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045자)
헌책방의 책
니체의 삶 · 네오
책은 하숙집 아래층에 있었다.
라이프치히의 블루멘가세에 방을 얻었는데 집주인 론 씨가 1층에서 헌책방을 했다. 청년은 방세를 내러 내려갈 때마다 책 사이를 지나야 했고, 가을이 깊어지면서 지나는 시간이 길어졌다. 책방은 좁고 길었다. 천장까지 닿는 서가 사이로 사람 하나가 겨우 지나갔고, 창이 길 쪽으로 하나뿐이라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어두워졌으며, 오래된 가죽과 종이와 풀 냄새가 안쪽으로 갈수록 짙어졌다. 론 씨는 손님이 책을 오래 들여다보아도 아무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10월 어느 날 청년은 안쪽 서가에서 두 권짜리 책을 꺼냈다. 제목은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지은이는 쇼펜하우어. 들어 본 이름이었다. 몇 해 전에 죽은 늙은 철학자, 혼자 살았고 개를 기르고 플루트를 불었다는 사람. 청년은 아무 데나 폈다. 그리고 서서 한 장을 읽었다. 두 장을 읽었다. 론 씨가 등불을 켜는 소리가 났고, 청년은 자기가 어두운 데서 읽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두 해 뒤에 그는 그날을 이렇게 적는다.
「나는 낯선 그 책을 손에 들고 넘겨 보았다. 어떤 악령이 내게 속삭였는지 모르겠다. 「이 책을 집으로 가져가라.」」[주 6-01]
그는 책을 집으로 가져갔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열네 개를 올라가는 동안 책은 무거웠고, 방에 들어가 침대에 앉아서 첫 장부터 읽기 시작했을 때 창밖은 이미 어두웠다. 그는 저녁을 먹지 않았다.
열나흘이었다.
그는 그 뒤로 열나흘 동안 그 책만 읽었다. 새벽 두 시에 자고 여섯 시에 일어났다. 강의에 갔다가 돌아와서 읽었고 밤에 읽었고 먹으면서 읽었다. 머리가 아팠다. 아픈 머리로 읽었다. 책이 말하는 것은 이런 것이었다. 세계의 바닥에는 이유 없는 의지가 있다. 그것은 살려고 하고 더 살려고 하고 끝없이 원하는데, 원하는 것은 채워지지 않고, 채워지면 지루해지고, 그래서 삶은 고통이다. 그 고통을 잠깐 멈추는 것이 예술이고 음악이다. 그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길은 원하기를 그치는 것이다.
청년은 그것을 읽으면서 자기가 아는 것들을 보았다. 덧문을 닫은 방에 누워 있던 아버지. 작은 관. 밤마다 조여 오던 머리. 피아노 밑에서 들은 소리가 왜 위로였는지. 책은 그 모든 것에 이름을 붙여 주었다. 고통은 네 잘못이 아니다. 세계가 원래 그렇다.
그는 그 문장들을 읽고 처음으로, 아버지가 죽은 뒤 처음으로, 울었다.
울고 나서 그는 책을 들고 론 씨의 책방으로 내려갔다. 밤 열 시였고 책방은 닫혀 있었지만 론 씨는 안쪽 책상에서 장부를 적고 있었고, 청년이 유리문을 두드리자 안경 너머로 올려다보고 문을 열어 주었다. 청년은 같은 책이 한 질 더 있는지 물었다. 론 씨는 없다고 했다. 왜 한 질이 더 필요하냐고 묻지 않았다. 청년도 말하지 않았다. 사실은 로데에게 주려는 것도 어머니에게 보내려는 것도 아니었고, 그냥 이 책이 세상에 한 질뿐이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는데, 그것이 얼마나 어린 생각인지를 그는 계단을 올라가면서 알았다.
열나흘째 밤에 그는 책을 덮고 거울을 보았다. 눈 밑이 검었다. 그는 거울 속의 사람에게 말했다. 네가 아픈 것은 네가 이상해서가 아니다. 그리고 그 말이 위로가 되는 자기가 조금 두려웠다. 설명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설명해 주는 사람을 받아들인 것 같아서였다. 아버지가 떠난 자리에 죽은 철학자를 앉힌 것 같아서였다.
