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012자) · 해경 파출소

칠 주기

밤의 해안선에서 다시 만나요 · 서지오

만 19세 이상 이용가

재우야.

삼월 십사일. 칠 년 되는 날이다. 지금은 십오일 새벽 두 시. 방파제에서 어머니하고 같이 올라왔다. 같이, 라고 쓰니까 이상하다. 어머니가 앞에 가시고 나는 열 걸음 뒤에서 따라왔다. 그래도 같이였다. 칠 년 동안 처음으로 같은 길을 같은 시각에 걸었다.

순서대로 쓴다.

새벽에 어머니는 부두에 안 나가셨다. 해마다 이날은 안 나가신다고 명석이가 어제 말해 줬다. 대신 다섯 시에 부엌에서 칼 소리가 났다. 도마 위에서 무를 써는 소리. 탁, 탁, 탁. 그리고 여섯 시쯤 마루 건너에서 쇠붙이 소리가 났다. 자물쇠. 딸깍. 네 방 문이 열리는 소리였다. 나는 이불 속에서 숨을 죽였다. 벽 하나 너머로 옷장 문이 삐걱 열렸다 닫혔고, 이불을 터는 소리가 났다. 퍽, 퍽. 두 번. 창문이 열렸다. 칠 년 동안 매일 아침 이러셨구나 싶었다. 볕 좋은 날마다 이불을 털어 네 방 창틀에 걸어 두시는 거다. 한참 뒤에 다시 딸깍. 자물쇠가 잠겼다. 나는 그 소리가 다 끝나고 나서야 일어났다.

아침 아홉 시에 해경 파출소에 갔다. 수협 건물 옆, 컨테이너 두 개를 이어 붙인 건물이다. 문을 열자 석유난로 냄새와 믹스커피 냄새가 났다. 삼월 중순인데 난로를 켜 두는 것도 이 동네다웠다. 파출소에는 경찰이 둘이었다. 젊은 순경 하나, 서른 조금 넘은 경사 하나. 경사 명찰에 최 아무개. 그리고 그 앞 의자에 탁기춘이 앉아 있었다. 종이컵을 들고.

“어, 도경이 왔나. 나는 오늘 날이 날이라 최 경사한테 인사 좀 왔다. 칠 년이다 칠 년. 세월 빠르제.”

탁기춘은 종이컵을 흔들며 웃었다. 최 경사는 웃지 않았다. 나를 보고 일어섰다.

“윤도경 씨.”

“제 이름을 아세요.”

“이 파출소에 중지 사건이 세 건 있습니다. 그중에 이름이 제일 많이 나오는 게 윤씨 형제입니다. 앉으세요.”

나는 앉지 않았다. 탁기춘 옆자리였으니까.

“윤재우 실종 사건, 재수사 요청하러 왔습니다.”

난로 위 주전자가 끓었다. 쉬이익. 순경이 얼른 불을 줄였다. 앳된 얼굴이었다. 나중에 알았는데 수퍼 할매 손자다. 할매가 이 순경한테 파출소 일은 집에 와서 한 마디도 하지 말라고 했단다. 그래서 할매가 모르는 게 이 동네에 딱 하나, 파출소 안이다. 탁기춘은 종이컵을 내려놓지 않았다.

“새로운 증거가 있습니까?”

“진술이 있습니다. 서하린. 그날 밤 방파제에서 재우가 번호 없는 배에 타는 걸 봤고, 두 시에 한 사람만 내리는 걸 봤습니다.”

“그 진술은 칠 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기록에 있어요.”

최 경사는 서랍에서 파란 표지 파일을 꺼냈다. 두꺼웠다. 한쪽 모서리가 젖었다 마른 자국으로 울어 있었다. 그 사람은 파일을 펴지 않고 손바닥으로 덮었다.

“진술만으로는 중지 사건을 다시 못 엽니다. 물건이 있어야 됩니다. 시신이든 유류품이든 기록이든.”

탁기춘이 그제야 종이컵을 내려놓았다. 책상 모서리에 딱.

“도경아. 내가 이런 말까지 안 할라 캤는데. 그날 낮에 니하고 재우하고 대판 싸운 거 온 동네가 들었다. 그라고 니는 다음 날 새벽에 사라졌다. 그때 박 경위가 니를 찾을라 캤는데 내가 말렸다. 윤 선장 아들 둘 다 잃게 할 수는 없다고. 그런데 인자 와서 니가 이러면, 사람들이 칠 년 전 얘기를 다시 꺼낸다. 그게 누구한테 좋노.”

