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017자)

낙마와 만남

니체의 삶 · 네오

말은 그가 생각한 것보다 컸다.

나움부르크 기마 포병대의 마구간은 성벽 바깥에 있었고, 새벽 다섯 시에 포병들이 등불을 들고 들어가면 서른 마리가 한꺼번에 고개를 돌렸다. 말의 숨이 찬 공기에 하얗게 올라왔고 짚과 똥과 가죽 냄새가 코를 쳤다. 그에게 배정된 말은 키가 크고 갈색이었으며 눈이 순했다. 그는 그 눈을 보고 로데를 생각했다. 이 말은 움직인다.

움직였다. 그는 첫 주에 두 번 떨어졌고, 둘째 주에 한 번 떨어졌고, 셋째 주부터 떨어지지 않았다. 교관은 그를 신병 가운데 가장 잘 타는 사람으로 꼽았다. 그는 그것을 어머니에게 편지로 썼다. 집에서 자고 집에서 먹으며 복무하는 것이어서 편지가 아니라 저녁 식탁에서 말해도 되었지만, 어머니는 편지로 받는 것을 더 좋아했고 그는 편지로 쓰는 것이 더 쉬웠다. 식탁에서는 어머니가 그의 거친 손을 보았고 편지에서는 보지 않았다.

낮에는 포를 끌었다. 여섯 마리가 끄는 포차를 따라 들판을 달리고 멈추고 포를 돌리고 다시 달렸다. 밤에는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를 읽었다. 리츨이 현상 논문 주제로 낸 것이었다. 2천 년 전 사람이 철학자들의 생애를 적은 책인데 어디서 베꼈는지가 문제였다. 그는 포차 소리가 아직 귀에 남은 밤에 그 책의 출처를 따졌다. 몸은 하루 종일 바깥에 있었고 머리는 밤마다 2천 년 전에 있었다. 둘이 한 사람 안에 있다는 것이 그는 이상하지 않았다. 이상하지 않은 것이 이상했다.

3월에 그는 말에 뛰어올랐다.

평소처럼 올랐다. 그런데 그날은 말이 반 걸음 움직였고, 그의 가슴이 안장 앞머리를 정면으로 받았다. 소리가 났다. 그는 그 소리를 들었다. 가슴 안쪽에서 무엇인가 찢어지는 소리. 그는 떨어지지 않았다. 안장 위에 앉아 숨을 쉬었다. 숨이 반밖에 들어오지 않았다. 교관이 괜찮으냐고 물었고 그는 괜찮다고 했다. 그날 훈련을 끝까지 했다. 포를 끌고 들판을 두 번 돌았다.

밤에 쓰러졌다.

어머니가 의사를 불렀고 의사는 가슴 근육이 찢어졌다고 했다. 쉬면 낫는다고 했다. 쉬었다. 낫지 않았다. 열이 났고 가슴이 부어올랐고 부은 자리가 뜨거워졌으며, 2주 뒤에 의사가 그 자리를 째자 안에서 고름이 나왔다. 그는 그것을 보았다. 자기 몸에서 나오는 것을. 의사가 매일 와서 상처를 씻고 질산은을 발랐다. 질산은이 닿을 때 그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어머니가 옆에서 그의 손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덧문을 닫은 방에 누워 있었다.

빛이 들어오면 머리가 아팠다. 그 말을 하면서 그는 자기가 누구의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았다. 19년 전 이 집이 아닌 다른 집의 다른 방에서 다른 사람이 같은 말을 했다. 그때 네 살이던 아이가 그 방에 하루에 한 번 들어갔다. 지금은 그 아이가 누워 있고, 그때 아이의 손을 잡고 들어갔던 사람이 침대 옆에 앉아 있었다. 어머니는 성경을 읽어 주려고 했다.

“어머니.”

“왜?”

“다른 책을 읽어 주시면 안 돼요?”

“무슨 책?”

그는 책상 위의 두 권을 가리켰다. 어머니는 그 책이 무엇인지 알았다. 한참 동안 가만히 있다가 일어나서 책을 가져왔다. 아무 데나 펴고 읽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목소리로 쇼펜하우어를 듣는 것은 이상했다. 어머니는 「의지」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조금 빨리 읽었고, 「고통」이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조금 느리게 읽었다. 그리고 한 문단이 끝나자 책을 덮고 말했다.

