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507자)

여기서 길이 갈린다

니체의 삶 · 네오

맥주잔이 탁자를 쳤다.

스무 개가 한꺼번에 쳤고, 그다음에 노래가 시작되었다. 본의 프랑코니아 학우회가 매주 모이는 술집은 천장이 낮고 벽이 담배 연기로 누렇게 절어 있었으며, 긴 탁자 끝에서 끝까지 같은 색 모자를 쓴 학생들이 어깨를 붙이고 앉아 같은 노래를 불렀다. 청년은 그 가운데 있었다. 모자를 썼고, 잔을 들었고, 가사를 외웠다. 노래가 끝나면 잔을 비우고 탁자를 쳤다. 모두가 그렇게 했으므로 그도 그렇게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라인 강변을 걸었다. 밤 강은 검었고 건너편 지벤게비르게의 산들이 하늘보다 조금 더 검게 서 있었으며, 강바람이 맥주 냄새와 담배 냄새를 외투에서 조금씩 벗겨 갔다. 그는 걸으면서 아까 부른 노래를 떠올렸다. 가사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스무 명과 함께 부를 때는 알았는데 혼자가 되니 몰랐다.

하숙방에 들어와서 그는 거울을 보았다. 모자를 쓴 사람이 있었다. 그는 모자를 벗었다.

낮에는 강의실이었다. 리츨 교수의 라틴어 문헌학과 얀 교수의 그리스 문헌학을 같은 주에 들었는데, 두 교수는 같은 건물의 다른 층에서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 학생들은 그것을 알았고 어느 쪽 강의실에 더 자주 앉는지로 편이 갈렸다. 청년은 둘 다 들었다. 리츨은 작고 빠르고 날카로웠으며 한 낱말의 철자가 어느 필사본에서 틀어졌는지를 두 시간 동안 따졌고, 얀은 크고 느리고 음악을 알았으며 모차르트 전기를 쓴 사람이었다. 청년은 리츨의 강의에서 손이 아프도록 적었고 얀의 강의에서는 적지 않고 들었다. 어느 쪽이 자기 스승인지 그는 아직 몰랐다. 신학 강의는 첫 학기에 두 번 가고 가지 않았다. 그 사실을 어머니에게 쓰지 않았다.

일요일에는 쾰른의 음악회에 갔다. 기차로 한 시간이었고 표는 가장 싼 것이었다. 귀르체니히 홀의 맨 뒷자리에서 그는 슈만과 베토벤을 들었고, 돌아오는 기차에서 들은 것을 머릿속으로 다시 쳤다. 하숙방에는 피아노가 없었다. 그는 책상 위에 손가락을 놓고 쳤다. 소리가 나지 않는 피아노였다. 그래도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있었다.

도이센이 말했다. 학우회에 들었으면 한 번은 칼을 들어야 한다고. 그래서 그는 들었다. 상대는 다른 학우회의 모르는 학생이었고 둘은 정중하게 날짜를 정했다. 결투는 3분 만에 끝났다. 상대의 칼끝이 그의 콧등을 스쳤고 피가 조금 났고 심판이 끝을 선언했다. 의사가 반창고를 붙여 주었다. 흉터는 콧등 위에 작게 남았다. 도이센은 그것을 보고 축하한다고 했다. 청년은 거울 앞에서 그 작은 흉터를 보면서 이것이 자기가 본에 와서 얻은 것인가 생각했다. 겨울이 지나고 있었다.

2월에 그는 쾰른에 갔다.

대성당을 보고, 음악회를 듣고, 저녁에 혼자 거리로 나왔다. 길을 몰라서 짐꾼에게 식당을 안내해 달라고 했다. 짐꾼이 데려간 곳은 식당이 아니었다. 문이 열리자 붉은 등이 켜진 방에 여자들이 앉아 있었고, 여자들이 일제히 그를 보았다. 그는 문간에 서서 움직이지 못했다. 여자들의 눈이 그를 훑었고 누군가 웃었다. 그때 그는 방 구석에서 피아노를 보았다.

그는 피아노로 갔다. 여자들 사이를 지나 피아노 앞에 앉아 뚜껑을 열었다. 건반을 눌렀다. 몇 개의 화음. 그 방에서 자기에게 말을 거는 것이 그것 하나였다. 그는 그것을 치고 일어서서 모자를 쓰고 나왔다. 아무도 붙잡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그는 도이센에게만 했다. 도이센은 웃었다.

“그래서 피아노만 치고 나왔다고?”

“그래.”

“프리츠, 넌 정말.”

도이센은 말을 맺지 않았다. 청년도 그 뒤에 무엇이 올지 알고 싶지 않았다.

부활절에 그는 나움부르크로 갔다.

