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5,484자)

남겨진 말

니체의 삶 · 네오

언덕 위의 집은 이름이 은빛 전망이었다.

빌라 질버블리크. 바이마르 남쪽 훔볼트 거리의 끝,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자리. 메타 폰 잘리스가 산 집. 아래층은 기록보관소였다. 상자들, 책장들, 편집자의 책상, 방문객을 맞는 응접실. 위층에 그가 있었다. 베란다가 있는 방. 창에서 바이마르의 지붕들과 그 너머 들판이 보였다. 그는 그것을 보았다. 무엇을 보았는지는 그만 알았다.

아래층에서 그의 이름이 팔렸다.

전집이 나오고 있었다. 전기가 나오고 있었다. 신문이 그를 적었다. 독일에서 가장 많이 말해지는 철학자. 베를린과 빈과 파리와 코펜하겐에서. 위층의 사람은 그것을 몰랐다. 혹은 알았는데 다른 것을 알았다. 아래층의 동생은 전부 알았다. 동생은 기사를 모았고 편지에 답했고 방문객을 받았다. 방문객이 오면 동생은 위층으로 안내했다.

그 전에 옷을 갈아입혔다.

흰옷. 긴 흰 가운. 동생이 골랐다. 그는 소파에 눕혀졌다. 혹은 안락의자에 앉혀졌다. 담요가 무릎에 덮였다. 콧수염이 빗겨졌다. 그러고 나서 문이 열렸다. 방문객이 들어왔다. 베를린의 젊은 백작. 빈의 철학자. 뮌헨의 화가. 그들은 문간에 서서 그를 보았다. 흰옷의 사람. 큰 이마. 안경 없는 눈. 눈은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그들이 아닌 데를.

젊은 백작이 일기에 적었다. 이마를 보았다고. 그 이마에서 차라투스트라를 보았다고. 손을 보았다고. 그 손이 아직 무엇인가를 쓰려는 것 같았다고.[주 40-01] 빈의 철학자는 다른 것을 적었다. 그 사람의 영혼은 떠난 것 같은데 몸이 그 영혼의 모양을 아직 지키고 있다고.[주 40-02] 그들은 적었다. 각자 본 것을. 그들은 자기가 보러 온 것을 보았다. 책을 읽고 왔으니 책을 보았다. 그는 거기 앉아 있었다. 흰옷을 입고. 그들이 나가면 동생이 옷을 벗겼다. 평상복으로. 그러고 나서 하루가 계속되었다.

하루는 알비네가 맡았다.

나움부르크에서 따라온 하녀. 어머니의 집에서 어머니를 돕던 사람. 어머니가 죽고 나서 알비네가 어머니의 하루를 이어받았다. 여섯 시. 씻기고. 입히고. 먹이고. 베란다에 앉히고. 알비네는 흰옷을 입히지 않았다. 알비네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다. 아는 것은 그가 달걀을 좋아하고 햇빛을 좋아하고 큰 소리를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알비네는 아래층에 내려가지 않았다. 내려갈 일이 없었다.

그는 이제 거의 말하지 않았다.

어떤 날은 한마디. 어떤 날은 없음. 동생은 편지에 그가 아름다운 말을 했다고 적었다. 어떤 말인지는 적지 않거나 다른 날 다른 말을 적었다. 알비네는 그가 한 말을 아무에게도 적어 주지 않았다. 적을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가 바이마르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는 동생의 편지에만 남았다. 서술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다.

피아노는 아래층 응접실에 있었다. 좋은 피아노. 그는 거기 내려가지 않았다. 다리가 되지 않았다. 1898년에 한 번, 1899년에 또 한 번, 몸의 어딘가가 멈추었다가 반쯤 돌아왔다. 걷지 못했다. 바퀴 달린 의자. 베란다까지. 알비네가 밀었다. 그는 베란다에서 들판을 보았다. 피아노 소리는 아래층에서 올라오지 않았다. 아래층에서는 아무도 피아노를 치지 않았다.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할 뿐이었다.

1899년에 화가가 왔다.

한스 올데. 사진기를 가지고. 동생이 허락했다. 화가는 베란다에서 그를 찍었다. 여러 장. 소파에 기대 앉은 사람. 담요. 콧수염. 그리고 눈. 사진 속의 눈은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화가는 그 사진들로 판화를 만들었다. 판화가 잡지에 실렸다. 사람들이 그 얼굴을 보았다. 독일 전체가. 10년 동안 아무도 찍지 않아서 코펜하겐에 바젤 시절 사진을 보낸 사람의 얼굴이 이제 어디에나 있었다. 그가 아닌 얼굴. 그였다.

