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022자) · 뒷산

밥 세 그릇

밤의 해안선에서 다시 만나요 · 서지오

만 19세 이상 이용가

재우야.

사월 사일 밤. 오늘 아침에 너를 보냈다. 초곡 뒷산, 아버지 옆에. 이게 형이 너한테 쓰는 마지막 편지다. 이제부터는 편지 말고 말로 할 거다. 뒷산은 계단 백열일곱 칸보다 가깝다.

순서대로 쓴다. 마지막이니까 천천히.

삼월 이십육일에 국과수에서 연락이 왔다. 최 경사가 파출소에서 전화를 받고 직접 우리 집까지 올라왔다. 계단 백열일곱 칸을 뛰어서. 대문 앞에서 숨을 고르고, 모자를 벗고, 그다음에 들어왔다. 어머니는 수돗가에 계셨다. 미역을 씻고 계셨다. 최 경사가 말했다. 확인됐습니다. 윤재우 씨가 맞습니다. 어머니는 미역을 씻던 손을 멈추지 않으셨다. 한 번 뒤집고, 또 한 번 뒤집고. 그러다 수도를 잠그셨다. 조용해졌다. 조용해진 채로 한참 계시다가 말씀하셨다.

“고맙소.”

최 경사는 모자를 쥔 채로 고개를 숙였다. 오래. 그러고는 대문을 나가다가 돌아서서 나한테만 들리게 말했다. 서랍 속 파란 파일을 이제 통영으로 보낸다고. 삼 년 동안 자기 서랍에 있던 파일이라 보내려니 서운하다고. 모서리가 운 파일. 나는 그 사람한테 고맙다고 했다. 그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자기는 서랍을 열었다 닫았다 한 것밖에 없다고. 연 건 윤도경 씨라고. 아니다. 연 건 하린이다. 그 애가 편지를 썼으니까.

탁기춘은 구속됐다. 살인, 사체 유기, 마약류 밀수. 통영 해경이 옛 엔진을 찾았다. 통영 조선소 창고 구석에. 세 번에 한 번 쿵 하고 걸리던 엔진. 엔진 밑에 포대를 숨기던 칸이 있었다고 했다. 탁기춘은 조사에서 끝까지 재우가 혼자 떨어졌다고 했다고 한다. 닻줄은 걸려서 끊었다고. 형사들이 항적을 보여 주자 그 뒤로는 말을 안 한다고 했다. 이 마을 식으로. 말을 멈추는 것으로. 이번에는 그게 그 사람 혼자만의 방식이 됐다.

성민이는 불구속으로 조사받는다. 장례 첫날 성민이가 회관 마당 끝까지 왔다가 들어오지 못하고 돌아갔다. 명석이가 쫓아가서 뭐라고 했는지 모른다. 둘이 방파제 쪽으로 한참 걸어가는 게 보였다. 돌아온 명석이 눈이 빨갰다. 황 선장은 어촌계 총무를 다시 맡았다. 칠 년 만에. 부계장이 계장 직무를 대행하는데, 첫 번째로 한 일이 기름 외상 장부를 수협으로 넘긴 거다. 이제 기름은 사람한테 빚지는 게 아니라 조합에 빚진다. 명석이가 그 말을 듣고 그게 뭐가 다르냐고 물었다. 황 선장이 대답했다. 조합은 입을 안 산다.

장례는 사월 이일부터 사흘이었다. 초곡에는 장례식장이 없어서 마을회관에서 했다. 회관 마당에 천막을 치고 평상을 폈다. 사흘 동안 백스물세 명이 거의 다 왔다. 칠 년 전 우리 집 대문 앞에서 말을 멈추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대문 안으로 들어왔다. 들어와서 절을 하고, 어머니 손을 잡고, 뭐라고 한 마디씩 했다. 아지매 고생했소. 재우 참 착했다. 그날 밤 그 소리 나도 들었는데. 어떤 할매는 아무 말 없이 어머니 손등을 오래 쓸었다. 어머니는 사흘 동안 그 말들을 다 받으셨다. 칠 년 동안 못 받은 말을 사흘에.

둘째 날 오후에 탁기춘 부인이 왔다. 아들 하나를 데리고. 천막 입구에 서서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회관 마당이 조용해졌다. 칠 년 전 우리 집 앞처럼. 사람들이 그 여자를 보고 말을 멈췄다. 나는 일어나서 천막 입구로 갔다. 그 여자는 나를 보자 허리를 굽혔다. 손에 흰 봉투가 들려 있었다.

