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6,201자)
이 사람을 보라
니체의 삶 · 네오
마흔네 번째 생일에 그는 자기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10월 15일. 어머니의 소시지가 온 날. 클로드 로랭의 하늘. 그는 아침에 창을 열고 광장을 보았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 첫 줄을 썼다. 자기 생애를 쓰기로 했다. 서른 해 전 열세 살이 나움부르크의 2층 방에서 「나의 생애에서」를 썼듯이. 그때는 슐포르타로 떠나기 전에 적어 두려고 썼다. 지금은 왜 쓰는가. 그는 서문에 그 이유를 적었다. 사람들이 자기를 다른 사람으로 알까 봐.
「내 말을 들어라! 나는 이런 사람이다. 무엇보다 나를 다른 사람으로 오해하지 말라!」[주 35-01]
그는 그 줄을 쓰고 보았다. 내 말을 들어라. 15년 동안 아무도 듣지 않았다. 둘뿐인 강의실. 마흔 부 가운데 일곱. 114부. 그리고 코펜하겐의 300명. 지금 그는 들으라고 썼다. 명령형으로. 그 명령이 누구에게 닿을지 몰랐다. 모른 채로 명령했다. 그는 서문의 셋째 절에 자기 책들을 읽는 법을 적었다.
「한 정신은 얼마나 많은 진리를 견디며, 얼마나 많은 진리를 감히 시도하는가?」[주 35-02]
그것이 자기 척도라고 적었다. 그리고 그 밑에 적었다.
「오류는 눈먼 것이 아니다. 오류는 비겁함이다.」[주 35-03]
비겁함. 그는 그 낱말을 쓰면서 어머니에게 쓴 편지를 생각했다. 1865년의 편지. 믿음이라는 말을 한 번도 쓰지 않은 편지. 그것이 비겁함이었다. 그는 자기가 어디서 비겁했는지 알았다. 알면서 비겁함이 오류라고 적었다. 자기에게 적는 것이었다.
첫 장의 제목을 그는 이렇게 붙였다. 나는 왜 이렇게 현명한가.
웃음이 나는 제목이었다. 웃으라고 붙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 장의 첫 절에서 그는 아버지를 적었다.
「내 아버지는 서른여섯에 죽었다. 그는 섬세하고 사랑스럽고 병약했다, 그저 지나가도록 정해진 존재처럼.」[주 35-04]
서른여섯. 그는 그렇게 적었다. 아버지는 서른다섯에 죽었다. 그는 그것을 알았던가. 몰랐던가. 적을 때 손이 서른여섯이라고 썼다. 그는 고치지 않았다. 고치지 않은 것이 기억의 모양이었다. 열세 살이 다섯 살의 꿈을 적었을 때처럼. 그리고 그는 이어서 적었다.
「수수께끼로 말하자면, 나는 내 아버지로서는 이미 죽었고 내 어머니로서는 아직 살아 늙어 간다.」[주 35-05]
그는 그 줄을 적고 펜을 놓았다. 아버지로서는 죽었다. 서른다섯에. 그는 그 겨울을 넘겼다. 나움부르크에서, 1879년에, 아버지의 나이에. 그는 그때 자기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죽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적기를, 그때 아버지로서는 죽었다고 적었다. 그 뒤로 산 것은 어머니로서였다. 어머니의 몸. 어머니의 수프. 어머니의 소시지. 그는 그 수수께끼가 자기 생애의 가장 정확한 요약이라는 것을 알았다. 수수께끼라서 정확했다.
같은 장의 셋째 절에서 그는 어머니와 동생을 적었다.
적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 삶을 쓰면서 그 둘을 빼면 거짓이었다. 그는 적었다. 자기와 가장 깊이 반대되는 것을 찾으면 늘 어머니와 동생을 발견한다고. 그 둘 곁에서 자기는 자기 신성한 것이 더럽혀지는 것을 느낀다고. 그는 그것을 적으면서 자기 손을 보았다. 소시지를 자르던 손. 어머니에게 날씨가 좋다고 쓰던 손. 그 손이 지금 어머니를 가장 깊은 반대라고 적고 있었다. 그는 그것이 거짓인지 보았다. 거짓이 아니었다. 그런데 전부도 아니었다. 전부가 아닌 것을 적는 것이 자서전이었다. 그는 그 절을 두었다. 그 절이 나중에 어떻게 될지 그는 몰랐다. 동생이 그 절을 빼고 책을 낼 것이라는 것을. 자기가 쓴 것 가운데 가장 늦게 읽힐 줄이라는 것을.
둘째 장. 나는 왜 이렇게 영리한가.
여기서 그는 작은 것들을 적었다. 먹는 것. 사는 곳. 날씨. 쉬는 법. 책. 10년 전 장크트모리츠에서 그림자에게 배운 것들. 그는 그것을 영리함이라고 불렀다. 철학자가 식단을 말하는 것. 그는 적었다. 자기는 끼니 사이에 먹지 않고 커피를 마시지 않고 차는 아침에만 마신다고. 독일 음식이 자기를 망쳤다고. 라이프치히의 음식, 그 기름진 것들. 그리고 날씨. 니스, 토리노, 질스마리아. 공기가 마른 곳. 그는 적었다.