그는 그 생각을 공책에 적지 않았다. 적으면 사실이 될 것 같았다.
리츨은 살아 있는 스승이었다.
본에서 라이프치히로 따라온 학생이 몇 있었고 청년은 그중 하나였다. 리츨은 그를 기억했다. 12월에 청년은 동급생 몇과 문헌학 모임을 만들었다. 게르마니아의 대학판이었다. 달마다 한 사람이 발표한다. 첫 발표는 청년이 맡았고 주제는 테오그니스였다. 슐포르타에서 라틴어로 썼던 것을 독일어로 다시 썼는데, 이번에는 시가 어떻게 전해졌는지만이 아니라 왜 그렇게 전해졌는지까지 따졌다. 발표가 끝나고 그는 원고를 리츨에게 보냈다. 보내 놓고 사흘 동안 후회했다.
나흘째에 리츨이 그를 불렀다.
리츨의 서재는 책이 바닥까지 쌓여 있어서 앉을 의자가 하나뿐이었고, 리츨은 그 의자를 청년에게 내주고 자기는 서서 말했다. 작고 빠르고 날카로운 사람이 천천히 말하고 있었다.
“이걸 자네가 썼나?”
“네.”
“혼자?”
“네.”
리츨이 원고를 들어 보였다. 여백에 연필 자국이 가득했다.
“내가 이 나이의 학생에게서 이런 것을 본 적이 없네. 방법이 틀린 데가 없어. 결론에 동의하지 않는 데가 둘 있는데, 그건 자네가 틀려서가 아니라 내가 다르게 보기 때문이야. 이걸 다듬어서 학술지에 내게. 내가 추천하지.”
청년은 무어라고 대답했는지 나중에 기억하지 못했다. 서재를 나와서 계단을 내려올 때 다리가 조금 떨렸다. 거리로 나왔을 때 12월의 찬 공기가 얼굴에 닿았고, 그는 그제야 자기가 웃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입이 저절로 벌어져 있었다. 그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날 밤 그는 공책에 적었다. 인정받는 것이 이렇게 좋은 것인 줄 몰랐다. 그리고 그 아래 적었다. 이것이 좋다면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아플 것이다. 그는 두 줄을 보다가 두 번째 줄에 줄을 그었다. 그어 놓고 보니 더 잘 보였다.
로데를 만난 것은 그 겨울이었다.
에르빈 로데는 함부르크에서 왔고 청년보다 한 살 아래였으며 리츨의 세미나에서 청년 다음으로 말을 많이 하는 학생이었다. 둘은 처음에 서로를 경계했다. 두 달 뒤에는 매일 만났다. 로데는 쇼펜하우어를 읽었고 바그너를 알았고 농담을 할 줄 알았는데, 그 셋을 다 가진 사람을 청년은 처음 만났다.
봄에 둘은 승마를 배웠다.
로데의 생각이었다. 철학자도 몸이 있어야 한다고. 둘은 도시 밖 승마장에서 늙은 말 두 마리를 빌려 탔는데, 청년의 말은 청년보다 철학적이어서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고, 로데의 말은 로데보다 성급해서 로데를 두 번 떨어뜨렸다. 두 번째로 떨어졌을 때 로데는 풀밭에 누운 채로 말했다.
“프리츠, 쇼펜하우어가 뭐라고 했지? 의지가 세계의 바닥이라고?”
“그래.”
“이 말의 의지는 나를 떨어뜨리는 거야. 세계의 바닥이 나를 떨어뜨리고 싶어 해.”
청년은 말 위에서 웃었다. 소리 내어 웃었다. 그 소리에 그의 말이 놀라서 처음으로 움직였고, 그는 고삐를 놓칠 뻔했다. 둘은 그날 저녁 술집에서 그 이야기를 다섯 번 했고 할 때마다 말이 더 커졌다.
여름에 전쟁이 났다.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가 싸웠고 작센은 오스트리아 편이었으며 라이프치히는 작센이었다. 프로이센 군대가 도시로 들어왔다. 청년은 프로이센 사람이었다. 나움부르크가 프로이센이라서였다. 그는 입대하겠다고 했다. 눈이 나빠서 거절당했다. 그는 그 거절이 분했고, 분한 자기가 이상했다. 쇼펜하우어를 읽은 사람이 전쟁에 나가고 싶어 하다니. 로데가 말했다. 네 안의 의지가 세계의 바닥이라서 그래. 둘은 또 웃었다.
