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045자)

운명과 역사

니체의 삶 · 네오

새벽 다섯 시에 종이 울렸다.

슐포르타는 수도원이었던 곳이라 종이 세 개였고, 그중 가장 작은 것이 기숙사를 깨우는 종이었는데, 소리가 높고 짧아서 잠든 머리에 못처럼 박혔다. 소년은 종이 울리기 전에 깨어 있었다. 첫 주 내내 그랬다. 옆 침대의 아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끙끙거리는 동안 소년은 천장의 들보를 세었다. 열두 개였다. 뢰켄의 천장은 널이었고 나움부르크의 천장은 회칠이었는데 여기는 검은 들보였다.

세수는 찬물이었고 아침은 묽은 수프와 빵이었으며, 여섯 시부터 라틴어였다. 하루에 열 시간을 앉아 있었다. 소년은 앉아 있는 것은 잘했다. 못하는 것은 머리였다. 오후가 되면 눈 뒤쪽에서 무엇인가가 천천히 조여 왔고, 어떤 날은 그것이 조여 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소년은 그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다가 한 달 만에 복도에서 쓰러졌다. 의무실에서 사흘을 누워 있었다. 의사가 어두운 방에 두라고 했고, 간호를 맡은 늙은 여자가 하루 두 번 젖은 수건을 이마에 갈아 주면서 물으면 안 되는 것을 묻는 눈으로 소년을 내려다보았다. 소년은 덧문을 닫은 방에 누워서, 덧문을 닫은 방에 누워 있던 다른 사람을 생각했다.

“아버지도 머리가 아프셨대.”

소년은 그 말을 어머니에게 편지로 썼다가 지웠다. 어머니가 그 편지를 받으면 밤에 잠을 못 잘 것이었다.

집은 걸어서 한 시간이었다. 일요일 오후에만 갈 수 있었고 저녁 종 전에 돌아와야 했다. 소년은 그 한 시간을 뛰지 않고 걸었다. 핀더와 크루크는 나움부르크의 학교에 남아 있었고, 소년은 일요일마다 두 사람을 만나 일주일치 이야기를 한꺼번에 했다.

1860년 여름, 셋은 쇤부르크 폐허에 올라갔다.

잘레 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무너진 성이 있었다. 핀더가 포도주 한 병을 가져왔고 크루크가 잔 대신 쓸 사발을 가져왔으며, 소년은 종이를 가져왔다. 셋은 무너진 탑 아래 앉아 모임을 만들었다. 이름은 게르마니아. 규칙은 간단했다. 달마다 한 사람이 하나씩 낸다. 시든 곡이든 논문이든. 낸 것은 셋이 함께 읽고 비판한다. 비판에 화내지 않는다.

“화내지 않는다는 건 지키기 어려울걸.”

크루크가 말했다. 소년이 종이에 그 규칙을 적었다. 셋이 서명했다. 그리고 병에 남은 포도주를 나누어 마시고 빈 병을 탑 아래로 던졌다. 병이 바위에 부딪혀 깨지는 소리가 강 쪽으로 퍼졌다. 셋은 그 소리가 다 사라질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년이 처음 낸 것은 곡이었다. 두 번째는 시였다. 세 번째는 논문이었고, 그때부터 소년은 달마다 하나가 아니라 둘씩 냈다. 크루크는 바그너라는 사람의 피아노 악보를 구해 왔다. 트리스탄. 셋은 크루크의 집 피아노에서 그것을 더듬더듬 쳐 보았는데, 악보는 빌려 온 것이라 모서리가 닳아 있었고 누군가 연필로 적어 둔 손가락 번호가 군데군데 남아 있었으며, 크루크가 왼손을 맡고 소년이 오른손을 맡아 한 마디씩 맞추어 나갔다. 소년은 첫 화음에서 손을 멈추었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소리였다. 가야 할 자리가 없는 소리. 아버지의 피아노와 달랐지만 같은 것이 거기 있었다. 소년은 그날 밤 기숙사에서 잠들지 못했다.

학교에는 좋아해도 되는 시인과 좋아하면 안 되는 시인이 있었다.