「모든 편견은 내장에서 온다.」[주 35-06]
그는 그 줄을 적고 웃었다. 2천 년의 철학이 내장에서 왔다. 플라톤의 위장. 칸트의 장. 그는 그것을 농담으로 적었고 농담이 아니었다. 자기 118일이 그것을 가르쳤다. 아픈 내장으로 생각한 것과 나은 내장으로 생각한 것이 달랐다. 그는 그 차이를 책 세 권으로 썼다. 그 세 권이 영리함이었다.
그리고 그 장의 아홉째 절에서 자기 책들의 제목이 될 것을 적었다. 자기 자신이 되는 것에 대해.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은, 자신이 무엇인지 조금도 짐작하지 못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주 35-07]
그는 그 줄을 쓰고 핀다로스를 생각했다. 네가 무엇인지가 되어라. 「즐거운 학문」의 부제로 썼던 말. 그리고 지금 그것을 뒤집어 적었다. 자기가 무엇인지 몰라야 자기가 된다. 알았다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자기 생애를 보았다. 교수가 될 줄 몰랐고 그만둘 줄 몰랐고 바그너를 떠날 줄 몰랐고 그 사람이 산에서 내려올 줄 몰랐다. 모른 채로 걸었다. 묻지 말고 걸어라. 14년 전 베르귄의 문장. 그는 그것이 맞았다는 것을 지금 적었다.
열째 절에서 그는 자기 공식을 적었다.
「인간의 위대함에 대한 나의 공식은 운명애다. 아무것도 다르게 갖기를 원하지 않는 것, 앞으로도, 뒤로도, 영원토록.」[주 35-08]
그리고 이어서.
「필연적인 것을 그저 견디기만 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감추어서도 안 된다.」[주 35-09]
「그것을 사랑해야 한다.」[주 35-10]
그는 그 세 줄을 적고 창가로 갔다. 1882년 1월 1일. 제노바. 되기를. 그때 그는 소망으로 적었다. 운명애, 이제부터 이것이 나의 사랑이 되기를. 6년 뒤 그는 공식으로 적었다. 되기를이 아니라 이다. 그는 그 변화를 보았다. 소망이 공식이 되었다. 그 사이에 바위가 있었고 라팔로가 있었고 일곱 개의 봉인이 있었다. 그는 자기가 지금 운명을 사랑하는지 보았다. 광장에 가을 햇빛이 있었다. 그는 사랑한다고 적었다. 적을 수 있었다. 그것이 되는지는 아직 몰랐다. 되는지 모르는 채로 공식을 적는 것이 이 책이었다.
셋째 장.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을 쓰는가.
그는 자기 책들을 하나씩 다시 읽었다. 열 권. 비극의 탄생에서 바그너의 경우까지. 책마다 한 장씩. 그것은 자서전의 한가운데였다. 사건이 아니라 책이 생애였다. 그는 첫 절에 적었다.
「어떤 사람은 사후에 태어난다.」[주 35-11]
자기가 그런 사람이라고. 아직 때가 오지 않았다고. 그는 그 줄을 적으면서 코펜하겐을 생각했다. 300명. 때가 오고 있는지도 몰랐다. 사후가 아니라 생전에. 그는 그 희망을 적지 않았다. 적으면 사후라는 말이 거짓이 되었다.
「차라투스트라」의 장에서 그는 바위를 적었다.
처음으로. 7년 만에. 그 오후를 아무에게도 적지 않았다. 루에게 말했고 도이센에게 가리켰을 뿐이다. 지금 그는 적었다.
「그날 나는 실바플라나 호숫가 숲을 걷고 있었다. 수를레이에서 멀지 않은 곳, 피라미드처럼 솟은 거대한 바위 앞에 멈추어 섰다. 거기서 이 생각이 나에게 왔다.」[주 35-12]
그는 그 줄을 적고 손을 멈추었다. 적고 보니 짧았다. 그 오후가 그렇게 짧은 문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이상했다. 바위에 짚은 손. 소 방울. 울음. 그것은 적지 않았다. 적은 것은 바위와 생각뿐이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나머지는 바위가 알았다.
그리고 그 생각이 어떻게 책이 되었는지를 적었다. 영감. 19세기 말에 그 낱말을 쓰는 사람이 있는가. 그는 썼다.
「사람은 듣는다, 찾지 않는다. 받는다, 누가 주는지 묻지 않는다.」[주 35-13]
라팔로의 열흘. 자기가 자기의 필사자였던 열흘. 그는 그것을 그렇게 적었다. 받았다고. 누가 주었는지 묻지 않았다고. 그것이 영감이라는 낡은 낱말의 뜻이었다. 그는 그 낱말을 되살려 적었다. 미친 사람의 등불처럼. 혹은 그보다 더 미친 것처럼.
마지막 장. 나는 왜 하나의 운명인가.
그는 그 제목을 적고 한참 있었다. 운명. 사람이 아니라 운명. 그는 첫 절에 적었다.
