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018자) · 파란 대문
잠긴 방
밤의 해안선에서 다시 만나요 · 서지오
만 19세 이상 이용가
재우야.
삼월 십구일 밤 열한 시. 네 방에서 쓴다. 네 책상에서. 오늘 어머니가 자물쇠를 풀어 주셨다. 그리고 오늘 이 마을에서 두 사람이 더 입을 열었다. 황 선장, 그리고 어머니. 넷이다.
아침부터 마을이 이상했다. 어제 일이 벌써 다 퍼져 있었다. 수퍼 앞 평상에 할매들이 모여 있다가 내가 지나가니까 말을 멈췄다. 칠 년 전하고 같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멈춘 다음에 한 할매가 일어나서 내 손을 잡았다. 아무 말 없이. 손을 잡고 한 번 흔들고 놓았다. 다음 할매도 그랬다. 셋이 차례로. 멈추는 건 같았는데 그다음이 달랐다. 칠 년 전엔 멈추고 끝이었다. 오늘은 멈추고 손을 잡았다.
낮에 최 경사가 왔다. 인양한 것들은 어제 통영으로 갔다. 국과수. 이 주 걸린다고 했다. 닻줄 끊긴 자국은 칼이라고, 감식하는 사람이 사진만 보고도 말했다고. 그리고 총회 안건 삼은 오늘 오전에 해경이 삼-일일사를 증거물로 압수하면서 저절로 빠졌다. 배는 부두에 그대로 있다. 뱃전에 노란 테이프가 둘렸다. 명석이는 그 테이프 앞에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웠다. 담배 안 피우는 애가.
“형, 저 이제 배도 없어요. 압수래요. 저 뭐 해요.”
“해경이 압수한 배는 수사 끝나면 돌려준다.”
“언제요?”
“모르지.”
“그동안 저는요.”
“형 따라다녀라. 잠수 다시 배워.”
명석이가 담배를 바닥에 비볐다. 그러고는 한참 있다가 말했다.
“물속에서는 말을 못 하잖아요.”
“그러니까 배우라는 거다.”
명석이가 웃었다. 어제 이후 처음으로.
“근데 형, 물속에서 말 못 하면 저 답답해서 죽어요.”
“수신호가 있다.”
“수신호로 욕도 돼요?”
“된다.”
명석이가 그 자리에서 손가락으로 뭘 해 보였다.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른 척했다.
오후 네 시에 황 선장이 민박으로 찾아왔다. 내가 집에 짐을 옮기는 중이었다. 황 선장은 민박 마당에 서서 들어오지도 않고 모자를 벗어 손에 쥐었다. 오른발을 끄는 걸음으로 두 번 왔다 갔다 하다가 말했다.
“도경아. 그저께 내가 하다 만 말 있제.”
“네.”
“그날 밤 열 시쯤 내가 부두에서 그물 손보는데, 번호 없는 그 배가 나갔다. 재우가 뱃머리에 서 있었다. 내가 봤다. 불빛 밑에서. 그라고 다음 날 아침 일곱 시에 기춘이가 우리 집에 와서 금고 열쇠를 달라 캤다. 나는 총무였다. 줬다. 그날 오전에 니 도장 찍힌 등록 서류가 들어갔다. 나는 그걸 가을에 알았다. 알고 총무 그만뒀다. 그만두기만 했다. 말은 안 했다.”
그 사람은 모자를 비틀었다. 챙이 구겨졌다.
“내일 총회에서 말할란다. 니 아부지한테 칠 년 동안 미안했다.”
그 사람은 대답을 안 기다리고 돌아섰다. 걸음이 올 때보다 빨랐다. 오른발은 여전히 끌었다.
저녁 일곱 시에 탁기춘이 우리 집에 왔다.
대문 경첩이 끼익 소리를 냈다. 나는 마루에 앉아 있었고 어머니는 부엌에 계셨다. 탁기춘은 슬리퍼가 아니라 구두를 신고 왔다. 양복까지 입었다. 손에 과일 바구니를 들고. 칠 년 전 아버지 장례식 때 입었던 그 양복 같았다. 어깨가 조금 끼었다.
“아지매요.”
어머니가 부엌에서 나오셨다. 앞치마에 손을 닦으시면서. 탁기춘은 과일 바구니를 마루 끝에 놓았다. 나를 보지 않았다. 어머니만 봤다.