독일어 교사가 편지 형식의 과제를 냈다. 친구에게 좋아하는 시인을 권하는 편지를 쓰라. 소년은 횔덜린을 골랐다. 미친 채로 36년을 살다 죽은 시인, 교과서에 없는 시인, 교사가 수업에서 「병든 정신」이라고 부른 시인이었다. 소년은 그 시인이 왜 아름다운지를 넉 장에 썼다. 돌려받은 과제의 끝에 교사가 붉은 잉크로 적어 두었다. 더 건강하고 더 명료하고 더 독일적인 시인에게 마음을 쓰기를 권한다.

소년은 그 종이를 접어 공책 사이에 끼웠다. 버리지 않았다. 횔덜린도 버리지 않았다.

1862년 부활절 방학에 소년은 게르마니아에 낼 글을 썼다.

제목을 「운명과 역사」라고 붙였다. 쓰기 시작한 것은 밤이었고 끝낸 것도 밤이었다. 소년은 열일곱이었다. 어머니의 집 2층 방에서 썼는데, 아래층에서 어머니가 성경을 읽는 소리가 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소년은 그 소리를 들으면서 썼다.

우리가 믿는 것이 정말로 참이어서 믿는 것인지, 아니면 태어나서부터 들어 왔기 때문에 믿는 것인지. 교회의 가르침을 열두 해 동안 들은 사람이 그것을 자유로운 눈으로 볼 수 있는지. 역사를 보면 모든 민족이 저마다 다른 신을 믿었고 저마다 자기 신이 참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참이라는 것은 무엇인지. 인간의 의지는 자유로운지, 아니면 태어난 자리와 시대가 이미 정해 둔 길을 걷는 것인지.

소년은 그것을 묻기만 했다. 답을 쓰지 않았다. 답을 쓸 수 없어서가 아니라 답을 쓰면 그 답이 또 하나의 믿음이 될 것 같아서였다. 소년은 마지막에 이렇게 적었다. 이런 시도는 바다로 나가는 어린아이의 걸음과 같다. 그리고 펜을 놓았다. 아래층의 소리가 그쳐 있었다.

게르마니아에서 그 글을 읽었을 때 핀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크루크가 먼저 말했다.

“이걸 집에서 썼어? 어머니 계신 집에서?”

“응.”

“어머니가 읽으시면?”

소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날 셋은 비판을 하지 않았다. 규칙을 처음 어겼다.

이듬해 봄에 소년은 다른 규칙을 어겼다.

쾨젠의 역에서 친구들과 맥주를 마셨다. 넉 잔이었다. 학교로 돌아오는 길에 교사와 마주쳤고, 교사는 소년의 걸음을 보고 알았다. 소년은 그때 학년 수석이었다. 수석은 떨어졌다. 교장실에 불려 갔고, 어머니에게 편지를 써야 했다.

소년은 그 편지를 쓰는 데 이틀이 걸렸다. 어떻게 썼는지, 왜 그랬는지,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것. 쓰면서 소년은 자기가 부끄러운 것이 맥주 때문인지, 들킨 것 때문인지, 수석을 잃은 것 때문인지, 어머니가 이 편지를 읽을 것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네 가지가 다 섞여 있었고 그중 어느 것도 「운명과 역사」를 쓴 사람이 느낄 만한 것이 아니었다. 소년은 그것이 제일 부끄러웠다.

어머니의 답장은 짧았다. 네 아버지라면 무어라고 했겠니. 소년은 그 한 줄을 오래 보았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끌어왔다. 그것이 어머니의 방식이었고, 소년은 그 방식이 통한다는 것이 싫었다. 통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해에 소년은 졸업논문을 썼다.

