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6,102자)

남이 기록하는 사람

니체의 삶 · 네오

마지막으로 자기 손으로 쓴 것은 1월 6일의 편지들이었다.

그 전날과 그 전전날에도 썼다. 짧은 것들. 어떤 것은 한 줄. 코펜하겐의 브란데스에게는 이렇게 썼다.

「네가 나를 발견한 뒤에 나를 찾는 것은 재주가 아니었다. 어려운 것은 이제 나를 잃는 것이다.」[주 37-01]

서명은 십자가에 못 박힌 자. 메타 폰 잘리스에게는 이렇게 썼다.

「세계가 변용되었다. 신이 땅 위에 있으니까.」[주 37-02]

오버베크에게는 자기가 지금 모든 반유대주의자들을 총살시키고 있다고 썼다. 서명은 디오니소스.[주 37-03] 그리고 부르크하르트에게 넉 장. 바젤의 교수가 되느니 신이 되고 싶지 않았다는 것. 그 넉 장이 부르크하르트에게 갔고 부르크하르트가 그것을 들고 오버베크의 집으로 갔고 오버베크가 기차를 탔다. 1월 8일 저녁에 오버베크가 토리노의 5층 방 문을 열었다.

그 뒤로 그는 쓰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썼다.

첫 번째로 쓴 사람은 오버베크였다.

쾨젤리츠에게 보낸 편지. 1월 9일 아침, 피노의 집 식탁에서. 오버베크는 어제저녁에 본 것을 적었다. 소파 구석에 앉아 교정쇄를 읽고 있던 사람. 자기를 보고 일어나 안고 운 사람. 그리고 그 뒤에 일어난 것. 피아노. 노래. 춤. 자기가 신이라는 말, 자기가 토리노의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는 말, 자기가 세계를 다스린다는 말. 오버베크는 그것을 적었다. 믿지 않으면서 전부 읽은 사람의 손으로, 지금 자기 친구가 하는 말을 믿을 수 없는 채로 적었다. 그리고 적었다. 그 사람이 자기를 알아보았다고. 그것만은 분명했다고.

오버베크는 그날 하나를 더 했다. 방을 뒤졌다. 책상의 교정쇄 세 더미. 서랍의 원고들. 「이 사람을 보라」의 마지막 원고. 「디오니소스 송가」. 「니체 대 바그너」. 편지 초안들. 그는 그것을 전부 가방에 넣었다. 자기 가방에. 그 사람이 쓴 것이 처음으로 그 사람의 손에서 다른 사람의 가방으로 들어갔다. 오버베크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고, 알면서 넣었다. 넣지 않으면 피노의 집에 남을 것이었다.

기차는 1월 9일 저녁이었다.

오버베크 혼자서는 안 되었다. 그는 토리노에 사는 독일인 치과의사를 찾았다. 베트만. 베트만이 환자를 다루는 법을 알았다. 베트만이 그에게 말했다. 바젤에서 큰 환영식이 준비되어 있다고. 교수님을 위해. 그는 그 말을 믿었다. 믿고 기차를 탔다. 셋이 한 칸에 앉았다. 밤 기차. 알프스를 넘어가는 동안 그는 노래를 불렀다. 베네치아의 곤돌라 노래. 자기가 지은 것. 오버베크는 그 노래를 들었다. 나중에 적었다. 목소리가 아름다웠다고.

바젤에 닿은 것은 10일 아침이었다.

역에서 마차로. 마차가 어디로 가는지 그는 묻지 않았다. 프리트마트. 바젤의 정신병원. 오버베크가 10년 동안 살던 도시의 변두리. 마차가 멈추었을 때 그는 내려서 건물을 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환영식치고는 조용하군. 오버베크는 대답하지 못했다.

두 번째로 쓴 사람은 의사였다.