“아지매, 내 오늘 긴말 안 할랍니다. 도경이 좀 말리 주이소. 내일 총회에서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는데, 이 동네 다 먹고사는 문제 걸려 있습니다. 어촌계 대출, 기름, 경매장 자리. 내가 십이 년 동안 다 붙잡고 있었습니다. 내가 흔들리면 이 동네 배 스무 척이 다 흔들립니다.”
그 사람은 그 말을 할 때 정말로 걱정하는 얼굴이었다. 그게 제일 무서웠다. 자기 말이 맞다고 믿는 얼굴.
“그라고 아지매. 칠 년 전 그날 밤 일은, 아지매가 제일 잘 아시지 않습니까?”
어머니의 손이 앞치마 위에서 멈췄다.
나는 그 멈춤을 봤다. 칠 년 전 그날 새벽에도 누가 이 대문을 열었다는 걸 형은 몰랐다. 형은 그날 새벽 여섯 시 반 배를 타려고 다섯 시에 집을 나섰다. 그 전에 누가 왔다 갔는지 몰랐다. 어머니 방문은 닫혀 있었고, 나는 인사도 안 하고 나갔다.
어머니가 부엌으로 들어가셨다. 탁기춘이 한숨을 쉬었다. 됐다는 한숨이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다시 나오셨다. 손에 열쇠가 들려 있었다. 작은 놋쇠 열쇠. 어머니는 마루를 건너 네 방 앞에 서셨다. 자물쇠를 여셨다. 딸깍. 매일 아침 벽 너머로 듣던 그 소리.
문이 열렸다. 햇빛 냄새가 났다. 이불 냄새. 그리고 그 밑에 희미하게, 오래된 휘발유와 쇠 냄새. 네 오토바이 헬멧이 방구석에 있었다. 네 방은 칠 년 전 그대로였다. 먼지 하나 없이. 어머니가 매일 아침 닦으셨으니까. 책상 위 연필꽂이의 연필들까지 깎여 있었다. 책상, 벽에 붙은 오토바이 포스터, 옷걸이의 교복 재킷. 어머니는 책상 서랍을 여셨다. 맨 아래 칸. 그 안에서 흰 봉투 하나를 꺼내셨다. 누렇게 바랜 봉투. 봉해져 있지 않았다. 봉투 앞면에 볼펜 글씨가 있었다. 두 글자.
일당.
어머니가 그 봉투를 들고 마루로 나오셨다. 탁기춘 앞에 서셨다. 그리고 입을 여셨다. 칠 년 동안 나한테는 한 번도 안 여신 입을. 목소리가 쉬어 있었다. 오래 안 쓴 목소리.
“기춘아.”
탁기춘이 굳었다. 어머니는 그 사람을 이름으로 부르셨다. 계장님이 아니라. 아버지 친구, 동네 동생을 부르듯이.
“그날 밤 새벽 세 시에 니가 이 대문 두드렸다. 이거 주고 갔다. 이십만 원. 재우 일당이라 캤다. 재우는 니 배 안 탔다고, 누가 물으면 그래 말하라 캤다. 재우는 친구 집에 간다고 나갔다고.”
어머니 손이 떨렸다. 봉투가 떨렸다. 마당 수도꼭지에서 물방울이 한 방울씩 대야에 떨어졌다. 똑. 한참 있다가 또 똑. 그 소리 사이가 길었다. 아무도 숨을 크게 쉬지 않았다.
“재우는 나갈 때 나한테 말했다. 계장 배 탄다고. 마지막이라고. 갔다 와서 형하고 통영 간다고. 나는 그 말 들었다. 근데 니가 이거 주고 갔을 때 나는 받았다. 빚이 있었다. 윤 선장 가고 빚이 천만 원이 넘었다. 니가 그 빚 다 알고 있었제.”
탁기춘이 입을 열었다.
“아지매, 그건…….”
“듣고 있어라.”
어머니 목소리가 올라갔다. 마당이 다 울렸다. 물소리보다 컸다.
“나는 받아 놓고 한 푼도 못 썼다. 칠 년 동안 이 서랍에 있었다. 이 봉투 있는 방에 누가 들어가면 안 되니까 자물쇠 걸었다. 그리고 매일 새벽에 밥 두 그릇 쌌다. 재우 올지도 모르니까. 안 오면 바다에 주라고. 밥으로 갚을라 캤다. 이십만 원을. 칠 년을 쌌는데 못 갚았다.”
어머니가 봉투를 탁기춘 가슴에 대고 미셨다. 탁기춘은 받지 않았다. 봉투가 그 사람 양복 앞섶에서 미끄러져 마루에 떨어졌다. 만 원짜리 스무 장이 봉투 입구로 삐져나왔다. 칠 년 전 지폐. 지금은 안 쓰는 옛날 도안도 섞여 있었다.