「나는 내 운명을 안다. 언젠가 내 이름에는 어떤 엄청난 것의 기억이 붙게 될 것이다.」[주 35-14]
그리고 이어서. 자기는 성자가 아니라고. 성자이기보다 차라리 어릿광대이기를 바란다고. 그리고 그 절의 가장 유명해질 줄.
「나는 인간이 아니다. 나는 다이너마이트다.」[주 35-15]
다이너마이트. 비트만의 낱말이었다. 2년 전 베른의 신문. 이 책 앞에 검은 깃발을 걸어야 한다. 그는 그 낱말을 2년 동안 가지고 있다가 지금 자기 이름으로 적었다. 남이 준 이름을 자기 것으로. 귀족적 급진주의처럼. 그는 자기가 받은 이름들로 자기를 쓰고 있었다. 그것이 자서전이었다. 자기가 지은 이름은 하나도 없었다. 차라투스트라까지도 페르시아에서 빌린 것이었다.
그는 11월 4일에 끝냈다. 스무 날.
마지막 줄을 적었다. 질문 하나. 그리고 두 이름.
「나를 이해했는가? 디오니소스 대 십자가에 못 박힌 자.」[주 35-16]
그는 그 줄을 적고 원고를 보았다. 100장이 조금 넘었다. 자기 생애. 아버지와 어머니와 열 권의 책과 바위와 다이너마이트. 그는 그것을 라이프치히로 보내기로 했다. 나우만. 그리고 보내기 전에 몇 군데를 고치기로 했다. 고치는 데 12월까지 걸릴 것이었다.
창밖에 광장이 있었다. 11월의 빛. 아직 금색이었다. 그는 창을 열어 두고 책상으로 돌아왔다. 원고 첫 장. 내 말을 들어라. 그는 그 줄을 다시 읽었다. 그러고 나서 제목을 적었다. 이 사람을 보라. 빌라도가 예수를 가리키며 한 말. 라틴어로. 그는 그것을 자기 자서전의 제목으로 적었다.
적고 나서 웃었다. 어릿광대의 웃음이었다. 성자의 것이 아니라.
후주
[주 35-01] 니체, 『이 사람을 보라』 서문 1절. eKGWB EH-Vorwort-1. 한국어 작업 번역.
[주 35-02] [주 35-03] 같은 책 서문 3절. eKGWB EH-Vorwort-3. 한국어 작업 번역. 「오류는 비겁함이다」의 원문에는 「이상에 대한 믿음」이라는 괄호 설명이 있다.
[주 35-04] [주 35-05] 같은 책 「나는 왜 이렇게 현명한가」 1절. eKGWB EH-Weise-1. 한국어 작업 번역. 아버지 카를 루트비히 니체는 1813년 10월에 태어나 1849년 7월에 죽었으므로 서른다섯이었다. 니체의 「서른여섯」은 원문 그대로 두었다.
같은 장 3절의 어머니와 동생에 대한 대목은 1888년 12월에 고쳐 쓴 것으로, 동생이 1908년 첫 출판 때 빼고 다른 글로 바꾸었으며 1969년에야 원문이 복원되었다. 본문은 그 대목을 직접 인용하지 않고 취지를 옮겼다.
[주 35-06] 같은 책 「나는 왜 이렇게 영리한가」 1절. eKGWB EH-Klug-1. 한국어 작업 번역. 식단과 기후에 관한 서술은 1~2절에 있다.
[주 35-07] 같은 책 「나는 왜 이렇게 영리한가」 9절. eKGWB EH-Klug-9. 한국어 작업 번역.
[주 35-08] [주 35-09] [주 35-10] 같은 책 「나는 왜 이렇게 영리한가」 10절. eKGWB EH-Klug-10. 한국어 작업 번역. 세 인용은 한 단락에서 이어진다.
[주 35-11] 같은 책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을 쓰는가」 1절. eKGWB EH-Bücher-1. 한국어 작업 번역.
[주 35-12] [주 35-13] 같은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장 1절과 3절. eKGWB EH-ZA-1, EH-ZA-3. 한국어 작업 번역. 수를레이 바위의 회고는 1881년 노트(NF-1881,11[141])를 7년 뒤에 돌아본 것이며, 이 소설은 1881년 질스마리아의 장면과 1888년의 회고를 구별했다.
[주 35-14] [주 35-15] 같은 책 「나는 왜 하나의 운명인가」 1절. eKGWB EH-Schicksal-1. 한국어 작업 번역. 「성자이기보다 차라리 어릿광대」도 같은 절에 있다. 「다이너마이트」는 1886년 비트만의 서평이 먼저 쓴 낱말이다.
[주 35-16] 같은 책 「나는 왜 하나의 운명인가」 9절, 책의 마지막 줄. eKGWB EH-Schicksal-9. 한국어 작업 번역.
[근거 35-17] 『이 사람을 보라』는 1888년 10월 15일 마흔네 번째 생일에 시작해 11월 4일에 초고를 끝내고 12월까지 고쳤다. 생전에 출간되지 않았고 1908년에 처음 나왔다. 이 소설은 1888년의 집필만 다루었다. 각 대목을 쓰며 떠올린 기억과 창가의 장면은 소설의 창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