어머니가 성문까지 마중을 나왔고 엘리자베트가 뒤에 서 있었다. 어머니는 청년의 콧등을 먼저 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보았다는 것을 청년은 알았다. 집은 그대로였다. 피아노는 벽과 벽 사이에 있었고 뚜껑 위에 어머니가 수를 놓은 천이 덮여 있었으며, 그 위에 성경이 놓여 있었다. 청년이 집을 떠난 뒤에 생긴 자리였다. 저녁 식탁에 아버지의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은 15년째라 아무도 보지 않았다.

사흘 동안 그는 좋은 아들이었다. 어머니와 산책을 했고 엘리자베트의 피아노를 들어 주었고 고모 로잘리의 집에 인사를 갔다. 밤에는 2층 방에서 라이프치히에서 온 리츨의 편지를 읽었다. 함께 오지 않겠느냐는 편지였다. 그는 그것을 어머니에게 보이지 않았다.

부활절 아침에 어머니가 교회 갈 채비를 하면서 말했다.

“성찬은 같이 받자.”

“저는 안 받겠어요.”

어머니의 손이 멈추었다. 모자 끈을 묶던 손이었다.

“뭐라고?”

“성찬을 안 받겠다고요.”

“왜?”

“믿지 않는 것을 받을 수는 없어요.”

“네가 뭘 믿고 안 믿는데? 스무 살이 뭘 안다고.”

“모르니까 안 받는 거예요. 아는 척하고 받을 수는 없어요.”

어머니가 모자 끈을 놓았다. 모자가 바닥에 떨어졌고 아무도 줍지 않았다.

어머니가 울기 시작했다. 소리를 내지 않고 울었다. 뢰켄의 거실에서 할머니 앞에서 울던 그 울음이었다. 엘리자베트는 문간에 서서 오빠를 보았다. 그 눈에 무엇이 있는지 청년은 읽을 수 없었다. 고모 로잘리가 와서 어머니를 안았다.

“프란치스카, 큰 신학자들도 다 의심하는 때가 있었어요. 지나가요.”

어머니는 혼자 교회에 갔다. 엘리자베트가 따라갔다. 청년은 집에 남아 2층 방에 앉아 있었다. 종이 울렸다. 그는 종이 몇 번 울리는지 세지 않았다. 세지 않으려고 했는데 세고 있었다. 종이 그치고 집이 조용해졌을 때 그는 피아노 앞에 내려갔다가 치지 않고 올라왔다.

본으로 돌아간 뒤 동생의 편지가 왔다.

긴 편지였다. 엘리자베트는 열아홉이었고 글씨가 단정했다. 오빠가 길을 잃은 것 같아 무섭다고 했다. 믿음은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고, 오빠가 그렇게 똑똑한 머리로 따지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것이며, 어머니가 밤마다 운다고 했다. 어머니는 교회에서 사람들이 묻는 말에 아들이 공부가 바빠서 못 왔다고 대답했다고도 했다. 마지막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오빠, 그냥 믿으면 안 돼?

청년은 그 편지를 사흘 동안 책상 위에 두었다. 아침에 나갈 때 보았고 저녁에 들어와서 보았다. 책상 위에는 리츨이 내준 과제와 테오그니스 필사본 대조표와 엘리자베트의 편지가 나란히 놓여 있었는데, 앞의 둘은 손을 대면 줄어드는 일이었고 뒤의 것은 손을 대면 늘어나는 일이었다. 그는 앞의 둘을 먼저 했다. 나흘째 밤에 답장을 썼다. 6월 11일이었다.

그는 동생을 달래지 않았다. 동생이 틀렸다고도 하지 않았다. 동생이 말한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적었다. 믿으면 마음이 편해진다는 것, 그것은 맞다. 그런데 편해진다는 것과 참이라는 것은 다르다. 믿음이 사람에게 주는 것은 그 사람이 믿음 안에서 찾기를 바라는 것이다. 위로, 평화, 소속. 믿음은 그것을 틀림없이 준다. 그러나 그것이 참이라는 증거는 아니다.

「모든 참된 믿음은 틀림이 없다. 믿는 사람이 그 안에서 찾기를 바라는 것을 그것은 준다. 그러나 객관적인 진리를 세우는 데에는 조금의 발판도 주지 않는다.」[주 5-01]

그는 거기서 펜을 멈추고 창밖을 보았다. 본의 6월 밤은 짧았고 강 쪽에서 개구리 소리가 올라왔다. 어머니가 밤마다 운다는 문장이 눈앞에 떠올랐다. 그는 그 문장을 밀어내지 않았다. 밀어내지 않은 채로 다음 문장을 썼다.