프리트마트의 입원 기록. 1889년 1월 10일. 이름, 나이, 직업. 전직 바젤 대학 교수. 그 밑에 의사가 적었다. 환자는 자기가 유명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환자는 자기를 공작이라고, 황제라고 부른다. 환자는 끊임없이 말하고 노래하고 피아노를 치려 한다. 환자는 1866년에 두 번 감염되었다고 스스로 말한다. 그 밑에 진단명이 있었다. 라틴어로. 진행성 마비. 의사는 그렇게 적었다.

그는 그 종이를 보지 못했다. 그 종이는 그에 대한 것이었고 그의 것이 아니었다. 20년 동안 그가 쓴 것들은 그의 것이었다. 지금 그에 대해 쓰인 첫 종이가 의사의 서랍에 들어갔다. 서랍에 끝낸 것이 하나 더 들어갔다. 이번에는 남이 끝낸 것이었다.

어머니가 1월 13일에 왔다.

나움부르크에서 바젤까지 이틀. 예순셋. 어머니는 병원 복도에서 아들을 보았다. 아들이 어머니를 보았다. 그리고 다가와 안았다. 어머니. 그렇게 불렀다. 의사가 그것을 적었다. 환자가 어머니를 알아보았다. 어머니 앞에서 조용해졌다. 어머니는 그 종이도 보지 못했다. 어머니는 아들을 보았다. 콧수염이 전보다 두꺼웠고 눈이 전보다 밝았고 걸음이 전보다 빨랐다. 아픈 사람 같지 않았다. 그것이 어머니를 더 무섭게 했다.

예나로 옮긴 것은 1월 17일이었다. 나움부르크에서 가까웠다. 어머니가 원했다. 기차에서 그는 어머니 옆에 앉았다. 창밖을 보았다. 라인이 지나갔다. 좁고 빠르고 초록인 강. 그는 그 강을 20년 전에 거슬러 올라왔다. 지금 내려가고 있었다. 어머니가 그의 손을 잡았다. 그는 손을 빼지 않았다.

세 번째로 쓴 사람은 예나의 의사였다.

빈스방거 교수의 병원. 기록은 날마다 적혔다. 환자는 피아노를 쳤다. 환자는 창을 깼다. 환자는 자기가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라고 말했다. 환자는 자기 아내 코지마 바그너가 자기를 여기로 데려왔다고 말했다.[주 37-04] 환자는 조용히 책을 읽었다. 환자는 밤에 노래했다. 환자는 의사에게 정중했다. 환자는 간호인을 때렸다. 환자는 울었다. 환자는 웃었다.

아내 코지마 바그너. 그는 그렇게 말했다고 기록되었다. 트립셴의 식탁에서 명단을 들고 있던 여자. 아리아드네. 그가 12월에 미궁이라고 적은 것. 의사는 그 이름이 누구인지 몰랐다. 적었다. 적힌 것은 사실이었다. 그가 그렇게 말했다는 것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의사의 종이에 없었다. 종이는 뜻을 적지 않았다. 말을 적었다.

어머니가 매일 왔다. 예나에 방을 얻었다. 아침에 병원에 와서 저녁에 갔다. 아들과 걸었다. 병원 정원을. 아들은 어머니 앞에서 조용했다. 조용하다가 갑자기 황제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는 들었다. 들으면서 무어라고 할지 몰랐다. 할머니라면 알았을 것이었다. 어머니는 아들의 팔을 잡고 걸었다. 걷는 것은 할 수 있었다.

「이 사람을 보라」는 나오지 않았다.

쾨젤리츠와 오버베크가 나우만에게 편지를 썼다. 인쇄를 멈추라고. 그 책은 지금 나와서는 안 된다고. 거기 적힌 것들. 어머니와 동생에 대한 것. 다이너마이트. 황제. 나우만은 멈추었다. 「니체 대 바그너」도 멈추었다. 몇 부가 이미 찍혀 있었다. 쾨젤리츠는 그것을 거두어들였다. 「우상의 황혼」만 나왔다. 1월 24일. 질스마리아의 비 오는 여름에 쓴 책. 망치. 그 책이 서점에 놓였을 때 쓴 사람은 예나의 병원에 있었다. 책은 그것을 몰랐다. 책은 팔렸다. 전보다 많이.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듣고 책을 샀다.

