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5,751자)
바그너의 경우
니체의 삶 · 네오
그는 토리노에 가방 없이 도착했다.
4월 5일. 니스에서 기차를 두 번 갈아타야 했는데 삼피에르다레나에서 잘못된 열차에 올랐고, 알아차렸을 때는 가방이 다른 열차에 실려 가고 있었다. 그는 빈손으로 역에 서서 자기 가방이 어디로 가는지를 생각했다. 책 아홉 상자가 아니었다. 가방 하나였다. 공책과 안경과 셔츠. 그는 역장에게 사정을 말했고 역장은 알아보겠다고 했고, 그는 다음 열차를 타고 토리노에 갔다. 열이 났다. 도착했을 때 그는 가방 없이 열이 나는 마흔세 살의 외국인이었다.
가방은 이틀 뒤에 왔다. 그 이틀 동안 그는 토리노를 걸었다.
도시가 평평했다. 길이 곧았다. 모든 길에 아케이드가 있어서 비가 와도 눈이 와도 걸을 수 있었다. 18킬로미터라고 했다. 그는 그 밑을 걸었다. 돌기둥 사이로 광장이 열렸다 닫혔다 했고, 광장마다 궁전이 있었고, 궁전 너머로 알프스가 하얗게 서 있었다. 포 강이 도시 동쪽을 흘렀다. 넓고 느리고 초록이었다. 그는 강가에 서서 그것을 보았다. 라인도 아니고 바다도 아니었다. 산에서 내려와 평지를 지나 바다로 가는 중간의 강.
그는 사흘째에 편지에 썼다. 토리노는 자기가 가능한 첫 번째 장소라고. 쓰고 나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생각했다. 가능하다. 지금까지 자기는 어디서도 가능하지 않았다. 바젤에서는 교수였고 질스마리아에서는 손님이었고 니스에서는 환자였다. 여기서 그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케이드 밑을 걷는 사람.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방은 카를로 알베르토 거리 6번지였다.
신문 가판대를 하는 피노라는 사람의 집, 5층. 창을 열면 카를로 알베르토 광장이 있었고 광장 건너에 카리냐노 궁의 붉은 벽돌이 있었다. 피노는 말수가 적었고 아내는 성호를 자주 그었고 딸이 하나 있었다. 집세는 쌌다. 방에 피아노가 있었다. 그는 그것을 보고 바로 방을 정했다. 10년 동안 피아노가 있는 방에서 살아 본 적이 없었다.
첫날 밤 그는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 건반에 손을 얹었다. 누르지 않았다. 피노네 가족이 아래층에서 자고 있었다. 그는 다음 날 저녁에 쳤다. 낮게.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채로. 피노의 딸이 계단에서 들었다. 그는 몰랐다.
4월 말에 코펜하겐에서 편지가 왔다.
브란데스가 강의를 시작했다고 했다. 코펜하겐 대학에서. 주제는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 다섯 번. 첫 강의에 300명이 왔다고 했다. 300명. 그는 그 숫자를 읽고 아케이드로 나갔다. 피오리오 카페. 토리노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 그는 아이스크림을 시켰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그 숫자를 생각했다. 겨울 학기에 학생이 둘이었다. 바젤에서. 16년 전. 지금 코펜하겐에서 300명이 자기를 듣고 있었다. 자기가 아니라 자기에 대해. 그 차이는 알았다. 그래도 300이었다.
그는 그날 아이스크림을 두 개 먹었다. 두 번째 것은 이유가 없었다. 이유 없이 먹는 것이 토리노에서 가능했다.
5월 초에 그는 「카르멘」을 들었다.
토리노의 극장이었다. 그는 자리에 앉기 전에 세어 보았다. 몇 번째인가. 제노바의 첫 저녁. 사흘 뒤의 두 번째. 그 뒤로 니스에서, 제노바에서, 다시 니스에서. 그는 세었다. 스물. 스무 번째였다. 7년 동안 스무 번. 바그너의 어떤 것도 스무 번 들은 적이 없었다. 「트리스탄」도. 「반지」도. 그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자리에 앉으면서 알았다.
막이 올랐다. 첫 소절. 그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스무 번째인데 같은 자리에서 같은 자세였다. 햇빛 속에서 걸어 나오는 소리. 설명하지 않고 구원하지 않는 소리. 담배 공장과 군인과 죽음. 두 시간 반. 그는 쇠막대 없이 앉아 있었다. 끝나고 극장을 나왔을 때 아케이드에 저녁 바람이 불었다. 그는 피노의 집까지 걸으면서 생각했다. 이것에 대해 써야 한다. 7년 동안 쓰지 않은 것. 「카르멘」이 왜 좋은가가 아니라, 「카르멘」이 좋다는 것이 바그너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가.
