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024자) · 곰바위 여
삼십팔 미터
밤의 해안선에서 다시 만나요 · 서지오
만 19세 이상 이용가
재우야.
삼월 십팔일 밤. 오늘 형이 곰바위 여 남쪽 삼십팔 미터에 들어갔다 왔다. 손이 아직 떨린다. 추워서가 아니다. 드라이슈트 안은 따뜻했다. 이 편지는 천천히 쓴다. 올라올 때처럼.
아침 여덟 시에 부두를 떠났다. 삼-일일사. 명석이가 키를 잡고, 최 경사가 비번이라 사복을 입고 탔다. 하린이는 사무소에 반차를 냈다. 뱃머리에 앉아서 무전기를 무릎에 올려놓고 있었다. 영도에서 부친 장비는 어제 저녁 여객선으로 왔다. 상자를 여니 칠 년 동안 맡던 냄새가 났다. 네오프렌 고무 냄새, 실리콘 냄새, 소금기 밴 가방 냄새. 드라이슈트 목 부분에 선배가 테이프로 쪽지를 붙여 놨다. 천천히.
배가 부두를 벗어나자 하린이가 가방에서 캔을 꺼냈다. 쌍화차. 네 개였다.
“오늘은 네 개 샀어요. 할매가 또 웃었어요.”
“나는 안 마신다.”
“알아요. 오빠 건 올라와서 마시라고요. 물에서 나오면 추우니까.”
명석이가 조타실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자기 것도 있냐고. 하린이가 하나를 던졌다. 명석이가 받다가 놓쳤다. 캔이 갑판을 굴러 배수구 쪽으로 갔다. 최 경사가 발로 막았다. 사복 입은 경찰이 쌍화차 캔을 발로 멈추는 걸 보고 하린이가 웃었다. 그 애가 웃는 걸 칠 년 만에 처음 봤다. 짧았지만 봤다.
곰바위 여는 물 위에서 보면 아무것도 없다. 바다가 그냥 조금 더 짙을 뿐이다. 명석이가 새 플로터에 옛 좌표를 찍고 배를 몰았다. 화면 속 삼각형이 초록 점을 향해 갔다. 칠 년 전 그날 밤 네가 탄 배가 갔던 길을 같은 배가 다시 갔다. 엔진 소리만 달랐다.
열 시 십오 분에 좌표 위에 섰다. 명석이가 엔진을 껐다. 조용해졌다. 뱃전에 물이 찰싹이는 소리, 갈매기 두 마리, 멀리 양식장 부표. 물살이 약해지고 있었다. 조금 때다. 바다가 숨을 멈추는 한 시간.
부표를 던져 하강 줄을 내렸다. 추가 바닥에 닿는 느낌이 줄을 타고 손에 왔다. 삼십팔 미터. 하린이가 무전기를 들고 나를 봤다. 아무 말도 안 했다. 최 경사가 시계를 봤다. 입수 시각을 적었다. 열 시 이십이 분. 명석이는 조타실 문틀을 잡고 있었다. 칼자국 세 줄 위를.
“형, 삼십 분이에요. 삼십 분 넘으면 제가 줄 당깁니다. 세 번. 진짜로 당깁니다.”
“다섯 번 당겨도 안 올라간다. 올라올 때는 중간에 쉰다.”
“그 쉬는 거 몇 분인데요.”
“오 미터에서 삼 분.”
“삼 분 동안 뭐 해요, 물속에서?”
“숨 쉰다.”
명석이가 그 말에 웃으려다 말았다. 나는 뒤로 넘어가며 물에 들어갔다.
물은 차갑다가 금방 조용해진다. 수면 밑 일 미터만 내려가도 위의 소리가 꺼진다. 대신 내 숨소리가 커진다. 조절기를 물고 들이쉬면 쉬익, 내쉬면 보글보글, 거품이 귀 옆을 지나 위로 올라간다. 하강 줄을 잡고 내려갔다. 십 미터. 빛이 초록이 됐다. 이십 미터. 초록이 회색이 됐다. 귀가 눌렸다. 코를 쥐고 불어서 풀었다. 삼십 미터. 랜턴을 켰다. 빛이 물속 먼지를 비추며 하얀 기둥을 만들었다. 삼십팔 미터. 바닥.
곰바위 여 남쪽 사면은 바위와 모래가 반반이다. 바위 틈마다 해초가 흔들리고, 그 사이로 볼락이 떼로 지나갔다. 물살은 거의 없었다. 나는 나침반을 보고 북동쪽으로 헤엄쳤다. 사십 분 머문 자리에서 일 분 멈춘 자리까지 삼백 미터. 하강 줄은 일 분짜리 자리에 내렸으니까, 여기가 거기다. 반경 이십 미터를 원을 그리며 돌았다. 바위 하나, 또 하나. 랜턴 빛이 닿는 데까지만 세상이었다.