그는 그것을 몰랐다. 혹은 알았는데 뜻이 달랐다.

1년이 갔다.

예나의 기록은 계속 적혔다. 좋은 날과 나쁜 날. 가을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율리우스 랑벤. 책을 한 권 썼다는 사람. 교육자로서의 렘브란트. 그는 자기가 니체를 고칠 수 있다고 했다. 의사가 아니라 자기가. 매일 와서 함께 걸으면 된다고. 그는 니체와 걸었다. 두 달. 그리고 어머니에게 요구했다. 아들의 후견인이 되게 해 달라고. 법적으로. 자기가 아들을 데려가겠다고. 어머니는 거절했다. 처음에는 조용히, 두 번째는 단호하게. 랑벤이 떠났다. 어머니는 그날 밤 오버베크에게 편지를 썼다. 자기 아들은 자기가 돌본다고. 아무도 데려가지 못한다고.

어머니가 네 번째로 쓴 사람이었다. 어머니의 글씨는 단정하지 않았다. 늙은 손이었다. 그래도 썼다. 매주 오버베크에게. 아들이 오늘 무엇을 먹었는지, 얼마나 걸었는지, 피아노를 쳤는지, 밤에 잤는지. 어머니는 자기가 기록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몰랐다. 그냥 썼다.

1890년 1월에 쾨젤리츠가 왔다.

베네치아에서 예나까지. 15년 동안 쉼표를 지운 사람. 그는 병원 방에서 그 사람을 만났다. 알아보았다. 쾨젤리츠. 그렇게 불렀다. 그리고 피아노로 갔다. 쳤다. 쾨젤리츠는 들었다. 그리고 그날 밤 편지를 썼다. 다섯 번째로 쓴 사람이었다.

쾨젤리츠는 적었다. 그 연주가 미친 사람의 음악이 아니었다고.[주 37-05] 아름다웠다고. 어디로 가는지 아는 음악이었다고. 그러고 나서 그 사람이 자기를 보고 웃었다고. 옛날처럼. 그리고 농담을 했다고. 베네치아의 날씨에 대해. 쾨젤리츠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의사도 몰랐다. 어머니도 몰랐다. 아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 사람은 말하지 않았다. 말을 했지만 다른 말이었다.

둘은 정원을 걸었다. 1월의 정원. 눈이 있었다. 쾨젤리츠가 베네치아 이야기를 했고 그가 들었다. 듣다가 그가 말했다.

“쉼표.”

쾨젤리츠가 멈추었다.

“네, 교수님?”

“쉼표를 지우게.”

쾨젤리츠는 어느 쉼표인지 묻지 않았다. 알겠다고 했다. 둘은 계속 걸었다.

3월에 의사가 어머니에게 말했다. 집으로 데려가도 된다고. 더 나아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더 나빠지지도 않을 것이라고. 어머니는 알겠다고 했다. 5월에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나움부르크로 갔다. 기차로 한 시간. 역에서 집까지 걸었다. 아들이 어머니의 팔을 잡고. 천천히. 뛰지 않고.

집은 그대로였다. 피아노 위의 천. 그 위의 성경. 그 옆에 「방랑자와 그 그림자」가 아직 있었다. 11년 전 12월에 그가 거기 놓은 것. 어머니는 치우지 않았다. 아들이 거실에 들어와 그것을 보았다. 피아노를. 천을. 책을. 그리고 피아노 밑을 보았다. 그는 거기 들어가지 않았다. 마흔다섯이었다. 대신 피아노 앞에 앉았다. 뚜껑을 열었다. 어머니가 수놓은 천이 미끄러졌다. 어머니가 그것을 받았다.