“가져가라. 그라고 내일 총회에서 니가 말해라. 니가 안 하면 내가 한다.”
탁기춘은 봉투를 내려다봤다. 줍지 않았다. 그 사람은 한참 서 있다가 나를 봤다. 오늘 이 집에 와서 처음으로. 그 눈에는 무지갯빛이 없었다. 부두 바닥에 고인 기름 밑의 물처럼 탁했다.
“도경아. 니 동생은 내가 안 밀었다. 지가 떨어졌다.”
그 말은 조용했다. 어머니가 비틀하셨다. 내가 어머니 팔을 잡았다.
“닻줄은 누가 끊었습니까?”
탁기춘이 대답하지 않았다.
“떨어진 사람이면 건지셨어야지요. 계장님은 저보다 물을 오래 아셨잖아요. 사십 분 머문 자리에서 삼백 미터 옮겨 가서 일 분. 그 일 분 동안 닻을 내렸다가 줄을 끊으셨습니다. 떨어진 사람을 건지는 데는 일 분이 모자랍니다. 버리는 데는 남고요.”
탁기춘이 돌아섰다. 대문 쪽으로. 대문 밖에 최 경사가 서 있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른다. 내가 낮에 오늘 저녁 탁 계장이 올 것 같다고 말해 두었다. 최 경사 옆에 순경이 있었다. 수퍼 할매 손자. 그 뒤에 할매가 있었다. 리어카를 끌고.
최 경사가 말했다.
“탁기춘 씨. 지금 하신 말씀, 저도 들었습니다. 파출소로 같이 가 주셔야겠습니다.”
탁기춘은 아무 말 없이 대문을 나갔다. 구두 굽이 대문 턱에 걸려 한 번 딱 소리를 냈다. 순경이 옆에 붙었다. 수갑은 안 채웠다. 아직은. 할매가 리어카를 비켜 주면서 한 마디 했다.
“기춘아, 니 양복 어깨 낀다. 살쪘네.”
그 사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할매는 그 등을 끝까지 보다가 리어카 손잡이를 다시 잡았다.
마당이 조용해졌다. 마루에 봉투가 떨어져 있었다. 어머니가 그걸 주우려고 허리를 굽히셨다. 내가 먼저 주웠다. 최 경사한테 줄 거다. 증거물이다. 어머니가 내 손에 들린 봉투를 보시다가 말씀하셨다.
“도경아.”
칠 년 만에 들은 내 이름이었다. 어머니 목소리로.
“니 보면 그 봉투 받은 내가 보였다. 그래서 말을 못 했다. 니는 돌아섰고 나는 받았다. 우리 둘 다 재우를 두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앞치마를 풀어 마루에 놓으셨다. 그러고는 부엌으로 들어가시면서 말씀하셨다. 등을 보이고.
“밥 묵자.”
저녁상은 여덟 시에 나왔다. 밥 두 그릇, 국 두 그릇. 수저 두 벌. 어머니는 상 앞에 앉으셨다. 문지방이 아니라. 내 맞은편에. 우리는 말없이 먹었다. 국이 달랐다. 들깨 미역국이 아니라 소고기 미역국이었다. 내가 어릴 때 좋아하던 국. 너는 들깨, 나는 소고기. 칠 년 동안 이 집 미역국은 들깨였다. 오늘은 소고기였다. 어머니는 그 국을 언제 끓이셨는지 모르겠다. 탁기춘이 오기 전에. 오늘 이 상에 누가 앉을지 알고 계셨던 거다. 숟가락이 그릇에 닿는 소리만 났다. 그 소리가 칠 년 만에 두 벌이었다.
다 먹고 어머니가 열쇠를 내 손에 쥐여 주셨다. 네 방 열쇠. 그리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라디오가 켜졌다. 이번에는 볼륨이 조금 컸다.
그래서 지금 네 방이다. 네 책상. 교복 재킷이 옷걸이에 걸려 있다. 주머니에 뭐가 있나 봤다. 오토바이 열쇠하고, 하린이랑 찍은 스티커 사진 한 장. 두 사람 다 혀를 내밀고 있다. 사진 귀퉁이에 네 글씨로 날짜가 적혀 있다. 이천십구 년 삼월 구일. 닷새 전이다. 그날 너는 혀를 내밀 수 있었다. 형은 이 사진을 하린이한테 줄 거다. 네 방에서 나간 두 번째 물건이다. 첫 번째는 봉투였다.
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