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117자) · 유하 · 5월 1일
왼쪽 세 번째
밤의 복도에서 세 번째 문 · 백해원
만 19세 이상 이용가
오월 첫날 4교시는 국어였다. 여숙희 선생님은 칠판에 시 한 편을 판서했다. 분필이 칠판에 닿을 때마다 딱딱 소리가 났고, 선생님 글씨는 가늘고 반듯해서 뒷줄에서도 한 자 한 자가 다 읽혔다. 김소월이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선생님은 외워 오라고 한 걸 한 사람씩 일으켜 세웠다.
한결이는 셋째 줄에서 막혔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에서 멈추더니 「가실 길에 과자를」이라고 했다. 반이 뒤집어졌다. 선생님은 웃지 않고 「앉아라」라고만 했다. 그런데 돌아서서 칠판을 볼 때 선생님 어깨가 한 번 흔들렸다. 나는 그게 웃음인지 아닌지 한참 생각했다.
내 차례였다. 나는 끝까지 외웠다. 외우는 동안 선생님이 내 입이 아니라 내 가슴께를 보고 있었다. 숨을 어디서 쉬는지 보는 눈이었다. 다 외우고 앉으려는데 선생님이 말했다.
“숨이 급하다. 시는 한 줄에 한 번 쉬는 거다. 들이쉬고 내쉬는 데 넉 초.”
선생님이 직접 첫 연을 외웠다. 선생님의 숨은 정말 한 줄에 한 번이었다. 교실이 조용해졌다. 창밖에서 운동장 모래가 바람에 쓸리는 소리가 들어왔다. 나는 그 숨의 길이를 어디서 들었는지 알았다. 그런데 그게 어디였는지 떠올리는 순간 종이 울렸다.
*
오월 첫날 밤, 우리는 셋이서 올라갔다. 한결이가 앞, 내가 가운데, 도경 선배가 뒤였다. 한결이가 앞에 선 건 본인이 우겨서였다. 앞에 서면 교감한테 할 말이 하나라도 줄어든다고 했다. 뒤에서 도경 선배가 「그게 무슨 논리냐」고 물었고, 한결이는 「제 논리요」라고 대답했다. 참말이었다. 요즘 한결이는 참말과 거짓말을 번갈아 가며 연습하는 중이라, 무엇이 튀어나올지 저도 모른다고 했다.
방화문 틈은 이제 셋이 차례로 빠져나갈 만큼 벌어져 있었다. 자물쇠는 걸린 채 그대로였다. 교감은 자물쇠를 두 번 바꿨는데, 바꿀 때마다 문틀이 조금씩 더 기울었다. 정 여사님은 계단을 닦다가 「이 건물이 숨을 쉬네」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여든넷이던 복도가 오늘은 아흔하나 걸음이었다. 연 문이 셋이 된 뒤로 복도가 조금씩 더 길어졌다.
세 번째 문을 열었다. 안쪽 복도는 오늘따라 조용했다. 라디오 방도, 연필 깎는 방도 소리를 낮췄다. 대신 왼쪽 세 번째 문에서만 소리가 났다. 숨소리였다.
그 문은 다른 문과 생김새는 같은데 나뭇결이 더 어두웠다. 니스를 여러 번 덧바른 것처럼 표면이 끈적하게 번들거렸고, 문 아래 틈으로 새는 빛은 빛이라기보다 누런 기름 같았다. 문 앞 한 걸음 안쪽은 입김이 하얗게 나올 만큼 추웠는데, 문 손잡이만은 사람 손바닥처럼 따뜻했다. 나는 그 손잡이를 쥐고 돌려 보았다. 돌아가지 않았다. 잠긴 느낌이 아니라, 안에서 누군가 같은 힘으로 잡고 있는 느낌이었다.
숨소리는 들이쉬고 내쉬는 데 넉 초가 걸렸다. 나는 손목시계 초침을 보며 다섯 번 셌다. 다섯 번 다 넉 초였다.
“제가 먼저 해 볼게요.”
한결이가 문 앞에 섰다. 바닥에 빛이 흘러와 글자를 띄웠다. 네가 못 한 말. 한결이가 헛기침을 했다.
“사감 선생님 커피에 설탕 네 스푼 넣은 거, 실수 아니었어요. 일부러 넣었어요. 선생님 표정 보려고요.”
도경 선배가 뒤에서 이마를 짚었다. 문은 꿈쩍도 안 했다. 숨소리는 넉 초 그대로였다.
“이건 좀 약했나 봐요.”
“약한 정도가 아니야.”
