었다. 매직이 가죽에 스며들어 글씨 가장자리가 조금 번졌다.
윤석은 공을 받아 들었다. 2026년 강화의 창고 방에서 상자 맨 위에 있던 그 공과 같은 공이었고, 같은 글씨였다. 다만 그 공에는 「마흔 개」가 없었다. 이 공에는 있었다. 열다섯 해 동안 매일 보던 공에 처음 보는 글자가 생겼다. 윤석은 엄지로 그 세 글자를 덮었다가 떼었다. 아직 덜 말라서 엄지에 검은 자국이 묻어났다.
“왜, 맘에 안 들어?” 예솔이 물었다.
“아니.” 윤석은 엄지를 바지에 닦았다. “글씨가 생각보다 반듯해서.”
“나 원래 글씨 잘 써. 몰랐냐?”
알았다. 열두 해 뒤 예솔이 대리운전 손님에게 받은 영수증 뒷면에 그 반듯한 글씨로 하루 번 돈을 적어 내려가던 것도 알았다. 윤석은 공을 머리맡 슬라이드폰 옆에 세워 두었다.
*
아홉 시 반에 프런트에서 방으로 전화가 왔다. 예솔이 받았다가 수화기를 막고 윤석을 돌아보았다.
“로비에 한국에서 손님 왔다는디? 신인들 다 내려와 보래.”
“손님?”
“구단 사람은 아닌가 벼. 귤 가져왔대.”
로비에는 벌써 신인들이 열 명쯤 모여 있었다. 소파 앞 탁자에 노란 귤이 상자째 놓여 있었고, 상자 옆에 등산 조끼를 입은 남자가 서서 신인 하나하나에게 귤을 두 개씩 쥐여 주고 있었다. 머리가 아직 까맸다. 귀밑에 흰머리가 몇 가닥 보일 뿐이었다. 그는 경호의 손에 귤을 얹어 주며 웃었다.
“1순위 서경호. 이야, 실물이 낫네. 밥은 잘 챙겨 먹냐?”
엘리베이터 앞에서 윤석의 발이 멈추었다. 오상필은 마흔셋이었고, 아직 채윤석이라는 이름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