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021자)

여자 넷의 집

니체의 삶 · 네오

끈은 나움부르크에 닿을 때까지 느슨해지지 않았다.

마차가 성문을 지나 노이가세의 좁은 돌길로 꺾어 들었을 때 아이는 뒤를 돌아보았고, 세 번째 마차 위의 담요 뭉치는 아침에 묶은 그대로였다. 할머니의 집은 길 끝 모퉁이에 있었는데, 뢰켄의 목사관보다 창이 작고 천장이 낮았으며 집 안에 들어서자 오래 비워 둔 방의 냄새와 누군가 아침에 쓸어 둔 마룻바닥의 냄새가 함께 났다. 짐을 부리는 데 하루가 걸렸다. 피아노는 마지막에 들어왔다. 남자 넷이 계단에서 끙끙거렸고, 할머니가 거실의 창과 창 사이 벽을 가리켰다.

“저기.”

피아노가 벽에 붙었다. 담요가 벗겨지고 끈이 풀렸다. 아이는 그것을 문간에서 보았다. 검은 칠이 벗겨진 자리까지 뢰켄에서와 똑같았는데 놓인 자리만 달라서, 아이는 그것이 같은 물건이라는 것을 한참 뒤에야 받아들였다.

그날 밤 아이는 피아노 밑에 들어가 보았다. 바닥이 달랐다. 뢰켄의 마루는 넓은 널이었고 여기는 좁은 널이었으며, 페달 옆에 먼지가 없었다. 아이는 오래 앉아 있지 않았다.

집에는 여자가 넷이었다.

할머니 에르트무테가 집의 주인이었다. 고모 아우구스테는 부엌을 맡았고 고모 로잘리는 교회와 책을 맡았으며, 어머니는 아이들을 맡았다. 아이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저녁 식탁에서 말을 먼저 꺼내는 사람은 할머니였고, 어머니는 할머니가 묻기 전에는 말하지 않았다. 뢰켄에서 어머니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아이는 그것을 알았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학교는 걸어서 10분이었다. 시립 소년학교였고 교실에 마흔 명이 있었다. 아이는 그 가운데 유일하게 목사의 아들이었고, 유일하게 아버지가 없었으며, 유일하게 길에서 뛰지 않는 아이였다.

비가 오던 날이었다. 학교가 파하고 아이들이 책가방을 머리에 얹고 집으로 달렸다. 아이는 달리지 않았다. 교칙에 학생은 길에서 뛰지 않는다고 적혀 있었다. 아이는 모자를 바로 쓰고 평소와 같은 걸음으로 노이가세까지 왔다. 비는 모자 챙을 타고 코끝으로 떨어졌고, 외투가 무거워졌고, 구두 속에서 발가락이 물에 잠겼다. 집에 닿았을 때 어머니가 문간에서 아이를 보고 웃다가 울었다.

“프리츠, 뛰어오지 그랬어.”

“학생은 길에서 뛰지 않는다고 했어요.”

어머니가 아이의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문질렀다. 아이는 그 손이 멈출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다음 날 학교에서 누군가가 그 이야기를 들었고, 그 다음 날부터 아이는 작은 목사라고 불렸다. 놀리는 말이었다. 아이는 그 말을 들을 때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성경 구절을 외워 보라고 하면 외웠고, 외우면 아이들이 웃었다. 아이는 웃음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음 구절을 외웠다.

친구는 둘이었다.

빌헬름 핀더의 집에는 책이 있었다. 핀더의 아버지는 법원 사람이었는데 저녁이면 아들과 아들의 친구에게 괴테를 읽어 주었다. 아이는 그 집 거실의 등불과 책 냄새를 좋아했다. 구스타프 크루크의 집에는 음악이 있었다. 크루크의 아버지는 법원 참사관이면서 피아노를 쳤고, 멘델스존을 안다고 했으며, 집에 악보가 벽 하나를 채우고 있었다.

아이가 크루크의 집에서 처음 들은 것은 찬송가가 아니었다.

