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013자) · 새벽 부두

일 분

밤의 해안선에서 다시 만나요 · 서지오

만 19세 이상 이용가

재우야.

삼월 십육일 저녁 여덟 시. 파출소에서 막 나왔다. 오늘 명석이가 입을 열었다. 둘이다. 그리고 형은 네가 탔던 밤을 화면으로 봤다. 초록 선 하나로.

새벽 세 시 반에 부두에서 소리가 났다. 엔진 두 대. 하나는 명석이 배, 하나는 처음 듣는 소리였다. 낮고 굵은, 큰 배 소리. 나는 민박 창문을 열었다. 부두 형광등 밑에 예인선이 한 척 들어와 있었다. 통영 조선소 이름이 선체에 적혀 있었다. 그 예인선에서 밧줄이 던져졌고, 성민이가 그 밧줄을 삼-일일사 뱃머리 쪽 계선주에 걸고 있었다. 어제 내가 한 번 더 꼬아 맨 매듭 옆에.

바지를 입다가 한쪽 다리가 걸려서 방바닥에 넘어졌다. 민박 주인이 아래층에서 뭐 떨어졌냐고 소리쳤다. 사람이 떨어졌다고 대답할 틈이 없었다. 계단 백열일곱 칸을 몇 걸음에 내려갔는지 모르겠다. 부두에 닿았을 때 숨이 턱에 찼다.

탁기춘이 계선주 옆에 서 있었다. 장화에 방수복. 옆에 어촌계 선주 몇이 서 있었다. 새벽 경매 전이라 부두에 사람이 많았다. 그 사람들이 다 일손을 멈추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지게차도 멈춰 있었다. 멈춘 지게차에서 후진 경고음만 계속 삑, 삑 울렸다. 누가 그걸 끄는 걸 잊었다.

명석이는 배 위에 있었다. 조타실 문틀을 잡고. 방수복을 반만 입고.

“명석아, 내려온나. 배는 조선소서 검사하고 돌려주께. 이틀이다, 이틀.”

탁기춘의 목소리는 부두 전체에 들릴 만큼 컸다. 들으라고 하는 목소리였다.

“계장님, 이틀이면 통발 못 올립니다.”

“통발은 성민이가 올려 주께.”

“성민이는 제 통발 어디 있는지 모릅니다.”

“그라믄 니 기름 외상, 이번 달 거 오늘 정리하자. 삼백사십만 원이다. 오늘 경매 대금에서 까면 되겠네.”

부두가 조용해졌다. 조용해졌다기보다 소리가 한쪽으로 쏠렸다. 사람들이 숨을 삼키는 소리, 장화가 한 걸음 물러나는 소리. 여기 서 있는 사람 절반이 탁기춘한테 기름을 외상으로 받는다. 그 말은 명석이한테만 한 말이 아니었다.

나는 계선주로 가서 성민이가 건 밧줄을 풀었다. 성민이가 내 손목을 잡았다. 나는 그 손을 보지 않고 말했다.

“명의자다. 놔라.”

성민이는 탁기춘을 봤다. 탁기춘은 나를 봤다.

“도경아. 이 배 명의 니 거 맞다. 근데 니가 칠 년 동안 이 배에 뭘 했노. 기름을 넣었나, 통발을 샀나, 검사를 받았나. 명석이가 다 했다. 명석이 기름은 내가 댔고. 이 배는 니 이름 붙은 내 배다. 법으로 따지자면 그렇고, 이 동네 식으로 따지자면 더 그렇다.”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형은 칠 년 동안 이 배에 아무것도 안 했다. 선박 검사 통지서를 뜯지도 않았다. 명석이가 기름을 넣고 통발을 샀다. 탁기춘의 외상으로.

“그러면 계장님.”

내 목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나갔다. 부두 사람들이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날 밤에도 계장님 배였네요. 번호 없던 그날 밤에도. 제 이름이 붙기 전에도.”

탁기춘의 입이 한 번 벌어졌다 닫혔다. 그 사람은 자기 말에 스스로 걸린 걸 알았다. 이 배가 자기 배라고 부두 한가운데서 크게 말했으니까. 사람들이 들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들은 걸 잊지 않는다. 말만 멈출 뿐이다.

그때 명석이가 조타실에서 나왔다.