“이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구나.”

“네.”

“너는 이 불행한 사람이 좋으니?”

“그 사람이 왜 불행한지를 설명해 주니까요.”

어머니는 책을 책상에 도로 놓고 성경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읽지 않았다. 그냥 무릎 위에 올려놓고 아들을 보았다. 그는 그 눈을 피하지 않았다. 둘은 그렇게 한참 있었다. 밖에서 포병대의 나팔 소리가 들렸다. 그가 없이 훈련이 시작되고 있었다.

여름에 할레의 의사가 그를 보았다.

유명한 외과의사였고 상처를 보더니 한 달은 더 걸린다고 했다. 그는 할레에 머물며 치료를 받았다. 그 한 달 동안 그는 침대에 앉아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를 끝냈다. 몸이 못 움직이니 머리가 움직였다. 몸이 움직였다면 못 썼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고, 그 생각이 쇼펜하우어 같아서 쓴웃음이 났다. 논문은 상을 받았다. 리츨이 편지를 보내왔다. 자네 몸이 자네 머리를 도왔군. 그는 그 편지를 읽고 처음으로 가슴의 흉터를 손으로 만져 보았다. 길이가 손가락 둘이었다.

10월에 군대가 그를 놓아주었다. 당분간 복무 불가. 그는 라이프치히로 돌아갔다.

라이프치히는 그대로였고 그는 아니었다. 그는 전보다 말랐고 전보다 천천히 걸었으며, 가슴에 손가락 둘 길이의 흉터가 있었다. 로데는 돌아와 있었다. 둘은 승마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10월 말에 에우테르페 음악회에서 두 곡의 서곡을 들었다. 「트리스탄」과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바그너였다. 슐포르타에서 크루크와 더듬더듬 치던 그 소리가 오케스트라로 울렸다. 그는 맨 뒷자리에서 그것을 들었고, 끝나고 나서 한참 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그날 밤 로데에게 편지를 썼다.

「나는 이 음악 앞에서 비판적으로 차갑게 굴 수가 없다. 내 모든 섬유가, 모든 신경이 떨린다.」[주 7-01]

열흘 뒤에 친구 빈디슈가 찾아와 말했다. 바그너가 라이프치히에 와 있다고. 아무도 모르게 누이를 만나러 왔는데, 누이가 동양학자 브록하우스 교수의 부인이고, 그 집에서 일요일 저녁에 바그너가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한다고.

“나를?”

“자네가 바그너 음악을 안다고 내가 말했어. 쇼펜하우어를 읽는다고도.”

그는 일요일까지 사흘을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기억하는 것은 양복이었다. 그는 바그너를 만나려고 양복을 맞추었다. 생애 첫 맞춤 양복이었고 일요일 아침에 온다고 했다. 오지 않았다. 오후에도 오지 않았다. 저녁 여섯 시에 그는 양복점으로 달려갔고, 양복점은 닫혀 있었다. 하숙으로 돌아오니 양복점 심부름꾼이 양복을 들고 와 있었다. 그는 안도했다. 심부름꾼이 말했다. 현금으로 주셔야 합니다. 그는 현금이 없었다. 월말이었다. 심부름꾼은 양복을 들고 갔다.

그는 낡은 검은 외투를 입고 나갔다. 비가 왔다. 브록하우스의 집은 걸어서 20분이었고 그는 뛰지 않고 걸었다. 외투가 젖었다. 문 앞에서 그는 젖은 외투를 벗어 하인에게 주고, 안으로 들어갔다.

바그너는 작았다.

그가 처음 본 것은 그것이었다. 음악은 그렇게 큰데 사람은 작았다. 그다음에 본 것은 눈이었다. 작은 사람의 큰 눈이 방 안의 모두를 한 번에 보고 있었다. 바그너는 그를 보고 손을 내밀었다. 손은 뜨거웠고, 그 손이 자기 젖은 소매 끝을 스치는 것을 그는 느꼈다.

