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5,814자)
살아 있는 사람의 기록보관소
니체의 삶 · 네오
문패가 먼저 달렸다.
1894년 2월 2일. 바인가르텐 18번지의 현관에 놋쇠 판이 붙었다. 니체 아카이브. 어머니의 집이었다. 아들이 2층에서 자고 있었고 아래층 거실 옆방이 기록보관소가 되었다. 살아 있는 사람의 기록보관소. 딸은 그 말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빠가 쓴 것들은 이미 오빠의 손을 떠나 있었다. 토리노에서, 오버베크의 가방으로. 그것을 되찾아 오는 것이 딸이 처음 한 일이었다.
바젤에서 상자가 왔다. 두 개. 오버베크가 보낸 것이었다. 「이 사람을 보라」. 「디오니소스 송가」. 「니체 대 바그너」의 교정쇄. 1888년 가을의 공책들. 큰 책의 지운 목차. 토리노의 책상 위에 세 더미로 있던 것이 5년 뒤에 두 상자가 되어 나움부르크에 닿았다. 딸은 상자를 열었다. 오빠의 글씨. 붉은 잉크의 밑줄. 딸은 그것을 한 장씩 꺼냈다.
편지는 오지 않았다.
오버베크가 편지를 썼다. 원고는 보낸다고. 편지는 보내지 않는다고. 니체가 자기에게 보낸 편지들은 자기 것이라고. 20년 동안 받은 것. 그것은 아카이브의 것이 아니라 받은 사람의 것이라고. 딸은 그 편지를 두 번 읽고 답장을 썼다. 차갑게. 오빠의 손에서 나온 것은 전부 오빠의 것이고 오빠의 것은 아카이브의 것이라고. 오버베크는 답하지 않았다. 바젤의 신학자는 믿지 않는 것을 지키는 법을 알았다. 편지들은 바젤에 남았다. 딸은 그것을 평생 용서하지 않았다.
딸은 상자를 정리했다. 밤마다. 어머니가 자고 오빠가 자고 난 뒤에. 1888년의 공책. 1887년의 공책. 거슬러 올라갔다. 그러다가 다른 상자를 열었다. 어머니가 모아 둔 것. 더 오래된 것. 그 안에 공책이 있었다. 표지가 짙은 녹색. 열세 살의 글씨.
나의 생애에서.
딸은 그것을 식탁에 놓고 읽었다. 1858년. 오빠가 슐포르타로 가기 전 여름. 뢰켄. 아버지. 피아노. 아버지가 계단에서 떨어진 날. 덧문을 닫은 방.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꿈. 무덤이 열리고 아버지가 나와 아이를 안고 들어간 꿈. 요제프. 작은 관. 딸은 그 꿈을 몰랐다. 그때 세 살이었다. 고모 로잘리의 무릎에 있었다. 오빠가 그 꿈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열세 살에 적었다. 딸은 36년 뒤에 그것을 읽었다. 식탁에서. 오빠는 위층에서 자고 있었다.
공책에 자기 이름이 있었다. 리스베트. 오빠의 글씨로. 딸은 그 이름을 손으로 짚었다. 그리고 공책을 덮었다. 이것도 아카이브의 것이었다. 딸은 그것을 상자에 넣었다. 번호를 붙였다. 1번.
같은 해에 책 한 권이 왔다.
빈에서. 루 안드레아스살로메. 「프리드리히 니체, 그의 작품 속에서」. 딸은 그 이름을 보고 책을 바로 열지 않았다. 식탁에 두었다. 하루. 이틀. 사흘째 밤에 열었다.
루는 오빠를 알았다. 1882년에. 로마와 루체른과 타우텐부르크에서. 그리고 12년 뒤에 책을 썼다. 오빠의 책들을 전부 읽은 사람의 책이었다. 루의 생각은 이것이었다. 니체의 철학은 그의 생애였다. 그의 사상은 그의 고통이 밖으로 나온 모양이었다. 신을 잃은 사람이 신을 찾는 방식으로 철학을 했다. 그래서 그의 책은 세 시기로 나뉜다. 바그너와 쇼펜하우어를 믿은 시기, 그것을 뜯어본 시기, 그리고 차라투스트라. 루는 그것을 적었다. 그리고 오빠의 얼굴을 적었다. 낮은 목소리. 작은 귀. 안경 뒤에 숨은 눈. 사람들 가운데서도 혼자인 것처럼 보이던 것.[주 39-01]
딸은 그것을 읽었다. 다 읽었다. 그리고 책을 덮었다. 손이 떨렸다. 화 때문이었다. 그 여자가 오빠를 안다고 쓰고 있었다. 석 달 안 사람이. 오빠의 철학이 오빠의 병이라고. 딸은 그 책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틀린 데를 찾았다. 찾았다. 날짜 몇 개. 그리고 전부. 딸은 그 책이 전부 틀렸다고 결론 내렸다. 결론 내리고 나서 자기가 왜 손이 떨리는지 보지 않았다.