크루크의 아버지가 악보를 펴고 쳤다. 아이는 소파 끝에 앉아 있었다. 소리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는 자기가 숨을 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의 피아노는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소리였다. 이 소리는 어디로 가는지 아는 소리였다. 가야 할 자리가 있고, 거기로 가고, 가서 멈추었다. 그런데도 아버지의 소리와 같은 데가 있었다. 아이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소리가 끝났을 때 크루크의 아버지가 아이를 보았다.

“프리츠, 괜찮니?”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 아이는 피아노 앞에 섰다. 밑이 아니라 앞이었다. 뚜껑을 열고 건반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눌렀다.

소리가 났다. 뢰켄에서와 같은 소리였다.

어머니가 부엌에서 나와 문간에 섰다. 할머니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아이는 한 음을 더 눌렀다. 두 음은 서로 맞지 않았다. 아이는 그것을 알았다. 그래서 다른 음을 찾았다. 그날 밤 아이는 맞는 음을 세 개 찾았다.

그 뒤로 아이는 저녁마다 피아노 앞에 앉았다. 어머니가 선생을 구해 주었고, 선생은 아이에게 악보 읽는 법을 가르쳤다. 아이는 악보를 읽었다. 그러나 선생이 가고 나면 악보를 덮고 아버지처럼 쳤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채로. 어떤 날은 어디에도 가지 않았고 어떤 날은 어딘가에 닿았다. 닿은 날에는 그것을 종이에 적으려고 했는데, 적는 법을 몰라서 음표가 줄 밖으로 나갔다.

아홉 살 때 아이는 어머니의 생일에 곡 하나를 만들어 쳤다. 짧았고, 중간에 한 번 틀렸다. 어머니는 끝까지 들었다. 할머니도 들었다. 할머니는 끝나고 나서 말했다.

“네 아버지가 그렇게 쳤다.”

아이는 그 말이 칭찬인지 아닌지 몰랐다. 할머니는 그 뒤로 그 말을 다시 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1856년 봄에 죽었다.

아이는 열한 살이었다. 집은 그 뒤로 어머니의 집이 되었다. 어머니는 식탁에서 먼저 말을 꺼냈고, 아이는 그것이 낯설어서 며칠 동안 어머니를 자꾸 쳐다보았다. 어머니는 아이가 쳐다보는 것을 알았다.

“왜 그렇게 보니?”

“아니에요.”

고모 로잘리가 집을 나가 따로 살기 시작했다. 여자 넷의 집이 여자 둘의 집이 되었다. 어머니와 엘리자베트. 그리고 아이.

그해 크리스마스에 아이는 처음으로 선물을 받는 것보다 선물을 주는 것을 먼저 생각했다. 핀더에게는 시 한 편을, 크루크에게는 곡 한 편을 썼다. 어머니에게는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썼다. 트리에 초가 켜지고 엘리자베트가 소리를 지르고 어머니가 과자를 내오고, 창밖에서 눈이 내렸다. 아이는 그 모든 것을 보면서, 이것이 지금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홉 살의 크리스마스가 어땠는지 아이는 기억하지 못했다. 열 살의 크리스마스도. 지금 이 저녁도 그렇게 될 것이었다.

다음 날 아침 아이는 공책을 펴고 날짜를 적었다. 1856년 12월 26일. 그리고 어제 있었던 일을 적기 시작했다. 트리의 초가 몇 개였는지, 엘리자베트가 무엇을 받았는지, 눈이 언제 그쳤는지. 공책은 핀더의 아버지가 준 것으로 표지가 짙은 녹색이었고, 펜촉은 새것이라 종이를 긁었으며, 아이는 첫 줄을 쓰고 나서 잉크가 마를 때까지 손을 떼고 기다렸다. 적으면서 아이는 어제보다 더 또렷하게 어제를 보았다. 트리 아래 바닥에 떨어져 있던 초 한 자루, 어머니가 과자 접시를 내려놓을 때 난 소리, 엘리자베트가 선물 포장지를 찢다가 손가락을 벤 것. 어제는 지나가느라 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적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이 적으면 남았다.

아이는 그날부터 일기를 썼다.

여름이 되자 더 큰 것을 쓰고 싶어졌다. 어제 하루가 아니라 지금까지의 전부. 아이는 열세 살이었고, 가을에 슐포르타로 가게 되어 있었다. 유명한 기숙학교였고 집에서 걸어서 한 시간이었으며 한번 들어가면 여섯 해 동안 집에 거의 오지 못한다고 했다. 어머니는 그것을 말하면서 울지 않으려고 했고, 아이는 어머니가 울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보지 않으려고 했다.

