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5,850자)

운명애

니체의 삶 · 네오

새해 아침에 그는 살아 있었다.

1882년 1월 1일, 제노바의 다락방. 창을 열자 바다가 있었고 하늘이 맑았고 바람이 없었다. 1월인데 봄 같았다. 그는 서른일곱이었다. 아버지의 나이를 넘긴 지 두 해였고, 넘겼다는 것을 그는 이제 아침마다 세지 않았다. 세지 않게 된 것이 이 겨울의 가장 큰 변화였다.

그는 책상에 앉았다. 「아침놀」을 끝내고 반년, 그 뒤로 쓴 것들이 쌓여 있었다. 아침놀의 속편으로 쓰기 시작한 것이었는데 쓰다 보니 다른 책이 되고 있었다. 더 가벼웠다. 가볍다는 것이 얕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카르멘」에서 배웠다. 그는 새해 첫날 쓸 것을 미리 정해 두었다. 새해의 결심. 사람들이 새해에 하는 것을 자기도 하기로 했다. 다만 자기 식으로.

그는 썼다. 올해 자기가 배우고 싶은 것. 사물에서 필연적인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보는 법. 그러면 자기는 사물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밑에 적었다.

「운명애, 이제부터 이것이 나의 사랑이 되기를!」[주 20-01]

적고 나서 그는 그 문장을 보았다. 되기를. 소망이었다. 이미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고 싶다는 것. 그는 그 문법을 지키기로 했다. 운명을 사랑한다고 적으면 거짓말이었다. 118일을 사랑하지 않았다. 세숫대야를 사랑하지 않았다. 작은 관을 사랑하지 않았다. 사랑하고 싶었다. 그 차이가 전부였다. 그는 이어서 적었다.

「언젠가 나는 오직 긍정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주 20-02]

언젠가. 그 말도 지켰다. 적고 나서 그는 창가로 갔다. 바다는 그대로였다. 그는 자기가 방금 쓴 것이 새해 결심 가운데 가장 큰 것이고 가장 지키기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은 담배를 끊겠다고 적고 그는 운명을 사랑하겠다고 적었다. 둘 다 1월에 적는 것이었다. 그는 그 생각에 웃었다. 웃음이 긍정인지 아닌지 몰랐다.

2월에 기계가 왔다.

타자기였다. 덴마크 사람 말링한센이 만든 것으로, 공처럼 둥근 머리에 쉰두 개의 글쇠가 박혀 있어서 글쓰기 공이라고 불렀다. 눈 때문이었다. 보지 않고 쓸 수 있는 기계. 그는 그것을 몇 달 전에 주문했고 코펜하겐에서 제노바까지 오는 동안 상자가 부서져 기계도 부서졌다. 수리공을 불렀다. 수리공은 이런 기계를 본 적이 없었고 그도 본 적이 없었으며, 둘이 이틀을 매달려 글쇠를 하나씩 맞추었다. 사흘째에 그는 처음으로 쳤다. 손가락 끝으로 둥근 머리를 더듬어 글쇠를 찾고 누르면 종이에 글자가 찍혔다. 눈을 감고도 되었다. 그는 눈을 감고 쳤다.

처음 친 것은 자기 이름이었다. 그다음은 날씨였다. 그다음은 쾨젤리츠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짧게. 기계가 긴 문장을 좋아하지 않았다. 글쇠가 자주 엉켰고 종이가 비뚤어졌고 비가 오면 리본이 눅눅해져 글자가 흐려졌다. 그는 짧게 쳤다. 그러다가 어느 날 이런 줄을 쳤다.

「우리의 글쓰기 도구는 우리의 생각에 함께 일한다.」[주 20-03]

그는 그 줄을 치고 종이를 뽑아 들었다. 기계가 친 글자는 전부 대문자였고 전부 같은 간격이었다. 자기 글씨가 아니었다. 자기 생각인데 자기 글씨가 아닌 것이 앞에 있었다. 동생의 글씨, 게르스도르프의 글씨, 쾨젤리츠의 글씨, 그리고 기계의 글씨. 다섯 번째 손이었다. 다섯 번째 손은 쉼표를 지우자고 하지 않았다. 그냥 엉켰다.

