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6,475자)
사랑과 고독
니체의 삶 · 네오
레는 고해실에서 글을 썼다.
성 베드로 성당의 옆 복도, 아무도 쓰지 않는 고해실. 레는 거기 앉아 무릎에 공책을 놓고 도덕의 기원에 관한 글을 썼다고 했다. 어두운 데서 쓰는 것이 좋다고. 그리고 그 고해실 앞으로 그 여자를 데려와 소개하기로 했다고. 그는 그 이야기를 듣고 웃었다. 레다운 농담이었다. 농담이 아니었다.
4월 말의 오후였다. 그는 로마에 도착해 말비다의 집에 짐을 풀고 바로 성당으로 갔다. 레가 복도 끝에 서 있었다. 레 옆에 여자가 서 있었다. 작고 마르고 머리를 뒤로 묶었고 회색 옷을 입었으며, 눈이 컸다. 레가 말했다. 루 폰 살로메입니다. 그는 모자를 벗었다. 그리고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듣기 전에 말이 나왔다.
“우리는 어느 별에서 떨어져 여기서 만났습니까?”
루가 그를 보았다. 웃지 않았다. 대답했다.
“취리히에서요, 교수님. 저는 취리히에서 왔어요.”
레가 웃었다. 그도 웃었다. 루는 웃지 않고 그를 계속 보았다. 그 눈에 무엇이 있는지 그는 읽을 수 없었다. 스물한 살. 페테르부르크의 장군 집 막내딸. 열일곱에 목사에게 철학을 배우다가 목사가 사랑에 빠지자 떠난 사람. 취리히에서 대학을 다니다 폐가 나빠 남쪽으로 온 사람. 레가 편지에 적은 것이 전부 거기 있었고, 편지에 적지 않은 것도 거기 있었다.
말비다의 집에서 셋은 저녁마다 이야기했다. 루가 계획을 말했다. 셋이 함께 사는 것. 파리든 빈이든 어디든 좋으니 한 집에 서재를 두고, 셋이 각자 쓰고 함께 읽고 함께 걷는 것. 결혼이 아니라 공부. 그녀는 그것을 삼위일체라고 불렀다. 그는 그 말을 듣고 소렌토를 생각했다. 소렌토의 식탁. 누구의 것도 아니었던 식탁. 그것을 다시 가질 수 있다고 그녀는 말하고 있었다. 그는 바로 좋다고 했다.
레는 좋다고 하지 않았다. 레는 이미 루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한 뒤였다. 그는 그것을 몰랐다. 레가 말하지 않았다. 그는 레에게 부탁했다. 자기 대신 루에게 물어봐 달라고. 결혼을. 레는 그의 얼굴을 한참 보다가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물었다. 루는 레에게 한 대답을 그에게도 했다. 결혼은 하지 않는다고. 함께 공부한다고. 그는 그 대답을 레의 입으로 들었다. 레가 그 말을 전하면서 어떤 얼굴이었는지 그는 나중에야 생각했다.
5월에 셋은 북쪽으로 갔다.
루의 어머니가 함께였다. 루체른에서 그는 루와 둘이 사자 공원을 걸었다. 바위에 새겨진 죽어 가는 사자 아래서 그는 한 번 더 물었다. 이번에는 자기 입으로. 루는 한 번 더 아니라고 했다. 자기 입으로. 그는 알겠다고 했다. 알겠다고 하면서 자기가 안도하고 있는지 아닌지 보았다. 제네바 때와 달랐다. 안도가 없었다. 그것이 무서웠다.
그날 오후 그는 사진관에 가자고 했다.
쥘 보네의 사진관. 그가 연출했다. 작은 손수레를 빌려 왔고 루를 그 위에 앉혔고 루의 손에 끈으로 만든 작은 채찍을 쥐여 주었다. 그리고 레와 자기가 수레의 끌채를 잡았다. 레가 싫다고 했다. 그는 우겼다. 레가 끌채를 잡았다. 사진사가 셋을 보고 웃음을 참았다. 섬광이 터졌다. 사진이 남았다. 두 철학자가 끄는 수레에 앉아 채찍을 든 스물한 살의 여자. 그는 그 사진을 보고 웃었다. 레는 웃지 않았다. 루는 사진 속에서 웃고 있었다. 그는 그것이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농담이 아닌 것을 농담으로 만들어야 견딜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그는 그날 알았다. 혹은 그날은 몰랐다.
