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118자) · 유하 · 4월 9일
말 한 마디 값
밤의 복도에서 세 번째 문 · 백해원
만 19세 이상 이용가
목요일 저녁 자습이 끝나고 207호에 돌아왔을 때, 한결이는 책상 서랍에서 초코파이를 꺼내 반으로 가르고 있었다. 반쪽은 제 입에, 반쪽은 도경 선배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뇌물이었다.
“선배, 선배는 의대 가요?”
선배가 문제집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안 가. 가기 싫어.”
말이 끝나자마자 선배가 제 입을 손바닥으로 덮었다. 덮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손바닥이 턱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한결이가 초코파이 반쪽을 문 채 굳었다.
“선배, 방금 되게 솔직하셨어요.”
“안 물었으면 좋았을 거다.”
“아버지 병원 원장님이시잖아요. 그럼 병원은 누가 해요?”
“나는 안 해. 누가 할지는 모르겠고, 나는 피 보면 손이 떨려.”
선배가 또 입을 막았다. 이번에는 두 손으로 막았다. 한결이는 초코파이를 삼키는 것도 잊고 선배를 봤다. 그러다 무언가를 깨달은 얼굴로 제 반쪽을 마저 입에 넣고 물었다.
“그럼 선배, 제 과자 서랍에서 꺼내 드신 적 있어요?”
“없어.”
“진짜요?”
“진짜 없어.”
“거짓말하실 때 눈이 왼쪽으로 가시네요.”
“그건 거짓말할 수 있는 거라서 그래.”
선배는 한숨을 쉬고 의자를 내 쪽으로 돌렸다. 스탠드 불빛이 선배 얼굴 반쪽에만 닿았다. 삼 학년이 다 그렇듯 눈 밑이 검었는데, 선배는 검은 자리가 조금 더 넓었다.
“작년 이맘때 열었어. 너 봤다는 그 복도 안쪽 문 하나.”
나는 침대 모서리에 앉았다. 매트리스 스프링이 한 번 꺾이는 소리를 냈다.
“문 앞에서 아무한테도 안 한 말을 소리 내서 했어. 나는 의사 되기 싫다고. 그러니까 문이 열리고, 안에서 그 방 주인이 못 한 말이 나왔어. 2003년에 여기 다니다 없어진 형이었는데, 형이 한 말은 지금도 다 기억나. 문제는 그다음이야.”
선배가 손가락으로 제 입술을 톡톡 쳤다.
“그 얘기에는 거짓말이 안 나와. 누가 물으면 참말이 먼저 튀어나와. 다음 날 아버지한테 전화가 왔는데 첫마디가 공부 잘되냐, 의대 준비는 어떠냐였어. 그리고 나는 안 간다고 했어. 아버지가 수화기를 삼십 초 동안 들고만 계시다가 끊으셨어. 그 뒤로 한 번도 전화 안 하셨고.”
한결이가 서랍을 조용히 닫았다. 과자 봉지가 안에서 부스럭거렸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말 하나를 주고 말 하나를 받는 거야. 누가 뺏어 가는 게 아니야. 내가 골라서 내놓는 거야. 그러니까 억울하다고도 못 해.”
*
금요일 아침, 본관 게시판 앞에 사람이 몰려 있었다. 교감 이름으로 붙은 공고였다. 서관 3층은 안전진단 결과 D등급이라 오늘부터 폐쇄하고, 연결 방화문에는 자물쇠를 건다는 내용이었다. 아래에 착공일이 적혀 있었다. 7월 20일.
권태석 교감이 게시판 옆에 서서 팔짱을 끼고 있었다. 아이들이 흩어지지 않자 그가 손뼉을 두 번 쳤다.
“다 읽었으면 교실로. 서관 1층 도서관은 여름방학 전까지 그대로 쓴다.”
나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도경 선배가 옆에서 내 팔꿈치를 잡았는데, 나는 그 손을 빼고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교감 선생님, 오십 년 된 건물인데 다 허는 건가요?”
교감이 나를 봤다. 아이들이 조용해졌다. 전학 온 지 나흘 된 아이가 교감한테 말을 거는 걸 다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유하 학생. 오십 년이라서 허는 거다. 저 계단에서 누가 떨어져 죽으면 그때는 누가 책임지냐.”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뒤에 서 있던 사감 선생님이 고개를 돌렸다. 주머니에 넣은 손이 카디건 천을 움켜쥐는 게 보였다.
