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5,803자)

금욕주의

니체의 삶 · 네오

7월의 마지막 주에 그는 질문 하나로 시작했다.

금욕주의적 이상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는 그 질문을 셋째 논문의 제목으로 적었다. 그리고 첫 절에 답의 목록을 적었다.

「예술가에게는 아무것도, 혹은 너무 많은 것을. 철학자와 학자에게는 높은 정신성의 가장 유리한 조건을 알아채는 후각과 본능 같은 것을. 여자에게는 기껏해야 매혹 하나를 더. 사제에게는 그들의 가장 좋은 권력 도구를.」[주 31-04]

적고 나서 그 질문이 누구에게 향하는지 보았다. 예술가에게. 철학자에게. 사제에게. 학자에게. 그리고 자기에게. 마지막 것은 적지 않았다. 적지 않아도 질문은 거기 가 있었다.

예술가부터였다. 그는 바그너를 적었다. 이름을 적었다. 「파르지팔」. 늙은 음악가가 마지막에 순결을 찬양한 것. 평생 관능을 노래한 사람이 끝에 가서 무릎 꿇은 사람들을 무대에 올린 것. 그는 그것을 적으면서 상급교회참사관이라는 서명을 생각했다. 농담이 농담이 아니었던 책. 그는 바그너를 조롱했다. 가볍게. 10년 전이라면 가볍게 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 사람이 죽은 지 4년이었다. 죽은 사람을 조롱하는 것이 쉬운지 어려운지 그는 몰랐다. 쉬웠다. 쉬운 것이 조금 슬펐다. 그는 슬픔을 적지 않았다.

그다음이 철학자였다.

철학자는 왜 금욕주의를 좋아하는가. 가난, 겸손, 순결. 철학자들은 늘 그것을 미덕이라고 했다. 그는 적었다. 미덕이 아니라고.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데 가장 좋은 조건. 가난하면 지킬 것이 없어 자유롭고, 겸손하면 눈에 띄지 않아 방해받지 않고, 순결하면 힘이 다른 데로 새지 않는다. 철학자의 금욕은 금욕이 아니라 자기 일을 위한 가장 밝은 날씨를 고르는 것이다.

그는 그 줄을 적고 자기 방을 보았다.

침대 하나. 책상 하나. 창 하나. 두리슈의 집 2층. 연금 3천 프랑. 아내 없음. 아이 없음. 집 없음. 국적 없음. 해마다 산과 바다 사이를 오가는 가방 하나. 그는 지금 철학자의 금욕이 조건이라고 적었다. 자기 삶을 적은 것이었다. 자기가 그 조건을 골랐는가, 조건이 자기를 골랐는가. 그는 몰랐다. 118일이 골라 준 것이었다. 몸이 허락하는 것만 남겼더니 그것이 금욕주의자의 삶과 같은 모양이 되었다. 그는 그것이 우스웠다. 성자처럼 사는 무신론자. 그는 그 우스움을 책에 적었다. 가볍게. 철학자가 금욕적으로 보이는 것은 사막에 사는 짐승이 사막 색을 띠는 것과 같다고.

그다음이 사제였다. 가장 길었다.

사제는 의사였다. 아픈 사람들의 의사.

「금욕주의적 사제는 병든 무리의 예정된 구원자이자 목자이자 변호인으로 보아야 한다.」[주 31-05]

아픈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아픈지를 알고 싶어 한다. 사제는 그것을 가르쳐 준다. 네 탓이다. 네 죄 때문이다. 그러면 아픈 사람은 자기 고통에 이름을 얻는다. 이름이 있는 고통은 견딜 수 있다. 사제는 고통을 없애지 않는다. 고통에 뜻을 준다. 그것이 그가 한 일이고, 그것으로 그는 2천 년 동안 이겼다.

그는 그것을 적으면서 자기 고통을 보았다.

누가 그에게 뜻을 주었는가. 슐포르타의 목사가 주었다. 죄. 그는 그것을 열일곱에 거절했다. 쇼펜하우어가 주었다. 의지. 세계가 원래 아프다. 그는 그것을 서른에 거절했다. 바그너가 주었다. 예술. 고통이 음악이 된다. 그는 그것을 서른둘에 거절했다. 그리고 지금 아무도 주지 않았다. 118일에 뜻이 없었다. 세숫대야에 뜻이 없었다. 그는 그것을 알았다. 알면서 사제를 적었다. 사제가 주는 뜻이 거짓이라고. 거짓인데 그것이 사람을 살렸다고. 그는 그 둘을 다 적었다. 거짓이라는 것과 살렸다는 것. 둘 다 적어야 했다. 하나만 적으면 그것이 또 하나의 사제가 되었다.

열두째 절에서 그는 눈에 대해 적었다.

