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034자) · 방파제 끝
세 시간 사십 분
밤의 해안선에서 다시 만나요 · 서지오
재우야.
삼월 십삼일 새벽 한 시. 방파제에서 막 들어왔다. 오늘은 하린이 이야기를 쓴다. 네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린이가 칠 년 동안 혼자 들고 있던 것을 오늘 나한테 줬다. 받은 대로 옮긴다. 형은 옮기는 게 서툴다. 물속에서 건진 걸 뭍에 올려놓는 일은 잘하는데, 사람 말을 옮기는 건 처음이다.
낮에 항구 사무소 앞을 지나갔다. 유리문 너머로 하린이가 보였다. 창구 맨 끝 책상. 서류 더미 사이에서 도장을 찍고 있었다. 한 장 찍고, 넘기고, 또 찍고. 그 애는 나를 보고도 고개를 안 들었다. 대신 책상 위 메모지에 뭘 써서 유리문 쪽으로 들어 보였다. 밤 열 시. 끝. 그러고는 다시 도장을 찍었다. 옆자리 소장이 그 애를 흘끔 봤다.
밤 열 시에 방파제 끝에서 만났다. 하린이가 먼저 와 있었다. 끝 오십 미터, 가로등 빛이 안 닿는 자리에 보온병 하나와 캔 두 개를 놓고 앉아 있었다. 캔은 쌍화차였다. 수퍼에서 파는 것. 하린이가 하나를 내밀었다.
“수퍼 할매가 오빠 줄 거냐고 물어서 아니라고 했어요.”
“근데 두 개네.”
“그래서 할매가 웃었어요. 내일이면 온 동네가 알 거예요. 우리 둘이 밤에 방파제에서 쌍화차 마셨다고.”
“그게 무슨 소문이 돼.”
“여기선 돼요. 칠 년 전엔 오빠가 새벽 배 탄 게 소문이 됐잖아요.”
“소문이 그거면 괜찮네.”
“오빠 쌍화차 싫어하잖아요. 그것도 소문 날걸요. 윤 선장 큰아들이 쌍화차를 억지로 마시더라.”
나는 캔을 땄다. 한 모금 마셨다. 억지로.
쌍화차는 미지근했다. 대추 냄새가 바닷바람에 섞였다. 우리는 테트라포드 위에 나란히 앉았다. 발밑에서 물이 테트라포드 사이를 드나들며 울었다. 가까이서 들으면 그건 우는 소리가 아니라 숨소리다. 들이쉬고, 걸리고, 내쉬는.
하린이가 먼저 말했다.
“오빠, 그날 경찰이 오빠 이름 물었던 거 알아요?”
“참고인이었다는 건 알아.”
“참고인이 아니라 의심받았어요. 오빠가 떠나서요.”
그 애는 캔을 두 손으로 감쌌다. 그러고는 칠 년 전 삼월 십사일 밤을 시각 순서대로 말했다. 사무소에서 서류를 읽듯이. 목소리가 평평했다. 평평하게 말해야 끝까지 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여덟 시에 재우가 우리 집 앞에 왔어요. 오토바이 타고. 오늘 밤 탁 계장 배 탄다고, 마지막이라고 했어요. 그 배가 밤마다 뭘 하는지 저도 알았어요. 먼바다에서 딴 배를 만나서 포대를 받아 오는 거. 재우는 그걸 반년 했어요. 아버님 빚 때문에요. 한 번 나가면 오십만 원.”
나는 몰랐다. 아니, 알았어야 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네가 갑자기 새 운동화를 신었을 때, 어머니한테 봉투를 드렸을 때. 형은 부산 갈 준비만 했다.
“재우가 그랬어요. 오늘 나갔다 오면 그걸로 끝내고, 내일 형이랑 통영 해경에 간다고. 형한테 같이 가 달라고 할 거라고. 형이 있으면 안 무섭다고.”
하린이는 거기서 캔을 내려놓았다. 테트라포드에 알루미늄이 닿는 소리가 짧게 났다.
“오빠, 그날 오후에 수돗가에서 재우가 뭐라고 했는지 들었어요?”
“못 들었어. 물소리 때문에.”
“재우는 오빠가 들은 줄 알았어요. 그래서 방파제 열한 시라고 한 거예요. 오빠가 와서 같이 가 주면 배 안 타려고 했어요. 안 오면 마지막으로 한 번만 타고 내일 가려고 했고요.”
나는 쌍화차를 한 모금 마셨다. 식어서 달기만 했다. 삼킬 수가 없었다. 입 안에 물고 있다가 한참 뒤에 삼켰다.