“그럼 영이었던 두 번째는 진짜 실수였어요. 그건 참말이에요.”
한결이는 제 입을 막으면서 뒤로 물러났다. 막은 손바닥 사이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셋 중 하나라도 웃고 있으니 그 추운 문 앞에서 숨 쉬기가 조금 나았다.
도경 선배가 섰다. 선배는 한참 문을 보다가 말했다.
“아버지 전화 기다려요. 매일 저녁 사감실 전화 울리면 저건가 하고 기다려요. 한 달째요.”
선배 목소리는 평소처럼 낮았다. 문은 안 열렸다. 선배가 고개를 숙이고 내 뒤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선배의 어깨를 한결이가 두 번 두드렸다. 선배는 그 손을 떼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내가 섰다. 할 말이 떠오르지 않을 줄 알았는데 하나가 금방 올라왔다.
“엄마가 전화로, 네가 무서웠다는 말을 처음 듣는다고 했을 때, 저는 안심했어요. 엄마가 화를 안 내서요. 엄마를 걱정한 게 아니라 제가 혼날까 봐 걱정했어요.”
문은 그대로였다. 숨소리도 그대로였다. 넉 초, 넉 초. 우리 셋이 내놓은 말이 문 앞 바닥에 쌓여서 아무 데로도 안 가는 것 같았다.
“이 문은 우리 말은 안 받는 거야.”
도경 선배가 말했다.
“다른 문은 누구 말이든 받았잖아요.”
“이 문은 받을 말이 따로 정해져 있는 거지.”
*
한결이가 주머니에서 연필을 꺼냈다. 하목이 누나 방에서 돌아온 뒤로 한결이는 연필을 늘 한 자루 가지고 다녔다. 나는 그 연필을 받아 문틀 안쪽, 눈높이쯤 되는 자리에 종이를 대고 연필심을 눕혀 문질렀다. 어릴 때 동전 무늬를 뜨던 방법이었다. 연필심이 나뭇결을 긁을 때마다 흑연 가루가 손등에 떨어졌고, 그 가루에서 쇠 냄새 비슷한 것이 났다. 문 앞은 여전히 추워서 연필을 쥔 손가락이 곱았다. 나는 두 번 손을 입에 대고 불었다. 문틀 나무에 무언가 파인 자리가 있었다. 손끝으로 더듬을 때 걸렸다.
종이 위에 흰 글자가 떠올랐다. 연필 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자리만 하얗게 남았다. 이름표를 붙였다가 뗀 자국 같았는데, 그 자리에 누가 칼끝으로 글자를 새겨 놓았다.
라온
그 아래 조금 작게 한 줄이 더 있었다. 2-3 문. 반과 성이었다. 성 뒤에 이름이 있었을 자리는 누가 여러 번 긁어서 뭉개 놓았다.
“라온이 이름이에요? 되게 예쁘네요.”
한결이가 속삭였다.
“이름이 아니라 별명 같아. 순우리말이야. 즐겁다는 뜻.”
도경 선배가 말했다. 나는 종이를 들어 문틀 옆에 대 보았다. 새긴 글씨는 삐뚤지 않았다. 천천히, 여러 날에 걸쳐 판 글씨였다. 즐겁다는 이름을 가진 사람의 문 안에서 넉 초마다 숨소리가 났다.
“성이 문이면 이 사람 문 씨예요? 문 뒤에 문 씨가 있는 거예요?”
한결이가 물었다. 도경 선배가 한결이 뒤통수를 가볍게 쳤다. 한결이는 맞고 나서도 「진짜 궁금해서요」라고 했다. 참말이었다. 나는 웃음을 참다가 종이를 구길 뻔했다. 그러다 알았다. 한결이는 우리가 너무 무서워질 때마다 꼭 한마디씩 한다. 그래서 우리가 아직 여기 서 있을 수 있었다.
*
“거기서 나와라.”
손전등 빛이 복도 입구에서 들어왔다. 세 번째 문, 서관 3층과 밤의 복도가 이어지는 그 문턱에 사감 선생님이 서 있었다. 선생님은 문턱을 넘지 않았다. 한 발도 넘지 않았다. 손전등을 든 손이 문틀을 짚고 있었다.
한결이가 제 연필을 등 뒤로 숨겼다. 이번에도 숨긴 의미가 없었다. 나는 종이를 쥔 채 선생님 쪽으로 걸어갔다. 선생님과 나 사이에 문턱 하나가 있었다.
“선생님은 이 문 아시죠.”