명석이는 배 가운데 얼음칸 뚜껑을 열었다. 쇠 뚜껑이 뒤로 넘어가며 쾅 소리를 냈다. 부두의 모든 눈이 그쪽으로 갔다. 명석이는 얼음 속에 팔을 어깨까지 넣었다. 얼음 부딪는 소리가 한참 났다. 그러고는 무언가를 끌어 올렸다. 검은 비닐로 몇 겹 싼 네모난 덩어리. 얼음물이 뚝뚝 떨어졌다.

“계장님.”

명석이 목소리가 떨렸다. 떨리는데 컸다. 무전기로 욕하던 황 선장보다 컸다.

“이 배 칠 년 전 삼월 십사일 밤에 번호 없던 배 맞지예. 계장님 배였지예. 그날 밤 재우 형이 이 배 탔지예.”

탁기춘이 입을 열었다. 명석이가 먼저 말했다.

“여기 다 있어예. 이 배 옛날 기계예요. 제가 삼 년 전에 떼서 얼음칸 밑에 삼 년 동안 넣어 놨어예. 버리면 안 될 것 같아서예. 계장님이 폐선하자 캤을 때 알았어예. 왜 폐선하자는지.”

부두에서 누가 헉, 하는 소리를 냈다. 황 선장이었다. 그 사람은 경매장 기둥 뒤에 서 있었다. 오른발을 조금 끌면서 한 걸음 나왔다가 다시 기둥 뒤로 들어갔다.

탁기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얼굴이 붉어지지도 않았다. 그 사람은 명석이 손의 검은 덩어리를 보고, 나를 보고, 부두 사람들을 한 명씩 봤다. 천천히. 세는 것처럼. 누가 여기 있었는지 기억해 두는 것처럼.

“그거 고물이다. 삼 년 얼음물에 담가 놨으면 안 켜진다.”

“켜지는지 안 켜지는지는 해경이 보면 알겠지예.”

탁기춘은 돌아섰다. 예인선 쪽으로 손을 흔들었다. 예인선이 밧줄을 거둬들였다. 엔진 소리가 멀어졌다. 성민이가 트럭에 올랐다. 탁기춘은 트럭 조수석 문을 열다가 말고 명석이한테 한 마디만 했다.

“기름은 오늘부터 현금이다.”

트럭이 부두를 빠져나갔다. 그때 부두 입구에서 리어카 바퀴 소리가 났다. 수퍼 할매였다. 새벽마다 보온 통에 커피를 담아 부두에서 판다. 할매는 리어카를 명석이 배 앞에 세우고 종이컵에 커피를 따르면서 부두 전체에 들리게 말했다.

“명석아, 기름값 현금이라 카제. 내가 이번 달 거는 대 주께. 수퍼 외상 장부에 달아 놓으마. 이자는 없다. 대신 장어 두 마리.”

명석이가 할매를 봤다. 할매는 커피를 내밀었다. 나한테도 한 잔. 설탕이 너무 많이 들어서 혀가 아렸다. 할매는 다른 선주들한테 컵을 돌리면서 한 마디씩 했다. 니도 한 잔 해라, 춥다. 이상하게 그 말이 이 사람들한테는 다른 말로 들리는 것 같았다. 선주 몇이 컵을 받고 명석이 배 쪽으로 한 발씩 다가섰다. 멈춰 있던 지게차의 경고음을 누가 그제야 껐다. 부두에 원래 소리가 돌아왔다. 얼음 쏟아지는 소리, 경매사 종소리. 사람들이 다시 움직였다. 아무도 명석이한테 말을 걸지 않았다. 그런데 아무도 이쪽에서 조용해지지도 않았다. 지나가면서 명석이 배를 한 번씩 봤다. 황 선장은 기둥 뒤에서 나오지 않았다.

명석이가 검은 덩어리를 나한테 내밀었다. 얼음물이 내 손목으로 흘러 들어왔다. 뼈가 먼저 알았다.

“형. 기다린다 캤지예. 줄 때까지.”

“그래.”

“이제 줘요. 형 가면 저는 진짜 망해요. 기름 현금이래요.”

“안 간다.”

“그 말 벌써 두 번째예요. 세 번째는 하지 마세요. 세 번 하면 거짓말 같아요.”

어머니가 그 뒤에 서 계셨다. 보온 가방을 들고. 언제부터 계셨는지 모른다. 어머니는 명석이 앞으로 가서 보온 가방을 내미셨다. 밥은 묵고 나가라. 그러고는 한 번 더 입을 여셨다. 명석이한테.

“잘했다.”