1900년 여름은 더웠다.

8월. 베란다에 앉힐 수 없는 날들. 그는 방 안에 있었다. 덧문을 반쯤 닫은 방. 빛이 들어오면 좋아했는데 더위는 싫어했다. 알비네가 덧문을 조절했다. 8월 중순에 열이 났다. 폐였다. 의사가 왔다. 폐렴. 동생이 침대 옆에 앉았다. 알비네가 수건을 갈았다. 네 번째 사람이었다. 고모, 의무실의 여자, 동생, 그리고 알비네. 그는 수건이 바뀌는 것을 세지 않았다.

8월 24일 밤에 몸의 어딘가가 또 멈추었다. 이번에는 돌아오지 않았다.

8월 25일 정오 무렵에 그는 죽었다.

쉰다섯. 침대에서. 동생이 옆에 있었다. 알비네가 문가에 있었다. 창밖에 8월의 빛이 있었다. 정오. 그림자가 가장 짧은 시간. 그는 그 시간을 자기 책에서 여러 번 썼다. 그 시간에 죽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사실이 아니다. 이 소설은 뜻을 적지 않는다.

마지막 말을 적은 사람은 없다. 동생이 나중에 적은 것이 있으나 그날 적은 것이 아니다. 이 소설은 그것을 쓰지 않는다. 그는 1889년 1월 6일 이후로 자기 손으로 쓰지 않았다. 그 뒤의 말은 전부 남의 손으로 적혔다. 마지막 말도 그랬을 것이다. 적힌 것이 있다면. 없다면 없는 것이다.

알비네가 덧문을 닫았다. 빛이 들어오면 머리가 아프다고 한 사람이 둘 있었다. 알비네는 하나만 알았다. 그 하나를 위해 닫았다.

장례는 사흘 뒤 뢰켄이었다.

바이마르에서 뢰켄까지 기차로 두 시간. 관이 기차를 탔다. 동생이 탔다. 쾨젤리츠가 베네치아에서 와서 탔다. 25년 동안 쉼표를 지운 사람. 7년 전에 아카이브에서 밀려난 사람. 동생이 그를 불렀다. 장례에서 말을 해 달라고. 쾨젤리츠는 왔다.

뢰켄. 라이프치히 서남쪽의 마을. 교회와 묘지와 목사관. 51년 전 7월에 아버지가 묻힌 곳. 50년 전 1월에 작은 관이 아버지의 관 위에 놓인 곳. 3년 전 4월에 어머니가 그 옆에 묻힌 곳. 그 가족 묘에 네 번째 관이 왔다.

교회에서 종이 울렸다. 아버지의 교회. 아버지가 매주 그 아래서 설교하던 종. 51년 전 네 살짜리가 세다가 잊고 다시 세던 종. 오늘은 세는 사람이 없었다. 종은 울렸다. 사람들이 묘지로 걸어 나갔다. 목사관의 창이 보였다. 다섯 살짜리가 꿈을 꾼 뒤에 서 있던 창. 아버지가 무덤에서 나와 아이를 안고 들어가는 것을 본 창. 지금 그 창에 다른 목사의 가족이 살았다. 커튼이 닫혀 있었다.

관이 내려갔다. 아버지 옆. 어머니 옆. 작은 관 옆.

쾨젤리츠가 무덤 앞에 섰다. 종이를 들고. 그는 말했다.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 무엇을 썼는지. 어떻게 썼는지. 그리고 마지막에 말했다.

「당신의 이름이 다가올 모든 세대에게 거룩하기를.」[주 40-03]

거룩하기를. 쾨젤리츠는 그렇게 말했다. 성자이기보다 차라리 어릿광대라고 쓴 사람의 무덤 앞에서. 쾨젤리츠는 그 말을 하면서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았다. 알면서 했다. 달리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나중에 그는 그 말을 후회했다. 후회한다고 적었다. 그것도 남의 손으로 적힌 것 가운데 하나였다.

흙이 덮였다. 삽이 흙을 퍼 올려 관 위에 떨어뜨리는 소리. 50년 전 1월에 다섯 살짜리가 창에 이마를 대고 세던 소리. 마흔둘. 오늘은 세는 사람이 없었다. 소리는 났다.

사람들이 돌아갔다. 동생이 마지막까지 서 있었다. 알비네는 오지 않았다. 바이마르에 남았다. 빈 방을 치웠다. 덧문을 열었다. 빛이 들어왔다. 머리가 아플 사람이 없었다.