“재우가 열 시 십 분에 부두에서 배를 탔어요. 저는 여기서 봤어요. 번호 없는 배. 엔진 소리가 이상했어요. 딴 배들은 통통통 하는데 그 배는 통통, 쿵. 세 번에 한 번씩 뭐가 걸리는 소리가 났어요. 그 소리가 멀어졌어요. 남서쪽으로.”
“그리고 넌 여기 있었고.”
“재우가 형 오면 기다리라고 해 달라고 했어요. 자기 금방 온다고. 그래서 기다렸어요. 열 시 반부터.”
그 애가 고개를 돌려 방파제 가운데를 봤다. 가로등이 끝나는 자리. 거기서 오십 걸음 더.
“열 시 사십 분에 누가 걸어왔어요. 소리로 알았어요. 이 방파제는 이음매마다 발소리가 달라요. 오른발을 조금 끄는 발소리. 윤 선장님하고 똑같은. 오빠라는 거 알았어요. 저는 일어났어요. 오빠를 불렀어요.”
“못 들었어.”
“알아요. 바람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불었거든요. 제 목소리는 바다로 갔어요. 그리고 오빠 발소리가 멈췄어요. 한참 멈춰 있다가, 돌아갔어요. 오른발을 끌면서. 점점 작아졌어요.”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칠 년 동안 나는 그날 밤을 삼십 분으로 기억했다. 열 시 사십 분에 가서, 멈추고, 돌아서고, 집에 가서 짐을 쌌다. 하린이의 그날 밤은 세 시간 사십 분이었다. 그 애는 내 발소리가 멀어지는 걸 들은 다음에도 세 시간을 더 있었다.
“열두 시 오십 분쯤에 바다에서 소리가 났어요. 아주 멀리서. 엔진 소리가 멈췄어요. 그리고 누가 소리를 질렀어요. 한 번. 사람 목소리였는지 갈매기였는지 지금도 몰라요. 칠 년 동안 매일 밤 그 소리를 다시 들어 봤는데, 들을 때마다 달라요. 어떤 날은 재우 목소리고 어떤 날은 갈매기고.”
그 애는 그 말을 하면서 두 손으로 귀를 한 번 감쌌다가 뗐다.
“두 시에 배가 돌아왔어요. 통통, 쿵. 부두 불빛 밑에 사람이 하나 내렸어요. 하나요. 탁 계장이었어요. 재우는 안 내렸어요. 저는 두 시 십 분까지 기다렸어요. 두 번째 사람이 내릴 때까지. 안 내렸어요. 그래서 파출소로 뛰어갔어요. 두 시 반에.”
“그때 뭐라고 했는데.”
“재우가 탁 계장 배를 탔는데 안 돌아왔다고요. 근데 그날 밤 파출소에 있던 박 경위가 탁 계장한테 전화했어요. 탁 계장이 왔어요. 자기는 혼자 밤낚시 나갔다 왔다고, 재우는 안 탔다고. 그리고 그랬어요. 오늘 낮에 윤 선장 집에서 형제가 크게 싸우더라고. 동네 사람 다 들었다고. 박 경위는 그해 여름에 거제로 옮겼어요. 탁 계장이 송별회를 해 줬대요. 수협 이 층에서.”
물소리. 수돗가의 물소리. 그 물소리를 온 동네가 들었다. 물소리 밑의 네 말은 아무도 못 들었고.
“다음 날 새벽에 오빠는 배를 탔고요. 그다음부터는 오빠 얘기가 됐어요. 형이랑 싸우고 없어진 동생, 새벽에 떠난 형. 아무도 대놓고 말은 안 했어요. 오빠네 집 앞에서 조용해졌어요. 그리고 제 말은 열아홉 살 여자애 말이 됐어요. 남자 친구 잃고 헛것 들은 애.”
바람이 바뀌었다. 이번에는 바다에서 뭍으로. 그 애 머리카락이 내 어깨에 닿았다. 그 애가 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나는 그게 너인 줄 몰랐어.”
“알아요.”
“재우인 줄 알았어. 재우가 나 붙잡으려고 기다리는 줄. 붙잡히면 못 갈 것 같아서.”
“그래서 돌아섰죠.”
“그래.”
“오빠. 그게 제일 나빠요.”
그 애 목소리가 처음으로 높아졌다. 바람을 뚫고 나갈 만큼.
