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006자) · 어촌계 총회
서른여덟
밤의 해안선에서 다시 만나요 · 서지오
만 19세 이상 이용가
재우야.
삼월 이십일 밤. 오늘 초곡 어촌계 총회가 있었다. 형이 칠 년 동안 들은 적 없는 소리를 오늘 들었다. 의자 다리가 바닥을 긁는 소리. 한 번이 아니라 서른여덟 번.
탁기춘은 어젯밤 파출소에서 조사를 받고 새벽에 집에 갔다. 긴급 체포는 안 됐다. 최 경사 말로는 통영 해경 형사과에서 서류를 더 맞추고 있다고 했다. 항적, 장화, 닻줄, 봉투, 황 선장 진술. 그리고 오늘 아침 성민이가 제 발로 통영에 갔다고 했다. 어제 곰바위에서 원을 그린 그 배 선장이 성민이다. 무전 십육 번에 자기 배 이름이 나간 걸 알고 밤새 못 잤단다. 삼촌이 시켰다고, 겁만 주라고 했다고. 그리고 하나 더 말했다고. 칠 년 전 봄부터 여름까지 삼촌 밤 배에서 포대를 받아 통영 어느 창고로 옮겼다고. 포대 안에 뭐가 있었는지는 몰랐다고. 몰랐다는 말은 형사들이 안 믿는 눈치였다고.
아침에 하린이를 사무소 앞에서 만났다. 네 방 교복 주머니에서 나온 스티커 사진을 건넸다. 그 애는 사진을 받아 들고 한참 봤다. 혀를 내민 두 사람. 그 애가 사진을 뒤집었다. 뒷면에 네 글씨가 한 줄 더 있었다. 나는 못 봤던 것이다. 그 애가 소리 내어 읽었다.
“형 오면 셋이 찍자.”
그 애가 사진을 조끼 안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나를 봤다.
“오늘 오후에 저도 가요. 계원 아니어도 뒤에 서 있을 수는 있대요.”
그런데도 탁기춘은 오후 두 시에 수협 이 층 회의실에 나왔다. 양복을 입고. 의장석에 앉았다. 어촌계장이니까. 아직은.
회의실에는 의자가 예순 개쯤 있었다. 계원이 쉰일곱이다. 거의 다 왔다. 뒤쪽 벽에 계원 아닌 사람들이 서 있었다. 수퍼 할매, 하린이, 파출소 순경, 그리고 어머니. 어머니는 총회에 오신 적이 없다. 아버지가 계원일 때도. 오늘은 맨 뒷줄 벽에 등을 대고 서 계셨다. 앞치마 없이.
선풍기가 돌았다. 삼월에 선풍기. 탁기춘이 마이크를 두드렸다. 퉁, 퉁.
“정기 총회 시작하겠습니다. 안건 삼 방치 선박 폐선 건은 해경 압수로 오늘 다루지 않습니다. 대신 긴급 안건 하나 올립니다. 계원 윤도경의 계원 자격 정지 건. 사유는 계원 명예 훼손 및 어촌계 질서 문란.”
회의실이 웅성거렸다. 탁기춘은 그 웅성거림을 기다렸다가 말을 이었다.
“다들 아시다시피 우리 어촌계 기름 외상, 경매장 자리, 수협 대출 보증, 다 내 이름으로 돼 있습니다. 내가 흔들리면 다 흔들립니다. 칠 년 없던 사람이 와서 이 동네를 흔들고 있습니다. 거수로 하겠습니다.”
손이 몇 개 올라갔다. 앞쪽에 앉은 선주들. 기름 외상이 제일 많은 사람들. 올라간 손들이 서로를 곁눈질했다. 올라갔다가 반쯤 내려오는 손도 있었다.
나는 일어섰다. 의자가 바닥을 긁었다. 첫 번째.
“의장님. 발언권 있습니다. 아직 계원이니까요. 명의가 있으니까.”
그 사람이 사무실에서 나한테 한 말을 그대로 돌려줬다. 탁기춘의 눈이 가늘어졌다.
“오 분 주께.”
나는 오 분을 다 쓰지 않았다. 할 말은 짧았다.
