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110자) · 한결 · 4월 24일

열다섯 번째

밤의 복도에서 세 번째 문 · 백해원

만 19세 이상 이용가

유하 형은 나흘 동안 그 문 얘기를 안 했다. 나 한결은 그 나흘이 제일 무서웠다. 형이 화를 내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형은 평소처럼 숟가락을 들고 평소처럼 계단을 세고 평소처럼 운동화 끈을 두 번 묶었다. 나만 평소처럼이 안 됐다. 서랍 밑판을 네 번 뜯었다가 네 번 도로 끼웠다. 나사는 여전히 하나 모자랐다.

금요일 오후, 형이 교감실에 다녀왔다. 돌아온 형은 207호 문을 닫고 거기에 등을 기댔다. 문이 형 등 뒤에서 딸깍 잠겼다. 도경 형은 샤워하러 가고 없었다.

“교감이 그러더라. 화요일 밤 열 시 사십이 분, 목요일 밤 열한 시 오 분.”

형이 내 쪽으로 걸어왔다. 한 걸음, 두 걸음. 형은 걸음을 세지 않았다. 세지 않는 형은 처음 봤다.

“분까지 알더라.”

“형, 저는요.”

“너야?”

“아니에요.”

거짓말이 나왔다. 형이 내 멱살을 잡았다. 형 손이 차가웠다. 교복 깃이 목을 조였고 뒤꿈치가 바닥에서 조금 떴다. 형은 나보다 한 뼘 크고 나보다 훨씬 말랐는데, 멱살을 잡은 손은 이상하게 무거웠다.

“사감실 책상에 종이가 있었어. 글씨가 삐뚤더라. 너 받아쓰기할 때처럼.”

“형, 목 아파요.”

“엄마가 그 종이 얘기 알아? 네가 무슨 장학금 받았는지 알아?”

나는 대답을 못 했다. 그때 문이 쾅 울렸다. 도경 형이 밖에서 문고리를 흔들고 있었다. 잠긴 걸 알고는 발로 한 번 찼다. 두 번째 찰 때 문이 열렸다. 문고리가 원래 헐거웠다.

도경 형은 수건을 목에 걸고 샴푸 거품이 아직 귀 뒤에 남은 채로 들어왔다. 형이 우리 둘 사이에 팔을 넣어 떼어 놓았다. 떼어 놓다가 바닥에 떨어져 있던 내 과자 봉지를 밟았다. 봉지가 퍽 터졌다. 새우깡이 방바닥에 사방으로 튀었다. 셋 다 새우깡을 봤다. 누구도 그걸 줍지 않았다.

“한결이, 너 교감한테 적어 줬어?”

도경 형이 물었다. 도경 형은 거짓말을 못 하는 사람이라 거짓말하는 사람을 오래 쳐다본다. 나는 도경 형 눈을 피해 새우깡 하나를 봤다. 반으로 부서져 있어서 꼭 나 같았다.

“기숙사비가 석 달 밀렸어요.”

그게 대답이 됐다. 유하 형이 손을 내렸다. 형은 내 침대에 걸터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문지르는 소리가 사각사각 났다.

“그 문 네 거야, 한결아. 교감이 너를 벌써 적어 놨어. 적힌 사람은 문이 생겨.”

*

저녁 점호 전에 나는 샤워장에 갔다. 도경 형이 아까 못 헹군 거품을 헹구러 다시 와 있었다. 타일 벽에서 락스 냄새가 났고, 배수구가 물을 늦게 삼켜서 발목까지 미지근한 물이 고였다. 옆 칸에서 도경 형이 말했다. 물소리 때문에 목소리가 반쯤 깨져서 들렸다.

“작년에 내가 연 문, 2003년 형이었다고 했지.”

“네.”

“그 형도 기숙사비였어. 그 형은 문 뒤에서 딱 한마디 하더라. 나 도둑 아니야. 그게 다였어.”

나는 샤워기를 잠갔다. 물이 뚝뚝 떨어졌다. 하목이 누나 얘기를 듣기 전이었는데도 그 말이 이상하게 귀에 걸렸다. 도둑 아니야. 학교는 나가는 사람한테 늘 무언가를 하나씩 얹어서 내보내는 것 같았다.

“형은 그 말 듣고 뭐 했어요?”

“아무것도 안 했어. 의대 가기 싫다는 말 하나 내고, 도둑 아니라는 말 하나 받고, 그걸로 끝냈어. 그게 제일 후회돼.”

도경 형 쪽 샤워기가 한참 더 돌았다. 형은 거품이 다 헹궈졌는데도 오래 서 있었다.