“도경 씨. 부조는 아니에요. 이거 탄원서예요. 우리 애 아빠, 나이도 있고 몸도 안 좋고. 유족분이 한 줄만 써 주시면.”

봉투 안에 종이 한 장이 있었다. 이미 다 쓰여 있었다. 서명 칸만 비어 있었다. 양수인 칸이 비어 있던 동의서처럼.

“못 씁니다.”

“한 줄만요. 선처를 바란다고.”

“칠 년 전에 계장님이 어머니한테 봉투를 하나 주고 가셨습니다. 그 봉투도 한 장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그걸 칠 년 동안 못 쓰셨습니다. 저도 이건 못 씁니다.”

그 여자 얼굴이 무너졌다. 옆에 선 아들이 어머니 팔을 잡았다. 스무 살쯤. 그 애가 나를 봤다. 칠 년 전 너만 한 나이였다. 그 애 눈에서 원망 같은 걸 봤다. 나는 그 원망을 받았다. 받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내 어머니가 천막 안에서 나오셨다. 탁기춘 부인 앞에 서셨다. 봉투를 받지 않으셨다. 대신 그 여자 손을 잡으셨다.

“밥은 묵고 가소.”

그 여자가 울었다. 어머니는 그 여자를 평상에 앉히고 국을 퍼 오셨다. 탄원서는 끝까지 안 받으셨다. 밥만 주셨다. 그 여자는 국을 반도 못 먹고 갔다. 아들이 그 뒤를 따라가다가 한 번 돌아봤다. 나는 그 애가 모퉁이를 돌 때까지 서 있었다.

하린이는 사흘 내내 회관 부엌에 있었다. 사무소에 휴가를 냈다고 했다. 국을 퍼고 설거지를 했다. 둘째 날 밤에 명석이가 부엌에서 전을 부치다가 기름이 튀어 소리를 질렀다. 하린이가 뒤집개를 뺏어서 대신 부쳤다. 명석이는 옆에서 계속 말했다. 형 장어는 이렇게 안 튀는데, 장어는 기름이 속에 있어서, 아니 장어 얘기가 아니라…… 하린이가 전 한 장을 명석이 입에 넣었다. 명석이가 조용해졌다. 회관 마당에서 그걸 보던 할매들이 웃었다. 장례식장에서 웃으면 안 된다는 법은 초곡에 없다. 너는 그걸 좋아했을 거다. 너는 웃음이 많았으니까.

발인은 오늘 아침 일곱 시였다. 관은 명석이, 황 선장, 네 고등학교 동기, 최 경사, 그리고 나. 다섯이 들었다. 한 자리가 비었다. 비어서 관이 한쪽으로 조금 기울었다. 그때 하린이가 와서 그 자리를 잡았다. 앞치마를 두른 채로.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여섯이 됐다.

뒷산 오르는 길에 바다가 보였다. 곰바위 여 쪽. 오늘은 물이 맑았다. 수면에 햇빛이 부서져서 눈이 아팠다. 그 밑 삼십팔 미터는 오늘도 조용할 거다. 너는 이제 거기 없다.

아버지 옆에 너를 뉘었다. 흙을 덮을 때 어머니가 삽을 달라고 하셨다. 첫 삽을 어머니가 뜨셨다. 흙이 관 뚜껑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툭. 그 소리는 한 번이었는데 오래 갔다. 산에서는 소리가 멀리 간다. 두 번째 삽은 내가 떴다. 그다음은 명석이, 하린이, 황 선장. 삽이 돌아가는 동안 산에서 새소리가 났다. 딱새 한 마리가 무덤가 소나무에서 꼬리를 떨며 울었다. 사월 초 산에는 바람이 바다보다 부드럽다. 흙냄새가 났다. 삼십팔 미터 바닥에서는 맡을 수 없는 냄새. 너는 이제 이 냄새 속에 있다.

오후에 집에 돌아왔다. 어머니는 바로 부엌으로 들어가셨다. 나는 마당 수돗가에서 삽에 묻은 흙을 씻었다. 수도를 끝까지 틀었다. 물이 양철 대야를 때렸다. 칠 년 전 그날 오후처럼. 그 소리 밑에서 나는 입을 열어 봤다. 네가 그날 했던 말. 하린이가 전해 준 말. 형이 있으면 안 무섭다. 물소리가 그 말을 덮었다. 덮어도 괜찮았다. 이번엔 형이 한 말이니까. 형은 들었으니까.

