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032자) · 3-114 선실
옛날 기계
밤의 해안선에서 다시 만나요 · 서지오
만 19세 이상 이용가
재우야.
삼월 십삼일 밤. 오늘은 바다에 나갔다 왔다. 네가 탔던 배를 타고. 칠 년 만에 초곡 앞바다 물 냄새를 코앞에서 맡았다. 물이 아직 차다. 수온 십이 도. 손을 담그면 뼈가 먼저 안다.
새벽 세 시 오십 분에 부두에 내려갔다. 어머니보다 먼저. 부두는 이미 깨어 있었다. 얼음 공장 컨베이어가 덜컹거리며 얼음을 토했고, 어느 배에서 발전기가 헛기침하듯 몇 번 걸렸다가 돌았다. 형광등 밑에 입김이 떠올랐다. 삼월 새벽의 부두는 겨울보다 춥다. 물이 품은 냉기가 다 올라오니까. 명석이가 선실 불을 켜고 얼음을 붓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얼음 삽을 든 채로 굳었다.
“형, 와 이 시간에. 아니 제 말은, 형 원래 새벽에 잘 못 일어나잖아요. 옛날에 잠수 교육 받을 때도 형이 맨날 오 분 늦어서 교관이 형 이름을 오 분이라고…….”
“오늘 같이 나가자.”
명석이 입이 닫혔다. 그 애가 입을 닫는 건 드문 일이다. 너도 알지. 명석이는 물속에서도 떠들 수 있으면 떠들 애다. 잠수 교육 받을 때 호흡기를 문 채로 웅얼거려서 교관한테 머리를 맞았다.
어머니가 내려오셨다. 보온 가방. 명석이한테 건네셨다. 밥은 묵고 나가라. 그러고는 배 위에 서 있는 나를 보셨다. 아무 말씀 없이 한참 보셨다. 그러고 가셨다. 명석이가 보온 가방을 선실에 넣으면서 작게 말했다.
“오늘은 두 그릇이 딱 맞네요.”
네 시 십 분에 부두를 떠났다. 삼-일일사는 칠 톤짜리 연안 통발선이다. 엔진은 명석이가 사 년 전에 새로 얹었다고 했다. 통통통통, 고르게 돌았다. 하린이가 들었다는 소리, 세 번에 한 번씩 쿵 하고 걸리는 소리는 없었다. 엔진이 바뀌었으니까. 소리가 바뀌면 배도 다른 배가 된 것 같다. 그래도 선실 문틀에 난 흠집, 그건 그대로였다. 누가 칼로 그은 것 같은 줄 세 개. 손가락으로 쓸어 보니 홈이 깊었다. 칠 년 동안 페인트를 몇 번 덧칠했는데도 홈은 안 메워졌다.
명석이는 조타실에서 떠들었다. 요즘 장어 값, 문어 값, 기름값. 통영 경매장 경매사가 바뀌었는데 그 사람이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뒤에 선 사람은 자기가 산 줄도 모른다는 얘기. 초단파 무전기는 십육 번 채널에 맞춰져 있었다. 지지직 잡음 사이로 어느 배가 날씨를 물었고, 어느 배가 욕을 했다. 명석이가 볼륨을 줄였다.
“저 욕한 거 황 선장이에요. 맨날 욕해요. 근데 무전으로 욕하면 해경이 다 들어요. 몰라요 그 양반은.”
조타석 앞에 새 플로터가 있었다. 화면에 우리 배가 작은 삼각형으로 떠 있고, 지나온 길이 초록 선으로 따라왔다. 나는 그 화면을 봤다. 명석이가 내 눈을 따라갔다. 떠들던 입이 한 박자 늦었다.
통발을 올리는 데 세 시간이 걸렸다. 양망기가 줄을 감아올리면 물속에서 통발이 하나씩 딸려 나온다. 쇠사슬 감기는 소리, 물 떨어지는 소리, 통발 안에서 장어가 몸을 치는 소리. 명석이가 통발을 열고 나는 장어를 통에 쏟았다. 손이 기억했다. 아버지 배에서 열다섯 살 때 하던 일이다. 너는 장어를 무서워했다. 미끄러운 게 손에 감기면 소리를 질렀다. 그래서 아버지가 너한테는 통발 줄만 잡게 했다.
명석이는 장어를 한 마리 들고 나한테 흔들어 보였다. 장어가 명석이 손목을 감았다.
“형, 이놈 봐요. 탁 계장 닮았죠. 잡으면 감기고, 놓으면 도망가고.”