바닥은 조용했다. 삼십팔 미터에서는 파도 소리가 없다. 위에서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여기까지는 안 내려온다. 칠 년 동안 이 바닥은 이렇게 조용했을 거다. 네가 여기 온 뒤로 매일. 바위에 붙은 멍게가 랜턴 빛에 붉게 빛났다. 모래 위에 게 한 마리가 옆으로 달아나며 작은 자국을 남겼다. 그 자국도 곧 물에 지워졌다. 이 바닥에서는 발자국이 오래 안 간다. 오래 가는 건 무거운 것뿐이다.
칠 분째에 그물이 보였다.
오래된 자망 한 폭이 바위 두 개 사이에 걸려 있었다. 그물코마다 따개비와 해초가 엉겨서 그물이라기보다 바위에 난 털 같았다. 칠 년. 칠 년이면 그물은 바위가 된다. 나는 랜턴을 그물에 가까이 댔다. 그물 아래, 바위와 모래 사이에 뭔가가 있었다. 검고, 둥글고, 길쭉한 것. 고무.
장화였다.
재우야. 여기서 형은 한참 멈췄다. 조절기에서 거품이 올라가는 소리만 들렸다. 쉬익, 보글보글. 그 소리를 세면서 멈춰 있었다. 물속에서 멈추면 안 된다. 공기가 준다. 그래도 멈췄다.
장화 옆면에 흰 글씨가 있었다. 매직으로 쓴 글씨. 반쯤 지워졌는데 읽을 수 있었다. 어머니 글씨였다. 우리 둘 다 같은 장화를 신었으니까 어머니가 헷갈리지 말라고 이름을 써 주셨다. 내 것에는 도경, 네 것에는 재우.
재우.
장화 안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여기 쓰지 않는다. 형은 그걸 건졌다. 인양 백을 펴서 그물을 칼로 한 코씩 끊고, 모래를 손으로 헤치고, 장화와 그 곁에 있던 것들을 천천히 담았다. 손목시계 하나. 아버지가 네 고등학교 입학 때 사 준 은색 시계. 줄이 삭아서 몸통만 남았다. 그리고 그 옆, 모래에 반쯤 묻힌 쇠붙이. 녹이 슬어 덩어리가 된 닻 하나. 줄이 달려 있었다. 줄 끝은 끊겨 있었다. 칼로 끊은 자국처럼 곧았다.
인양 백에 공기를 조금 넣어 띄울 준비를 할 때였다.
위에서 소리가 왔다.
스크루 소리. 멀리서, 점점 커지는. 명석이 배는 엔진을 꺼 두었다. 이건 다른 배다. 고속으로 오는 소리. 웅웅웅웅, 물을 긁는 소리가 머리 위를 지나가고, 돌고, 다시 지나갔다. 원을 그리고 있었다. 하강 줄 부표 주위를.
영도 선배들이 제일 먼저 가르친 것. 위에서 뭐가 오는지는 귀로 안다. 스크루 소리가 머리 위에 있을 때는 올라가면 안 된다.
나는 하강 줄을 잡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천천히. 삼십 미터. 이십 미터. 스크루 소리가 더 커졌다. 십 미터. 빛이 초록으로 돌아왔다. 올려다보니 수면에 배 밑창 두 개가 보였다. 하나는 가만히 떠 있고, 하나는 흰 물거품을 끌며 돌고 있었다. 오 미터. 여기서 삼 분을 쉬어야 한다. 질소를 빼야 한다. 안 쉬고 올라가면 몸이 망가진다.
나는 멈췄다. 오 미터에서. 하강 줄을 잡고. 인양 백을 가슴에 끌어안고.
머리 위를 스크루가 지나갔다. 웅웅웅웅. 물이 흔들려 몸이 줄에 부딪혔다. 거품이 얼굴을 덮었다. 지나갔다.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더 가까이. 배 밑창의 따개비가 보일 만큼. 나는 줄을 더 세게 잡았다. 삼 분. 조절기 소리를 셌다. 쉬익, 보글보글. 한 번에 사 초쯤. 마흔다섯 번 세면 삼 분이다.
스무 번쯤 셌을 때 물 위에서 소리가 났다. 물속까지 들리는 소리. 무전기 스피커 소리였다. 누가 볼륨을 끝까지 올린 거다. 명석이 목소리가 물을 뚫고 내려왔다. 뭉개졌는데 알아들을 수 있었다.