그 사람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다정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더 잘 들렸다. 순경이 볼펜을 쥐고 굳어 있었다. 난로 주전자가 다시 쉬익 소리를 내려다 말았다.

나는 탁기춘을 봤다. 그리고 최 경사를 봤다.

“싸운 거 맞습니다.”

최 경사의 눈썹이 조금 올라갔다.

“그날 밤 열 시 사십 분에 방파제에 간 것도 맞습니다. 삼백 걸음에서 돌아선 것도요. 그다음 날 새벽 여섯 시 반 첫 배로 떠났습니다. 동생이 기다리는 줄 알고 도망갔습니다. 동생은 거기 없었습니다. 번호 없는 배를 타고 남서쪽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저 사람 배를.”

나는 탁기춘을 가리키지 않았다. 턱으로도. 그냥 말했다. 저 사람. 파출소 안에 저 사람은 하나뿐이었다.

탁기춘이 일어섰다. 의자가 뒤로 밀리면서 바닥을 긁었다. 그 사람 얼굴이 붉어졌다가 금방 도로 가라앉았다. 그 사람은 화를 오래 안 낸다. 칠 년 전에도 그랬다. 아버지 장례식에서 제일 크게 울고, 제일 먼저 그쳤다.

“최 경사, 들었제. 이 사람이 나를 뭐라 카는지. 명예훼손이다 이거.”

“들었습니다.”

최 경사는 그 말만 하고 파일을 서랍에 도로 넣었다. 탁기춘은 종이컵을 구겨 쓰레기통에 던졌다. 들어가지 않았다. 순경이 주웠다. 탁기춘이 나가면서 문을 세게 닫았다. 컨테이너 벽이 울렸다.

조용해지자 최 경사가 다시 서랍을 열었다. 이번에는 파일을 폈다. 한 장을 꺼내 내 앞에 놓았다. 복사본이었다.

“선박 등록 신청서입니다. 삼-일일사. 이천십구 년 삼월 십오일 접수. 접수 시각 오전 여덟 시 십 분. 신청인 윤도경. 도장도 찍혀 있습니다.”

나는 그 도장을 봤다. 내 도장이었다. 스무 살 때 어촌계에 선원 등록하면서 맡겨 둔 막도장. 나는 그걸 잊고 있었다.

“윤도경 씨, 그날 오전 여덟 시 십 분에 어디 계셨습니까?”

“통영 가는 첫 배에요. 여섯 시 반 배. 여덟 시엔 통영 터미널에서 부산 가는 버스 타고 있었습니다.”

“표 있습니까?”

“칠 년 전 버스표를 누가 갖고 있습니까?”

최 경사가 처음으로 웃었다. 짧게.

“저는 갖고 있습니다. 이 서류에 제가 삼 년 동안 붙잡혀 있어서요. 여객선 승선 기록은 칠 년 보관입니다. 이번 달 말까지. 제가 어제 통영에 요청했습니다. 윤도경, 이천십구 년 삼월 십오일 여섯 시 삼십 분, 초곡 발 통영행. 탔더군요.”

나는 그 사람을 다시 봤다. 서른한 살. 삼 년 전에 이 파출소에 왔다고 했다. 칠 년 전 사건 파일을 넘겨받고, 그걸 서랍에 넣고, 삼 년 동안 가끔 꺼내 봤다고. 모서리가 운 이유가 그거였다. 그 사람 손에 들려서 운 거였다. 삼 년 동안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을 한 사람의 손. 이 마을에서 말을 멈추지 않은 사람이 하린이 말고 하나 더 있었다. 이 파출소 안에. 그 사람은 말 대신 서류를 넘겼다.

“그러면 이 도장은 누가 찍었습니까?”

“그걸 모르니까 중지입니다. 도장은 어촌계 금고에 있었을 거고, 그 금고 열쇠는…….”

그 사람은 끝을 맺지 않았다. 파일을 덮었다.

“말씀드린 대로 진술만으로는 못 엽니다. 이 도장 하나로도 못 엽니다. 기록이 있어야 됩니다. 그날 밤 그 배가 어디 갔는지. 그리고 그 자리에 뭐가 있는지.”

나는 명석이가 말한 숫자를 떠올렸다. 남서쪽 십일 마일. 사십 분. 그걸 최 경사한테 말하지 않았다. 그건 명석이가 줄 때 줄 것이다.

파출소를 나와서 항구 사무소에 들렀다. 하린이한테 도장 얘기를 했다. 그 애는 도장을 찍던 손을 멈췄다.

