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6,569자)

위대한 건강

니체의 삶 · 네오

겨울의 니스에서 그는 다섯째 권을 썼다.

「즐거운 학문」의 5부. 제목은 우리 두려움 없는 자들. 네 해 전의 네 권 뒤에 붙을 것이었다. 같은 책 안에 두 사람이 있게 되는 셈이었다. 1882년의 사람과 1887년의 사람. 그는 그것이 책에 좋은 일인지 몰랐다. 자기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첫 절은 미친 사람의 소식을 다시 쓰는 것이었다. 신이 죽었다. 5년 전에는 미친 사람이 시장에서 외쳤다. 이번에는 그가 조용히 적었다.

「가장 큰 최근의 사건, 곧 「신이 죽었다」는 것, 기독교의 신에 대한 믿음이 믿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는 것은, 이미 유럽 위에 첫 그림자를 던지기 시작했다.」[주 28-04]

그 소식이 아직 유럽에 도착하지 않았다는 것. 도착하면 무너질 것들. 그는 그것을 적었다. 그런데 미친 사람과 다른 데가 있었다. 미친 사람은 두려워했다. 지평선을 지운 해면. 그는 이번에 다른 것을 적었다. 지평선이 지워지면 바다가 열린다고.

「마침내 우리의 배들은 다시 출항할 수 있다.」[주 28-01]

그는 그 줄을 적고 창을 보았다. 니스의 바다. 220일 가운데 하루. 배들이 있었다. 그는 자기가 5년 사이에 무엇이 달라졌는지 보았다. 1882년에 그는 바다 한가운데서 땅이 없다고 썼다. 1887년에 그는 땅이 없으니 배를 띄우자고 썼다. 같은 바다였다. 보는 사람이 달랐다. 그는 그것을 적지 않았다. 적으면 그 다섯 해를 설명해야 했다.

2월에 그는 서점에서 책 한 권을 집었다.

제목이 「지하의 정신」이었다. 프랑스어 번역. 지은이는 러시아 사람이었고 그는 그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도스토옙스키. 그는 서서 몇 장을 읽었다. 그리고 샀다. 그리고 그날 밤 다 읽었다. 지하에 사는 사람. 자기를 분석하면서 자기를 미워하고 미워하면서 분석하는 사람. 세계가 2 곱하기 2는 4라고 말할 때 그 벽을 미워하는 사람. 그는 책을 덮고 한참 앉아 있었다. 그런 사람을 쓴 사람이 있었다. 러시아에. 자기가 「아침놀」에서 파던 땅 밑에 이미 누가 있었다.

그는 오버베크에게 썼다.

「몇 주 전만 해도 나는 도스토옙스키의 이름조차 몰랐네.」[주 28-05]

그런데 읽자마자 핏줄이 당기는 본능을 느꼈다고. 쓰면서 그는 스피노자의 엽서를 생각했다. 나에게 선구자가 있다. 6년 전의 엽서. 이번에는 선구자가 아니었다. 동시대 사람이었다. 다른 나라에서 같은 땅을 파고 있던 사람. 그는 그것이 위로가 되는지 보았다. 되었다. 위로가 된다는 것이 조금 창피했다.

그날 밤 땅이 흔들렸다.

2월 23일 새벽이었다. 그는 침대에서 깼다. 방이 움직이고 있었다. 벽이 아니라 방 전체가. 책장에서 책이 떨어졌고 세숫대야가 바닥에서 울었고 아래층에서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지진이었다. 리비에라 전체가 흔들렸다. 그는 침대에 앉아 있었다. 일어나지 않았다. 흔들림이 멈출 때까지 앉아서 그것을 느꼈다. 땅이 움직인다는 것을. 세계가 2 곱하기 2가 아니라는 것을. 어젯밤 읽은 사람이 지하에서 벽을 두드렸고 오늘 새벽 땅이 대답하는 것 같았다. 그는 그 생각을 하고 웃었다. 비명 사이에서 혼자 웃는 사람이었다.