라틴어로 써야 했다. 소년은 테오그니스를 골랐다. 2천 년 전 메가라의 시인, 귀족이 몰락하던 시대에 귀족의 편에서 노래한 사람,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라는 말을 도덕이 아니라 신분으로 쓴 사람. 소년은 그의 시가 어떻게 전해졌는지, 어느 구절이 그의 것이고 어느 구절이 나중에 끼어든 것인지를 따졌다. 밤마다 라틴어 문장을 고쳤다. 기숙사 소등 뒤에는 쓸 수 없어서 소년은 저녁 자습 시간을 전부 그 논문에 썼는데, 긴 책상 양쪽에 스무 명이 앉아 펜 긁는 소리만 내는 방에서 소년의 펜은 가장 자주 멈추었다가 가장 늦게까지 움직였고, 창밖 회랑의 등불이 하나씩 꺼지는 것을 소년은 고개를 들지 않고도 종이 위의 빛이 줄어드는 것으로 알았다. 한 구절의 배열을 두고 사흘을 썼다. 2천 년 전 사람이 어느 줄을 먼저 썼는지를 열아홉 살이 밤마다 따지는 것이 우스운 일이라는 것을 소년은 알았다. 그런데도 그 줄이 제자리를 찾았을 때 소년은 피아노에서 맞는 음을 찾았을 때와 같은 것을 느꼈다. 교사들은 그것을 읽고 소년이 문헌학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소년은 자기가 무엇이 될지 몰랐다. 아는 것은 하나였다. 가을에 본으로 간다. 도이센과 함께. 어머니는 신학을 바랐고, 소년은 신학과 문헌학을 함께 듣겠다고 했다. 함께라는 말이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소년은 그 말이 거짓은 아니라고 자기에게 말했다.

떠나기 전 9월에 소년은 시를 하나 썼다. 제목은 「알지 못하는 신에게」. 교회의 신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신이 아닌 것도 아니었다. 소년은 그것을 게르마니아에 내지 않았고 어머니에게 보이지 않았으며 공책 맨 뒤에 적어 두었다.

「나는 너를 알고 싶다, 알지 못하는 자여, 내 영혼 깊은 곳까지 손을 넣는 자여, 폭풍처럼 내 삶을 휩쓸고 지나가는 자여, 붙잡을 수 없는 자여, 나와 닮은 자여! 나는 너를 알고 싶다, 너를 섬기고 싶다.」[주 4-01]

졸업식 날 어머니가 왔다. 엘리자베트도 왔다. 소년은 상을 받았고 어머니는 울었다. 식이 끝나고 수도원 마당을 걸어 나오면서 어머니가 소년의 팔을 잡았다.

“본에 가서 신학 공부 열심히 해라.”

“네.”

“신학이지?”

소년은 어머니를 보았다. 어머니도 소년을 보았다. 두 사람 다 알고 있었다. 소년은 한 번 더 말했다.

“네, 어머니.”

후주

[주 4-01] 니체, 시 「알지 못하는 신에게」, 1864년 9월. 슐포르타 졸업 직전에 쓴 시로 비평판 초기 저작(KGW I)에 수록. 한국어 작업 번역. 다섯 행만 발췌했으며 원문은 더 길다. 시의 화자를 당시 니체의 신념과 그대로 동일시하지 않는다.

[근거 4-02] 1858년 10월 슐포르타 입학. 새벽 기상과 엄격한 시간표, 잦은 두통과 의무실 생활은 학창기 편지와 회고에 전한다.

[근거 4-03] 1860년 7월 핀더·크루크와 쇤부르크 폐허에서 「게르마니아」 결성. 달마다 작품을 내고 서로 비판한다는 규칙, 포도주 병을 던진 일은 니체 자신의 기록이다. 크루크를 통해 바그너의 트리스탄 피아노 악보를 접한 것은 1861년이다.

[근거 4-04] 1861년 횔덜린을 권하는 편지 형식의 과제와, 더 건강하고 명료하고 독일적인 시인에게 마음을 쓰라는 교사의 평은 과제 원고에 남아 있다.

[근거 4-05] 1862년 부활절, 게르마니아를 위해 쓴 「운명과 역사」와 「의지의 자유와 운명」. 본문의 질문들은 그 글의 논지를 소설이 풀어 쓴 것이며 직접 인용이 아니다. 「바다로 나가는 어린아이의 걸음」도 글의 비유를 옮긴 의역이다.

[근거 4-06] 1863년 4월 쾨젠에서 음주로 적발되어 수석 자리를 잃고 어머니에게 사과 편지를 쓴 일. 어머니의 답장 내용은 소설의 창작이다.

[근거 4-07] 1864년 졸업논문 「메가라의 테오그니스에 관하여」(라틴어). 고등학교 졸업논문이며 박사 논문이 아니다. 1864년 10월 도이센과 함께 본 대학으로 가 신학과 문헌학을 함께 등록했다.

기숙사 들보의 수, 의무실에서 아버지를 떠올린 것, 게르마니아에서의 대화, 어머니 집 2층에서 쓴 밤, 졸업식 날의 대화는 소설의 창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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