“어촌계 금고 열쇠는 둘이에요. 계장하고 총무. 칠 년 전 총무는 황 선장님이었어요.”

“그저께 나한테 뭘 말하려다 만 사람이네.”

“황 선장님이요?”

하린이가 도장을 내려놓았다. 인주가 손가락 끝에 묻어 있었다. 그 애는 그걸 휴지로 닦으면서 말했다.

“그분, 그해 가을에 총무 그만뒀어요. 스스로요. 이유는 아무도 몰라요.”

밤에 방파제에 나갔다. 열두 시 반. 하린이가 그랬다. 어머니는 해마다 이날 열두 시 오십 분에 방파제 끝에 가신다고. 칠 년 동안 한 번도 안 빠지셨다고.

어머니가 끝에 서 계셨다. 보온 가방을 들고. 나는 가로등이 끝나는 자리에서 멈췄다. 삼백 걸음. 이번에는 돌아서지 않고 걸었다. 오른발을 끌면서. 이음매마다 발소리가 달랐다. 어머니는 그 소리를 들으셨을 거다. 돌아보지 않으셨다.

어머니 옆에 섰다. 한 걸음 떨어져서. 부엌 문지방과 밥상 사이만큼.

바람이 남서쪽에서 불었다. 곰바위 여 쪽에서. 바람에 소리가 실려 왔다. 멀리 양식장 부표들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 통, 통, 빈 드럼통을 두드리는 것 같은. 그 밑으로 파도가 방파제 발치에서 부서지는 소리. 그리고 어머니 숨소리. 가까이 서니까 들렸다. 어머니는 숨을 길게 쉬셨다. 들이쉬고, 한참 참았다가, 내쉬고. 물속에서 공기를 아낄 때 쉬는 숨하고 똑같았다. 아버지 배를 타던 시절 해녀 일을 잠깐 하셨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몸이 그 숨을 기억하는 거다. 칠 년 동안 이 끝에 서서 그 숨으로 버티신 거다. 등대 빛이 사 초에 한 번 돌았다. 어머니가 보온 가방을 여셨다. 그릇 하나. 미역국. 김이 올라왔다. 들깨 냄새가 바람에 섞였다. 어머니는 그릇을 두 손으로 들고 한참 서 계셨다. 그러고는 그릇을 기울였다. 미역국이 테트라포드 사이로 흘러 내려갔다. 물이 받아 갔다. 꼬르륵, 하는 소리. 바다가 트림하는 소리. 네가 그렇게 불렀던 소리.

열두 시 오십 분이었다. 등대 빛이 한 바퀴 돌아와 빈 바다를 쓸고 지나갔다.

하린이가 들었다는 소리를 나는 듣지 못했다. 어머니도 들으셨는지 모르겠다. 어머니는 빈 그릇을 든 채로 남서쪽을 보고 계셨다. 입술이 움직였다. 소리는 없었다. 바람이 가져갔는지, 처음부터 소리를 안 내셨는지.

그러다 어머니가 빈 그릇을 내미셨다.

나한테.

나는 받았다. 두 손으로. 어머니가 드신 것처럼. 사기그릇이 아직 따뜻했다. 안쪽에 미역 한 가닥이 붙어 있었다. 어머니는 그릇을 건네고 나서 보온 가방 지퍼를 잠그셨다. 그러고는 돌아서서 걸어가셨다. 가로등 쪽으로. 나는 그릇을 들고 따라갔다. 열 걸음 뒤에서. 어머니는 한 번도 돌아보지 않으셨다. 대신 걸음을 조금 늦추셨다. 열 걸음이 여덟 걸음이 됐다. 계단 백열일곱 칸을 올라가는 동안 여덟 걸음은 그대로였다.

집에 와서 나는 그 그릇을 씻었다. 수돗가에서. 수도를 반만 틀었다. 물소리가 작았다. 작아서 마루에 앉은 어머니 숨소리가 들렸다. 어머니는 방에 들어가지 않으시고 마루 끝에 앉아서 내가 그릇 씻는 걸 보셨다. 다 씻고 엎어 놓자 어머니가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셨다. 라디오가 켜졌다. 작게.

재우야. 오늘 어머니는 한 마디도 안 하셨다. 대신 그릇을 주셨다. 칠 년 동안 바다에 붓던 그릇을. 형이 받았다.

최 경사가 그랬다. 기록이 있어야 된다고. 그 자리에 뭐가 있는지. 형은 그 자리에 들어갈 줄 아는 사람이다. 칠 년 동안 남의 바다에서 배운 걸 이제 우리 바다에 쓸 거다.

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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