루체른 호수 건너에 트립셴이 있었다. 그는 루를 데리고 갔다. 13년 전 피아노 소리가 나던 집. 포플러가 그대로였고 호수가 그대로였다. 집은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호숫가에 서서 집을 보았다. 그리고 울었다. 루 앞에서. 루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옆에 서 있었다. 그는 울면서 말했다. 여기 식탁이 있었소. 루가 물었다. 지금은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여름에 루는 바이로이트에 갔다.
「파르지팔」의 초연이었다. 그는 가지 않았다. 갈 수 없었다. 대신 엘리자베트가 갔다. 동생이 루를 데리고 가서 바그너 집안에 소개하기로 했다. 그는 그것이 좋은 생각이라고 믿었다. 동생과 루가 친구가 되면 셋의 계획에 어머니를 설득하기 쉬울 것이었다.
8월에 둘이 튀링겐의 타우텐부르크로 왔다. 그가 여름을 보내려고 빌린 숲속 마을이었다. 역에서 그는 둘을 보았다. 둘은 서로 보지 않았다. 동생의 입이 얇았다. 루의 눈이 차가웠다. 그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둘 다 대답하지 않았다. 나중에 동생이 따로 말했다. 예나의 여관에서 루가 오빠에 대해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했다고. 더 나중에 루가 따로 말했다. 동생이 자기를 난잡한 여자로 몰았다고. 그는 둘 다 들었다. 둘 다 믿었고 둘 다 믿지 않았다.
그래도 타우텐부르크의 3주는 있었다.
그는 그 3주를 평생 가졌다. 아침부터 밤까지 걸으면서 말했다. 하루에 열 시간. 숲길, 들판, 마을의 벤치. 루가 묻고 그가 답했고 그가 묻고 루가 답했다. 신, 도덕, 고독, 영원회귀. 그는 바위 이야기를 했다. 아무에게도 하지 않은 이야기를 그 여자에게 했다. 루는 듣고 나서 한참 뒤에 말했다. 그 생각은 교수님을 아프게 하는 생각이네요. 그는 그렇다고 했다. 그렇다고 하면서 자기가 처음으로 그 생각을 다른 사람 앞에 꺼내 놓았다는 것을 알았다. 생각이 바위 크기에서 사람 크기로 줄었다. 줄어서 들 수 있게 되었다.
엘리자베트는 따라오지 않았다. 마을에 남아 있었다. 저녁에 돌아오면 동생이 식탁에 앉아 있었고 셋이 먹었고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어느 날 루가 시를 보여 주었다. 「삶에의 기도」. 루가 쓴 것이었다. 삶에게 말을 거는 시였다. 네가 나에게 줄 것이 더 없다면 고통이라도 다오. 그는 그것을 읽고 종이를 내려놓지 못했다. 자기가 1월에 쓴 것과 같은 것이 거기 있었다. 운명애. 스물한 살이 다른 말로 그것을 썼다. 그는 말했다. 이것에 곡을 붙이겠소. 그리고 붙였다. 피아노 없는 숲속 마을에서 머릿속으로. 아버지처럼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채로 시작해서, 루의 마지막 줄에서 끝나게. 그는 그것을 악보에 적었다. 가사는 루의 것이었다. 음악은 그의 것이었다. 그는 그 둘이 한 종이에 있는 것을 보았다.
9월에 루는 떠났다. 10월에 라이프치히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그는 타우텐부르크에서 그녀에게 편지를 썼다.