학자들이 말하는 순수한 인식. 어디서도 보지 않는 눈. 그런 것은 없다고 그는 적었다. 눈은 어디선가 본다. 어떤 몸에서, 어떤 감정으로, 어떤 자리에서.

「오직 관점적인 봄만이 있고, 오직 관점적인 「인식」만이 있다.」[주 31-01]

그는 그 줄을 적고 예나의 여관을 생각했다. 5년 전. 동생이 말한 것과 루가 말한 것. 둘 다 거기 있었고 둘 다 보았고 둘 다 다르게 보았다. 그는 둘 다 믿었고 둘 다 믿지 않았다. 그때는 그것이 고통이었다. 지금 그것은 문장이었다. 눈이 많을수록 더 많이 본다. 그는 그 줄을 이어 적었다. 하나의 사건을 보는 눈이 많을수록 그 사건의 개념은 완전해진다고. 예나의 여관은 눈이 셋이었다. 동생, 루, 그리고 듣기만 한 자기. 그는 그 셋을 다 가진 사람이었다. 다 가지고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랐다. 완전한 개념이 그런 것이었다. 아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보는 것.

학자가 마지막이었다. 그는 자기 옛 직업을 적었다. 학문은 금욕주의적 이상의 반대처럼 보인다. 신을 믿지 않고 사실을 믿는다. 그런데 그 믿음이 무엇인가. 진리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는 믿음. 진리를 위해 모든 것을 버려도 된다는 믿음. 그것이 어디서 왔는가. 그는 적었다. 사제에게서. 신을 믿던 믿음이 신을 버리고 진리로 옮겨 앉은 것뿐이라고. 학자는 사제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는 그것을 적으면서 리츨의 서재를 생각했다. 한 낱말의 철자가 어느 필사본에서 틀어졌는지를 두 시간 동안 따지던 사람. 빌라모비츠의 느낌표. 로데의 침묵. 그들은 진리를 믿었다. 그도 믿었다. 24세의 교수가 강단에서 문헌학이 철학이 되었다고 선언했을 때 그가 섬긴 것은 무엇이었나. 그는 적었다. 자기도 그 안에 있었다고. 지금 이 글도 진리를 원하는 글이었다. 밖이 없었다. 그는 또 그 자리를 보았다. 밖이 없는 자리에서 밖을 가리키는 것. 그것이 자기가 하는 일이었다. 그는 그것이 거짓인지 보았다. 거짓이 아니었다. 그러나 끝도 아니었다.

마지막 절은 7월 30일에 적었다.

인간의 문제는 고통이 아니었다. 고통은 늘 있었다.

「고통이 아니라 고통의 무의미가 지금까지 인류 위에 놓인 저주였다.」[주 31-06]

문제는 고통에 답이 없는 것이었다. 무엇 때문에 아픈가. 그 질문에 답이 없을 때 인간은 고통보다 그 없음을 견디지 못했다. 그래서 사제가 준 답을 받았다. 네 탓이다. 끔찍한 답이었다. 그러나 답이었다. 답이 없는 것보다 끔찍한 답이 나았다. 그는 적었다.

「인간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기보다는 차라리 무를 원한다.」[주 31-02]

적고 나서 그는 라팔로를 생각했다. 아편. 잠을 자려고 먹은 것. 자기가 그 겨울에 원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것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무를 원했다. 잠. 끝. 그는 그 사람을 알았다. 그 사람이 지금 이 줄을 적고 있었다. 자기가 쓴 것이 자기 설명이었다. 모든 철학은 고백이다. 그는 그 줄을 지우지 않았다. 지우면 책의 끝이 거짓이 되었다.

그는 거기서 끝냈다. 책은 그렇게 끝나야 했다. 답을 주면 자기가 사제가 되었다. 그는 질문으로 끝내고 공책을 덮었다. 스무 날. 그는 창을 열었다. 7월 저녁의 호수. 바위가 저 멀리 있었다. 그는 바위에게 물었다. 그러면 너는 무엇을 주었는가. 바위는 대답하지 않았다. 당연했다. 그는 혼자 웃었다. 바위에게 뜻을 묻는 사람. 그것도 금욕주의적 이상이었다. 그는 그것을 알았고, 알면서도 바위를 보았다.

겨울이 왔다. 니스.

브란데스와 편지가 오갔다. 두 번째 편지, 세 번째 편지. 코펜하겐의 사람은 질문을 했고 그는 답했다. 질문이 좋았다. 책을 읽은 사람의 질문. 그 사람은 「선악의 저편」을 읽었고 「도덕의 계보」를 읽었고 더 읽고 싶다고 했다. 어디서 태어났느냐고 물었고, 왜 교수를 그만두었느냐고 물었고, 사진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사진이 없다고 답했다가 하나 있다고 고쳐 썼다. 6년 전 루체른에서 찍은 것은 보낼 수 없었다. 수레와 채찍. 그는 다른 사진을 찾았다. 바젤 시절의 것. 콧수염이 지금보다 얇은 사람. 그는 그것을 봉투에 넣었다가 뺐다. 그 사람은 지금의 자기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의 자기를 찍은 사진이 없었다. 10년 동안 아무도 그를 찍지 않았다. 그는 결국 바젤의 사진을 넣었다. 10년 전 얼굴이 코펜하겐으로 갔다. 그는 그것이 거짓인지 보았다. 거짓이 아니었다. 그 사람도 자기였다. 자기비판의 시도에서 배운 것이었다.

