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146자) · 유하 · 4월 6일

세 번째 문

밤 열 시, 복도가 스물두 걸음 길어진다 · 백해원

교감실 창문으로 산이 한가득 들어와 있었다. 사월 초인데 능선 북쪽에는 아직 눈이 희끗하게 남아 있었고, 난로 위 주전자가 조금씩 끓어 방 안에 보리차 냄새와 석유 냄새가 반반 섞여 있었다. 나는 그 냄새 속에서 전학 서류가 한 장씩 넘어가는 소리를 들었다. 세 번째 학교였다.

“유하 학생.”

교감이 서류를 덮었다. 이름표에 권태석이라고 적혀 있었다. 마흔 후반쯤으로 보였고, 넥타이를 끝까지 조였는데 소매 끝이 분필 가루로 하얬다.

“전 학교 기록은 다 봤다. 일 년에 두 번 옮겼더구나.”

“네.”

“사유는 가정 사정이라고 적혀 있고.”

“네.”

그는 대답을 듣고도 한참 나를 봤다. 그 눈이 무엇을 재는지 나는 알았다. 앞의 두 학교 교감도 같은 눈을 했다. 이 아이가 문제를 들고 왔는지, 문제를 두고 왔는지를 재는 눈이었다.

“두 번째 학교 교감 선생님하고 통화도 했다. 거기서 작년 가을에 일이 하나 있었다더구나. 한 학생이 화장실에서 여럿한테 맞았는데, 본 사람이 하나 있었고, 그 학생은 끝까지 못 봤다고 했다고.”

나는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손가락이 바지 솔기를 따라 한 번 움직였다가 멈췄다.

“그게 너라고는 안 하시더라. 이름은 안 댔어. 그런데 그 학생이 그 주에 전학 서류를 냈다고 하시더구나.”

“저는 가정 사정으로 왔어요.”

“그래, 서류에도 그렇게 적혀 있다.”

그가 웃었다. 입꼬리만 올라가고 눈은 그대로인 웃음이었다. 그 웃음을 보면서 나는 여기가 세 번째 학교라는 걸 다시 셌다. 네 번째는 없었다. 엄마가 그렇게 말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이번엔 무슨 일이 있어도 졸업까지 버티라고.

“사유는 학교가 적는다. 너는 적힌 대로 살면 되고. 서율원은 올해 개교 오십 주년이다. 학생이 백스물여덟이야. 한 명 한 명이 다 보인다는 말이지.”

그가 창밖을 턱으로 가리켰다. 본관 옆에 붉은 벽돌 건물이 하나 서 있었다. 창틀이 나무였고 삼 층 창에는 커튼도 없었다.

“저게 서관이다. 이번 여름에 헐고 새 기숙사를 짓는다. 그러니까 저 건물 삼 층에는 올라갈 일이 없다. 교칙에도 있고.”

“교칙이 몇 개인데요?”

“스물두 개.”

그는 마지막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인주가 모자랐는지 두 번 찍었다. 두 번째 도장이 첫 번째와 반 칸쯤 어긋나서 내 이름 위에 붉은 그림자가 겹쳤다.

*

기숙사 동관 207호에는 침대가 셋이었다. 창가 침대에 삼 학년 도경 선배가 누워 있었고, 문 옆 침대에서는 1학년 다올이가 과자 봉지를 이불 속에 밀어 넣고 있었다.

“어, 새로 온 형이다. 형, 저 과자 안 먹었어요.”

“아직 아무것도 안 물어봤는데.”

“미리 말씀드리는 거예요. 여기는 사감 선생님이 냄새를 맡으세요.”

도경 선배가 한쪽 팔로 눈을 가린 채 말했다. 학생회장이라고 들었는데, 학생회장이라기보다는 오래 앓다 일어난 사람 같은 목소리였다.

“스물두 개 알려 줄게. 십오 분이면 돼.”

선배는 정말 십오 분 만에 다 말했다. 기상 여섯 시 반, 점호 열 시, 휴대전화는 평일 사감실 보관, 외출은 토요일 오후만, 라면은 공용 주방에서만 끓인다. 다올이는 옆에서 번호를 하나씩 받아 외우다가 열여섯 번째에서 틀렸다.

“스물한 개는 지키면 돼.”

“나머지 하나는요?”

“그건 지킬 필요가 없어. 어차피 아무도 안 어기니까.”

선배가 팔을 내리고 천장을 봤다.

“스물두 번째. 밤 열 시 이후 서관 3층 복도에 출입하지 않는다.”

“왜요?”

“길어져.”

“복도가요?”

“응.”

다올이가 이불 속에서 과자 봉지를 바스락거리다 멈췄다.

“선배, 그거 저한테는 안 알려 주셨잖아요.”

