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108자) · 한결 · 4월 17일
나는 교감 편이다
밤의 복도에서 세 번째 문 · 백해원
만 19세 이상 이용가
나 한결은 과자를 숨기는 데 재능이 있다. 전 학교 기숙사에서는 사물함 천장에 테이프로 붙였고, 이 학교에서는 책상 서랍 밑판을 뜯어 그 틈에 넣는다. 사감 선생님 코는 무섭지만 드라이버는 못 이긴다. 그런데 사월 셋째 주 금요일, 우편함에서 꺼낸 행정실 쪽지는 서랍 밑판 어디에도 숨길 데가 없었다.
기숙사비 미납 안내. 1월분, 2월분, 3월분. 합계 백육십오만 원. 빨간 도장이 찍혀 있었다.
나는 그 쪽지를 네 번 접어서 바지 뒷주머니에 넣었다. 네 번 접으니 손바닥만 해졌는데, 걸을 때마다 엉덩이 쪽에서 종이가 바스락거렸다. 백육십오만 원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였다.
점심시간에 교감실로 오라는 방송이 나왔다. 내 이름이 스피커에서 나오니까 식당이 잠깐 조용해졌다. 유하 형이 숟가락을 내려놓고 나를 봤다. 형은 숟가락을 내려놓는 게 버릇이다. 나는 괜히 웃어 보였다.
*
교감실 문은 두꺼웠다. 두드리면 손마디가 아팠다. 권태석 교감 선생님은 창가에 서서 서관을 보고 있었다. 선생님이 돌아서기 전까지 나는 문 앞에서 차렷을 했다. 차렷을 오래 하면 무릎 뒤가 가렵다. 그건 전 학교에서 배웠다.
“한결이, 앉아라.”
유하 형은 여기서 안 앉혀 줬다고 했는데, 나는 앉혀 줬다. 의자가 푹신했다. 푹신한 의자는 비싼 부탁이 올 때 나온다. 그것도 전 학교에서 배웠다.
“쪽지 받았지?”
“네. 곧 보낸다고 엄마가 그러셨어요.”
“어머님이 지난달에도 곧 보낸다고 하셨다.”
선생님은 책상 서랍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 뒤집어 놓았다. 앞면은 안 보여 줬다. 서류 모서리에 찍힌 도장 색만 보였다. 행정실 쪽지와 같은 빨강이었다.
“서율원은 학생이 백스물여덟이다. 그중 스물 명이 기숙사비를 못 내고 있어. 재단이 그걸 다 메우면 삼 년 안에 문을 닫는다. 그래서 새 기숙사가 필요한 거고, 교육청 돈을 받으려면 서관을 헐어야 하고, 헐기 전까지 거기서 아무도 다치면 안 된다. 여기까지 알아듣겠냐?”
“네.”
“그런데 밤마다 거길 올라가는 애들이 있다.”
선생님이 내 앞에 흰 종이 한 장을 놓았다. 줄이 그어져 있고 칸이 셋이었다. 날짜, 시각, 이름.
“면제 장학을 주마. 한 달 오십오만 원. 밀린 석 달도 재단에서 처리한다. 대신 밤에 누가 서관에 올라가는지만 적어 와라. 시각은 분까지.”
나는 종이를 봤다. 줄이 너무 반듯했다. 자로 그은 줄이었다.
“형들을 적으라고요?”
“누구를 적으라고는 안 했다. 올라가는 사람을 적으라고 했지.”
“적으면 그 형들은 어떻게 돼요?”
“다치지 않게 되지.”
선생님은 웃지 않았다. 유하 형 말로는 이 선생님이 입꼬리만 웃는다던데, 오늘은 입꼬리도 안 움직였다. 대신 뒤집어 놓은 서류 위에 손바닥을 얹었다. 손바닥이 서류를 덮는 모양이 부드러워서 더 무서웠다.
“한결이, 너 여기가 두 번째 학교지?”
“세 번째요. 두 번 옮겼어요.”
“세 번째가 마지막이면 좋겠구나.”
나는 종이를 받았다. 받는 손이 내 손 같지 않았다. 종이가 생각보다 두꺼웠다. 교감실을 나와 계단을 내려가다가 나는 뒷주머니의 쪽지를 꺼내 봤다. 백육십오만 원은 그대로 적혀 있었다. 나는 두 장을 겹쳐서 다시 접었다. 여덟 번 접었다. 이번에는 바스락거리지 않았다.