「철학 체계를 그 창시자의 개인 기록으로 되돌려 읽자는 당신의 생각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학설은 반박될 수 있지만 그 뒤의 인물은 사라지지 않습니다.」[주 21-01]
쓰고 나서 그는 그 문장을 보았다. 그 여자의 생각이었다. 자기가 10년 전 「교육자로서의 쇼펜하우어」에서 한 것을 그 여자는 한 문장으로 말했다. 철학은 사람이다. 그는 그 사람과 함께 그것을 하고 싶었다. 함께. 그 말이 어디까지인지 그는 몰랐다. 모른 채로 보냈다.
나움부르크에서 어머니가 말했다. 네가 아버지 무덤에 수치가 된다고. 결혼하지 않은 여자와 숲속에서 3주. 동생이 어머니에게 무엇을 말했는지 그는 알 수 있었다. 그는 어머니에게 소리를 질렀다. 평생 처음이었다. 그리고 집을 나왔다. 피아노 위의 천을 보지 않고.
라이프치히에서 셋은 다시 만났다.
10월. 한 달. 무엇인가 달라져 있었다. 그는 그것을 첫날 저녁에 알았다. 루와 레가 그가 모르는 농담을 했다. 둘이 서로를 보는 눈이 있었다. 그가 루를 볼 때 루는 레를 보고 있었다. 삼위일체는 둘과 하나였다. 그는 그것을 알면서 한 달을 견뎠다. 매일 셋이 만났고 매일 그는 계획을 말했고 매일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임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이 그를 더 아프게 했다. 둘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냥 다른 데를 보고 있었다.
11월 5일에 둘은 베를린으로 갔다. 역에서 그는 둘을 배웅했다. 겨울에 파리에서 보자고 했다. 루가 그렇게 하자고 했다. 기차가 떠났다. 그는 역에 서 있었다. 그러고는 집으로 가지 않고 걸었다. 라이프치히의 거리. 17년 전 헌책방이 있던 거리. 그는 그 거리를 걸으면서 자기가 지금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 알았다. 편지. 파리의 날짜. 함께라는 말의 다음 말.
편지는 오지 않았다. 11월이 갔다. 그는 바젤의 오버베크 집에 들렀다가 남쪽으로 내려갔다. 제노바 옆의 작은 항구, 라팔로. 거기서 겨울을 나기로 했다.
대신 다른 편지가 왔다. 나움부르크에서. 동생이었다. 루가 어떤 여자인지, 루가 레와 어떤 사이인지, 루가 오빠를 어떻게 말하고 다니는지. 한 장이 아니라 여러 장이었고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이었다. 그는 그것을 읽었다. 읽고 믿지 않았다. 믿지 않으면서 밤에 그 문장들이 돌아왔다. 동생의 글씨가 머리에 박혔다. 단정한 글씨였다.
그는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루에게. 레에게. 둘에게. 한 통이 아니었다. 밤마다 썼다. 어떤 것은 차가웠고 어떤 것은 불타는 것 같았다. 당신이 나를 어떻게 썼는지 안다. 당신의 영혼은 내가 탐낸 것이 아니었다. 당신들은 나를 가지고 놀았다. 그는 그런 것을 썼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그것을 읽고 찢었다. 어떤 것은 찢지 않았다. 찢지 않은 것을 서랍에 넣었다. 어떤 것은 보냈다. 보낸 것은 돌아오지 않았다.
12월에 그는 아편을 먹었다. 잠을 자려고. 잠이 오지 않았다. 아편을 먹은 밤에 그는 바다 소리를 들었다. 라팔로의 바다. 제노바의 바다와 같은 바다. 밀려오고 물러가고. 그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바위를 생각했다. 1년 반 전의 오후. 그리고 질문을 생각했다. 자기가 책에 쓴 질문. 악마에게 시킨 질문.
「너는 이것을 다시 한 번, 그리고 헤아릴 수 없이 여러 번 원하는가?」[주 21-02]
이것을. 이 해를. 성 베드로 성당의 복도를. 사자 아래의 아니요를. 수레와 채찍을. 트립셴의 눈물을. 타우텐부르크의 3주를. 루의 시와 자기 음악이 한 종이에 있는 것을. 라이프치히 역을. 동생의 글씨를. 아편을.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은 것이 아니요가 아니라는 것을 그는 그 밤에 처음 알았다.
