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163자) · 여숙희 · 5월 21일

그날 밤 계단

밤의 복도에서 세 번째 문 · 백해원

만 19세 이상 이용가

나 여숙희는 이 산에서 밤 열 시가 되면 서관 계단을 올려다봤다. 학생으로 졸업까지 두 해, 대학과 다른 학교를 떠돌던 열한 해를 건너뛰고, 국어 교사로 돌아와 스물여덟 해를 그랬다. 그중 열여섯 해는 사감이었다. 떠나 있던 해에도 밤 열 시면 눈이 저절로 떠졌으니, 사십일 년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순찰은 늘 같은 길로 돈다. 기숙사 동관 이 층 끝에서 연결 통로를 지나 서관 계단 이 층 계단참까지 간다. 거기서 손전등을 끄고 위를 본다. 삼 층 방화문 너머가 조용한지 듣는다. 그리고 내려온다. 삼 층 문턱은 사십일 년 동안 한 번도 넘지 않았다.

5월 21일 오후, 권태석 교감이 사감실에 서류를 들고 왔다. 교감은 사감실에 오면 늘 창가 화분부터 본다. 오늘도 그랬다. 제라늄 잎을 손가락으로 한 번 튕기고 나서야 서류를 책상에 놓았다.

학생 전학 권고 결정서. 이름 유하. 결재란 셋 가운데 교감과 학년부장 칸에 서명이 들어가 있었다. 사감 칸만 비어 있었다.

“선생님 확인만 받으면 됩니다.”

나는 서류를 읽었다. 품행 불량 및 학교 명예 훼손. 학교가 적을 수 있는 말이었다. 나는 이 학교에서 그런 말을 수백 번 읽었다. 읽을 때마다 사유 칸을 채우는 손이 누구 손인지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선생님이 서명하시면 조용히 끝납니다. 선생님도 조용한 걸 좋아하시잖아요.”

교감이 웃었다. 입꼬리만 올라가는 웃음. 그 웃음은 그 아버지를 닮지 않았다. 그 아버지는 눈까지 웃었다.

“아버지가 가끔 선생님 얘기를 하십니다. 그때 계단참에 있던 여학생이 이제 사감이 됐다고. 고마운 사람이라고요.”

책상 밑에서 무릎이 떨렸다. 퇴사 심의 날 탁자 밑에서 떨리던 무릎이었다. 나는 두 손을 무릎에 얹었다. 손바닥 밑에서 떨림이 한동안 멎지 않았다.

교감은 알고 있었다. 언제부터 알았는지는 몰랐다. 어쩌면 처음부터였다. 설립자의 아들이 이 학교에 교사로 들어오던 해, 교무실에서 나를 처음 보고 고개를 숙이던 그 인사에 어쩌면 처음부터 그 말이 들어 있었다.

“서명 안 하겠습니다.”

말이 입 밖으로 나가는 데 사십일 년이 걸렸는데, 나가고 나니 소리가 생각보다 작았다. 교감이 서류를 도로 집었다.

“그럼 이사회에서 선생님 사감직부터 정리하겠습니다. 국어는 계속 가르치셔도 됩니다. 정년이 이 년 남으셨죠.”

교감은 제라늄 잎을 한 번 더 튕기고 나갔다. 잎 하나가 떨어져 창틀에 걸렸다.

*

1985년 가을, 문재언은 내 옆자리였다. 2학년 3반 둘째 줄. 마른 아이였고 교복 소매가 늘 손등을 덮었다. 형이 입던 교복을 물려 입어서라고 했다. 재언이는 수업 시간에 공책 귀퉁이에 시를 썼다. 쓰다가 막히면 소리 없이 입술로 외웠다. 한 줄에 한 번 숨을 쉬었다. 들이쉬고 내쉬는 데 넉 초. 나는 그 박자를 옆자리에서 이 년 동안 들었다.

재언이는 제 공책 표지에 라온이라고 써 두었다. 즐겁다는 우리말이라고 했다. 제 이름보다 그게 좋다고 했다. 아버지 없이 읍내 시장에서 떡 파는 엄마랑 살았는데, 엄마가 이 학교 보내려고 떡을 두 배로 쪘다고 했다. 기숙사는 밤 열 시에 불을 끈다. 재언이는 불 꺼진 뒤에 서관 삼 층 빈 연구실로 올라가 시를 썼다. 거기는 스탠드 하나가 늘 켜져 있었다. 그때는 금지된 곳이 아니었다.