“그리고 너는 벌점 오 점이 이미 있다. 그 건물에는 올라갈 일이 없다고 내가 첫날 말했지.”
“네.”
“대답은 잘하는구나.”
아이들 몇이 웃었다. 나는 웃음소리를 세었다. 넷이었다.
*
저녁 식당은 김칫국 냄새로 꽉 차 있었다. 스테인리스 식판이 부딪히는 소리가 천장에 부딪혀 두 번씩 울렸고, 창가 자리에서는 3학년들이 모의고사 등급을 놓고 소리를 낮추지도 않고 싸웠다. 한결이는 내 앞에 앉아 콩자반을 한 알씩 골라 내 식판으로 옮기고 있었다.
“형, 진짜 또 가요?”
“안 간다고 하면 믿을 거야?”
“아뇨. 형은 거짓말할 때 숟가락을 내려놔요.”
나는 숟가락을 보았다. 내려놓고 있었다. 도로 들었다. 한결이가 콩자반을 한 알 더 옮기며 한숨을 쉬었다.
“저는 무서운 거 진짜 못 봐요. 전 학교에서 담력 훈련할 때 귀신 역 하던 선배를 제가 먼저 때렸어요. 너무 무서워서요. 그래서 반성문 썼어요.”
“귀신이 반성문 썼어?”
“제가요. 귀신 선배는 코피 났고요.”
옆 테이블 아이가 국을 뿜었다. 한결이는 진지했다. 진지해서 더 웃겼다.
식판을 반납하러 가는데 사감 선생님이 배식구 옆에 서 있었다. 선생님은 내 앞을 막더니 손에 든 것을 내밀었다. 사흘 전에 빼앗긴 내 운동화였다. 끈이 새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돌려준다. 끈이 삭아서 갈았다.”
“감사합니다.”
“끈은 꼭 매고 다녀라. 맨발로 계단 다니다가 넘어진다.”
선생님이 그 말을 하는 동안 나를 보지 않았다. 내 뒤쪽, 식당 창밖으로 보이는 서관을 보고 있었다. 새 끈은 두 번 묶어 매듭을 지은 자리가 단단했다. 나는 그 매듭을 엄지로 눌러 보았다. 안 풀리게 맨 매듭이었다.
*
그날 밤 열 시 사십 분, 서관 이 층 계단참에 도경 선배가 앉아 있었다. 나보다 먼저 와 있었다. 계단 창으로 들어온 달빛이 선배 운동화 끝에 걸려 있었다.
“올 줄 알았어.”
“비켜 주세요.”
“안 비켜.”
선배가 일어섰다. 나보다 한 뼘이 컸다. 계단은 둘이 나란히 서면 꽉 찼다. 나무 난간은 오십 년 동안 손을 탄 자리만 반들반들 닳아 있었고, 그 반들거리는 자리가 삼 층 쪽으로 갈수록 좁아졌다. 위층으로 올라간 손이 그만큼 적었다. 계단 위쪽에서 종이 냄새가 내려오고 있었다. 오늘은 거기에 차가운 니스 냄새가 섞여 있었다.
“열지 마. 너는 말할 게 있는 얼굴이야. 여기 온 첫날부터 그랬어. 그리고 그걸 말하면 그 뒤로는 평생 그 얘기에 거짓말을 못 해. 네 엄마가 물어도, 다음 학교가 물어도, 교감이 물어도.”
“다음 학교는 없어요.”
“그러니까 하는 말이야.”
선배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가 금방 낮아졌다. 누가 들을까 봐서라기보다는, 제 목소리가 높아지는 게 싫은 사람 같았다.
“나는 한 번 말하고 아버지를 잃었어. 너는 뭘 잃을지 몰라.”
나는 선배 어깨를 밀었다. 세게 밀지는 않았는데 선배가 난간을 잡고 한 발 물러섰다. 나는 그 틈으로 올라갔다. 선배가 뒤에서 내 이름을 불렀다. 한 번만 불렀다.
삼 층 방화문에는 정말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새것이었고 가격표 스티커도 안 뗀 채였다. 그런데 문이 닫혀 있지 않았다. 고리가 문틀에서 반 뼘쯤 떨어져 있었다. 문틀이 안쪽으로 끌려간 것처럼 비스듬했다. 복도가 길어지면서 문틀까지 잡아당긴 모양이었다.
나는 그 틈으로 몸을 비틀어 넣었다. 뒤에서 도경 선배도 따라 들어왔다. 말리러 온 건지 보러 온 건지는 선배 얼굴로도 알 수 없었다.