*
207호에 돌아오니 도경 형이 창가 책상에서 영어 단어장을 넘기고 있었다. 형은 단어를 외울 때 입술만 움직이고 소리는 안 낸다. 입술 모양으로 보면 abandon, abandon, abandon을 열 번째 외우고 있었다. 나는 서랍 밑판을 뜯는 척하면서 종이를 그 틈에 밀어 넣었다. 드라이버가 미끄러져 손등을 긁었다.
“교감이 뭐래?”
형이 단어장을 넘기지 않고 물었다.
“성적 얘기요. 영어가 너무 낮대요.”
“그래?”
“네. 단어를 외우래요. 형처럼요.”
거짓말이 술술 나왔다. 형이 단어장을 덮고 나를 봤다. 형 눈이 한참 내 손등에 머물렀다. 긁힌 자리에 피가 조금 맺혀 있었다.
“좋겠다.”
“뭐가요?”
“거짓말이 되는 거.”
형은 다시 단어장을 폈다. 입술이 abandon을 열한 번째로 외웠다. 나는 그 단어 뜻을 알았다. 버리다. 형이 그걸 알고 외우는지 모르고 외우는지는 몰랐다. 서랍 밑판을 다시 끼우는데 나사가 하나 모자랐다. 방바닥을 한참 더듬어도 안 나왔다.
*
토요일 오후 외출 때 읍내 터미널 앞 공중전화로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공중전화 부스 유리에는 누가 하트를 그려 놓고 그 안에 이름 두 개를 적었다가 한 이름만 긁어 놓았다. 수화기에서 쇠 냄새와 남의 입김 냄새가 났다. 동전 넣는 구멍이 뻑뻑해서 오백 원짜리를 두 번 밀어 넣었다.
아빠가 사라진 건 내가 열네 살 때다. 아빠 이름으로 된 빚이 엄마 이름으로 옮겨 오는 데 한 달, 모르는 아저씨들이 가게 앞에 차를 대 놓고 기다리기 시작하는 데 두 달이 걸렸다. 그 뒤로 엄마와 나는 두 번 이사했다. 이사할 때마다 엄마는 새 학교 담임한테 가정 사정이라고만 말했다. 나는 그 말이 편리하다는 걸 안다. 가정 사정은 아무도 더 묻지 않는다.
엄마는 식당에서 받았다. 뒤에서 뚝배기가 끓는 소리가 났다. 누가 「이모, 공깃밥 하나 더」 하고 외쳤다.
“한결아, 밥은 먹었어?”
“먹었어. 엄마, 나 장학금 받았어.”
“뭐?”
“기숙사비 면제 장학금. 성적 좋아서. 밀린 것도 학교가 해 준대.”
거짓말은 잘 나왔다. 나는 거짓말을 잘한다. 과자를 숨기는 것처럼. 엄마가 한참 아무 말도 안 하다가 목이 멘 소리로 웃었다. 웃음 끝이 떨렸다.
“우리 한결이가. 우리 한결이가 성적이 좋아서.”
엄마가 두 번 말했다. 나는 부스 유리에 이마를 댔다. 유리가 차가웠다. 엄마가 그 뒤에 뭐라고 했는지는 잘 안 들렸다.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고 전화가 끊겼다. 나는 끊긴 수화기를 한참 귀에 대고 있었다. 뚜 소리가 이어지는 동안 내가 뭘 팔았는지 셌다. 형 하나였다. 아직 하나였다.
*
화요일 밤 열 시 사십이 분, 유하 형이 207호를 나갔다. 나는 이불 속에서 손목시계를 봤다. 형이 운동화 끈을 두 번 묶는 소리가 났다. 사감 선생님이 갈아 준 끈이었다. 도경 형은 자는 척을 했다. 도경 형은 자는 척을 할 때 숨을 너무 고르게 쉰다.
나는 종이 첫 줄에 적었다. 4월 21일, 22시 42분, 유하.
글씨가 삐뚤었다. 두 번 고쳐 썼다. 고쳐 쓸수록 더 삐뚤었다.
수요일 점심에 유하 형이 사감실에 불려 갔다. 벌점이 십오 점을 넘었다고 했다. 이십 점이면 퇴사 심의였다. 형은 돌아와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식판을 들었다. 나는 서랍 밑판에서 초코파이를 꺼내 형 식판 옆에 놓았다. 형이 그걸 보더니 반으로 갈라 반쪽을 나한테 줬다. 나는 그 반쪽을 못 먹었다. 입에 넣었는데 목구멍이 안 열렸다. 초코파이를 못 먹은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도경 형이 건너편에서 그걸 보고 있었다. 도경 형은 아무 말도 안 했다. 도경 형이 아무 말도 안 하는 건 할 말이 참말뿐이라서다.