“그런 말 무전 켜 놓고 하지 마라. 해경이 다 듣는다며.”
명석이가 황급히 무전기를 봤다. 꺼져 있었다. 그 애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는 웃었다. 칠 년 만에 배 위에서 웃었다. 장어 비린내가 손가락 사이에 배었다. 이 냄새는 비누로 씻어도 사흘 간다. 열다섯 살 때도 그랬다. 학교 가면 짝이 코를 막았다. 너는 그 냄새가 싫다고 형 옆에 안 앉았다.
해가 뜰 때쯤 명석이가 엔진을 줄였다. 배가 물결에 흔들렸다. 조용해지니까 바다 소리가 올라왔다. 뱃전에 물이 찰싹이는 소리. 멀리 다른 배 엔진 소리. 명석이가 보온 가방을 꺼냈다. 두 그릇. 밥과 미역국. 한 그릇을 나한테 내밀었다.
“드세요. 오늘은 바다 안 줘도 되네.”
나는 받았다. 국이 아직 따뜻했다. 보온 가방이 좋아서가 아니다. 어머니가 끓는 국을 부어서 그렇다. 칠 년 동안 매일. 나는 뱃전에 앉아 네 밥을 먹었다. 들깨 미역국. 무말랭이가 한쪽에 있었다. 네가 안 먹던 것. 어머니는 칠 년 동안 그걸 계속 넣으셨다. 네가 투정하라고.
다 먹고 나서 말했다.
“명석아. 옛날 플로터 어디 있냐.”
명석이의 숟가락이 멈췄다. 파도가 한 번 배를 들었다 놓았다.
“……무슨 플로터요.”
“삼 년 전에 새 걸로 바꿨지. 옛날 거 폐기 신고 안 했다며.”
“누가 그래요. 하린이죠. 하린이 그거 사무소에서 서류만 보고…….”
“있냐, 없냐?”
명석이가 그릇을 내려놓았다. 조타실 창밖을 봤다. 남서쪽. 햇빛이 물 위에 부서져서 눈이 아팠다.
“있어요.”
“줘.”
“못 드려요.”
그 애 목소리가 처음으로 떠들지 않았다.
“형. 그거 제가 삼 년 전에 떼면서 한 번 켜 봤어요. 옛날 항적이 다 남아 있더라고요. 날짜별로. 이천십구 년 삼월 십사일도 있어요. 밤 열 시 십 분에 부두 나가서 남서쪽으로 십일 마일. 거기서 사십 분 멈춰 있다가 돌아와요. 두 시에. 저 그거 보고 꺼서 싸 놨어요. 그 뒤로 한 번도 안 켰어요.”
“그걸 삼 년 동안 갖고만 있었어.”
“갖고 있는 것도 무서웠어요.”
남서쪽 십일 마일. 나는 그 숫자를 머릿속 해도에 올려 봤다. 초곡 앞바다는 아버지 배 타던 시절에 다 외웠다. 남서쪽 십일 마일이면 곰바위 여 근처다. 물 밑에 바위가 솟아서 그물이 잘 걸리는 곳. 수심은 삼십에서 사십 미터. 물살이 세다. 밀물 때는 북동으로, 썰물 때는 남서로 몸을 끌고 간다. 그런 데서 배가 사십 분을 멈춰 있으려면 닻을 내렸다는 거다. 닻을 내리고 사십 분. 밤바다에서. 무언가를 받기에도, 무언가를 버리기에도 충분한 시간.
명석이가 일어섰다. 배가 기울었다. 그 애는 조타실 문틀을 잡았다. 칼자국 세 줄 위를.
“형. 이 배 없으면 저 못 살아요. 기름은 탁 계장이 외상으로 대 줘요. 경매장 자리도 탁 계장이 잡아 줘요. 제 통발 줄도 어촌계 창고에 있어요. 제가 그거 형 주면 저는 이 바다에서 한 달도 못 버텨요. 형은요, 형은 총회 끝나면 또 갈 거잖아요. 부산으로. 칠 년 전처럼 새벽 배 타고.”
“안 가.”
“칠 년 전에도 형은 안 간다고 할 줄 알았어요. 재우 형도 그랬어요. 형 안 간다고. 우리 형은 말하면 안 간다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저는 여기 남아요. 형이 가고 나면 탁 계장하고 이 부두에 저만 남아요. 재우 형 대신 제가 그 배 탔으면요, 제가 그 사람한테 무슨 일 당했을지 형은 생각해 봤어요? 저는 생각해요. 매일 새벽 이 배 타면서.”