떠나기 전에 적어 두어야 한다고 아이는 생각했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아버지가 어떻게 죽었는지, 그 뒤에 무슨 꿈을 꾸었는지, 요제프가 어떻게 죽었는지, 뢰켄을 어떻게 떠났는지. 적지 않으면 그것도 크리스마스처럼 사라질 것이었다.

아이는 8월의 여러 밤을 그 글에 썼다. 제목을 「나의 생애에서」라고 붙였다. 아버지의 피아노 이야기를 적을 때 아이는 피아노 쪽을 보았다. 피아노는 벽과 벽 사이에 있었다. 아버지가 계단에서 떨어진 날을 적을 때 아이는 그날의 소리를 다시 들었고, 그 소리를 적을 말을 찾느라 한 줄에 반 시간을 썼다. 꿈을 적을 때는 손이 느려졌다. 다섯 살 때 꾼 꿈이었다. 아이는 열세 살의 말로 그것을 적었다. 적고 나서 읽어 보니 다섯 살의 꿈이 아니라 열세 살의 글이 되어 있었다. 아이는 그것이 이상했지만 고치지 않았다. 고치면 더 멀어질 것 같았다.

마지막 밤에 아이는 글을 처음부터 읽었다. 열 장이 넘었다. 읽고 나서 아이는 자기가 쓴 사람을 조금 알 것 같았다. 그 사람은 아버지를 잃었고, 피아노를 쳤고, 길에서 뛰지 않았고, 크리스마스가 지나가는 것을 아까워했다. 그 사람이 자기라는 것을 아이는 알았다. 그런데 그 사람은 종이 위에 있었고 자기는 책상 앞에 있었다.

아이는 공책을 덮었다. 창밖이 밝아 오고 있었다.

10월에 아이는 슐포르타로 갔다. 짐은 가방 하나였다. 피아노는 집에 남았다. 어머니가 성문까지 따라 나왔고, 엘리자베트가 어머니 치마를 잡고 따라 나왔다. 아이는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고 돌아서서 걸었다. 뛰지 않았다.

가방 안에 공책이 있었다.

후주

이 화에는 니체의 글에서 직접 가져온 인용이 없다. 아래는 사실 근거다.

[근거 3-01] 1850년 4월 나움부르크 노이가세의 할머니 집으로 이주. 할머니 에르트무테가 집의 주인이었고 고모 아우구스테·로잘리가 함께 살았다. 고모 아우구스테는 1855년, 할머니는 1856년 4월에 죽었고, 그 뒤 어머니 프란치스카가 아이들과 따로 집을 꾸렸다.

[근거 3-02] 비 오는 날 교칙대로 뛰지 않고 걸어 돌아왔다는 이야기와 「작은 목사」라는 별명은 동생 엘리자베트의 회고에 전한다. 동생의 회고는 미화와 기억 오류가 있어, 이 소설은 이를 전승으로 쓰되 세부는 창작했다.

[근거 3-03] 친구 빌헬름 핀더와 구스타프 크루크. 핀더의 집에서 문학을, 크루크의 집에서 음악을 접했다는 것은 니체 자신의 청년기 회고에 나온다. 크루크의 아버지는 음악 애호가로 멘델스존과 교분이 있었다.

[근거 3-04] 1856년 12월 26일, 크리스마스가 지나가는 것을 아쉬워하며 일기를 쓰기로 한 기록. 1858년 여름, 슐포르타 입학 직전에 쓴 자전적 기록 「나의 생애에서」. 아버지의 죽음과 꿈을 처음 글로 적은 것이 이 기록이다. 1858년 10월 슐포르타 입학.

피아노가 뢰켄에서 나움부르크로 옮겨졌는지, 크루크의 집에서 처음 들은 곡이 무엇이었는지, 어머니 생일에 친 곡, 「네 아버지가 그렇게 쳤다」는 할머니의 말, 글을 쓴 밤의 세부와 모든 대사는 소설의 창작이다. 아홉 살 무렵부터 작곡을 시작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3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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