그가 쓴 것은 남았다. 열 권의 책과 공책 수백 권과 편지 수천 통. 아래층에서 그것들은 상자에 들어 번호가 붙고 책이 되고 팔렸다. 그 뒤에 그 책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다른 이야기다. 그가 모르는 이야기. 1900년 8월 25일 이전의 누구도 모르는 이야기. 이 소설은 거기까지 가지 않는다.

여기까지 적을 수 있는 것은 이것이다.

1882년 1월 1일 제노바의 다락방에서 서른일곱이 적었다.

「운명애, 이제부터 이것이 나의 사랑이 되기를!」[주 40-04]

되기를. 소망이었다. 그는 그 문법을 지켰다.

1884년 1월 니스의 밤에 서른아홉이 창가에서 소리 내어 읽었다. 자기가 쓴 그 사람의 후렴을. 자기 목소리로.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오 영원이여!」[주 40-05]

그 두 문장 사이에 2년이 있었고 그 두 문장 뒤에 16년이 있었다. 그 16년 가운데 11년은 남이 적었다. 그가 그 11년을 원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시 원했는지는. 그 질문은 그가 자기에게 한 것이었고, 그는 대답하지 않았고, 대답하지 않은 것이 아니요가 아니라는 것을 라팔로의 밤에 알았다. 그 뒤로 그는 그 질문을 책에 넣었다. 책은 남았다. 질문도 남았다. 질문은 이제 읽는 사람의 것이다.

뢰켄의 묘지에 저녁이 왔다. 교회 그림자가 무덤 위로 길어졌다. 피아노 밑에서 아이가 들은 소리는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소리였다. 그 아이는 평생 그 소리가 어디로 가는지를 적었다. 적은 것은 남았다. 소리는 남지 않았다. 소리는 원래 남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적었다.

종이 울렸다. 저녁 여섯 시. 여섯 번.

세는 사람이 없었다.

후주

[주 40-01] 하리 그라프 케슬러의 일기, 1897년 8월 바이마르 방문. 소파에 누운 니체의 이마와 손을 적고 차라투스트라를 떠올렸다는 취지. 한국어는 취지를 옮긴 것이다.

[주 40-02] 루돌프 슈타이너가 1896년 나움부르크에서 니체를 본 뒤 적은 글의 취지. 영혼이 떠난 뒤에도 몸이 그 모양을 지키고 있는 것 같았다는 서술. 슈타이너는 1896년 나움부르크에서 보았고 본문은 바이마르의 방문객들과 함께 두었다.

[주 40-03] 하인리히 쾨젤리츠(페터 가스트)가 1900년 8월 28일 뢰켄 장례식에서 한 조사의 마지막 말. 「당신의 이름이 다가올 모든 세대에게 거룩하기를」. 한국어 작업 번역. 쾨젤리츠가 뒤에 이 말을 후회했다고 적은 것은 사실이다.

[주 40-04] 니체, 『즐거운 학문』 4권 276절. eKGWB FW-IV-276. 한국어 작업 번역. 1882년 1월 제노바에서 쓴 문장을 서술자가 되돌려 읽은 것이며, 임종의 말이 아니다.

[주 40-05]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3부 「일곱 개의 봉인」. eKGWB Za-III-Siegel-1. 한국어 작업 번역. 1884년 1월 니스에서 쓴 후렴을 서술자가 되돌려 읽은 것이며, 니체가 소리 내어 읽었다는 장면은 니스의 밤에 둔 소설의 창작이다. 임종의 말이 아니다.

[근거 40-06] 1897년 7월부터 1900년 8월까지 바이마르 빌라 질버블리크 위층에서 지냈다. 엘리자베트가 방문객에게 보이기 위해 흰 가운을 입힌 것, 하녀 알비네 프라이타크가 나움부르크에서 따라와 돌본 것, 1898~1899년의 뇌졸중과 보행 불능, 1899년 화가 한스 올데의 사진과 판화는 사실이다. 니체가 바이마르에서 한 말은 동생의 기록에만 전하며 이 소설은 그것을 인용하지 않았다.

[근거 40-07] 1900년 8월 중순 폐렴, 8월 24일 밤 뇌졸중, 8월 25일 정오 무렵 사망. 8월 28일 뢰켄의 가족 묘에 아버지·동생·어머니 곁에 묻혔다. 마지막 말은 확인된 기록이 없으며 이 소설은 만들지 않았다. 1901년 이후의 편집과 수용은 본편에 넣지 않았다.

방문객들이 보러 온 것을 보았다는 것, 알비네가 덧문을 닫은 것, 종을 세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 피아노 밑의 소리로 돌아간 끝은 소설의 서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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