그날 밤 그는 쓰기 시작했다. 편지 형식으로. 받는 사람이 없는 편지.
「어제 나는, 믿으시겠습니까? 비제의 걸작을 스무 번째 들었습니다.」[주 32-01]
그는 그 첫 줄을 쓰고 웃었다. 믿으시겠습니까. 누구에게 묻는 것인가. 바그너 숭배자들에게. 자기에게. 그는 이어 썼다.
「이 음악은 짓궂고, 세련되고, 운명론적이다. 그러면서도 대중적이다.」[주 32-04]
이 음악은 가볍다. 가벼운 것이 얕은 것이 아니다. 이 음악은 땀을 흘리지 않는다. 바그너의 음악은 땀을 흘린다. 바그너는 음악으로 사람을 설득한다. 비제는 설득하지 않는다. 그냥 있다. 그는 그것을 적으면서 자기가 20년 전에 어떻게 썼는지를 생각했다. 비극의 탄생. 바그너의 음악에서 그리스가 다시 태어난다. 지금 그는 그 음악이 병이라고 쓰고 있었다.
「음악을 지중해화해야 한다.」[주 32-02]
그 앞 절에서 그는 「카르멘」의 사랑을 적었다. 바그너의 사랑이 아니라. 구원하는 사랑이 아니라 서로를 죽이는 사랑.
「사랑, 그것은 전쟁이다. 그 바탕은 두 성의 죽음에 이르는 증오다.」[주 32-05]
그는 그 줄을 쓰고 창을 열었다. 토리노는 지중해가 아니었다. 알프스 아래 평지였다. 그런데 남쪽이었다. 메시나의 빛, 제노바의 바다, 니스의 220일. 그는 그것들을 한 낱말로 불렀다. 지중해. 북쪽의 음악이 아니라 남쪽의 음악. 안개가 아니라 빛. 구원이 아니라 춤. 그는 그 낱말이 과장인지 보았다. 과장이었다. 과장이 아니면 바그너를 칠 수 없었다. 바그너가 과장이었으니까.
낮에는 아케이드를 걸었다. 토리노의 5월은 이미 더웠는데 돌기둥 밑은 서늘했고, 그는 기둥 하나를 지날 때마다 문장 하나를 생각했다. 포 강가의 식당에서 혼자 먹었다. 리소토와 송아지 고기와 포도주 반 병. 그는 식당 주인에게 매일 같은 자리를 달라고 했고 주인은 사흘째부터 묻지 않고 그 자리를 비워 두었다. 이름을 묻지 않는 도시. 그것도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저녁에는 카를로 알베르토 광장을 한 바퀴 돌았다. 마차들이 광장을 가로질렀고 말들이 돌바닥을 치는 소리가 아케이드에 울렸다. 그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카르멘」의 박자를 생각했다. 가벼운 박자. 걷는 사람의 박자.
책은 짧았다. 50쪽이 안 되었다. 그는 그것을 한 달 만에 썼다. 쓰면서 바그너를 하나씩 뜯어보았다. 음악가가 아니라 배우. 음악을 거짓말하게 만든 사람. 사람을 몰아가는 사람. 늙어서 무릎 꿇은 사람.
「바그너는 큰 양식의 유혹자다.」[주 32-06]
유혹자. 자기가 유혹당한 사람이었다. 열여섯에 크루크의 집 피아노에서, 스물넷에 브록하우스의 거실에서. 그는 그 유혹의 크기를 알았기 때문에 큰 양식이라고 적었다. 작은 유혹에는 넘어가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전부 썼다. 가볍게. 가볍게 쓰는 것이 이 책의 전부였다. 무겁게 쓰면 자기가 바그너가 되었다.
서문에서 그는 철학자가 할 일을 적었다.
「철학자가 자기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기 시대를 자기 안에서 극복하는 것, 「시대 없는 자」가 되는 것이다.」[주 32-07]
자기 시대. 바그너가 그 시대였다. 그래서 그다음 줄이 책 전체보다 어려웠다.
「바그너는 그저 내 병들 가운데 하나다.」[주 32-03]
그저. 그는 그 낱말을 넣었다 뺐다 넣었다. 그저 병 하나. 118일 같은 것. 두통 같은 것. 그러면 바그너를 극복하는 것은 병을 앓고 나서 일어나는 것과 같았다. 그는 그 비유가 맞는지 보았다. 맞았다. 그래서 어려웠다. 병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었다. 거듭 내어 주는 것이었다. 위대한 건강. 그러면 바그너도 거듭 돌아올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알면서 그저라고 썼다. 그저라고 써야 책이 가벼워졌다.
