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5,709자)
원한
니체의 삶 · 네오
스무 날이었다.
7월 10일에 시작해서 7월 30일에 끝냈다. 「차라투스트라」 1부가 열흘이었으니 두 배였지만 그것은 노래였고 이것은 논증이었다. 그는 아침에 호숫가를 걷고 낮에 썼다. 메타가 떠난 뒤였고 두리슈의 딸은 이제 그에게 빵을 올려 주고 가면서 인사를 했다. 창밖에 호수. 책상 위에 공책. 그는 「선악의 저편」이 다 드러내지 못한 것을 쓰기로 했다. 그 책이 숨긴 또 하나의 철학. 도덕이 어디서 왔는가. 그 책의 9부에서 자기 문장이 가르쳐 준 것을 이제 세 편의 논문으로.
서문부터 썼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모른다. 그는 그 줄을 첫 줄로 썼다. 쓰면서 자기를 보았다. 15년 동안 자기를 분석한 사람. 아버지의 피아노에서 쾨젤리츠의 생선까지 전부 뜯어본 사람. 그 사람이 첫 줄에 이렇게 썼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모른다. 인식하는 우리조차 우리 자신을 모른다.」[주 29-01]
그리고 그 까닭을 적었다.
「거기에는 충분한 까닭이 있다. 우리는 한 번도 우리 자신을 찾은 적이 없다.」[주 29-03]
그는 그것이 거짓이 아닌지 보았다. 거짓이 아니었다. 뜯어본 것은 자기가 아니었다. 자기가 믿은 것들이었다. 믿은 것들을 전부 뜯어보고 나면 남는 것이 자기인데, 그것은 뜯어볼 수 없었다. 뜯어보는 것이 그것이었다. 그는 그 자리를 알았다. 그래서 첫 줄에 그렇게 썼다. 모른다고.
서문의 셋째 절에서 그는 자기 어린 시절을 적었다.
열세 살. 선과 악이 어디서 왔는지를 처음 물은 아이. 그는 적었다.
「열세 살 소년이었을 때, 나는 신에게 영예를 돌려 그를 악의 아버지로 삼았다.」[주 29-04]
그는 그것을 적으면서 슐포르타의 밤을 생각했다. 「운명과 역사」. 어머니 집 2층에서 아래층의 성경 소리를 들으며 쓴 글. 그때 그는 열일곱이었다. 서문에는 열세 살이라고 적었다. 기억이 틀린 것인지 글이 틀린 것인지 그는 몰랐다. 어느 쪽이든 그 아이가 지금 이 책을 쓰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적었다. 자기 책이 어디서 왔는지를 책 안에 적었다. 모든 철학은 고백이다. 그러면 고백을 서문에 미리 하는 것이 정직이었다.
일곱째 절에서 그는 이름 하나를 적었다.
파울 레 박사. 「도덕 감정의 기원」의 저자. 그는 그 책이 자기와 반대 방향으로 간 책이라고 적었다. 영국식으로, 쓸모에서 도덕을 끌어낸 책. 자기는 거기서 출발해 반대로 갔다고. 그는 그 이름을 적으면서 오렌지 나무를 생각했다. 소렌토의 오후. 왜 간단하면 안 되지. 레는 간단했다. 그는 간단하지 않았다. 그 차이를 그는 책에 적었다. 정중하게. 박사라는 호칭을 붙여서. 정중함이 가면이라는 것을 그는 알았다. 가면 아래 무엇이 있는지도 알았다. 라이프치히 역. 그 밑에 또 무엇이 있는지는 몰랐다. 그래서 첫 줄에 모른다고 썼다.
첫 논문은 두 가지 구별에 대한 것이었다.
좋음과 나쁨. 그리고 선과 악. 사람들은 둘이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것이 다르다는 것을 낱말에서 끌어냈다. 20년 동안 가르친 문헌학이 여기서 쓰였다. 좋음은 원래 고귀함이었다. 힘 있는 사람들이 자기를 부르는 말. 나쁨은 평범함이었다. 그들이 아래를 부르는 말. 거기에는 악이 없었다. 악은 나중에 왔다. 아래 있는 사람들이 위를 보고 만든 말. 위의 것이 악하다. 그러면 우리는 선하다. 그는 그것을 적었다. 그리고 그 뒤집힘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적었다.
「도덕에서 노예의 반란은 원한 자체가 창조적으로 되어 가치를 낳을 때 시작된다.」[주 29-02]
원한. 그는 그 낱말을 적고 멈추었다.