여든넷 걸음. 세 번째 문. 놋쇠 손잡이는 오늘도 미지근했다.
안쪽 복도의 문 열셋 가운데 나는 소리가 안 나는 문 앞에 섰다. 지난번에 제일 추웠던 문이었다. 입김이 조금 보였다. 사월인데 입김이었다. 발밑으로 빛이 흘러와 글자를 띄웠다.
네가 못 한 말
나는 숨을 한 번 쉬었다. 목 안이 말라서 침을 삼키는 소리가 크게 났다. 도경 선배가 내 뒤 세 걸음쯤에 서 있었다. 선배의 운동화가 바닥을 한 번 긁었다.
“작년 시월 이십일 일 점심시간에, 두 번째 학교 본관 이 층 화장실에서 민재가 맞았어요.”
목소리가 생각보다 작았다. 나는 다시 말했다.
“셋이었어요. 민재는 세면대 밑에 앉아 있었고, 저는 문간에서 봤어요. 저는 거기 사십 초쯤 서 있다가 나왔어요. 교감 선생님이 본 사람 있냐고 물었을 때 못 봤다고 했어요. 민재가 저를 봤는데도요. 그리고 그 주에 전학 서류를 썼어요.”
말하는 동안 손끝이 저렸다. 전기가 오는 것처럼 저리다가, 다 말하고 나니 저린 것이 빠지고 손이 무거워졌다. 누가 내 손에 추를 하나씩 매단 것 같았다.
문이 안쪽으로 열렸다.
방이었다. 이층 침대 하나, 나무 책상 둘, 벽에 걸린 달력은 1998년 12월이었다. 달력 칸마다 볼펜으로 과목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14일부터 17일까지 빼곡했다. 기말고사였다. 책상 위에는 반쯤 쓴 몽당연필과 동그라미가 여럿 쳐진 수학 시험지가 있었다. 빨간 글씨로 팔십칠. 방에서는 귤 껍질 냄새와 석유난로 냄새가 났다.
목소리가 났다. 여자아이 목소리였는데 사람이 앞에 있는 것처럼 가깝지 않았다. 라디오를 옆방에 켜 둔 것처럼 벽 하나를 건너왔다.
“나 졸업했어.”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17일까지 다 봤어. 수학은 팔십칠이야. 기숙사비 석 달 밀렸다고 졸업장을 안 준대. 엄마한테는 내가 가사로 그만뒀다고 했대. 나는 그만둔 적 없어. 누가 좀 적어 줘. 윤보라, 졸업.”
말이 끝나자 방이 조금 어두워졌다. 형광등이 아니라 석유난로 불이 줄어드는 것처럼 어두워졌다. 문이 저절로 닫혔다. 닫히는 소리가 아주 작았다. 손바닥으로 누가 책을 덮는 소리 같았다.
나는 한참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닫힌 문의 나뭇결을 손끝으로 쓸어 보았다. 방금까지 미지근하던 문이 이제는 보통 나무처럼 서늘했다. 문 아래 틈으로 새던 빛도 꺼져 있었다. 열세 개 가운데 하나가 불을 끄고 잠든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 문을 첫 번째로 세기로 했다. 내가 연 문이 하나였고, 도경 선배가 작년에 연 것까지 치면 둘이었다.
뒤에서 도경 선배가 다가와 내 옆에 섰다.
“팔십칠이면 잘 본 거네. 나는 작년에 칠십이었는데.”
선배가 그렇게 말했다. 나는 웃음이 났다. 웃음이 나는데 눈이 뜨거웠다. 두 번째 학교를 떠나던 날부터 안 뜨거웠던 눈이었다.
돌아오는 길은 예순두 걸음이었다. 방화문을 빠져나올 때 선배가 물었다.
“민재 얘기, 누가 물으면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말해야죠.”
입이 먼저 움직였다. 나는 그 말을 하려던 게 아니었다. 선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물쇠의 가격표 스티커를 손톱으로 긁어 뗐다. 떼어 낸 스티커를 제 주머니에 넣었다. 기숙사로 건너가는 연결 통로에서 선배가 한 번 뒤를 돌아봤다. 서관 3층 창 하나에 아직 불이 켜져 있었다. 선배는 그 불을 보면서 스티커가 든 주머니를 손으로 눌렀다. 무엇을 누르는지 나는 묻지 않았다. 물으면 선배는 참말을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