그는 쳤다.

어머니는 식탁 의자에 앉아 들었다. 저녁이었다. 서쪽 창으로 빛이 들어왔다. 뢰켄의 거실과 같은 방향이었다. 어머니는 그것을 알았다. 아들은 아버지처럼 쳤다. 악보 없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채로. 어머니는 44년 전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이었다. 세상에서 그 소리를 둘 다 들은 사람은 어머니뿐이었다.

어머니는 그날 밤 오버베크에게 썼다. 집에 왔다고. 아들이 피아노를 쳤다고. 자기 남편처럼. 그렇게 적고 어머니는 펜을 놓았다. 더 적을 것이 있었다. 적지 않았다. 적지 않은 것이 어머니에게도 생겼다.

후주

[주 37-01] 니체가 게오르 브란데스에게 보낸 편지, 1889년 1월 4일. eKGWB BVN-1889(번호는 비평판에서 재확인). 한국어 작업 번역. 서명은 「십자가에 못 박힌 자」.

[주 37-02] 니체가 메타 폰 잘리스에게 보낸 편지, 1889년 1월 3일. eKGWB BVN-1889(번호 재확인). 한국어 작업 번역.

[주 37-03] 니체가 프란츠 오버베크에게 보낸 편지, 1889년 1월 4일. eKGWB BVN-1889(번호 재확인). 「나는 지금 모든 반유대주의자들을 총살시키고 있다」는 이 편지에 있고 서명은 「디오니소스」다. 1월 3일에서 6일 사이의 이른바 「광기의 쪽지」들은 이 소설이 완성된 철학으로도 농담으로도 읽지 않았다.

[주 37-04] 예나 대학 정신병원(빈스방거)의 진료 기록, 1889년 1월 이후. 「아내 코지마 바그너가 나를 여기 데려왔다」는 기록에 적힌 환자의 말이다. 바젤 프리트마트의 입원 기록(1889년 1월 10일)에는 환자가 자기를 공작·황제라 부르고 1866년의 감염을 스스로 말했다는 것과 「진행성 마비」라는 당시 진단이 적혀 있다. 이 소설은 당시 진단을 기록으로만 옮기고 현대의 병명을 확정하지 않았다.

[주 37-05] 하인리히 쾨젤리츠가 1890년 1월 예나를 방문한 뒤 쓴 편지. 니체의 피아노 연주가 「미친 사람의 음악 같지 않았다」는 취지가 적혀 있다. 한국어는 그 취지를 옮긴 것이다.

[근거 37-06] 1889년 1월 8일 오버베크가 토리노에 도착해 니체가 교정쇄를 읽다 일어나 안고 운 것, 그 뒤의 노래와 춤, 원고들을 챙긴 것은 오버베크가 쾨젤리츠에게 보낸 편지에 전한다. 1월 9일 치과의사 베트만의 도움으로 바젤행 기차를 탔고 니체가 차 안에서 자작 곤돌라 노래를 불렀다. 1월 10일 바젤 프리트마트 입원, 13일 어머니 도착, 17~18일 예나로 이송.

[근거 37-07] 오버베크와 쾨젤리츠가 『이 사람을 보라』와 『니체 대 바그너』의 인쇄를 멈추게 했다. 『우상의 황혼』은 1889년 1월 24일 출간되었다. 율리우스 랑벤이 1889년 가을부터 1890년 초까지 니체를 자기가 돌보겠다며 후견을 요구했고 어머니가 거절한 것은 사실이다. 1890년 3월 퇴원 허가, 5월 13일 어머니와 나움부르크로 귀가.

「환영식치고는 조용하군」, 정원에서의 「쉼표」, 어머니의 편지 문구, 나움부르크 거실의 피아노 장면은 소설의 창작이다. 1889년 이후의 니체에게 새로운 명료한 철학 독백을 만들어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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