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5,754자)

더 높은 인간

니체의 삶 · 네오

사람이 그를 위해 온 것은 그해 8월이 처음이었다.

하인리히 폰 슈타인. 스물일곱, 베를린의 철학 강사, 바이로이트에서 바그너의 아들을 가르친 사람. 그 사람이 질스마리아까지 왔다. 사흘을 묵었다. 그를 보려고. 그는 역이 없는 마을의 길 끝에서 마차에서 내리는 젊은이를 보았다. 키가 컸고 얼굴이 밝았고 가방이 작았다. 책 한 권이 가방에 들어 있었다. 「차라투스트라」 1부.

사흘 동안 둘은 걸었다. 호숫가, 바위, 숲, 다시 호숫가. 슈타인은 물었고 그는 답했다. 슈타인은 바이로이트 사람이었다. 그는 그것을 알았고 개의치 않았다. 바이로이트 사람이 자기를 보러 산까지 온 것이었다. 사흘째 저녁에 슈타인이 말했다.

“교수님,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그 책에서 열두 문장을 이해했습니다.”

“열두 문장?”

“네. 세어 봤습니다.”

그는 웃었다. 소리 내어. 슈타인도 웃었다.

“열둘이면 충분하네. 나는 그 책을 쓰고 나서 아무도 한 문장도 이해 못 할 거라고 생각했어.”

슈타인이 떠난 날 그는 오버베크에게 편지를 썼다. 사람이 나를 위해 왔다고. 자기를 위해 온 첫 사람이라고. 썼다가 그는 그 말이 정확한지 보았다. 쾨젤리츠가 9년 전 바젤에 왔다. 그러나 쾨젤리츠는 책을 보고 왔다. 슈타인은 사람을 보고 왔다. 그 차이가 있었다. 그는 그 차이를 적지 않았다. 쾨젤리츠가 읽을지도 몰라서였다.

가을에 동생의 편지가 왔다.

취리히에서였다. 그는 그 도시에서 동생을 만나기로 했고, 만나기 전에 편지가 먼저 왔다. 약혼했다고 했다. 상대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베른하르트 푀르스터. 그는 그 이름을 알았다. 베를린의 김나지움 교사였고, 4년 전 비스마르크에게 유대인의 권리를 제한하라는 청원을 조직한 사람이었다. 서명이 25만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파라과이에 순수한 독일인 마을을 세우겠다고 돈을 모으고 있었다. 동생은 그 사람의 뜻을 함께 이룰 것이라고 적었다.

그는 편지를 두 번 읽었다. 그러고 나서 취리히로 갔다.

동생은 호텔 로비에 앉아 있었다. 서른여덟. 1년 전 산에서 손을 내린 뒤로 처음이었다. 둘은 안았다. 안고 나서 앉았다. 동생이 먼저 말했다.

“편지 받았지?”

“받았어.”

“축하해 줄 거야?”

그는 동생을 보았다. 피아노 밑에 있을 때 옆 침대에서 자던 아이. 1865년 편지의 수신인. 바젤의 식탁보. 로마의 로지아. 그 사람이 지금 그에게 축하를 묻고 있었다.

“그 사람이 서명을 받은 청원을 내가 읽었어.”

“그건 정치야, 오빠.”

“정치가 아니야. 사람이야. 유대인이 사람이 아니라고 25만 명에게 서명시킨 사람이야.”

“그는 좋은 사람이야. 오빠가 만나 보면 알아.”

“레도 좋은 사람이었어.”

동생의 얼굴이 바뀌었다. 레. 그 이름이 둘 사이에 놓였다. 코지마가 이스라엘이라고 불렀던 사람. 동생이 오빠를 데려갔다고 말했던 사람. 그는 그 이름을 일부러 썼다. 쓰고 나서 후회하지 않았다.

“오빠는 늘 그래.”

“뭐가?”

“남의 편을 들어. 가족 편은 안 들고.”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면 더 나쁜 말이 나올 것이었다. 3년 뒤에 그는 동생에게 그 말을 편지로 쓴다.

「반유대주의에 대해 절대적으로 깨끗하고 분명한 태도, 곧 반대하는 태도를 갖는 것은 나에게 명예의 문제다.」[주 25-04]

취리히의 저녁에는 아직 그렇게 말하지 못했다. 둘은 그날 저녁을 함께 먹었다. 아무 말 없이. 동생은 다음 날 나움부르크로 갔다. 그는 니스로 갔다. 결혼식에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편지로 썼다. 축복할 수 없는 것을 축복하는 자리에 설 수 없다고. 어머니의 편지가 왔다. 네가 동생에게 그럴 수 있느냐고. 그는 답하지 않았다. 답하지 않는 것이 답이었다.

니스의 겨울에 그는 4부를 썼다.