1888년 1월 8일에 그는 긴 답장을 썼다.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적었다. 바젤의 교수였던 것. 병. 떠돌이 생활. 책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선악의 저편」이 어떻게 오해받았는지. 그리고 적었다. 자기의 개인적인 면을 보려면, 자기가 연민이라는 문제와 어떻게 싸우는지를 보려면, 「차라투스트라」 4부를 읽으라고. 그 책은 공개하지 않은 책이라고. 몇 사람에게만 보낸 것이라고. 한 권을 보내겠다고.[주 31-03]

그는 편지를 봉하기 전에 침대 밑으로 손을 넣었다.

상자가 있었다. 3년 전 니스에서 밀어 넣은 것. 그 사이에 가방에 넣어 산과 바다를 따라 다닌 것. 그는 상자를 꺼내 열었다. 서른세 권. 얇은 책들. 그는 한 권을 꺼냈다. 더 높은 인간들. 당나귀 축제. 배워라, 웃음을. 연민, 마지막 유혹. 그는 그 책을 편지와 함께 쌌다. 코펜하겐으로.

서른두 권이 남았다.

그는 상자를 다시 침대 밑으로 밀었다. 밀면서 자기가 3년 전에 한 얼굴을 또 하고 있는지 보았다. 엄숙한 얼굴. 아니었다. 이번에는 아니었다. 읽을 사람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그는 상자를 밀어 넣고 일어섰다. 무릎에서 소리가 났다. 마흔셋이었다.

창밖에 바다가 있었다. 그는 창을 열었다. 1월인데 봄 같았다. 220일 가운데 하루. 그는 책 서른두 권이 누구에게 갈지 생각했다. 몰랐다. 모르는 것이 처음으로 두렵지 않았다. 코펜하겐에 한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이면 서른둘이 어디로 가는지 몰라도 되었다.

후주

[주 31-01] 니체, 『도덕의 계보』 제3논문 12절. eKGWB GM-III-12. 한국어 작업 번역. 더 많은 눈과 다양한 정동을 다루는 능력이 인식을 완전하게 한다는 문맥이 이어진다. 어떤 관점도 검토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다.

[주 31-02] 같은 책 제3논문 28절. eKGWB GM-III-28. 한국어 작업 번역. 책의 마지막 문장이다. 고통 자체가 아니라 고통의 무의미가 저주였다는 논지가 같은 절에 있다. 니체 자신의 희망 선언이 아니다.

[주 31-03] 니체가 게오르 브란데스에게 보낸 편지, 1888년 1월 8일. eKGWB BVN-1888,974. 『차라투스트라』 4부를 자신의 개인적 면모와 연민의 문제에 접근하는 입구로 소개하고 『선악의 저편』의 이해 부족을 말한 편지다. 본문의 문구는 그 취지를 옮긴 것이며 직접 인용이 아니다.

[주 31-04] 니체, 『도덕의 계보』 제3논문 1절. eKGWB GM-III-1. 한국어 작업 번역. 논문의 첫 문단에 있는 목록의 일부다.

[주 31-05] 같은 책 제3논문 15절. eKGWB GM-III-15. 한국어 작업 번역.

[주 31-06] 같은 책 제3논문 28절. eKGWB GM-III-28. 한국어 작업 번역. 31-02의 앞에 있는 문장이다.

[근거 31-07] 제3논문 「금욕주의적 이상은 무엇을 뜻하는가」는 예술가(2~5절, 바그너와 「파르지팔」), 철학자(7~10절, 가난·겸손·순결을 조건으로 보는 것과 사막 짐승의 비유), 사제(11~22절, 고통에 뜻을 주는 의사), 학자(23~27절)의 순서로 간다. 1887년 7월 질스마리아에서 썼다.

[근거 31-08] 1887년 11월부터 브란데스와 편지가 오갔다. 니체가 브란데스에게 사가판 4부를 보낸 것은 사실이다. 침대 밑 상자와 「서른둘」은 소설의 구성이다.

자기 방을 금욕주의자의 삶으로 보는 것, 세 사람이 준 뜻을 거절한 나이들, 예나의 여관을 관점의 예로 든 것, 라팔로의 아편을 「무를 원함」으로 읽은 것은 소설의 해석이다. 철학자 자신도 금욕의 방식으로 일한다는 긴장은 원문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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