*

그날 밤 나는 혼자 올라갔다. 이번엔 누가 따라오는 게 아니라 내가 앞장섰다. 계단이 나무라서 한 칸 밟을 때마다 끼익 소리가 났는데, 그 소리가 꼭 누가 이름을 부르다 마는 소리 같았다. 나는 속으로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오늘은 그 방법을 쓰면 안 될 것 같았다.

방화문 틈은 지난번보다 넓었다. 배가 안 걸렸다. 나흘 동안 초코파이를 못 먹어서다.

복도는 길었다. 세 번째 문을 열었다. 안쪽 복도의 문들이 빛을 흘렸다. 나는 왼쪽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사이 벽을 봤다. 여전히 벽이었다. 거기 내 문이 있다는데 나한테는 연녹색 페인트뿐이었다. 페인트가 벗겨진 자리에 누가 손톱으로 긁은 자국이 있었다. 그건 보였다.

나는 맞은편 문 앞에 섰다. 문 아래 틈으로 형광등 빛이 새어 나왔는데, 요즘 형광등처럼 하얗지 않고 조금 파랬다. 안쪽에서 무언가를 사각사각 긁는 소리가 났다. 연필 소리였다. 나는 그 문에 이마를 댔다. 나무가 미지근했다. 사람 이마를 맞댄 것처럼.

바닥에 빛이 흘러와 글자가 떴다.

네가 못 한 말

나는 입술을 핥았다. 소금 맛이 났다. 언제 울었는지 몰랐다.

“저는 유하 형을 팔았어요.”

목소리가 복도 끝까지 갔다가 한 박자 늦게 돌아왔다.

“한 달 오십오만 원에 팔았어요. 밤마다 형이 몇 시 몇 분에 나가는지 적어서 교감 선생님한테 줬어요. 엄마한테는 성적 장학금이라고 했어요. 엄마가 우리 한결이가, 하고 두 번 말했어요. 저는 그 말이 좋았어요. 그래서 계속 적으려고 했어요.”

말하는 동안 혀가 두꺼워졌다. 다 말하고 나니 입 안이 텅 빈 것처럼 가벼웠다. 가벼워서 오히려 무서웠다. 이제 이 얘기에는 거짓말이 안 나온다. 교감 선생님이 물어도, 엄마가 물어도.

문이 열렸다.

방은 좁았다. 이층 침대 아래 칸에 교복 재킷이 개어져 있었다. 벽에 붙은 시간표는 2015학년도였다. 책상 위 필통에 몽당연필이 한 움큼 꽂혀 있었는데 전부 끝이 뭉툭했다. 벽에 대고 눌러 쓰면 연필이 그렇게 닳는다. 방에서는 복숭아 향 로션 냄새와 먼지 냄새가 났다. 창턱에는 말라붙은 선인장 화분이 있었고, 창문은 반 뼘쯤 열려 있어서 밖에서 개구리 소리가 들어왔다. 사월에 개구리는 아직 울지 않는다. 그 방은 다른 달에 멈춰 있었다.

목소리가 났다. 여자애 목소리였다. 나랑 비슷한 나이였다.

“열다섯 번째는 내가 쓸 차례였어.”

나는 침대 쪽을 봤다. 아무도 없었다. 목소리는 방 어디에도 앉아 있지 않았다.

“열넷까지 세서 벽에 썼어. 그다음 날 룸메이트 은서가 사유 없이 나갔거든. 그래서 연필 들고 15를 쓰러 갔는데, 생활지도 선생님이 계단참에 서 있었어. 권태석 선생님. 벽 낙서는 기물 파손이라고 했어. 자퇴서 쓰면 조용히 끝내 준다고. 아빠한테는 내가 기숙사에서 돈을 훔쳤다고 했대. 나는 안 훔쳤어. 목이야. 하목이. 나는 열다섯을 못 썼어.”

방이 조용해졌다. 연필 소리가 멈췄다. 문이 천천히 닫혔다.

나는 닫힌 문에 손바닥을 댔다. 나무가 서늘해져 있었다. 문 아래로 새던 파란 빛도 꺼졌다. 목이 누나가 끝까지 못 쓴 숫자가 내 손바닥 밑 어딘가에서 멈춰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주머니를 뒤졌다. 연필이 없었다. 있었으면 그 자리에서 15를 써 줬을 것이다.

돌아서니 유하 형과 도경 형이 복도 입구, 세 번째 문 바로 안쪽에 서 있었다. 둘 다 운동화 끈을 대충 묶고 왔다. 유하 형은 끈을 두 번 안 묶었다.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급하게 왔는지 알았다.