“재우가 붙잡을까 봐 돌아섰다는 거. 동생이 붙잡을까 봐 무서워서. 재우는 오빠가 있어야 안 무섭다고 했는데, 오빠는 재우가 무서워서 돌아섰어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말이 있으면 그건 변명이었다. 칠 년 동안 준비한 문장이 스무 개쯤 있었는데, 그중 어느 것도 이 말 앞에 설 수 없었다.
“오빠를 원망했어요. 칠 년 동안. 오빠가 그날 삼백 걸음에서 안 돌아섰으면. 오빠가 끝까지 왔으면 제가 재우 얘기를 했을 거고, 오빠는 재우 탄 배를 쫓아갔을 거고.”
“그랬을 거야.”
“아니요. 모르죠. 오빠도 그 배 타고 안 돌아왔을 수도 있고요.”
그 애는 처음으로 나를 똑바로 봤다. 등대 빛이 돌아와 그 애 얼굴을 지나갔다. 사 초 뒤에 또.
“그래서 원망하는 거 그만하려고 편지 썼어요. 원망하려면 옆에 있어야 하잖아요. 칠 년 동안 없는 사람을 원망하니까 제 목소리만 바다로 갔어요.”
그 애가 일어섰다. 쌍화차 캔 두 개를 주웠다. 내 것은 반쯤 남아 있었다. 그 애가 그걸 흔들어 보고, 남은 걸 바다에 부었다. 테트라포드 사이로 물이 받아 갔다.
“총회 이십일이에요. 그 전에 오빠가 할 일이 있어요.”
“뭔데.”
“명석이 오빠한테 물어보세요. 그 배에 옛날 기계 어디 갔는지. 위치 찍히는 거요. 명석이 오빠가 삼 년 전에 새 걸로 바꿨는데, 옛날 거를 안 버렸어요. 폐기 신고가 안 들어왔거든요. 우리 사무소에.”
“넌 그걸 어떻게 알아?”
“저 사무소 직원이잖아요. 이 항구에서 나가고 들어오는 종이는 다 제 책상을 지나가요.”
그때 부두 쪽에서 헤드라이트가 켜졌다. 삼호부두 컨테이너 사무실 앞. 트럭 한 대가 시동을 걸고 서 있었다. 불빛이 방파제 쪽을 향해 있었다. 우리 쪽을. 한참 그대로 있다가 꺼졌다. 엔진 소리는 꺼지지 않았다. 부르릉, 부르릉, 낮게 공회전하는 소리가 물 위를 건너왔다.
“탁 계장 조카예요. 성민이. 요즘 밤마다 부두 봐요.”
“뭘 보는데?”
“삼일일사요. 오빠 온 뒤로는 오빠도요.”
하린이는 조끼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손이 떨리는 걸 감추려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애 옆으로 한 걸음 옮겨 섰다. 트럭과 그 애 사이에. 별 뜻은 없었다. 칠 년 전에 서지 못한 자리에 이제야 선 것뿐이다.
그 애는 걸어갔다. 가로등 빛이 시작되는 자리에서 돌아봤다.
“오빠. 재우가 한 말 있잖아요. 형 있으면 안 무섭다는 거. 그거 제가 칠 년 동안 들고 있었어요. 이제 오빠 거예요.”
그 애가 가고 나서 나는 끝에 혼자 남았다. 열두 시 오십 분까지 기다렸다. 그 애가 들었다는 소리를 들어 보려고. 남서쪽 바다를 향해 귀를 세웠다. 물속에서 스크루 소리를 들을 때처럼 숨을 줄였다. 파도가 테트라포드 사이를 드나드는 소리, 등대 기계가 도는 낮은 소리, 먼 양식장 부표끼리 부딪는 소리. 열두 시 오십 분이 됐다. 아무 소리도 안 났다. 갈매기도 안 울었다. 칠 년 전 그 시각에 그 바다에서 난 소리는 하린이 귀에만 남아 있다. 그 애는 칠 년 동안 매일 밤 그 소리를 다시 틀었다. 나는 한 번도 안 틀었다. 들을 게 없었으니까. 들을 걸 두고 돌아섰으니까.
재우야. 형은 오늘 칠 년 만에 네 목소리를 들었다. 하린이 입으로. 형이 있으면 안 무섭다고. 그 말을 형은 물소리 때문에 못 들었고, 돌아섰고, 칠 년을 도망쳤다.
이 마을에서 처음으로 입을 연 사람이 하린이다. 하나다. 하나면 시작이다. 물속에서 하나를 건지면 그 옆에 둘째가 있다. 선배들이 그랬다.
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