끝났다고 믿은 책의 4부. 봄에 오버베크에게 끝났다고 쓴 것이 거짓이 되었다. 그 사람이 또 왔다. 이번에는 내려오지 않았다. 산 위에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올라왔다. 더 높은 인간들. 왕 둘. 거머리를 연구하는 사람. 늙은 마술사. 은퇴한 교황. 가장 추한 사람. 자발적 거지. 그 사람의 그림자. 예언자. 그들이 하나씩 산을 올라와 그 사람의 동굴에 모였다.

그는 그들을 쓰면서 자기가 아는 얼굴들을 보았다. 늙은 마술사는 노래로 사람을 홀리고 자기도 자기 노래를 믿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그 사람의 이름을 쓰지 않았다. 쓸 필요가 없었다. 은퇴한 교황은 신이 죽은 뒤에 일자리를 잃은 사람이었다. 그는 그를 쓰면서 오버베크를 생각하고 웃었다. 오버베크는 아직 일자리가 있었다. 가장 추한 사람은 신을 죽인 사람이었다. 왜 죽였는가. 그 사람이 그 사람에게 말하게 했다.

「그는 죽어야 했다. 그는 모든 것을 보는 눈으로 보았다. 인간의 깊이와 바닥을, 그 감춰진 모든 수치와 추함을.」[주 25-02]

신이 모든 것을 보았기 때문에. 자기의 가장 추한 것까지. 그 눈을 견딜 수 없어서. 그는 그것을 쓰고 펜을 놓았다. 미친 사람이 시장에서 외친 것, 그 사람이 숲에서 중얼거린 것, 그것을 이제 한 사람이 자기 입으로 말했다. 내가 죽였다. 부끄러워서.

그들은 동굴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밤에 그 사람이 잠깐 나간 사이에 그들은 당나귀 앞에 무릎을 꿇었다. 당나귀를 신으로 섬겼다. 당나귀는 이-아 하고 울었다. 긍정의 소리였다. 그는 그것을 쓰면서 웃었다. 오래 웃었다. 높은 인간들이 신을 잃고 당나귀를 섬긴다. 자기 책이 그 꼴이 될 수도 있었다. 자기 독자들이. 그는 그것을 웃었다. 웃으면서 그 사람에게 말하게 했다.

「배워라, 웃음을!」[주 25-01]

높은 인간들에게. 당나귀를 섬기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그것을 쓰는 자기에게. 그는 자기가 1년 전 봄에 끝났다고 쓴 것을 생각했다. 끝났다고 쓴 그 엄숙함을. 그것도 웃을 일이었다. 그는 웃었다.

4부의 마지막에 그 사람은 아침에 동굴에서 나온다. 사자가 와서 발밑에 눕고 비둘기들이 날아든다. 그리고 높은 인간들이 동굴에서 나오자 사자가 포효하고 그들은 도망친다. 그 사람은 혼자 남는다. 그리고 안다. 어젯밤 자기가 느낀 것이 무엇이었는지.

「연민! 더 높은 인간에 대한 연민! 좋다! 그것은 자기 때를 가졌었다!」[주 25-03]

높은 인간들에 대한 연민. 그것이 자기의 마지막 유혹이었다는 것. 그는 그 장을 썼다. 연민. 그 사람이 넘어야 할 마지막 것. 그는 그 사람에게 그것을 넘게 했다. 그 사람은 아침 해처럼 빛나며 동굴을 떠난다.

그는 그 마지막 줄을 쓰고 창을 열었다. 2월의 니스. 빛이 왔다. 그는 그 사람이 연민을 넘었다고 썼다. 자기가 넘었는지는 쓰지 않았다. 쓸 수 없었다. 그는 쾨젤리츠의 생선을 생각했고, 동생의 수건을 생각했고, 화차 안의 턱이 깨진 병사를 생각했다. 그 사람은 그것을 넘었다. 그는 그것을 넘지 못했다. 넘지 못한 사람이 넘은 사람을 썼다. 그는 그것이 거짓인지 생각했다. 거짓이 아니었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이었다.

출판사가 없었다.

슈마이츠너는 빚이 있었고 그의 책값을 주지 않았고 반유대주의 잡지에 돈을 쓰고 있었다. 그는 그 출판사를 떠나기로 했다. 다른 출판사는 「차라투스트라」를 원하지 않았다. 세 부가 팔린 부수를 들으면 누구도 원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는 자기 돈으로 찍기로 했다. 라이프치히의 나우만 인쇄소. 40부. 연금에서 떼어 낸 돈이었다.

4월에 40부가 왔다. 그는 니스의 방에서 상자를 열었다. 얇은 책 마흔 권. 그는 한 권을 꺼내 무게를 가늠했다. 가벼웠다. 그리고 종이를 꺼내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누구에게 보낼 것인가.