선생님의 손전등이 내 손에 든 종이로 내려왔다. 흰 글자 두 개가 손전등 빛에 떠올랐다. 선생님의 턱이 굳었다.
“왼쪽 세 번째요. 숨소리가 넉 초예요. 우리가 무슨 말을 해도 안 열려요. 선생님은 이 문 누구 건지 아시잖아요.”
“여기는 다음 달이면 없어진다.”
선생님이 말했다. 목소리가 이상하게 부드러웠다. 달래는 목소리였다.
“건물이 헐리면 이 복도도 없어진다. 문도 없어지고. 그게 제일 조용한 끝이다. 아무도 더 안 다치는 끝이야.”
“조용하면 누구한테 좋은데요?”
선생님이 대답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왜 문턱을 안 넘으세요? 여기까지 오셨으면서요.”
“넘어 본 적이 없다.”
“한 번도요?”
“사십일 년 동안 한 번도.”
선생님이 문틀을 짚은 손에 힘을 주었다. 손등의 핏줄이 섰다. 그 손 밑 페인트가 조금 벗겨져 있었다. 오래, 같은 자리를 짚어 온 손이 벗겨 놓은 자국이었다. 나는 그 자국을 보고 더 묻지 못했다. 선생님은 사십일 년 동안 이 문턱까지만 왔다. 대신 손을 내밀었다.
“수첩.”
“싫어요.”
“유하야.”
선생님이 처음으로 내 이름을 불렀다. 성 없이 이름만. 나는 그 목소리에 손이 먼저 움직였다. 수첩을 꺼내 선생님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선생님은 그걸 받아 카디건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가 무겁게 처졌다. 종이도 달라고 할 줄 알았는데 선생님은 종이는 보지 않았다.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조금 돌리고 있었다.
“셋 다 벌점 십 점. 유하는 이십오 점이다. 내일 교감 선생님이 퇴사 심의를 여실 거다.”
선생님이 손전등을 껐다. 계단으로 돌아서는 선생님의 등이 오늘따라 작았다. 문턱에서 돌아서는 순간, 안쪽 복도의 숨소리가 한 박자 빨라졌다. 넉 초가 아니라 세 초였다. 나는 그 변화를 셌다. 선생님도 들었는지 계단 첫 칸에서 발이 멈췄다. 한참 뒤에 선생님은 난간을 잡고 내려갔다. 반들거리는 자리가 아니라 삼 층 쪽의 거친 자리를 잡고 내려갔다.
*
이튿날 아침 교무실 게시판에 공고가 붙었다. 퇴사 심의 5월 8일 오후 네 시, 대상 2학년 유하, 사유 교칙 제22조 반복 위반 및 교감 지시 불이행. 아이들이 그 앞에 모였다가 나를 보고 흩어졌다. 흩어지는 발소리가 복도에 길게 끌렸다. 한결이는 그 공고 앞에서 제 벌점을 세다가 「저는 이십 점까지 오 점 남았네요」라며 이상하게 안도했다.
엄마한테는 학교가 먼저 전화했다. 엄마는 나한테 전화하지 않았다. 대신 저녁에 사감실 앞을 지나가는데 선생님이 나를 불러 세웠다. 선생님은 아무 말 없이 내 수첩을 돌려줬다. 표지가 조금 젖어 있었고, 모서리가 손때로 부드러워져 있었다. 207호에 돌아와 넘겨 보니 마지막 장에 낯선 글씨로 한 줄이 적혀 있었다. 가늘고 반듯한, 칠판에 판서하듯 쓴 글씨였다.
넉 초는 그 아이가 시를 외울 때 숨 쉬던 박자다
나는 그 줄을 도경 선배와 한결이에게 보여 주지 않았다. 불을 끄고 누워서 한참 숨을 셌다. 들이쉬고 내쉬는 데 넉 초가 걸리게 해 보았다. 시를 외우는 사람의 숨은 생각보다 길었다.
창가 침대에서 도경 선배가 몸을 돌렸다. 선배도 안 자고 있었다.
“심의에 학생 대표 한 명이 들어가. 학생회장.”
“선배요?”
“응. 교감이 요즘 나한테 뭘 하나 받아 내려고 하거든. 서관 헐어도 된다는 학생 대표 서명. 그거 아직 안 해 줬어.”
선배가 천장을 보며 말했다. 어둠 속에서 선배의 목소리가 한 박자 늦게 돌아오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서명이 심의에서 무엇이 될지 알 것 같았다. 선배도 알고 있었다. 우리는 거기서 말을 멈췄다. 한결이가 자면서 「가실 길에 과자를」이라고 또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