명석이가 보온 가방을 받다가 울었다. 소리 없이. 칠 년 동안 매일 새벽 밥은 묵고 나가라, 그 한 마디만 듣던 애가 처음으로 다른 말을 들었다. 서른 먹은 남자가 새벽 부두에서 보온 가방을 끌어안고 울었다. 사람들이 봤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낮에 파출소에서 그 덩어리를 풀었다. 비닐 여섯 겹. 그 안에 신문지, 그 안에 또 비닐. 명석이는 겁이 많아서 꼼꼼하다. 옛날 플로터가 나왔다. 화면에 금이 한 줄 가 있었다. 순경이 배터리를 들고 오면서 넘어질 뻔했다. 하린이가 전선을 받아 들고 빨간 선이 어디냐고 물었다. 최 경사가 빨간 게 플러스라고 했다. 순경이 검은 것도 플러스 아니냐고 했다. 최 경사가 순경을 오래 봤다. 순경이 입을 다물었다. 명석이는 뒤에서 손을 모으고 서서 중얼거렸다. 켜져라, 켜져라. 배 위에서 날씨 빌 때 하는 소리였다. 최 경사가 순경한테 배터리를 가져오라고 했다. 십이 볼트. 하린이는 사무소 점심시간에 뛰어왔다. 전선을 이었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최 경사가 단자를 드라이버로 긁었다. 녹이 떨어졌다. 다시 이었다.

삑.

화면이 켜졌다. 파란 바다, 초곡 해안선, 날짜 목록. 최 경사가 목록을 내렸다. 이천십구 년 삼월 십사일. 눌렀다.

초록 선 하나가 부두에서 출발했다. 이십이 시 십 분. 남서쪽으로 곧게. 곰바위 여 남쪽에서 선이 멈췄다. 영 시 십 분. 선 끝에 작은 점이 뭉쳐 있었다. 사십 분 동안 한자리에 머문 흔적. 그리고 선이 다시 움직였다. 삼백 미터. 영 시 오십일 분에 다시 멈췄다. 이번에는 일 분. 그다음부터 선은 곧장 초곡으로 돌아왔다. 두 시 영 분.

하린이가 화면 앞에서 입을 막았다. 손가락 끝에 아직 인주가 묻어 있었다.

“열두 시 오십 분.”

그 애가 들은 소리. 엔진이 멈추고, 누가 소리를 질렀다. 한 번. 사십 분 머문 자리에서 삼백 미터 옮겨 가서 일 분 멈춘 자리. 무엇을 받는 데는 사십 분이 필요하다. 무엇을 버리는 데는 일 분이면 된다.

나는 그 일 분짜리 점을 오래 봤다. 화면 속 점은 작았다. 손톱만 했다. 칠 년 동안 그 점이 얼음칸 밑에서 꺼진 채로 있었다. 최 경사가 좌표를 종이에 옮겨 적었다. 손이 떨려서 한 번 틀리고 다시 적었다.

“기록은 됐습니다. 이제 그 자리에 뭐가 있는지입니다. 재수사 결정이 나야 공식 수색을 합니다. 그게 빨라도 한 달입니다.”

“그 전에 총회가 있습니다. 나흘 뒤에요.”

“압니다.”

최 경사가 나를 봤다. 그 사람도 알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수심이 몇입니까, 거기.”

“삼십팔 미터요. 곰바위 여 남쪽 사면.”

“민간인이 들어가는 건 제가 못 막습니다. 그리고 모레가 제 비번입니다.”

파출소를 나와서 영도 회사 선배한테 전화했다. 칠 년 같이 물에 들어간 사람이다. 그만둔다고 전화한 게 그저께였는데, 선배는 이유를 안 묻고 내 장비를 화물로 부쳐 주겠다고 했다. 드라이슈트, 조절기 두 벌, 수중 랜턴, 인양 백. 그리고 한 마디만 물었다. 몇 미터냐. 삼십팔. 혼자냐. 아니요. 선배가 한참 있다가, 올라올 때 쉬는 거 잊지 마라, 했다. 삼십팔 미터에서 오래 있으면 몸에 질소가 찬다. 천천히 올라와야 한다. 중간에 멈춰서 기다려야 한다. 물속에서 제일 어려운 게 그 기다리는 거다. 올라가고 싶을 때 안 올라가는 것.

물때표를 봤다. 모레 오전 열 시 반이 조금이다. 물살이 제일 약할 때. 초곡 앞바다 물살은 조금 때 한 시간쯤 숨을 멈춘다. 그 한 시간 안에 들어갔다 나와야 한다.

재우야. 모레 형이 들어간다. 네가 멈춘 자리에. 일 분짜리 자리에.

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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