그 애 말은 틀리지 않았다. 형은 칠 년 동안 떠나 있었고, 명석이는 칠 년 동안 이 배에 남았다. 탁기춘의 외상 기름으로, 어머니의 두 그릇으로. 떠난 사람이 남은 사람한테 뭘 달라고 하는 건 쉽다. 줄 사람이 그다음을 다 진다.
나는 뱃전에서 일어났다. 명석이를 봤다. 서른이 된 명석이. 칠 년 전엔 스물셋이었다. 잠수 교육 동기 중에 제일 말 많고 제일 겁 많은 애. 물속에서 공기가 떨어지면 제일 먼저 올라가자고 손짓하던 애. 그래서 안 죽고 여태 산 애.
“알았다. 달라고 안 할게.”
명석이가 나를 봤다.
“네가 줄 때까지 기다릴게. 형이 기다리는 거 처음이다.”
명석이는 대답 대신 엔진을 켰다. 통통통통. 뱃머리가 초곡 쪽으로 돌았다. 돌아가는 내내 그 애는 한 마디도 안 했다. 명석이가 한 시간 동안 입을 다문 건 내가 아는 한 처음이다.
조용한 배 위에서 형은 엔진 소리를 들었다. 통통통통. 고른 소리. 그 소리 밑으로 선체가 물을 가르는 소리, 뱃머리에 부딪혀 갈라지는 물이 양옆으로 쓸려 가는 소리. 칠 년 동안 영도에서 수백 척 배 밑을 봤다. 배는 밑에서 보면 다 비슷하다. 따개비, 녹, 긁힌 페인트. 위에서 들으면 다 다르다. 이 배는 칠 년 전 밤에 다른 소리를 냈다. 세 번에 한 번 걸리는 소리. 그 엔진은 어디 갔을까. 사 년 전에 명석이가 새로 얹었다면 옛 엔진은 누가 가져갔을까.
부두가 보일 즈음 명석이가 한 마디만 했다. 앞을 보면서.
“형, 부산 회사는요.”
“어제 그만둔다고 전화했다.”
명석이가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믿는 얼굴은 아니었다. 믿고 싶은 얼굴이었다.
아홉 시에 부두에 닿았다. 삼호부두는 비어 있었다. 얼음 부스러기가 녹고 있었다. 그런데 세 번째 계선주 옆에 트럭 한 대가 서 있었다. 탁 계장 조카 성민이. 트럭 짐칸에 굵은 밧줄 한 사리. 그리고 탁기춘이 계선주 옆에 서 있었다. 슬리퍼 대신 장화를 신고.
“명석아. 이십일 총회 전에 배 한번 올리자. 조선소에. 폐선 전에 검사해야 된다.”
“계장님, 오늘 경매 가야 되는데요.”
“경매는 성민이가 대신 가 주께. 배는 두고 가라.”
명석이가 나를 봤다. 나는 배에서 내리지 않았다. 계선주를 사이에 두고 탁기춘과 마주 섰다. 부두 바닥이 젖어서 우리 둘 그림자가 흔들렸다.
“명의자가 동의 안 합니다.”
“검사는 동의가 필요 없다. 어촌계 안전 점검이다.”
“그럼 점검은 여기서 하시지요. 제가 보겠습니다. 저 잠수사입니다. 배 밑까지 봐 드리지요.”
탁기춘이 웃었다. 이번에는 무지갯빛도 없었다. 그냥 입꼬리만 올라갔다.
“내일이 무슨 날인지 아나, 도경아.”
알았다. 삼월 십사일. 칠 년.
“내일은 조용히 있어라. 느그 어무이 생각해서.”
그 사람은 트럭에 올랐다. 성민이가 시동을 걸었다. 트럭이 부두를 빠져나갈 때 짐칸의 밧줄 사리가 덜컹거렸다. 명석이는 조타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나는 계선주에 밧줄을 두 번 더 감았다. 풀리지 않게. 매듭은 아버지한테 배운 대로.
명석이가 그제야 조타실에서 나왔다. 계선주 매듭을 내려다봤다.
“그거 윤 선장님 매듭이네요. 재우 형도 그렇게 맸어요. 한 번 더 꼬아서.”
“아버지가 가르쳤으니까.”
“재우 형은 형한테 배웠다던데요.”
그 애는 그 말만 하고 장어 통을 들고 경매장으로 갔다. 걸음이 빨랐다. 등이 뭔가를 참는 등이었다.
나는 매듭을 봤다. 한 번 더 꼰 매듭. 내가 너한테 가르쳤는지 기억이 안 난다. 너는 기억했나 보다.
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