10월 백일장에서 재언이가 장원을 했다. 제목이 「라온」이었다. 그 주에 재언이가 공책 한 권을 나한테 빌려줬다. 네가 먼저 읽어 줘, 하고. 나는 그 공책을 한 달 동안 돌려주지 않았다. 다 외우고 싶어서였다.

11월 19일 화요일 밤, 나는 그 공책을 돌려주려고 서관 계단을 올라갔다. 이 층 계단참에서 위층 소리를 들었다. 사감 권영조 선생님 목소리였다. 불 꺼진 뒤에 돌아다니는 놈, 이라고 했다. 공책 찢는 소리가 났다. 재언이가 돌려주세요, 하고 말했다.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뺨을 치는 소리가 났다. 계단 위에서 두 사람이 엉키는 소리가 났다.

재언이가 떨어졌다. 삼 층 계단 꼭대기에서 계단참까지. 내가 서 있던 곳에서 여섯 칸 위였다. 난간 기둥에 머리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고, 그 뒤로는 아무 소리도 안 났다. 재언이의 넉 초짜리 숨이 멈췄다.

권영조 선생님이 계단을 내려왔다. 나를 봤다. 그 사람은 그때 마흔둘이었고 눈이 맑았다. 그 사람이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손이 컸다.

“들어가라. 너는 아무것도 못 봤다.”

나는 들어갔다. 공책을 가슴에 안고 기숙사까지 뛰었다. 그날 밤 이후로 나는 그 공책을 한 번도 펴지 못했다.

이튿날 재언이 자리가 비었다. 학교는 재언이가 밤에 도망갔다고 했다. 사흘 뒤 교칙 스물두 번째가 생겼다. 12월에 뒷산 계곡에서 재언이를 찾았다. 가출 뒤 실족이라고 했다. 경찰이 반 아이들한테 한 명씩 물었다. 그날 밤 서관에서 뭘 본 사람이 있냐고. 나는 못 봤다고 했다. 경찰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음 아이를 불렀다.

재언이 어머니는 그 뒤로 해마다 11월이면 교문 앞에 왔다. 떡 보따리를 들고 와서 경비실에 맡기고, 우리 재언이가 왜 도망갔는지 아는 사람 없냐고 물었다. 나는 교사가 된 뒤에 교문 앞에서 그분을 두 번 마주쳤다. 두 번 다 고개만 숙였다. 2014년 이후로 그분은 오지 않았다. 떡이 오지 않은 해에 나는 그분이 돌아가신 걸 알았다.

*

저녁 여덟 시, 나는 관사로 갔다. 담장 너머 마루에 텔레비전 불빛이 푸르게 번져 있었다. 향나무 냄새가 짙었다. 오늘 또 다듬은 모양이었다. 대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이 산에서 이 집 대문을 잠글 이유가 있는 사람은 없었다.

권영조 이사장은 마루 끝 등나무 의자에 앉아 뉴스를 보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리모컨으로 소리를 줄였다. 일어서지는 않았다.

“숙희구나.”

사십일 년 전과 같은 목소리였다. 다정한 목소리였다.

“재언이 기억하십니까?”

“기억하지. 시를 잘 쓰던 아이. 불쌍한 아이였다. 밤에 돌아다니지 말라고 그렇게 일렀는데.”

그가 찻잔을 들었다. 손이 여전히 컸다. 잔을 쥔 손가락 마디가 굵었다.

“서관이 헐리면 다 끝난다. 너도 이제 편해질 거다. 사십 년 동안 수고 많았다. 태석이가 너한테 고맙다고 전하라더구나.”

“저는 편해지려고 온 게 아닙니다.”

“그럼 뭐 하러 왔니?”

그가 나를 봤다. 눈이 맑았다. 사십일 년 전 계단참에서 내려다보던 그 눈이었다. 그 눈 앞에서 열일곱의 나는 들어갔고, 쉰여덟의 나는 대문 쪽으로 돌아섰다. 돌아서는 등 뒤에서 텔레비전 소리가 다시 커졌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자리는 여기가 아니었다.

*

밤 열한 시 오 분, 나는 서관 계단을 올라갔다. 손전등은 켜지 않았다. 계단 난간의 거친 자리를 잡고 올라갔다. 이 층 계단참에서 멈췄다. 사십일 년 동안 멈추던 자리였다. 난간 기둥 모서리에 칠이 벗겨진 자국이 있었다. 나는 그 자국을 손바닥으로 덮었다. 나무가 차가웠다.

위층으로 올라갔다. 방화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복도를 걸었다. 몇 걸음인지는 세지 않았다. 그건 그 아이들의 방법이다. 끝에 문이 셋 있었다. 가운데 문의 놋쇠 손잡이를 잡았다. 미지근했다.