펜션의 손님들이 전부 뛰쳐나갔다. 밤새 정원에서 담요를 두르고 앉아 있었다. 그는 아침에 내려가 그들을 보았다. 공작부인과 은행가와 영국인 부부가 잔디 위에서 떨고 있었다. 그는 그들에게 아침 인사를 했다. 그리고 산책을 나갔다. 바다는 그대로였다. 땅만 흔들렸다.

그는 쾨젤리츠에게 그 이야기를 썼다. 사람들이 사흘 동안 밖에서 잤다고. 자기는 집에서 잤다고. 땅이 흔들리는 것이 자기에게는 흥미로웠다고. 쓰면서 그는 자기가 이상한 사람인지 생각했다. 이상한 사람이었다. 자기 책을 읽을 사람은 이상한 사람일 것이었다. 그래서 두려움 없는 자들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그리고 그들을 다른 이름으로도 불렀다. 우리 고향 없는 자들.

「우리 미래의 아이들이, 어떻게 이 오늘에 집처럼 있을 수 있겠는가!」[주 28-06]

국적 없는 사람이 적은 줄이었다. 바젤에서 서류 한 장에 서명한 뒤로 18년.

봄에 5부의 끝을 썼다.

세계에 대한 것이었다. 세계가 무한한 해석을 가진다는 것. 신이 있을 때 세계는 하나의 뜻을 가졌다. 신이 죽자 뜻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뜻이 너무 많아졌다. 모든 눈이 자기 세계를 보았다. 그는 도스토옙스키의 눈을 생각했다. 자기 눈으로 본 것을 그 사람은 다른 눈으로 보았다. 같은 땅, 다른 구덩이. 그는 적었다.

「오히려 세계는 우리에게 다시 한 번 「무한」해졌다.」[주 28-02]

적고 나서 그는 그것이 무엇이든 옳다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덧붙였다. 무한한 해석 가운데 어리석은 것도 많았다. 그러나 해석이 하나뿐인 것보다는 나았다. 그는 그 다음 절에 건강에 대해 적었다. 위대한 건강. 그것은 가지는 것이 아니라고. 계속 얻어야 하는 것이라고. 왜냐하면 계속 잃기 때문에.

「그것은 단지 가지고 있는 건강이 아니라, 끊임없이 다시 얻어야 하는 건강이다. 거듭 내어 주기 때문에, 내어 주어야 하기 때문에.」[주 28-03]

그는 그 줄을 적고 자기 118일을 생각했다. 잃고 얻고 잃고. 그것이 건강이라면 자기는 건강했다. 그는 그 생각이 우스운지 보았다. 우습지 않았다. 처음으로 우습지 않았다.

5월에 로데와 싸웠다.

편지로였다. 그가 텐을 칭찬했고 로데가 텐을 비웃었다. 프랑스 사람의 피상적 역사라고. 그는 답장에서 로데에게 텐을 읽어 보기나 했느냐고 썼다. 썼다가 고치지 않고 보냈다. 로데가 답했다. 차가웠다. 그가 또 답했다. 더 차가웠다. 그리고 로데가 답하지 않았다. 그는 한 달을 기다렸다가 편지를 또 썼다. 미안하다고. 로데가 짧게 답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말이 아니라 사람이 끝났다. 승마장의 로데. 세계의 바닥이 나를 떨어뜨린다던 사람. 그는 그 편지를 서랍에 넣었다. 서랍에 끝난 것이 하나 더 들어갔다.

6월에 그는 산으로 올라가는 길에 렌처하이데에 머물렀다.

그라우뷘덴의 작은 마을. 질스마리아로 가기 전에 몸을 높이에 맞추려고. 거기서 그는 공책을 폈다. 그리고 날짜를 적었다. 1887년 6월 10일. 그 밑에 제목을 적었다. 유럽의 허무주의.

그는 천천히 적었다. 첫 줄은 질문이었다.

「기독교의 도덕 가설은 어떤 이점을 주었는가?」[주 28-07]

고통에 뜻을 주었다. 왜 아픈가. 죄 때문에. 왜 사는가. 구원 때문에. 그 뜻이 무너지면 무엇이 남는가. 고통은 남고 뜻은 없다. 왜라는 질문에 답이 없다. 그것이 허무주의였다. 그는 그것을 병이라고 적었다. 지나가는 병. 그런데 지나가려면 끝까지 가야 하는 병. 그리고 가장 끝에 무엇이 있는가.