어머니의 편지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 전쟁이 나서 걱정이라는 것과, 네가 읽는다는 그 철학자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들었다는 것. 청년은 첫 번째에만 답했다. 전쟁은 라이프치히까지 오지 않을 것이고 프로이센 군인들은 예의가 바르며 자기는 잘 먹고 있다고. 잘 먹고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그는 책값 때문에 저녁을 자주 걸렀고, 걸러도 괜찮다는 것을 쇼펜하우어에게서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책을 잘못 읽은 것인지 몸을 잘못 쓴 것인지는 그때 몰랐다.
그해 여름에 그는 랑게의 「유물론의 역사」를 읽었다. 쇼펜하우어 다음에 읽은 책이었고, 쇼펜하우어가 세계의 바닥을 말했다면 이 책은 바닥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틀렸는지를 말했다. 그는 둘을 나란히 놓고 읽었다. 하나는 답이었고 하나는 답을 의심하는 법이었다. 그는 자기가 어느 쪽을 더 좋아하는지 알았고, 알면서도 다른 쪽을 놓지 않았다.
이듬해 테오그니스 논문이 학술지에 실렸다.
「라인 박물관」. 독일 문헌학에서 가장 오래된 학술지였고 리츨이 편집인이었다. 스물두 살의 학생 이름이 거기 실렸다. 청년은 인쇄된 자기 이름을 세 번 읽었다. 글씨가 아니라 활자였다. 자기 손에서 나온 것이 자기 손을 떠나 있었다.
그해 가을에 징집 통지가 왔다.
눈이 나빠도 포병은 된다고 했다. 나움부르크의 기마 포병대. 집에서 복무하는 것이었다. 로데가 작별 선물로 승마 채찍을 주었다. 둘은 라이프치히 역에서 헤어졌다. 로데가 말했다.
“말에서 떨어지지 마.”
“내 말은 안 움직여.”
“군대 말은 움직여, 프리츠.”
기차가 떠났다. 청년은 창가에 앉아 가방 위에 손을 얹었다. 가방 안에 쇼펜하우어 두 권이 들어 있었다. 열나흘 동안 읽은 그 책이었다. 모서리가 닳아 있었고, 어떤 장에는 그가 밤에 적어 둔 연필 글씨가 여백을 채우고 있었다. 그는 그 책을 꺼내지 않았다. 창밖을 보았다. 들판이 뒤로 흘러갔다.
로데의 말이 맞았다. 군대 말은 움직였다.
후주
[주 6-01] 니체, 「라이프치히 두 해의 회고」, 1867~1868년에 쓴 자전적 초고. 비평판 초기 저작(KGW I)에 수록. 한국어 작업 번역. 1865년 10월 말 헌책방에서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산 날을 두 해 뒤에 돌아보며 적은 것으로, 당시의 기록이 아니라 후기의 회고다. 열나흘 동안 새벽 두 시에 자고 여섯 시에 일어나며 읽었다는 것도 같은 회고에 나온다.
[근거 6-02] 1865년 10월 라이프치히로 옮겨 블루멘가세의 헌책방 주인 론의 집에 하숙. 1865년 12월 동급생들과 문헌학 모임을 만들고 1866년 1월 테오그니스를 첫 발표. 리츨이 원고를 읽고 그 나이의 학생에게서 그런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는 것은 니체 자신의 회고다. 논문 「테오그니스 격언집의 역사에 관하여」는 1867년 「라인 박물관」에 실렸다.
[근거 6-03] 에르빈 로데와의 우정은 1866년부터. 두 사람이 함께 승마를 배운 것은 사실이나 말에서 떨어진 일과 대화는 창작이다.
[근거 6-04]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때 프로이센 국적으로 입대를 원했으나 근시로 거절되었고, 1867년 10월 나움부르크 기마 포병대에 징집되었다.
쇼펜하우어의 사상 요약은 소설의 서술이며 인용이 아니다. 리츨 서재의 대화, 공책의 두 줄, 어머니 편지의 내용, 로데의 작별 선물과 역에서의 대화는 창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