엘리자베트에게 그는 기계 이야기를 길게 썼다. 바이로이트에서 또 초대가 왔다는 것과 아침놀 다음 책의 계획과 함께. 동생은 답장에서 기계는 됐고 몸은 어떠냐고 물었다. 그는 몸이 좋다고 썼다. 좋았다. 거짓말이 아닌 것이 오랜만이었다.

레가 왔다.

2월 초에 레가 제노바에 들렀다. 소렌토 이후 5년이었다. 레는 여전히 잘 웃었고 여전히 차가운 방법으로 생각했고 돈이 좀 있었다. 둘은 2주 동안 매일 걸었다. 바닷가 바위, 등대 길, 콜럼버스의 골목. 레가 그에게 물었다. 요즘 무엇을 쓰느냐고. 그는 가벼운 책이라고 했다. 레가 웃었다.

“자네가 가벼운 책을?”

“카르멘을 들었거든.”

“그게 설명이 되나?”

“되지.”

레는 더 묻지 않았다. 둘은 저녁에 극장에 갔다. 사라 베르나르가 왔다. 파리의 가장 유명한 여배우. 2막에서 그녀가 무대 위에서 쓰러졌다. 피를 토했다. 막이 내렸고 극장이 술렁였고, 한 시간 뒤에 그녀가 다시 나와 끝까지 연기했다. 그는 그것을 보았다. 피를 토한 사람이 한 시간 뒤에 무대에 서는 것을. 집에 돌아와 그는 어머니와 동생에게 그 이야기를 썼다. 쓰면서 자기가 왜 그 장면에 그렇게 붙들렸는지 생각했다. 운명애. 그는 그 말을 쓰지 않았다. 아직 그 말을 남에게 쓸 때가 아니었다.

레는 3월에 로마로 갔다. 말비다가 거기 있었다. 레는 떠나면서 말했다. 로마로 오게. 말비다가 자네를 기다려. 그는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레가 떠나고 그는 미친 사람을 썼다.

아침 시장이었다. 제노바의 시장이 아니라 책 속의 시장. 밝은 아침에 등불을 켜고 시장에 뛰어드는 사람. 신을 찾는다고 외치는 사람. 시장 사람들은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라 웃는다. 신이 길을 잃었나, 신이 배를 탔나. 그러자 미친 사람이 그들 사이로 뛰어들어 그들을 쏘아본다.

「우리가 그를 죽였다. 너희와 내가! 우리 모두가 그의 살해자다!」[주 20-04]

그는 그 줄을 쓰고 손을 멈추었다. 그다음 줄을 어떻게 쓸지 알았다. 그런데 바로 쓰지 않았다. 창밖을 보았다. 바다가 있었다. 지평선이 있었다. 그는 그 지평선을 보면서 다음 줄을 썼다.

「누가 우리에게 지평선 전체를 지워 버릴 해면을 주었는가?」[주 20-05]

미친 사람은 계속 묻는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위가 어디고 아래가 어딘가. 밤이 오고 있지 않은가. 아침에 등불을 켜야 하지 않는가. 그는 그것을 전부 썼다. 승리의 노래가 아니었다. 무서운 글이었다. 신이 없다고 그는 열일곱에 알았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를 서른일곱에 썼다. 20년이 걸렸다. 그리고 미친 사람은 마지막에 등불을 던지고 말한다. 내가 너무 일찍 왔다. 그는 그 줄을 쓰면서 바이로이트의 코지마를 생각했다. 선생님은 너무 많은 것을 너무 빨리 말씀하세요. 그는 미친 사람에게 그 말을 주었다.

며칠 뒤에 그는 다른 것을 썼다.

바위였다. 7개월 전 수를레이 호숫가. 그는 그 오후를 종이에 옮기지 않았다. 대신 다른 모양으로 썼다. 어느 날 어느 밤 악마가 네 가장 외로운 고독 속으로 숨어들어 와 말한다면. 그는 악마의 말을 썼다.