오후 청소 시간에 나는 사감실 앞 복도를 닦았다. 일부러 그 구역을 맡았다. 사감실 문에 달린 작은 유리창 너머로 사감 선생님 책상이 보였다. 책상 위에 벌점표가 있고, 그 옆에 종이 한 장이 더 있었다. 줄이 자로 그은 것처럼 반듯했다. 칸이 셋이었다. 첫 줄에 삐뚤삐뚤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4월 21일, 22시 42분.
내 글씨였다. 교감 선생님이 그 종이를 사감 선생님한테 내려보낸 것이다. 나는 걸레를 쥔 채 서 있었다. 걸레에서 물이 떨어져 운동화 코가 젖었다. 사감 선생님이 고개를 들었다. 유리창 너머로 눈이 마주쳤다. 선생님은 나를 한참 보다가 그 종이를 뒤집어 놓았다. 교감 선생님이 서류를 뒤집던 것과 똑같은 손짓이었다. 나는 복도 끝까지 걸레질을 하고 돌아왔는데, 돌아오는 길에 닦은 자리를 또 닦고 있었다.
*
그날 밤 나는 형을 따라갔다. 적으려고 따라간 건지 막으려고 따라간 건지는 계단을 올라가면서도 몰랐다. 무서워서 한결이라는 내 이름을 속으로 계속 불렀다. 그러면 좀 덜 무섭다. 담력 훈련 때부터 쓰던 방법이다.
서관 삼 층 방화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자물쇠는 걸려 있는데 문틀이 비뚤어져 있었다. 형이 그 틈으로 들어갔다. 나도 들어갔다. 배가 걸렸다. 초코파이 탓은 아니었다. 오늘은 한 개도 못 먹었으니까.
복도가 길었다. 형이 세면서 걸었다. 나는 형 걸음 뒤에 한 박자 늦게 걸었다. 끝에 문이 셋 있었다. 형이 가운데 문을 열었다. 그 너머 복도에 문이 줄지어 있었다. 문마다 빛이 샜다. 한 문에서는 라디오가, 한 문에서는 연필 깎는 소리가 났다. 어떤 문 앞은 따뜻했고 어떤 문 앞은 입김이 나올 만큼 추웠다. 발밑 나무 바닥은 오래 밟힌 가운데만 움푹 꺼져 있었는데, 그 꺼진 자리를 따라 걸으면 발소리가 덜 났다. 누가 여기를 오래 걸었다. 그 생각을 하자 목덜미 털이 섰다. 나는 속으로 내 이름을 세 번 불렀다. 한결아, 한결아, 한결아. 세 번째에는 목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왔다.
“형, 저 방금 제 이름 불렀어요. 형 부른 거 아니에요.”
“알아.”
“대답하지 마세요. 대답하면 더 무서워요.”
나는 무서워서 형 셔츠 자락을 잡았다. 형이 그걸 알고도 떼지 않았다.
“한결아.”
형이 멈췄다. 왼쪽 네 번째 문과 다섯 번째 문 사이였다. 형이 거기서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나는 봤다. 벽이었다. 연녹색 페인트가 칠해진 벽. 문이 없었다.
“여기 문 있어.”
“형, 벽인데요.”
“문 있어. 아래로 빛이 새. 바닥에 글자가 떠 있어.”
형이 바닥을 가리켰다. 나는 봤다. 나무 바닥이었다. 형이 한참 그 자리를 보다가 나를 돌아봤다. 형 얼굴이 이상했다. 화난 얼굴도 아니고 무서운 얼굴도 아니었다. 알아 버린 얼굴이었다.
“한결이라고 써 있어.”
나는 셔츠 자락을 놓았다. 손에 땀이 배어 있었다. 뒷주머니에서 여덟 번 접은 종이가 바스락거렸다. 교감 선생님이 뒤집어 놓았던 서류의 빨간 도장이 눈앞에 떠올랐다. 앞면을 끝내 보여 주지 않던 그 서류였다. 나는 그 서류에 뭐라고 적혀 있을지 알 것 같았다. 아마 가사라는 두 글자였을 것이다. 형이 서고에서 셌다던 서른하나 가운데 하나처럼, 아무 설명도 없는 두 글자.
“형, 그 문 열려요?”
형이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벽인 곳에 손바닥을 댔다. 형 손바닥이 허공에서 멈췄다. 내 눈에는 형 손이 벽에 닿지 않고 한 뼘 앞에서 서 있었다. 무언가를 짚고 있었다. 나한테만 안 보이는 무언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