그는 거기서 멈추었다. 바위였다. 6년 전의 생각. 그 생각을 그는 지금 가장 어두운 쪽에서 적었다. 모든 것이 뜻 없이 돌아온다는 것. 끝도 없이, 목적도 없이, 무로 끝나지도 않고.

「이것이 허무주의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다. 무(「뜻 없는 것」)가 영원히!」[주 28-08]

그는 그렇게 적었다. 그 사람이 노래했던 것을 그는 지금 가장 추운 말로 적고 있었다. 그 둘이 같은 것이었다. 사랑의 노래와 가장 추운 말. 그는 그 둘을 알고 있었다. 하나는 「일곱 개의 봉인」에 있었고 하나는 지금 이 공책에 있었다. 그는 공책의 것을 책에 넣지 않기로 했다. 아직. 책에 넣으려면 그 둘 사이의 길을 다 걸어야 했다.

날짜를 적은 것은 그래서였다. 이것이 어느 날의 생각인지를 남기려고. 그는 공책을 덮었다.

질스마리아에 올라가자 편지 두 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같은 날 온 것이었다.

하나는 슈타인의 죽음이었다. 하인리히 폰 슈타인. 열두 문장을 이해한 사람. 서른 살. 6월 20일에 심장이 멎었다고 했다. 그는 편지를 들고 호숫가로 갔다. 사람이 그를 위해 온 것은 그 사람이 처음이었다. 그 사람이 서른에 죽었다.

다른 하나는 루였다. 결혼했다고 했다. 6월 20일. 안드레아스라는 동양학자와. 그는 그 편지를 호숫가에서 읽었다. 같은 날이었다. 슈타인이 죽고 루가 결혼했다. 같은 날. 그는 두 편지를 나란히 들었다. 뜻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열흘 전에 렌처하이데에서 적은 것이 떠올랐다. 뜻이 없다. 그러면 이 두 날짜도 뜻이 없었다. 그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받아들이는 데 호숫가에서 한 시간이 걸렸다.

여름에 메타 폰 잘리스가 왔다.

스위스의 여자, 서른둘, 역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첫 스위스 여자. 그의 책을 읽고 찾아왔다. 그녀는 배를 저을 줄 알았다. 둘은 호수에 배를 띄웠다. 그녀가 젓고 그는 앉았다. 호수 한가운데서 그는 수를레이의 바위를 보았다. 물 위에서 보는 바위는 작았다. 메타가 물었다. 저 바위가 왜 특별한가요. 그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냥 바위라고. 메타는 더 묻지 않고 노를 저었다. 그는 여자에 대해 「선악의 저편」에 쓴 것들을 생각했다. 그 문장들이 노를 젓는 이 사람 앞에서 어떻게 들릴지. 그는 그것을 생각하다가 그만두었다. 그만두는 것이 비겁인지 예의인지 몰랐다. 메타가 노를 저었다.

6월 24일에 「즐거운 학문」 새 판이 나왔다. 서문과 5부와, 끝에 시가 붙었다. 「자유로운 왕자의 노래」. 메시나에서 쓴 목가들을 고쳐 넣은 것이었다. 왕자 포겔프라이. 새처럼 자유로운 사람. 그는 그 시들을 읽으면서 시로코가 불던 방을 생각했다. 5년 전. 그때 쓴 것을 고쳐 지금 책의 끝에 두었다. 두 사람이 한 책에 있었다. 셋이었다. 1882년과 1886년과 메시나의 사람.

10월에 악보가 왔다.

「삶에의 찬가」. 쾨젤리츠가 관현악과 합창으로 편곡한 것. 프리치가 찍었다. 그가 생전에 출판한 유일한 음악이었다. 그는 악보를 폈다. 자기 음표가 있었다. 타우텐부르크의 숲에서 머릿속으로 쓴 것. 그 아래 글자가 있었다. 루의 시. 그 여자의 말. 네가 나에게 줄 것이 더 없다면 고통이라도 다오. 그는 그 줄을 읽지 않았다. 음표만 보았다. 음표만 보아도 그 줄이 들렸다.