“너한테는 말했어. 네가 과자 먹느라 못 들었지.”

“안 먹었다니까요.”

도경 선배가 다올이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다올이가 한참 버티다 봉지를 건넸다. 선배는 봉지 안을 들여다보더니 도로 돌려주었다. 셋이 다 알았다. 봉지가 비어 있었다.

“근데 선배, 길어지면 뭐가 문제예요? 운동 되고 좋잖아요.”

다올이가 빈 봉지를 접으면서 물었다. 봉지를 접는 손이 빨랐다. 몇 번 해 본 손이었다.

“끝에 가면 문이 하나 더 있어.”

“화장실이요? 그럼 더 좋죠. 이 층 화장실은 맨날 줄 서요.”

도경 선배가 드디어 웃었다. 소리는 안 내고 어깨만 들썩였다. 그러다 금방 멈추고 다시 천장을 봤다. 웃음이 끝나는 자리가 이상하게 빨랐다. 누가 스위치를 내린 것 같았다.

*

나는 둘째 날 낮에 서관 3층을 쟀다. 계단을 올라가면 긴 복도가 오른쪽으로 뻗어 있고, 한쪽은 창문, 다른 쪽은 잠긴 연구실 문이 여섯 개였다. 복도 끝에는 문이 둘 붙어 있었다. 화장실 문과 청소도구함 문이었다. 두 문 사이의 벽은 연녹색 페인트가 여러 겹 덧칠돼 있어서, 손바닥으로 짚으면 오래된 껍질처럼 울퉁불퉁했다. 창고 문 옆에는 연필로 눌러 쓴 숫자가 하나 있었다.

14

손톱만 했다. 나는 그 숫자를 엄지로 문질러 봤다. 안 지워졌다.

보폭을 맞추려고 신발 끝에 분필 표시를 해 두고 걸었다. 계단에서 끝까지 예순두 걸음이 나왔다. 세 번 재도 예순둘이었다. 낮의 서관 3층은 소독약 냄새가 났다. 누가 주기적으로 걸레를 미는 모양이었다.

나는 세는 게 버릇이다. 앞의 두 학교에서도 셌다. 계단 수, 교실 창문 수, 점심 줄에 선 사람 수. 세고 있으면 다른 걸 안 봐도 된다. 두 번째 학교에서 내가 안 본 것이 하나 있었다. 그건 세지 않았다.

그날 밤 아홉 시 반에 기숙사 복도 형광등이 한 번 깜빡였다. 다올이가 「또 저런다」고 했고, 도경 선배는 아무 말도 안 했다. 열 시 점호가 끝나고 나는 운동화를 들고 맨발로 복도를 걸었다.

서관 계단은 나무였다. 삼 층으로 올라가는 동안 냄새가 바뀌었다. 소독약 냄새가 옅어지고 오래된 종이 냄새가 올라왔다. 도서관 제일 안쪽 서가에서 맡아 본, 풀이 마르고 먼지가 앉은 냄새였다. 나는 그 냄새를 맡으면서 이 층 계단참에서 한 번 멈췄다. 발바닥이 나무결을 따라 차가웠다.

복도 입구에 섰다. 창으로 들어온 운동장 불빛이 바닥에 사각형을 몇 개 떨어뜨려 놓고 있었다. 나는 세면서 걸었다. 예순둘에서 끝나야 할 복도가 끝나지 않았다. 일흔. 여든. 여든넷에서 끝이 보였다.

끝에는 문이 셋 있었다. 화장실 문, 청소도구함 문, 그리고 그 사이 낮에 벽이던 자리에 나무문이 하나 서 있었다. 손잡이는 놋쇠였다. 문 아래 틈으로 노란 빛이 한 줄 새어 나왔다.

“거기서 뭐 하니.”

손전등 빛이 내 얼굴을 쳤다. 나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복도 입구에 사감 선생님이 서 있었다. 여숙희 선생님, 국어 담당. 첫날 인사할 때 웃지 않던 사람이었다. 머리를 뒤로 단단히 묶었고 회색 카디건 주머니가 무겁게 늘어져 있었다.

“이리 와.”

“선생님, 저 문이요.”

“이리 오라고 했다.”

손전등 빛이 내 발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걸어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은 예순두 걸음이었다. 뒤를 봤을 때 끝에는 문이 둘뿐이었다.

선생님은 내 운동화를 빼앗아 들고 계단을 내려갔다. 이 층 계단참에서 그가 멈췄다. 손전등을 끄고 한참 서 있었다. 나는 선생님이 숨을 고르는 소리를 들었다. 숨이 짧게 두 번 걸렸다.

“스물두 번째 규칙 들었지?”

“들었어요.”

“그런데 왜 왔니?”

“세어 보려고요.”

“세어서 뭐 하게?”