오버베크. 쾨젤리츠. 란츠키. 비데만. 푹스. 슈타인. 그리고 부르크하르트. 일곱이었다. 그는 일곱 이름을 적고 종이를 보았다. 로데를 적을까 했다. 적지 않았다. 로데는 「차라투스트라」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편지에 적어 보낸 적이 있었다. 말비다를 적을까 했다. 적지 않았다. 말비다는 당나귀 축제를 보고 울 것이었다. 동생을 적을까.

그는 그 이름을 적지 않았다.

일곱. 그는 마흔 권 가운데 일곱 권을 쌌다. 서른세 권은 상자에 남았다. 그는 상자를 침대 밑에 밀어 넣었다. 밀어 넣으면서 자기가 지금 얼마나 엄숙한 얼굴을 하고 있는지 알았다. 마흔 권을 찍어 일곱 권을 보내는 사람의 얼굴. 그는 그 얼굴을 웃었다. 배워라, 웃음을. 그 사람이 한 말이었다. 그는 침대 밑의 상자를 보면서 그 말을 자기에게 했다.

5월 22일에 동생이 결혼했다.

나움부르크의 교회에서였다. 아버지가 설교하던 교회는 아니었다. 그날 그는 베네치아에 있었다. 쾨젤리츠의 방. 운하 건너 벽에 반사된 빛이 천장에서 흔들렸다. 그는 쾨젤리츠에게 피아노를 쳐 달라고 했다. 쾨젤리츠가 쳤다. 자기 오페라. 3막. 그는 들었다. 나움부르크의 교회에서 종이 울릴 시간이었다. 그는 그 종을 듣지 않았다. 쾨젤리츠의 음악을 들었다. 어디로 가는지 아는 음악. 좋은 음악이었다. 그는 그것을 칭찬했다. 이번에는 너무 많이 칭찬하지 않았다. 딱 맞게 했다. 쾨젤리츠가 그것을 알았고, 피아노를 덮고, 아무 말 없이 창을 열어 주었다.

후주

[주 25-01]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4부 「더 높은 인간에 대하여」 20절. eKGWB Za-IV-Menschen-20. 한국어 작업 번역. 더 높은 인간들에게 하는 권고로, 비웃음과 삶을 긍정하는 웃음 사이의 긴장이 있다.

[주 25-02]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4부 「가장 추한 인간」. eKGWB Za-IV-Hässlichste. 한국어 작업 번역. 가장 추한 인간이 신을 죽인 이유를 말하는 대목이다.

[주 25-03] 같은 책 4부 「징조」. eKGWB Za-IV-Zeichen. 한국어 작업 번역. 4부의 마지막 장이다.

[주 25-04] 니체가 동생 엘리자베트에게 보낸 편지 초안, 1887년 12월 말. eKGWB BVN-1887(번호는 비평판에서 재확인). 한국어 작업 번역. 1884년의 대화가 아니라 3년 뒤의 편지이며 본문은 시점을 밝혔다.

[근거 25-05] 1884년 8월 26~28일 하인리히 폰 슈타인이 질스마리아를 찾아왔다. 니체가 그를 「나를 위해 온 첫 사람」이라고 편지에 적은 것과, 슈타인이 『차라투스트라』에서 열두 문장을 이해했다고 말한 것은 니체의 기록에 전한다. 슈타인은 1887년 서른 살에 죽는다.

[근거 25-06] 엘리자베트는 1884년 베른하르트 푀르스터와 약혼하고 1885년 5월 22일 나움부르크에서 결혼했다. 푀르스터는 1880~81년 반유대주의 청원(서명 약 25만)을 주도했고 파라과이에 독일인 식민지를 세우려 했다. 니체는 결혼식에 가지 않았고 반유대주의자를 축복할 수 없다는 취지로 편지에 적었다. 1884년 10월 취리히에서 남매가 만난 것은 사실이며 대화는 창작이다.

[근거 25-07] 『차라투스트라』 4부는 1884/85년 겨울 니스와 망통에서 썼다. 슈마이츠너와의 관계가 끝나 라이프치히의 나우만 인쇄소에서 자비로 40부를 찍었고(1885년 4월), 그 가운데 일곱 부 안팎을 지인에게 보냈다. 수신자 목록은 편지로 확인되는 이름들을 썼으나 「일곱」이라는 수와 적고 지운 이름들은 소설의 구성이다. 4부가 널리 읽힌 책이 아니라는 것을 이 소설은 그대로 두었다. 일반 공개판은 1892년에 나온다.

[근거 25-08] 4부의 더 높은 인간들, 당나귀 축제, 「징조」 장의 사자와 비둘기, 연민이 마지막 유혹이었다는 결말은 원문의 내용이다. 늙은 마술사에게서 바그너를 읽는 것은 널리 받아들여지는 해석이며 본문은 이름을 쓰지 않았다.

취리히 대화에서 레의 이름을 꺼낸 것, 결혼식 날 베네치아에서 쾨젤리츠의 음악을 들은 것은 소설의 창작이다. 1885년 5월에 니체가 베네치아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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