“칠 년 전 삼월 십사일 밤 열 시 십 분에 번호 없는 배가 이 부두를 나갔습니다. 제 동생 윤재우가 탔습니다. 그 배는 곰바위 여 남쪽에서 사십 분 머물렀고, 삼백 미터 옮겨 가서 일 분 멈췄고, 두 시에 한 사람만 태우고 돌아왔습니다. 그다음 날 아침 그 배에 제 이름이 붙었습니다. 제 도장으로. 저는 그 시각에 통영 가는 배에 있었습니다. 그저께 저는 그 일 분짜리 자리에 들어가서 제 동생 장화를 건졌습니다. 어머니가 이름 써 주신 장화를. 저는 여기서 누구 자격을 정지하자는 말은 안 하겠습니다. 저는 칠 년 동안 여기 없었으니까요. 다만 이 방에 그날 밤 그 배 소리를 들은 사람이 저 말고 있을 겁니다. 세 번에 한 번 쿵 하고 걸리는 소리.”
나는 앉지 않았다. 서 있었다. 회의실이 조용했다. 선풍기 소리. 누가 기침을 했다. 기침 소리가 크게 울렸다. 탁기춘이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발언 끝났으면 앉아라. 거수 계속하겠습니다.”
그때 의자 하나가 바닥을 긁었다. 두 번째.
황 선장이었다. 가운데 줄. 모자를 손에 쥐고. 오른발을 조금 끌며 일어섰다.
“나 황종구, 칠 년 전 총무. 그날 밤 열 시에 부두에서 그 배 봤다. 재우가 뱃머리에 서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일곱 시에 기춘이가 금고 열쇠 달라 캐서 줬다. 그날 오전에 도경이 도장 찍힌 서류 들어갔다. 나는 칠 년 동안 입 다물었다. 오늘부터 안 다문다.”
그 사람은 앉지 않았다. 서 있었다.
세 번째 의자 소리가 났다. 뒷줄. 명석이였다. 계원이 아닌데 계원 의자에 앉아 있었다. 누가 비켜 줬는지 모른다.
“저 명석이. 삼-일일사 칠 년 몰았습니다. 그 배 옛날 엔진 세 번에 한 번 쿵 했어요. 계장님이 사 년 전에 새 엔진 달아 주면서 옛날 엔진은 조선소에 넘긴다고 가져가셨어요. 그리고 기름 외상으로 칠 년 동안 제 입을 사셨어요. 오늘부터 현금으로 넣을게요. 할매가 대 준다 캤어요.”
뒤쪽 벽에서 수퍼 할매가 크게 말했다.
“이자 없다!”
누가 웃었다. 웃음이 번지다가 멈췄다. 그리고 네 번째 의자 소리가 났다.
앞줄이었다. 아까 손을 들었던 선주 하나. 기름 외상이 제일 많다는 사람. 그 사람은 일어서서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냥 서 있었다. 한참 뒤에 한 마디만 했다.
“나도 그날 밤 그 소리 들었다. 쿵.”
다섯 번째는 스물여섯 살 선주였다. 작년에 아버지 배를 물려받았다는 청년. 네 고등학교 동기다. 그 애는 일어서서 목소리를 가다듬다가 한 번 갈라졌다.
“재우가 그해 봄에 저한테 그랬어요. 그 배 타기 싫다고. 근데 한 번에 오십이라서 끊을 수가 없다고. 저는 그 말 칠 년 동안 아무한테도 안 했어요. 재우가 창피해할까 봐.”
그 애는 말을 끝내고 창밖을 봤다. 눈이 벌갰다.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의자 소리가 이어졌다. 끼익, 드르륵, 턱. 의자마다 소리가 달랐다. 어떤 사람은 말을 했다. 그날 밤 그 소리 들었다. 칠 년 전 봄에 밤마다 그 배가 나가는 거 봤다. 계장한테 대출 보증 받고 입 다물었다. 어떤 사람은 말없이 서기만 했다. 서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이 마을은 말을 멈추는 것으로 알았다. 오늘은 일어서는 것으로 말했다.
나는 셌다. 서 있는 사람을. 물속에서 공기 방울 세듯이. 스물. 스물다섯. 서른.
탁기춘이 마이크를 쥐고 있었다.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선풍기가 그 사람 얼굴에 바람을 보내고 있었다. 이마에 땀이 났다. 그 사람은 늘 더워한다.
“거수, 거수로 하자 캤다. 앉아라. 다 앉아라.”
아무도 앉지 않았다. 탁기춘이 책상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쾅.