문턱을 넘었다.

안쪽 복도는 춥고, 종이 냄새가 났다. 문들이 양쪽으로 늘어서 있었다. 불 켜진 문, 꺼진 문. 벽에 연필 글씨 같은 것이 비쳤다. 나는 그 사이를 걸어 왼쪽 세 번째 문 앞에 섰다. 숨소리가 났다. 넉 초, 그리고 또 넉 초였다. 사십일 년 전 옆자리에서 듣던 박자였다.

바닥에 빛이 흘러와 글자가 떴다. 네가 못 한 말. 나는 그 글자를 오래 봤다. 이 아이들이 이것 앞에 섰을 때 얼마나 무서웠을지 그제야 알았다.

“재언아.”

목소리가 갈라졌다. 나는 헛기침을 하지 않았다. 갈라진 채로 말했다.

“나는 그날 계단참에서 봤다. 사감 권영조 선생님이 너를 때리고 밀었다. 네가 떨어지는 걸 봤다. 경찰이 물었을 때 못 봤다고 했다. 네 어머니가 교문 앞에 오셨을 때도 아무 말 안 했다. 두 번이나 마주쳤는데 고개만 숙였다. 사십일 년 동안 스물두 번째 규칙을 제일 열심히 지켰다. 아무도 이 계단을 못 올라오게 하면, 아무도 모르게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말하는 동안 입 안이 말랐다. 다 말하고 나니 혀가 무거웠다. 이제 이 일에 대해서는 누가 물어도 거짓말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교감이 물어도, 경찰이 물어도.

문이 열렸다.

연구실이었다. 나무 책상 하나, 초록 갓을 씌운 스탠드 하나. 스탠드 불빛 아래 원고지가 흩어져 있었다. 창밖이 까맸다. 방에서 등유 냄새와 먹물 냄새가 났다. 책상 모서리에 볼펜 한 자루가 굴러가다 멈춰 있었다. 1985년 11월 19일에 멈춘 방이었다.

목소리가 났다. 열일곱 살 목소리였다. 나는 쉰여덟인데, 그 목소리를 듣자 옆자리 책상의 나뭇결이 손바닥에 닿는 것 같았다.

“나 도망 안 갔어.”

재언이는 천천히 말했다. 한 줄에 한 번 숨을 쉬었다.

“엄마한테 말해 줘. 나 도망 안 갔다고. 나는 여기 있었다고. 그리고 라온 다음 연, 아직 못 썼어. 즐거운 것은 늘 밤에 온다, 그다음 줄을 못 썼어.”

나는 카디건 주머니에서 공책을 꺼냈다. 사십일 년 동안 한 번도 펴지 못한 공책이었다. 표지에 라온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연구실 책상 위, 원고지 옆에 그것을 놓았다.

“다음 줄은 여기 있다. 네가 나한테 빌려준 공책 맨 뒷장에. 나는 한 달 만에 다 외웠다. 돌려주러 가던 길이었어.”

나는 외웠다. 한 줄에 한 번 숨을 쉬었다.

“즐거운 것은 늘 밤에 온다. 불 꺼진 뒤에 혼자 켜 두는 것들이 즐겁다.”

방 안에서 숨소리가 멈췄다. 멈춘 게 아니라 내 숨과 겹쳤다. 들이쉬고 내쉬는 데 넉 초. 스탠드 불빛이 한 번 흔들렸다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꺼졌다. 문이 닫혔다. 닫히는 소리가 원고지 한 장이 책상에 내려앉는 소리 같았다.

나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무릎 꿇는 소리가 복도 끝까지 갔다가 한 박자 늦게 돌아왔다.

*

돌아서니 문턱에 아이들 셋이 서 있었다. 유하, 도경, 한결. 셋 다 운동화 끈을 대충 묶고 있었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는 묻지 않았다. 한결이가 먼저 울었다. 소리 내어 울면서 「선생님 커피에 설탕 네 스푼 넣은 거 죄송해요」라고 했다. 도경이가 한결이 입을 막았고, 유하가 나한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잡고 일어섰다. 열일곱 살 손이었다. 따뜻했다.

사감실에 돌아오니 새벽 한 시였다. 책상 위에 교감이 두고 간 결정서 사본이 있었다. 사감 확인란이 비어 있었다. 나는 볼펜으로 그 칸에 네 글자를 썼다. 확인 거부. 그리고 그 아래 한 줄을 더 썼다. 사유는 내가 적는다.

9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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