크리스마스에 그는 오버베크에게 썼다.
「이 마지막 삶의 한 입은 내가 지금까지 씹은 것 가운데 가장 단단한 것이었네.」[주 21-03]
씹었다고 썼다. 삼켰다고 쓰지 않았다. 뱉었다고도 쓰지 않았다. 그는 그 낱말을 고르는 데 한참 걸렸다. 고르고 나서 봉했다. 서랍에는 부치지 않은 편지들이 있었고, 그 밑에 악보가 있었다. 「삶에의 기도」. 그는 서랍을 열고 악보를 꺼내 보았다. 루의 글씨로 된 가사와 자기 글씨로 된 음표. 그는 그것을 찢지 않았다. 도로 넣었다. 부치지 않은 편지들 밑에.
창밖에서 바다가 밀려오고 물러갔다. 어디로 가는지 아는 소리였다. 그는 그 소리가 미웠다. 미운데 창을 닫지 않았다.
후주
[주 21-01] 니체가 루 폰 살로메에게 보낸 편지, 1882년 9월 16일경(날짜는 편집자 추정). eKGWB BVN-1882,305. 한국어 작업 번역. 철학 체계를 창시자의 개인 기록으로 읽자는 루의 생각에 호응한 편지로, 루의 시에 붙인 음악의 미래도 함께 적혀 있다.
[주 21-02] 니체, 『즐거운 학문』 4권 341절. eKGWB FW-IV-341. 한국어 작업 번역. 1882년 1월에 쓴 자기 책의 질문을 같은 해 12월에 되돌려 받는 장면으로 두었다. 되돌려 받는 장면은 창작이다.
[주 21-03] 니체가 프란츠 오버베크에게 보낸 편지, 1882년 12월 25일. eKGWB BVN-1882(번호는 비평판에서 재확인). 한국어 작업 번역. 라팔로에서 쓴 편지로 아편 복용과 자살에 가까운 생각이 함께 적혀 있다.
[근거 21-04] 1882년 4월 말 로마 성 베드로 성당에서 레의 소개로 루 폰 살로메(1861년생)를 만났다. 레가 성당의 빈 고해실에서 글을 썼다는 것과 「어느 별에서 떨어져 여기서 만났는가」라는 첫마디는 루의 회고에 전한다. 루의 대답은 창작이다. 셋이 함께 공부하며 사는 계획(루가 「삼위일체」라 불렀다), 레가 먼저 청혼해 거절당한 것, 니체가 레를 통해 청혼한 것은 루와 레의 기록에 근거한다.
[근거 21-05] 1882년 5월 13일 루체른 사자 공원에서 다시 청혼해 거절당했고, 같은 날 쥘 보네 사진관에서 니체의 연출로 수레와 채찍 사진을 찍었다. 루와 함께 트립셴을 찾아가 호숫가에서 울었다는 것은 루의 회고다.
[근거 21-06] 1882년 7~8월 루와 엘리자베트가 바이로이트 「파르지팔」 초연에 갔고, 8월 초 예나에서 두 사람이 격렬히 다투었다. 8월 7일부터 26일까지 타우텐부르크에서 니체와 루가 대화했다. 루의 시 「삶에의 기도」에 니체가 곡을 붙였다. 가사는 루의 것이며 이 소설은 가사를 인용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아버지 무덤의 수치」라고 말해 니체가 집을 나온 것은 사실이다.
[근거 21-07] 1882년 10월 라이프치히에서 셋이 지냈고 11월 5일 루와 레가 베를린으로 떠났다. 이후 니체는 라팔로에서 겨울을 나며 루와 레에게 보내는 격한 편지를 여러 통 썼고 일부만 보냈다. 동생의 편지가 관계 파국에 작용한 것은 사실이나 그 내용의 세부는 창작이다.
루가 바위 이야기를 들은 뒤의 말, 역에서의 생각, 서랍 속 악보의 장면은 소설의 창작이다. 루의 의사와 선택은 루 자신의 기록을 우선했으며, 니체의 관점으로 루의 의사를 대체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