“다 들었어.”

유하 형이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이다가 멈출 수가 없어서 한참 끄덕였다.

“형, 저 이제 교감 선생님한테 거짓말 못 해요.”

“알아.”

“그럼 형이 몇 시에 올라가는지 물어보시면 말해야 돼요.”

“그러니까 이제 나랑 같이 올라가.”

유하 형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은박지로 싼 초코파이 반쪽이었다. 수요일 점심에 내가 못 먹은 그 반쪽이었다. 형이 그걸 나흘 동안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은박지가 구겨지고 초콜릿이 조금 녹아서 모양이 찌그러져 있었다.

“같이 올라가면 네가 적을 게 없잖아. 네가 옆에 있으니까.”

나는 초코파이를 받아서 한입에 넣었다. 녹은 초콜릿이 손가락에 묻었다. 이번에는 목구멍이 열렸다. 삼키는데 눈물이 같이 넘어갔다. 짠맛과 단맛이 섞여서 이상한 맛이 났다. 도경 형이 옆에서 한숨을 쉬었다.

“새우깡은 내일 너희 둘이 치워.”

*

이튿날 아침 서관 삼 층 벽에 연필 글씨가 하나 더 올라와 있었다고 정 여사님이 도서관 앞에서 또 화를 냈다. 윤보라 옆에 하목이. 그리고 그 밑에 14와 나란히 숫자 하나가 더 있었다고 했다. 15였다.

나는 1교시가 끝나자마자 서관으로 뛰어갔다. 삼 층까지 올라가 방화문 철망 유리에 얼굴을 댔다. 유리에 입김이 서려서 소매로 두 번 닦았다. 창고 문 옆 벽에 연필 글씨가 조르르 있었다. 오래된 14, 그 아래 윤보라, 그 옆에 하목이, 그리고 14 옆에 새로 올라온 15. 누가 눌러 쓴 것처럼 진했다. 목이 누나가 십일 년 동안 쥐고 있던 연필이 이제야 벽에 닿은 것 같았다. 나는 유리에서 얼굴을 떼지 못했다. 2교시 종이 울렸다. 지각 벌점 일 점이었다.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점심시간에 방송이 나왔다. 내 이름이었다. 식당이 조용해졌다. 유하 형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이번엔 나도 내려놓았다.

교감실 의자는 오늘도 푹신했다. 교감 선생님은 서류를 보면서 물었다.

“어젯밤에 서관에 누가 올라갔냐?”

“저요.”

말이 먼저 나갔다. 선생님이 고개를 들었다.

“유하는?”

“유하 형도요. 도경 형도요. 저 이제 안 적어요. 한 줄도 안 적어요. 그리고 교감 선생님, 2015년에 하목이 누나한테 자퇴서 쓰게 하셨죠. 누나는 돈 안 훔쳤대요.”

교감 선생님의 얼굴에서 뭔가가 한 칸 내려앉았다. 선생님은 한참 나를 보다가, 뒤집어 놓았던 서류를 이번에는 앞면이 보이게 돌려 놓았다. 학생 제적 예정 통보. 이름 한결. 사유 칸에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

가사

“그럼 이건 다음 달 이사회에 올라간다.”

“저 봐 주신다고 하셨잖아요.”

“적어 오면 봐 준다고 했다. 너는 안 적는다고 했고.”

선생님이 서류 모서리를 손가락으로 반듯하게 맞췄다. 한 장뿐인 서류를 맞추는 손이 꼼꼼했다.

“한결아, 이 학교에 기숙사비를 못 내는 애가 스물이다. 너 하나를 그냥 봐주면 나머지 열아홉이 다 봐 달라고 한다. 그러면 재단이 다 떠안고, 삼 년 뒤에는 백스물여덟이 다 갈 데가 없어진다. 나는 백스물여덟을 지키는 사람이다. 너 하나가 아니라.”

맞는 말 같았다. 그래서 대꾸를 못 했다. 맞는 말 같은데 그 말 끝에 내 이름이 서류에 남는다는 게 이상했다. 백스물여덟을 지키려면 누군가는 두 글자로 줄어들어야 했다. 그 누군가는 늘 기숙사비가 밀린 쪽이었다. 창밖으로 서관이 보였다. 삼 층 창은 낮이라 까맸고, 그 까만 유리에 구름 하나가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선생님 목소리는 조용했다. 나는 그 두 글자를 봤다. 지하 서고에서 유하 형이 셌다던 서른하나의 서른둘째가 거기 있었다.

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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