13년 전 바젤의 소들. 그가 세었던 여섯 가지. 리츨, 빌라모비츠, 빈 강의실, 바그너의 하품, 바이로이트의 거부, 슈트라우스의 질문. 그 뒤에 더 생겼다. 루. 레. 동생의 편지. 로데의 침묵. 그는 그것을 전부 기억했다. 날짜와 글씨까지. 그것이 원한이었다. 원한을 가진 사람은 잊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지금 원한이 가치를 낳는다고 적고 있었다. 노예의 반란. 그러면 자기 책들은 무엇이었나. 교양속물이라는 낱말은. 바그너를 끝내려는 책은. 그는 그 질문을 피하지 않았다. 피하면 첫 줄이 거짓이 되었다.
그는 이렇게 적었다. 원한의 사람은 고귀한 사람보다 영리하다. 영리할 수밖에 없다. 반응해야 하니까. 고귀한 사람은 잊는다. 모욕을 받고 하루 뒤에 잊는다. 그에게는 영리함이 필요 없다. 그는 그것을 적으면서 자기가 어느 쪽인지 알았다. 영리한 쪽이었다. 잊지 못하는 쪽. 그는 자기가 비판하는 것의 안에서 비판하고 있었다. 밖에서 할 수 없었다. 밖이 없었다. 그는 그것을 책에 적지 않았다. 적을 필요가 없었다. 첫 줄이 이미 그것을 적었다.
열셋째 절에서 그는 양과 맹금을 썼다.
양들이 말한다. 저 맹금은 악하다. 우리 양들은 선하다. 그들을 닮지 않은 우리는. 그는 적었다.
「양들이 큰 맹금을 미워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다만 그것은 큰 맹금이 작은 양을 잡아 가는 것을 탓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주 29-05]
그는 그것을 적고 웃었다. 양들의 논리. 맹금이 양을 잡아먹지 않을 것을 요구하는 것. 힘에게 힘이 아니기를 요구하는 것. 그는 그것이 우습다고 적었다. 그런데 적으면서 양들이 누구인지 생각했다. 자기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 바이로이트의 공작부인들. 아니었다. 그는 양들을 비웃을 수 있었다. 그러나 자기가 맹금은 아니었다. 그것도 알았다. 맹금은 책을 쓰지 않았다. 그는 양도 맹금도 아닌 사람이었다. 그것을 쓰는 사람. 그는 그 자리가 어디인지 몰랐다. 그래서 첫 줄에 모른다고 썼다.
첫 논문은 로마와 유대의 싸움으로 끝났다.
「로마 대 유대, 유대 대 로마. 지금까지 이보다 큰 사건은 없었다.」[주 29-06]
고귀한 가치와 사제의 가치. 2천 년 동안 후자가 이겼다. 그는 그것을 적으면서 자기 문장이 어떻게 읽힐지를 생각했다. 유대인이 없는 땅으로 간 동생을 생각했다. 동생의 남편이 이 대목을 읽으면 기뻐할 것이었다. 그는 그것이 싫었다. 그래서 다음 절에서 사제의 가치가 인류를 깊게 만들었다고 적었다. 사제가 없었다면 인간은 짐승이었을 것이라고. 그는 그 두 줄이 동생의 남편을 혼란스럽게 하기를 바랐다. 혼란이 그가 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7월 30일에 첫 논문을 끝냈다. 둘째와 셋째는 이미 머리에 있었다. 그는 쓰기를 멈추고 호수로 갔다. 바위. 그는 손을 짚었다. 7월의 바위는 따뜻했다. 6년 전 그 오후의 온도였다. 그는 거기 서서 자기가 방금 쓴 것을 생각했다. 원한이 가치를 낳는다. 그러면 이 바위 앞의 생각은 무엇을 낳았나. 그는 몰랐다. 아직.
9월에 도이센이 왔다.
파울 도이센. 슐포르타의 친구. 본에서 함께 맥주를 마시고 결투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 지금은 베를린의 교수였고 인도 철학을 했고 아내와 함께였다. 16년 만이었다. 그는 마차에서 내리는 도이센을 보았다. 도이센은 살이 쪘고 턱수염이 희끗했고 웃고 있었다. 그가 다가갔다. 도이센의 웃음이 멈추었다.
“프리츠.”
“파울.”
도이센이 그를 안았다. 안으면서 도이센의 손이 그의 등을 더듬었다. 뼈를 세는 손이었다. 그는 그 손을 느꼈다. 그리고 도이센의 얼굴을 보았다. 거기 무엇이 있는지 그는 바로 읽었다. 읽을 수 있었다. 6년 전 베네치아의 천장 아래서 뜯어본 것이었으니까. 동정.
사흘 동안 둘은 걸었다. 도이센의 아내는 여관에 있었다. 그는 도이센에게 호수를 보여 주고 숲을 보여 주고 바위 앞에 섰다. 여기서 생각 하나가 왔다고 그는 말했다. 어떤 생각이냐고 도이센이 물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책 이야기를 했다. 스무 날 만에 책을 하나 썼다고. 도덕의 계보. 도이센이 축하한다고 했다. 축하하는 목소리가 조심스러웠다. 아픈 사람에게 하는 축하였다.