「여기서 사람들의 길이 갈린다. 네가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얻고자 한다면 믿어라. 네가 진리의 제자가 되고자 한다면 물어라.」[주 5-02]

쓰고 나서 그는 그것을 다시 읽었다. 동생에게 쓴 것인데 자기에게 쓴 것 같았다. 자기는 어느 쪽인지. 그는 알았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부활절에 성찬을 받지 않았다. 그런데 평화와 행복을 버리는 쪽을 고른 사람이 이렇게 또렷한 문장을 쓸 수 있다는 것이 그는 조금 무서웠다.

편지 끝에 그는 신학을 그만두겠다고 적었다. 문헌학만 하겠다고. 리츨 교수가 라이프치히로 가게 되었으니 자기도 가을에 라이프치히로 가겠다고. 어머니께는 네가 먼저 말해 달라고 쓰다가 지웠다. 그것은 비겁했다. 어머니께는 따로 쓰겠다고 적었다.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는 그날 밤 쓰지 못했다. 다음 날도 쓰지 못했다. 사흘 뒤에 썼는데 동생에게 쓴 것의 반도 안 되는 길이였고, 믿음이라는 말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신학 강의가 자기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 문헌학에서 교수가 자기를 인정해 준다는 것, 라이프치히는 나움부르크에서 더 가깝다는 것. 전부 사실이었다. 그리고 전부 핵심이 아니었다. 그는 그것을 알면서 봉했다. 어머니에게는 「물어라」라고 쓸 수 없었다. 어머니는 묻는 사람이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이었고, 그는 어머니가 기도하는 사람으로 남아 있기를 바랐다. 그것이 자기가 고른 길과 모순된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알면서 봉했다.

봉투를 봉하고 그는 밤 강변으로 나갔다. 우체통까지는 10분이었다. 그는 뛰지 않고 걸었다. 우체통 앞에서 잠깐 섰다가 넣었다. 편지가 통 바닥에 닿는 소리가 났다. 그는 돌아서서 걸었고,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나움부르크에서 엘리자베트는 그 편지를 혼자 읽었다.

어머니가 자고 있는 밤이었다. 촛불 아래서 두 번 읽었다. 믿어라, 물어라. 엘리자베트는 자기가 어느 쪽인지 알았다. 어느 쪽인지 알았기 때문에, 오빠가 자기와 다른 쪽에 서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 편지에서 가장 아픈 것은 오빠가 자기를 어린아이 취급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어린아이 취급을 했다면 화를 낼 수 있었을 텐데.

엘리자베트는 편지를 접어 서랍 깊은 데 넣었다. 그 편지를 그녀는 평생 버리지 않는다. 40년 뒤 그녀는 그 편지를 오빠의 책과 함께 유리장에 넣고 사람들에게 보여 주게 된다. 그러나 그날 밤의 그녀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날 밤의 그녀는 서랍을 닫고 촛불을 끄고, 어머니가 깨지 않도록 조용히 침대로 갔다.

후주

[주 5-01] [주 5-02] 니체가 동생 엘리자베트에게 보낸 편지, 1865년 6월 11일(날짜는 편집자 보충). eKGWB BVN-1865,469. 한국어 작업 번역. 두 인용은 같은 편지의 다른 자리에서 발췌했으며 원문의 순서도 이와 같다. 「편안함을 원하면 믿어라」는 사랑하는 동생에게 반대하는 편지이므로 냉정한 선언이 아니라 설득의 문맥에 있다.

[근거 5-03] 1864년 10월 본 대학 입학, 신학·문헌학 병행 등록. 학우회 프랑코니아 가입, 음주와 노래, 1865년의 결투와 콧등의 작은 흉터는 친구 파울 도이센의 회고에 전한다.

[근거 5-04] 1865년 2월 쾰른에서 짐꾼이 데려간 집에서 피아노만 치고 나왔다는 이야기는 도이센이 니체에게 직접 들었다고 회고한 것이다. 세부와 대화는 창작이다.

[근거 5-05] 1865년 부활절 나움부르크에서 성찬을 거부해 어머니가 울고 고모 로잘리가 큰 신학자들도 의심한 때가 있었다며 달랬다는 것은 동생 엘리자베트의 회고다. 동생의 회고는 미화와 기억 오류가 있어 전승으로 다룬다.

[근거 5-06] 1865년 신학을 그만두고 문헌학만 택함. 스승 리츨이 본 대학의 분쟁 끝에 라이프치히로 옮기자 1865년 가을 그를 따라갔다.

동생의 편지 내용, 엘리자베트가 밤에 편지를 읽는 장면, 우체통까지의 길은 소설의 창작이다. 엘리자베트가 훗날 오빠의 편지와 유품을 전시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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