딸은 자기 책을 쓰기로 했다. 오빠의 생애. 아는 사람이 쓰는 것. 첫 권은 이듬해에 나왔다. 뢰켄. 아버지. 피아노. 딸은 열세 살의 공책을 옆에 놓고 썼다. 그리고 비 오는 날 교칙대로 걸어온 소년을 적었다. 작은 목사. 딸은 그것을 자기가 보았다고 적었다. 세 살이었다. 보았을 수도 있었다. 딸은 보았다고 적었다.
두 책이 있었다. 루의 책과 딸의 책. 둘 다 오빠를 알았다. 둘 다 오빠를 썼다. 둘 다 오빠가 읽지 못했다. 오빠는 위층에 있었다. 서술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둘 중 어느 쪽이 그 사람인지는 그 사람만 알았고, 그 사람은 말을 했지만 다른 말이었다.
1895년에 「안티크리스트」가 나왔다.
전집의 여덟 번째 권으로. 딸이 고용한 편집자 쾨겔이 만들었다. 쾨젤리츠는 아니었다. 쾨젤리츠는 1893년에 밀려났다. 15년 동안 쉼표를 지운 사람이 아카이브에서 나갔다. 딸은 그 사람이 오빠의 글을 너무 자기 식으로 읽는다고 했다. 쾨젤리츠는 베네치아로 돌아갔다.
「안티크리스트」는 전부 실리지 않았다. 끝의 법은 빠졌다. 기독교에 반대하는 법, 일곱 조항, 거짓 달력. 딸이 뺐다. 신성모독으로 책이 압수될까 봐. 몇 군데 낱말도 바뀌었다. 황제에 대한 것. 어머니에 대한 것. 딸은 그것을 오빠를 지키는 일이라고 불렀다. 지키는 것과 고치는 것이 같은 손으로 되었다. 그 손은 열세 살의 공책에 1번을 붙인 손이었다.
오빠는 그 책을 보지 못했다. 그 봄에 오빠는 베란다에 앉아 있었다. 어머니가 아침마다 거기 앉혔다. 햇빛. 담요. 베란다 아래 길로 사람들이 지나갔다. 베를린에서, 라이프치히에서 온 사람들. 책을 읽은 사람들. 그들은 길에서 베란다를 올려다보았다. 콧수염. 안경 없는 눈. 담요. 그 사람이 거기 있었다. 그들은 그것을 보러 왔다. 어머니는 커튼을 치고 싶었고 딸은 치지 말라고 했다. 커튼은 열려 있었다.
9월에 오버베크가 왔다.
마지막이었다. 둘 다 몰랐다. 혹은 오버베크는 알았다. 바젤에서 나움부르크까지. 예순. 오버베크가 베란다에 올라가 앉았다. 그 사람 옆에. 그 사람이 오버베크를 보았다. 알아보았는지 오버베크는 몰랐다. 6년 전 토리노에서는 일어나 안았다. 지금은 앉아 있었다. 오버베크가 말을 걸었다. 그 사람이 뭐라고 했다. 다른 말이었다. 오버베크는 들었다. 20년 동안 믿지 않으면서 들은 사람이 지금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을 들었다.
오버베크는 돌아가서 로데에게 썼다. 로데. 10년 전 아무도 살지 않는 데서 온 사람 같다고 한 사람. 오버베크는 적었다. 그 사람이 치명상을 입은 짐승 같았다고. 고귀한 짐승.[주 39-02] 그리고 적었다. 자기는 다시 가지 않을 것이라고. 갈 수 없다고. 편지들은 바젤에 남았다.
12월에 딸은 돈을 모았다. 베를린의 은행가와 친구들에게서. 그리고 어머니에게서 오빠의 저작권을 샀다. 3만 마르크. 어머니는 서명했다. 아들의 책이 누구 것인지 어머니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아들만 맡았다. 서명하고 어머니는 2층으로 올라가 아들의 덧문을 닫았다.
1896년에 아카이브는 바이마르로 갔다.
괴테의 도시. 실러의 도시. 딸이 골랐다. 나움부르크는 작았다. 오빠의 이름은 커지고 있었다. 뮌헨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라는 사람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관현악곡을 썼다. 오빠의 책 제목으로. 딸은 그 소식을 들었다. 오빠는 듣지 못했다. 들었어도 다른 것을 들었다. 산을 내려온 사람의 이름이 트럼펫으로 울렸다. 그 사람을 쓴 사람은 나움부르크의 베란다에 있었다.
메타 폰 잘리스가 바이마르에 집을 샀다. 빌라 질버블리크. 은빛 전망. 언덕 위의 큰 집. 호수에서 노를 저어 준 사람이 아카이브에 집을 주었다. 딸은 그 집으로 상자들을 옮겼다. 열세 살의 공책, 1번. 1888년의 교정쇄. 그리고 「이 사람을 보라」의 원고. 딸은 그것을 열어 보았다. 어머니와 동생에 대한 절. 자기와 가장 깊이 반대되는 것. 딸은 그것을 읽었다. 읽고 그 장을 따로 뺐다. 상자 맨 밑에. 그 책은 아직 내지 않기로 했다. 때가 올 것이었다. 딸이 정하는 때.