“좋다. 내일부터 내 이름으로 된 보증 다 푼다. 기름 외상 다 끊는다. 경매장 자리도 다시 짠다. 그래도 서 있을 기가.”
황 선장이 대답했다. 서 있는 채로.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다.
“풀어라. 칠 년 동안 그거 붙잡고 있느라 다리가 저렸다.”
누가 웃었다. 이번에는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짧게 터졌다가 잦아들었다. 탁기춘의 손바닥이 책상 위에서 천천히 오므라들었다.
서른여섯. 서른일곱.
그리고 뒤쪽 벽에서 발소리가 났다. 계원 자리가 아닌 곳에서.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벽에서 등을 떼고 한 걸음 앞으로 나오셨다. 의자가 없으니까 의자 소리는 없었다. 대신 발소리. 슬리퍼가 회의실 바닥을 한 번 쓸었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안 하셨다. 어제 다 하셨으니까. 그냥 서 계셨다. 계원들 사이에. 아버지가 앉던 자리 근처에.
서른여덟.
탁기춘이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딱. 그 사람은 회의실을 둘러봤다. 서 있는 사람들을 하나씩. 파출소에서 부두 사람들을 셀 때처럼. 누가 여기 있는지 기억해 두려는 듯이. 그런데 이번에는 셀 수가 없었을 거다. 너무 많아서.
회의실 문이 열렸다. 최 경사였다. 그 뒤에 처음 보는 남자 둘. 통영 해경 형사과. 최 경사는 의장석까지 걸어갔다. 선풍기를 껐다. 조용해졌다. 칠 년 동안 이 방에서 한 번도 안 꺼졌을 것 같은 선풍기가 멈추자 회의실이 갑자기 넓어졌다.
“탁기춘 씨. 살인 및 사체 유기,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체포합니다.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고, 진술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수갑 소리가 났다. 짧았다. 철컥. 조용한 방이라 그 소리가 창문까지 울렸다.
탁기춘은 저항하지 않았다. 일어서면서 나를 봤다. 그 눈에 뭐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원망은 아니었다. 그 사람은 끝까지 자기가 이 동네를 붙잡고 있었다고 믿는 얼굴이었다. 그 믿음이 틀렸다는 걸 서른여덟 명이 서서 보여 주고 있었다.
그 사람이 끌려 나갈 때 계단에서 구두 소리가 났다. 딱, 딱, 딱. 한 칸씩. 점점 작아졌다. 칠 년 전 방파제에서 내 발소리가 하린이 귀에서 작아졌을 때처럼.
회의실에 선 사람들은 한동안 앉지 않았다. 앉는 법을 잊은 것처럼. 그러다 황 선장이 먼저 앉았다. 의자가 또 긁혔다. 그다음 사람, 그다음 사람. 앉는 소리도 서른여덟 번이었다.
총회는 부계장이 이어서 했다. 안건 하나가 새로 올라갔다. 누가 발의했는지 모르겠다. 삼-일일사, 수사 종결 후 명의 이전 건. 양수인 칸에 명석이 이름. 명의자 동의가 필요했다. 나는 손을 들었다.
총회가 끝나고 수협 앞에 사람들이 모였다. 아무도 바로 집에 가지 않았다. 할매가 리어카에서 커피를 따랐다. 오늘은 공짜라고 했다. 선주들이 종이컵을 들고 서서 부두를 내려다봤다. 노란 테이프 둘린 삼-일일사가 물결에 흔들렸다. 누가 그 배를 보고 한 마디 했다. 저 배 저래 봐도 속은 튼튼하다. 윤 선장이 원래 좋은 목재 골랐다. 그 배를 처음 만든 게 아버지였다는 걸 나는 그 자리에서 처음 알았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빚 때문에 어머니가 탁기춘한테 넘겼던 배. 탁기춘이 그 배에 번호를 떼고 밤마다 몰았다. 그리고 다시 내 이름을 붙였다. 아버지 배가 한 바퀴 돌아서 아들 이름을 달고 있었던 거다.
최 경사가 커피를 받으면서 말했다. 국과수 결과는 다음 주 목요일쯤. 그러면 장례를 치를 수 있다고. 어머니가 그 말을 들으셨다.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리고 할매한테 커피를 한 잔 더 달라고 하셨다. 설탕 빼고.
재우야. 오늘 이 마을이 그날 밤을 말했다. 서른여덟 명이. 소리를 내서, 서서.
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