후기에 그는 다른 것을 썼다. 바그너 주위의 사람들. 바이로이트에 모인 반유대주의자들. 그는 그들의 이름을 쓰지 않았다. 쓸 필요가 없었다. 파라과이에 하나가 있었다. 그는 그 후기를 쓰면서 동생의 남편이 이 책을 읽을지 생각했다. 읽지 않을 것이었다. 읽어도 자기 이야기인 줄 모를 것이었다. 그것이 그 사람들의 재주였다.
6월에 원고를 나우만에게 보냈다. 제목을 적었다. 바그너의 경우. 부제는 어느 음악가의 문제. 그는 그 부제를 적고 웃었다. 어느 음악가. 바그너인지 자기인지. 자기도 음악가였다. 「삶에의 찬가」를 낸 사람. 피노의 피아노를 밤에 치는 사람. 어느 음악가의 문제는 바그너의 문제이기도 했고 자기 문제이기도 했다. 부제가 그것을 알았다.
원고를 보내고 그날 저녁 그는 피아노 앞에 앉았다.
피노네가 아래층에서 저녁을 먹는 소리가 났다. 그는 뚜껑을 열었다. 손을 얹었다. 그리고 쳤다. 「카르멘」이 아니었다. 손이 다른 데로 갔다. 슐포르타에서 크루크와 더듬더듬 치던 것. 빌려 온 악보, 연필로 적은 손가락 번호. 「트리스탄」의 첫 화음.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소리. 가야 할 자리가 없는 소리.
그는 그 화음을 치고 손을 멈추었다.
27년 전 열여섯이 그 화음에서 손을 멈추었다. 지금 마흔셋이 같은 자리에서 멈추었다. 같은 화음이었다. 같은 손이었다. 그는 방금 그 사람이 병이라고 쓴 책을 우체국에 보내고 돌아와 그 사람의 화음을 치고 있었다. 모순이 아니었다. 그는 그것을 알았다. 병이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책을 썼다. 끝났으면 쓰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는 뚜껑을 내렸다. 소리가 나지 않게. 아래층에서 피노의 딸이 계단을 올라오다 멈추는 소리가 났다. 아이는 피아노 소리가 그친 것을 알고 도로 내려갔다. 그는 그 발소리를 들었다. 그 아이가 지난 두 달 동안 저녁마다 계단에서 들었다는 것을 그는 그제야 알았다.
후주
[주 32-01] 니체, 『바그너의 경우』 1절. eKGWB WA-1. 한국어 작업 번역. 책은 1888년 5월의 편지 형식으로 시작한다. 「카르멘」을 처음 들은 것은 1881년 11월 제노바이며, 1888년의 저술 계기와 최초 체험은 구분했다.
[주 32-02] 같은 책 3절. eKGWB WA-3. 한국어 작업 번역. 원문은 프랑스어 구절이다.
[주 32-03] 같은 책 서문. eKGWB WA-Vorwort. 한국어 작업 번역. 서문의 첫 단락에 바그너가 자기 병들에 속한다는 말이 있다.
[주 32-04] 니체, 『바그너의 경우』 1절. eKGWB WA-1. 한국어 작업 번역. 32-01에 이어지는 대목이다.
[주 32-05] 같은 책 2절. eKGWB WA-2. 한국어 작업 번역. 「사랑, 그것은 전쟁이다」는 원문이 프랑스어다.
[주 32-06] 같은 책 5절. eKGWB WA-5. 한국어 작업 번역.
[주 32-07] 같은 책 서문. eKGWB WA-Vorwort. 한국어 작업 번역. 32-03의 바로 앞에 있다.
[근거 32-08] 1888년 4월 5일 토리노 도착. 삼피에르다레나에서 열차를 잘못 타 가방을 잃고 열이 난 채 도착한 것은 니체의 편지에 전한다. 카를로 알베르토 거리 6번지 다비데 피노의 집 5층에 묵었다. 토리노를 「내가 가능한 첫 장소」라고 적은 것, 아케이드와 포 강과 알프스에 대한 묘사, 피오리오 카페와 아이스크림은 편지에 근거한다.
[근거 32-09] 게오르 브란데스는 1888년 4~5월 코펜하겐 대학에서 니체에 관한 공개 강의를 다섯 차례 했고 첫 강의에 300명 가까이 모였다고 니체에게 알렸다. 니체에 관한 최초의 공개 강의다.
[근거 32-10] 『바그너의 경우. 어느 음악가의 문제』는 1888년 4~6월 토리노에서 쓰고 9월 22일 라이프치히 나우만에서 자비로 냈다. 바그너를 배우와 퇴폐로, 비제를 그 반대로 세우는 논지, 후기의 반유대주의자 언급은 원문에 있다.
피노네 피아노와 딸, 두 번째 아이스크림, 「트리스탄」의 첫 화음을 친 저녁은 소설의 창작이다. 이 소설의 첫 장면에 나오는 방과 피아노는 이 봄에 처음 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