나는 대답을 못 했다. 선생님이 나를 봤다. 어둠 속이라 얼굴이 안 보이는데 눈이 보였다.

“벌점 오 점. 다음엔 교감 선생님한테 올라간다. 교감 선생님은 나처럼 운동화만 가져가지 않으셔.”

*

207호에 돌아오니 도경 선배가 앉아 있었다.

“걸렸지.”

“어떻게 아세요?”

“맨발이잖아.”

다올이는 자고 있었다. 자면서 과자 이름을 중얼거리다가 한 번 눈을 떴다. 내 맨발을 보고, 빈 손을 보고, 다시 눈을 감으면서 말했다. “형, 운동화 제가 안 먹었어요.” 그러고는 곧장 코를 골았다. 나는 침대에 앉아 발바닥의 먼지를 털었다.

“선배, 거기 문이 셋이던데요.”

선배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창밖을 봤다. 서관 3층 창 하나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연구실은 밤에 잠기는데도 그랬다.

“돌아올 때는 둘이었지?”

“네.”

“그럼 오늘은 그냥 자.”

“돌아올 때도 셋이면요?”

“그건 너한테 열렸다는 거고.”

선배는 그 말만 하고 벽 쪽으로 돌아누웠다. 나는 새벽 세 시에 깼다. 복도에서 소리가 났다. 문 여는 소리가 아니었다. 나무가 한 겹 한 겹 제자리를 찾아 끼워지는, 목수가 멀리서 대패질하는 것 같은 소리였다. 앞의 두 학교에서는 한 번도 못 들어 본 소리였다.

나는 운동화 없이 나갔다. 서관 계단은 아까보다 더 차가웠다. 삼 층에 사감 선생님은 없었다. 세었다. 여든넷. 끝에 문이 셋이었다.

놋쇠 손잡이를 잡았다. 차가울 줄 알았는데 사람 손을 쥔 것처럼 미지근했다. 돌렸다. 잠겨 있지 않았다.

문 너머에 복도가 하나 더 있었다. 서관 3층과 똑같은 연녹색 벽, 똑같은 나무 바닥인데 끝이 보이지 않았다. 양옆으로 문이 늘어서 있었다. 나는 문턱에 서서 셌다. 왼쪽 일곱, 오른쪽 여섯. 열셋이었다. 문마다 아래 틈으로 빛이 새어 나왔는데 빛의 색이 조금씩 달랐다. 형광등 빛, 백열등 빛, 창호지를 거친 것처럼 누런 빛.

발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내 발소리가 한 박자 늦게 돌아왔다. 누가 뒤에서 나를 따라 걷는 것처럼. 돌아봤다. 아무도 없었다.

가까운 문에 귀를 댔다. 나무가 얇았다. 안쪽에서 라디오 소리가 들렸는데, 노래가 아니라 일기예보였고 강원 영동에 비가 온다고 했다. 그 옆 문에서는 누가 연필을 깎고 있었다. 칼날이 나무를 밀고 나갈 때마다 사각 소리가 나고, 한참 쉬었다가 또 났다. 맞은편 문에서는 아무 소리도 안 났다. 아무 소리도 안 나는 문 앞이 제일 추웠다. 나는 그 문 앞에서 팔을 문질렀다. 소름이 팔꿈치까지 올라와 있었다.

빛 한 줄이 바닥을 따라 흘러와 내 발끝에서 멈췄다. 멈춘 자리에 글자가 떠 있었다.

말 하나

나는 그 글자를 세 번 읽었다. 문 하나를 여는 데 말이 하나 든다는 뜻인지, 말 하나를 두고 가라는 뜻인지 알 수 없었다. 두 번째 학교 교감실의 난로 냄새가 갑자기 났다. 여기에 그런 난로는 없었다.

글자 아래에 한 줄이 더 떠올랐다.

네가 못 한 말

나는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한 이름이 혀끝까지 올라왔다가, 두 번째 학교 교감실에서 그랬던 것처럼 목구멍 안으로 도로 내려갔다. 나는 문턱에서 한 발도 안 움직였다. 문 열세 개가 다 나를 듣고 있는 것 같았다.

1화는 어땠나요?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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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해원작가2026.10.09· 1화

    작가 백해원입니다. 낮에 예순두 걸음이던 복도가 밤에는 여든넷이 됩니다. 1화의 세 번째 문 앞에서, 여러분이라면 무슨 말을 하시겠어요?

  • 달밤에책2026.05.14· 1화

    같은 출발점에서 나온 다른 작품도 읽고 왔는데 완전히 달라서 신기했어요.

    • 백해원작가2026.05.15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 두 줄은 저도 오래 고쳤어요.

세 번째 문 · 밤 열 시, 복도가 스물두 걸음 길어진다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