그날 저녁 바그너는 피아노 앞에 앉아 「명가수」의 주요 장면을 전부 쳤다. 노래도 했다. 모든 배역을 혼자 했다. 한스 작스를 할 때는 목소리를 낮추었고 베크메서를 할 때는 코맹맹이 소리를 냈으며, 그 소리가 하도 우스워서 브록하우스 부인이 손수건으로 입을 가렸다. 그도 웃었다. 웃으면서 들었고 들으면서 웃었다. 피아노 치는 사람이 악보를 보지 않았다. 어디로 가는지 아는 소리였고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소리였다. 둘이 한 소리 안에 있었다.

그다음에 바그너는 쇼펜하우어 이야기를 했다. 음악을 이해한 유일한 철학자라고 했다. 그는 그 말에 고개를 들었고 바그너가 그것을 보았다. 바그너는 그에게 어떻게 쇼펜하우어를 읽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헌책방 이야기를 했다. 열나흘 이야기를 했다. 바그너가 들었다. 작은 사람이 큰 눈으로 그의 말을 끝까지 들었다. 그리고 자기 자서전 원고를 꺼내 라이프치히 학생 시절의 우스운 장면을 읽어 주었다. 방 안의 모두가 웃었다.

헤어질 때 바그너가 그의 손을 다시 잡았다. 오래 잡았다.

“트립셴으로 오시오. 음악과 철학을 합시다.”

그는 무어라고 대답했다. 기억나지 않았다. 밖으로 나오니 비가 그쳐 있었고 젖은 외투는 아직 젖어 있었다. 그는 그것을 입고 걸었다. 20분이 2분 같았다. 하숙에 돌아와 그는 외투를 의자에 걸고 책상에 앉았다. 새벽이었다. 그는 로데에게 편지를 썼다. 양복 이야기부터 썼다. 양복 이야기를 쓰면서 그는 자기가 웃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놀랍도록 활기차고 불같은 사람이다. 아주 빠르게 말하고 아주 재치 있다.」[주 7-02]

쓰다가 그는 펜을 멈추고 의자에 걸린 외투를 보았다. 낡은 검은 외투. 그것을 입고 들어간 방에서 바그너가 자기 손을 잡았다. 양복이 왔더라면 어땠을까. 그는 그 생각을 하다가 웃었고, 가슴의 흉터가 웃음에 당겨서 조금 아팠다.

후주

[주 7-01] 니체가 에르빈 로데에게 보낸 편지, 1868년 10월 27일. eKGWB BVN-1868(번호는 비평판에서 재확인). 한국어 작업 번역. 트리스탄과 명가수 서곡을 들은 뒤의 편지다.

[주 7-02] 니체가 에르빈 로데에게 보낸 편지, 1868년 11월 9일. eKGWB BVN-1868,599. 한국어 작업 번역. 바그너를 만난 다음 날의 편지로, 양복점 심부름꾼 이야기와 바그너가 명가수를 치며 모든 배역을 흉내 낸 것, 쇼펜하우어를 음악을 이해한 유일한 철학자라고 말한 것, 자서전 원고의 우스운 대목을 읽어 준 것, 음악과 철학을 하자며 초대한 것이 모두 이 편지에 적혀 있다.

[근거 7-03] 1867년 10월 나움부르크 기마 포병대 복무. 신병 가운데 승마를 가장 잘한다는 평을 받았다는 것은 니체 자신의 편지다. 1868년 3월 말에 오르다 가슴을 안장 앞머리에 부딪쳐 가슴 근육이 찢어지고 고름이 생겨 여러 달 누웠으며, 여름에 할레의 외과의 폴크만에게 치료받았다. 1868년 10월 복무 부적합으로 제대.

[근거 7-04]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자료원에 관한 현상 논문은 리츨이 낸 주제로 1867년 상을 받았고 1868~1869년 「라인 박물관」에 실렸다. 본문은 집필과 수상의 시기를 와병 기간과 겹쳐 압축했다.

[근거 7-05] 1868년 11월 8일 동양학자 헤르만 브록하우스의 집에서 바그너를 처음 만남. 브록하우스의 부인 오틸리에는 바그너의 누이다. 소개자는 친구 에른스트 빈디슈.

어머니가 쇼펜하우어를 읽어 주는 장면과 대화, 리츨 편지의 문구, 바그너가 작았다는 첫인상의 서술, 외투와 흉터의 세부는 소설의 창작이다. 후기 질병 전체를 이 낙마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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