어머니는 1897년 4월 20일에 죽었다.
예순아홉. 겨울부터 아팠다. 아들을 돌보면서 아팠다. 마지막 주에는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고, 아들은 옆방에 있었다. 딸이 바이마르에서 왔다. 어머니가 딸에게 말했다. 아들을 부탁한다고. 딸이 알겠다고 했다. 어머니가 또 말했다. 읽히지 말고 돌봐라. 딸은 알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그 말이 지켜질 것이라고 믿었는지 몰랐다. 믿는 사람이었다. 믿고 죽었다.
아들은 어머니의 죽음을 알았는지 몰랐다. 장례식에 가지 않았다. 집에 있었다. 베란다에. 뢰켄에서 아버지가 묻힐 때 맨 앞줄에 앉았던 아이가 어머니가 묻힐 때 베란다에 앉아 있었다. 어머니는 뢰켄에 묻혔다. 남편 옆에. 작은 관 옆에. 48년 만에 그 자리로 갔다.
7월 20일에 딸은 오빠를 바이마르로 옮겼다.
기차. 나움부르크 역. 오빠는 걷지 못했다. 바퀴 달린 의자. 간호인 둘. 딸이 앞에서 걸었다. 오빠는 의자에 앉아 역사를 보았다. 1858년 10월에 가방 하나를 들고 슐포르타로 걸어 나간 역. 1865년 6월에 편지를 넣고 뒤돌아보지 않은 우체통이 있던 길. 그는 그것들을 보았다. 무엇을 보았는지는 그만 알았다.
피아노는 남았다. 어머니의 집에. 딸은 그것을 가져가지 않았다. 바이마르의 큰 집에 더 좋은 피아노가 있었다. 아버지의 피아노는 바인가르텐 18번지에 남아 뚜껑을 닫고 있었다. 수놓은 천이 서랍에서 나와 다시 덮였다. 누가 덮었는지는 모른다.
기차가 움직였다. 오빠는 창밖을 보았다. 딸이 그의 손을 잡았다. 어머니가 하던 것이었다. 손은 따뜻했다. 딸은 그것을 오버베크에게 쓰지 않았다. 딸은 오버베크에게 쓰지 않았다. 그 뒤로 영영.
후주
[주 39-01] 루 안드레아스살로메, 『프리드리히 니체, 그의 작품 속에서』(빈, 1894). 니체의 철학을 그의 생애와 고통에서 읽고 저작을 세 시기로 나눈 것, 낮은 목소리와 작은 귀와 숨은 눈을 적은 것은 이 책에 근거한다. 본문은 직접 인용이 아니라 취지와 서술이다. 루의 책은 동시대인의 해석과 증언이며 무오류의 전기가 아니다.
[주 39-02] 프란츠 오버베크가 1895년 9월 나움부르크를 마지막으로 찾은 뒤 로데에게 보낸 편지의 취지. 「치명상을 입은 고귀한 짐승」이라는 비유가 전한다. 한국어는 취지를 옮긴 것이다.
[근거 39-03] 니체 아카이브는 1894년 2월 2일 나움부르크 바인가르텐의 어머니 집에서 엘리자베트가 세웠다. 오버베크는 원고를 넘겼으나 니체가 자기에게 보낸 편지는 끝내 넘기지 않았고 두 사람은 평생 적대했다. 쾨젤리츠는 1893년 편집에서 밀려났고 프리츠 쾨겔이 1894~1897년 편집을 맡았다.
[근거 39-04] 『안티크리스트』는 1895년 전집 8권으로 처음 나왔으며 「기독교에 반대하는 법」을 비롯한 몇 대목이 빠지거나 바뀌었다. 엘리자베트의 전기 『프리드리히 니체의 생애』 1권은 1895년에 나왔다. 1895년 12월 엘리자베트가 친구들의 돈으로 어머니에게서 저작권을 샀다. 1896년 아카이브가 바이마르로 옮겨 갔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그해 초연되었다. 메타 폰 잘리스가 1897년 바이마르의 빌라 질버블리크를 사서 아카이브에 제공했다.
[근거 39-05] 어머니 프란치스카 니체는 1897년 4월 20일에 죽어 뢰켄에 묻혔다. 니체는 1897년 7월 20일 바이마르로 옮겨졌다. 『이 사람을 보라』의 어머니·동생 대목을 엘리자베트가 뺀 것은 1908년 출판 때의 일이며, 본문은 그 결정을 1896년의 장면으로 당겨 두었다.
열세 살의 공책에 1번을 붙인 것, 루의 책을 사흘 뒤에 연 것, 베란다의 방문객들, 어머니의 「읽히지 말고 돌봐라」, 피아노가 나움부르크에 남은 것은 소설의 창작이다. 1901년 이후의 편집과 정치적 수용은 이 소설의 본편에 넣지 않았다. 동생이 모든 글을 날조했다는 식으로 쓰지 않았고 보존·편집·삭제를 나누어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