“성민아! 사람 들어가 있다! 잠수부 들어가 있다고! 십육 번 다 듣는다! 해경도 듣는다! 니 지금 곰바위 남쪽에서 잠수부 위로 원 그리고 있다!”
십육 번 채널. 조난 호출 채널. 이 바다 모든 배가 켜 놓는 채널. 명석이는 그 채널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황 선장 욕보다 크게. 이 바다에 떠 있는 배들이 다 들었을 거다. 통영 해경 상황실도.
스크루 소리가 멈칫했다. 그러다 멀어졌다. 웅웅웅, 웅, 웅. 점점 작아졌다. 사라졌다.
마흔다섯 번까지 셌다. 올라갔다.
수면에 머리를 내밀자 하린이 얼굴이 제일 먼저 보였다. 뱃전에 매달려 있었다. 최 경사가 내 팔을 잡아 끌었다. 명석이는 무전기를 든 채로 조타실에 서 있었다. 목소리가 쉬어 있었다.
“형, 삼십 분 넘었어요. 제가 줄 세 번 당겼는데 안 올라와서. 성민이 배가 와서. 저 성민이한테 욕했어요. 십육 번으로. 해경이 다 들었어요. 저 이제 진짜 망했어요.”
나는 인양 백을 뱃전 위로 올렸다. 최 경사가 받았다. 하린이가 백 입구로 삐져나온 장화 코를 봤다. 흰 글씨를 봤다. 그 애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대신 무릎을 꿇고 앉아서 장화 코를 손바닥으로 한 번 쓸었다. 칠 년 전 오토바이 뒷자리에서 네 등을 잡던 손으로.
최 경사가 무전기를 들었다. 자기 휴대 무전기. 공식 채널.
“통영 상황실, 초곡 파출소 최 경사입니다. 곰바위 여 남쪽, 칠 년 전 실종자 유류품 발견. 인양 완료. 현장 좌표 보존 요청합니다. 그리고 방금 잠수 작업 중인 선박 주위에서 위협 운항한 선박 확인했습니다. 선명은…….”
그 사람은 선명을 불렀다. 탁기춘 조카 이름으로 된 배.
최 경사가 무전을 끝내고 나한테 말했다. 조용하게.
“유전자 감식이 이 주쯤 걸립니다. 그래도 오늘로 재수사는 열립니다. 유류품에 좌표에 항적까지. 중지 사건이 이만큼 한꺼번에 움직이는 건 처음 봅니다.”
“총회가 모레입니다.”
“압니다. 탁기춘 씨는 모레 총회에서 이 배를 부수겠다고 할 겁니다. 증거물이 된 배를요. 그건 제가 막겠습니다. 압수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을 잡으려면 한 가지가 더 있어야 됩니다. 그날 밤 그 사람이 재우 씨를 태웠다는 걸 본 사람, 아니면 그 뒤에 그 사람이 한 일을 아는 사람.”
하린이가 고개를 들었다.
“제가 봤어요.”
“하린 씨는 탄 걸 봤습니다. 멀리서, 밤에. 칠 년 전에도 그 진술로는 안 됐습니다. 그날 밤 그 뒤를 아는 사람이 이 마을에 있을 겁니다. 이 마을은 다 아니까요.”
돌아오는 길에 명석이는 엔진을 천천히 몰았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인양 백은 갑판 가운데 얼음칸 옆에 놓였다. 하린이가 그 옆에 앉아 있었다. 바람에 백이 조금 흔들리면 손을 얹었다.
재우야. 형이 칠 년 만에 너를 건졌다. 삼백 걸음에서 돌아섰던 형이 삼십팔 미터를 내려갔다. 오 미터에서 삼 분을 기다렸다. 올라가고 싶을 때 안 올라가는 것. 그게 물속에서 제일 어려운 거라고 쓴 적 있지. 칠 년 전 형은 그 반대를 했다. 기다려야 할 때 돌아섰다.
부두에 닿았을 때 어머니가 서 계셨다. 보온 가방 없이. 누가 연락했는지 모른다. 이 마을에서는 사흘 걸리는 소식이 오늘은 한 시간 만에 갔다. 십육 번 채널 덕에.
어머니는 인양 백을 보셨다. 장화 코를 보셨다. 흰 글씨를 보셨다. 자기가 쓴 글씨를.
그러고는 처음으로 나를 똑바로 보셨다. 칠 년 동안 비껴가던 눈이 오늘은 비껴가지 않았다.
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