그는 피아노가 없는 방에서 그 선율을 입속으로 불러 보았다. 아버지처럼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시작한 것이 그 여자의 마지막 줄에서 끝났다. 어디로 가는지 아는 음악이었다. 끝이 남이 쓴 줄에 있어서였다. 그는 악보를 덮었다. 덮고 나서 공책에 적었다. 언젠가 자기를 기억하는 자리가 있다면 이것을 불러 주기를. 적고 나서 그는 그것이 유언 같다는 것을 알았고, 지우지 않았다. 건강한 사람도 유언을 쓸 수 있었다. 거듭 내어 주는 건강이라면.

후주

[주 28-01] 니체, 『즐거운 학문』 5권 343절. eKGWB FW-V-343. 한국어 작업 번역. 1887년 증보판의 문장이며 1882년 초판에는 없다.

[주 28-02] 같은 책 5권 374절. eKGWB FW-V-374. 한국어 작업 번역. 무엇이든 똑같이 옳다는 뜻이 아니라는 단서가 원문에 있다.

[주 28-03] 같은 책 5권 382절 「위대한 건강」. eKGWB FW-V-382. 한국어 작업 번역.

[주 28-04] 니체, 『즐거운 학문』 5권 343절. eKGWB FW-V-343. 한국어 작업 번역. 28-01의 앞 문장이다.

[주 28-05] 니체가 프란츠 오버베크에게 보낸 편지, 1887년 2월 23일. eKGWB BVN-1887(번호는 비평판에서 재확인). 한국어 작업 번역. 「핏줄이 당기는 본능」도 같은 편지에 있다.

[주 28-06] 니체, 『즐거운 학문』 5권 377절 「우리 고향 없는 자들」. eKGWB FW-V-377. 한국어 작업 번역.

[주 28-07] [주 28-08] 니체, 1887년 6월 10일 렌처하이데 노트 「유럽의 허무주의」. eKGWB NF-1886,5[71]. 한국어 작업 번역. 28-07은 노트의 첫 항목이고 28-08은 여섯째 항목에 있다. 구상 노트이며 책이 아니다.

[근거 28-09] 1886년 가을 루타와 1886/87년 겨울 니스에서 5부를 썼다. 1887년 2월 니스의 서점에서 도스토옙스키의 「지하 생활자의 수기」 프랑스어판을 우연히 집어 읽고 오버베크에게 「몇 주 전까지 이름도 몰랐다」 「핏줄이 당기는 본능」이라고 편지에 적었다. 1887년 2월 23일 새벽 리비에라 지진 때 펜션 손님들이 밖에서 잤고 니체는 침착했다는 것은 쾨젤리츠에게 보낸 편지에 전한다.

[근거 28-10] 1887년 5월 텐을 둘러싼 편지 다툼으로 로데와의 우정이 사실상 끝났다. 6월 10일 렌처하이데에서 「유럽의 허무주의」 노트(eKGWB NF-1886,5[71])를 썼다. 묶음 번호의 연도와 단편의 날짜가 다르다. 이 노트는 책이 아니라 구상이며 이 소설도 그렇게 썼다.

[근거 28-11] 하인리히 폰 슈타인은 1887년 6월 20일에 죽었고, 루 폰 살로메는 같은 날 프리드리히 카를 안드레아스와 결혼했다. 두 소식이 같은 날 도착했다는 것은 소설의 구성이다. 메타 폰 잘리스는 1887년 여름 질스마리아를 찾아 니체와 호수에서 배를 탔다.

[근거 28-12] 『즐거운 학문』 증보판은 1887년 6월 24일 「자유로운 왕자의 노래」와 함께 나왔다. 「삶에의 찬가」(루 폰 살로메 시, 니체 작곡, 쾨젤리츠 관현악 편곡)는 1887년 10월 프리치에서 출판되었다. 가사는 루의 것이며 이 소설은 가사를 인용하지 않았다. 니체가 이 곡을 자기를 기억하는 자리에서 불러 주기를 바란다고 적은 것은 1888년의 글이다.

지진 밤의 생각, 로데와의 마지막 편지 문구, 호수 위의 대화, 유언 같은 메모는 소설의 창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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