둘째 날 저녁 도이센이 말했다.
“프리츠, 자네 걸음이 느려졌어.”
“알아.”
“말도.”
“알아.”
“슐포르타에서 자네는 복도를 뛰어다녔는데.”
그는 그것을 듣고 웃었다. 뛰지 않았다. 교칙에 학생은 뛰지 않는다고 적혀 있었다. 도이센의 기억이 틀렸다. 그는 고치지 않았다. 도이센은 자기가 기억하는 소년을 보러 왔고, 그 소년이 없어서 슬퍼하고 있었다. 그는 그 슬픔을 받았다. 받으면서 자기가 그것을 어떻게 받는지 보았다. 받는 사람의 자리. 작아지는 자리. 6년 전 그 자리에서 그는 「아침놀」을 썼다. 지금 그 자리에서 그는 둘째 논문을 생각했다. 빚. 도움받은 사람이 지는 빚. 도이센은 그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사흘과 동정을 주었다. 그것도 빚이었다.
떠나는 날 도이센이 그의 손을 오래 잡았다.
“편지해, 프리츠. 자주.”
“할게.”
“책도 보내 주고.”
“보낼게. 읽을 거야?”
도이센이 웃었다. 대답하지 않았다. 마차가 떠났다. 그는 길에 서 있었다. 도이센은 집에 돌아가 아내에게 무어라고 말할 것이었다. 늙었더라고. 아프더라고. 안됐더라고. 그는 그 말들을 들을 수 있었다. 들으면서 자기 안에 무엇이 생기는지 보았다. 작고 차갑고 빠른 것. 그는 그것의 이름을 알았다. 어제 쓴 책에 있었다. 원한. 그는 그것이 자기 안에 생기는 것을 보았다. 보면서 그것이 가치를 낳게 두지 않기로 했다. 도이센에 대한 책은 쓰지 않을 것이었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고귀함이었다. 잊는 것은 할 수 없었다. 쓰지 않는 것은 할 수 있었다.
11월 10일에 책이 왔다.
「도덕의 계보. 논쟁서.」 나우만. 그는 또 자기 돈으로 찍었다. 표지에 논쟁서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그 낱말을 보았다. 누구와 싸우는 책인가. 레와. 사제와. 양들과. 그는 그 책을 폈다. 첫 줄. 우리는 우리 자신을 모른다.
그는 책을 덮었다. 논쟁서였다. 누구와 싸우는지는 첫 줄에 적혀 있었다.
후주
[주 29-01] 니체, 『도덕의 계보』 서문 1절. eKGWB GM-Vorrede-1. 한국어 작업 번역. 서문 3절에 열세 살에 선악의 기원을 묻고 악의 아버지를 신으로 삼았다는 회고가 있다. 1862년 「운명과 역사」를 쓴 것은 열일곱이며, 본문은 그 어긋남을 그대로 두었다. 서문 4절과 7절에 파울 레의 『도덕 감정의 기원』이 언급된다.
[주 29-02] 같은 책 제1논문 10절. eKGWB GM-I-10. 한국어 작업 번역. 원한이 반응적 가치평가를 만든다는 논증의 핵심이며, 실제 사회집단 전체를 악역으로 만드는 글이 아니다. 원한의 사람이 더 영리하다는 것, 양과 맹금의 비유(13절), 로마와 유대(16절), 사제가 인간을 깊게 만들었다는 것(6절)은 원문의 내용이다.
[주 29-03] [주 29-04] 니체, 『도덕의 계보』 서문 1절과 3절. eKGWB GM-Vorrede-1, GM-Vorrede-3. 한국어 작업 번역. 29-04의 「열세 살」은 원문 그대로이며 실제 「운명과 역사」를 쓴 것은 열일곱이다.
[주 29-05] 같은 책 제1논문 13절. eKGWB GM-I-13. 한국어 작업 번역.
[주 29-06] 같은 책 제1논문 16절. eKGWB GM-I-16. 한국어 작업 번역.
[근거 29-07] 『도덕의 계보』는 1887년 7월 10일부터 30일 사이에 질스마리아에서 쓰고 11월 10일 라이프치히 나우만에서 자비로 냈다. 부제는 「논쟁서」다.
[근거 29-08] 파울 도이센이 1887년 9월 아내와 함께 질스마리아를 찾아왔다. 1871년 이후 첫 만남이었다. 도이센은 니체의 걸음과 말이 느려지고 자세가 굽은 것에 놀랐다고 회고했다. 대화의 세부는 창작이다.
원한을 자기 안에서 보고 가치를 낳게 두지 않기로 한 것, 동생의 남편을 혼란스럽게 하기를 바란 것은 소설의 해석이다. 니체의 감정을 인류 역사의 증거로 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