밤 열두 시 반에 방파제에 갔다. 하린이하고 명석이도 왔다. 약속한 적은 없다. 셋이 가로등 끝나는 자리에서 만났다. 거기서부터 오십 걸음을 같이 걸었다. 발소리가 셋이었다. 이음매마다 셋 다 조금씩 달랐다. 명석이는 발을 질질 끌었고, 하린이는 가볍게 디뎠고, 나는 오른발을 끌었다.

끝에 서서 남서쪽을 봤다. 등대가 사 초에 한 번 돌았다. 빛이 바다를 쓸고 지나갈 때마다 물결 끝이 은빛으로 떴다가 가라앉았다. 칠 년 전 이 자리에서 하린이는 혼자 세 시간 사십 분을 서 있었다. 어머니는 칠 년 동안 해마다 한 번씩 여기 서 계셨다. 형은 오늘 셋이서 섰다. 혼자 서는 자리와 셋이 서는 자리는 같은 자리인데 다른 자리다. 바람이 등을 밀어 주는 데가 다르다. 열두 시 오십 분이 됐다. 우리는 셋 다 귀를 세웠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파도, 부표, 등대 기계.

하린이가 한참 있다가 말했다.

“오늘은 안 들려요.”

칠 년 동안 매일 밤 그 애 귀에서 다시 돌던 소리. 사람 목소리였는지 갈매기였는지 모를 그 한 번. 오늘은 안 들렸다. 그 애는 그 말을 하고 울지 않았다. 대신 쌍화차 캔을 셋 꺼냈다. 명석이가 하나를 받다가 또 놓쳤다. 캔이 테트라포드 사이로 굴러 떨어졌다. 퐁, 하고 물이 받아 갔다. 명석이가 바다를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재우 형 거예요. 제 거 아니에요. 원래 재우 형 거 하려고 했어요.”

하린이가 웃었다. 나도 웃었다. 바다가 트림을 했다. 꼬르륵. 명석이가 그 소리를 듣고 바다가 쌍화차 맛있다고 한다고 했다. 하린이가 명석이 등을 쳤다. 그 소리까지 바다로 갔다.

이 편지들은 어머니 방 라디오 옆에 둘 거다. 열 통. 부치지 않은 편지. 어머니가 읽으실지 안 읽으실지는 모르겠다. 어머니는 칠 년 동안 라디오로 파고를 들으셨다. 이제 파고 말고 다른 것도 들으시면 좋겠다.

형은 초곡에 남는다. 영도 선배가 통영에 작은 인양 일을 소개해 줬다. 명석이는 삼-일일사가 돌아올 때까지 형 따라 물에 들어가기로 했다. 첫 수업에서 수신호를 배웠다. 명석이는 물속에서 말을 못 하니까 손으로 하도 떠들어서 공기를 남들 두 배로 쓴다. 배는 수사가 끝나면 명석이 이름으로 넘어간다. 서류에 명의자 동의 칸이 있다. 형이 도장을 찍을 거다. 이번엔 형 손으로.

집에 돌아왔을 때 새벽 한 시였다. 대문이 열려 있었다. 마루 건너 네 방 문도 열려 있었다. 자물쇠가 문고리에 걸리지 않고 그냥 문 옆 못에 걸려 있었다. 칠 년 만에 처음으로 그 방 불이 켜져 있었다. 마루에 불이 켜져 있었다. 어머니가 안 주무시고 계셨다. 상이 차려져 있었다. 새벽 한 시에.

밥 세 그릇, 미역국 세 그릇. 하나는 들깨, 하나는 소고기, 하나는 어머니 드실 맑은 국. 수저 세 벌.

어머니가 상 앞에 앉아 계셨다. 문지방이 아니라. 한 자리는 내 자리, 한 자리는 어머니 자리, 그리고 창문 쪽 자리. 네 자리. 들깨 미역국이 놓인 자리. 무말랭이 접시가 그 앞에 있었다.

“앉아라.”

나는 앉았다. 어머니가 네 그릇에서 밥을 한 숟가락 떠서 들깨 국에 말았다. 네가 늘 그렇게 먹었으니까. 그러고는 말씀하셨다.

“인자 바다에 안 준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 대신 숟가락을 들었다. 소고기 미역국이었다. 뜨거웠다. 목이 아팠다. 열흘 전 그 저녁상에서처럼.

칠 년 동안 새벽마다 싸서 바다에 붓던 한 그릇이 오늘 밤 상 위에 올라왔다. 어머니와 나 사이에. 김이 올라왔다. 들깨 냄새가 났다.

재우야. 어머니가 오늘 밥을 세 그릇 퍼셨다.

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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