「네가 지금 살고 있고 지금까지 살아온 이 삶을, 너는 다시 한 번, 그리고 헤아릴 수 없이 여러 번 살아야 한다.」[주 20-06]

그는 그것을 악마에게 말하게 했다. 자기가 바위 앞에서 생각한 것을 자기가 말하지 않고 악마가 말하게 했다. 왜 그랬는지 그는 알았다. 자기 말로 하면 가르침이 되었다. 악마의 말로 하면 질문이 되었다. 그는 질문으로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글의 끝도 질문이었다. 너는 이 생각을 견딜 수 있도록 너 자신과 삶에 얼마나 잘 대해야 하는가. 답은 쓰지 않았다. 바위 앞에서 쓰지 않은 것을 책상에서도 쓰지 않았다.

그 절에 그는 번호를 붙였다. 341. 그리고 그다음 절에 사람 하나가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342. 서른 살에 고향을 떠나 산으로 들어간 사람이 10년 뒤에 내려온다. 이름은 차라투스트라. 그는 그 이름을 쓰고 한참 보았다. 어디서 온 이름인지 알았다. 페르시아의 옛 예언자. 왜 그 이름인지는 몰랐다. 그 사람이 무엇을 할지도 몰랐다. 그는 거기서 멈추었다. 책의 끝이었다. 비극이 시작된다. 그렇게 적고 펜을 놓았다.

3월 29일에 그는 배를 탔다.

제노바 항구에서 메시나로 가는 시칠리아 화물선이었다. 승객은 그 하나였다. 선원들은 그를 이상한 독일 사람으로 보았고 그는 선원들을 바다의 사람으로 보았다. 사흘이었다. 그는 갑판에 서서 바다를 보았다. 끝이 없는 것 한가운데에 있었다. 땅이 없었다. 지평선뿐이었다. 해면으로 지운 뒤에 남은 것이 이것이었다. 무서울 줄 알았는데 무섭지 않았다. 바다가 배를 밀어 주었다.

메시나는 밝았다.

시칠리아의 4월. 빛이 너무 많아서 푸른 안경을 두 겹으로 쓰고 싶었다. 바람이 아프리카에서 불어왔고 집들은 하얬고 사람들은 밤늦게까지 길에서 살았다. 그는 바닷가에 방을 얻었다. 그리고 시를 썼다. 철학이 아니라 시. 짧고 가볍고 운이 맞는 것. 바람과 바다와 새와 춤과 웃음. 그는 그것을 「메시나의 목가」라고 불렀다. 여덟 편. 쓰면서 그는 자기가 웃고 있다는 것을 자주 알았다. 「카르멘」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다. 혹은 바위가. 혹은 둘 다.

3주째에 시로코가 불었다. 아프리카의 더운 바람. 머리가 다시 아팠다. 그리고 로마에서 레의 편지가 왔다.

레는 말비다의 집에서 어떤 사람을 만났다고 했다. 러시아에서 온 젊은 여자. 스물한 살. 아버지가 장군이었고, 어머니와 함께 유럽을 여행 중이고, 몸이 약하고, 머리가 놀랍고, 철학을 하고 싶어 하고, 자기가 지금까지 만난 누구와도 다르다고 했다. 레는 그 여자 이야기를 두 장에 걸쳐 썼다. 그리고 로마로 오라고 했다.

그는 답장을 썼다. 시로코 속에서, 머리를 쥐고. 그 러시아 여자에게 안부를 전해 달라고. 그런 종류의 영혼을 자기는 탐낸다고.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결혼은 다른 문제요. 나는 기껏해야 2년 결혼에 동의할 수 있을 거요.」[주 20-07]

쓰고 나서 그는 웃었다. 농담이었다. 레가 웃을 것이었다. 그는 봉투를 봉하고 창을 열었다. 시로코가 들어왔다. 그는 짐을 싸기 시작했다. 로마까지는 배와 기차로 이틀이었다. 영혼을 탐낸다고 썼다.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는 몰랐다. 모른 채로 갔다.

후주

[주 20-01] [주 20-02] 니체, 『즐거운 학문』 4권 276절. eKGWB FW-IV-276. 한국어 작업 번역. 「새해를 맞아」라는 제목의 절로, 1882년 1월 제노바에서 썼다. 「되기를」 「언젠가」라는 소망의 문법이 원문에 있다.

[주 20-03] 니체가 하인리히 쾨젤리츠에게 타자기로 쳐서 보낸 편지, 1882년 2월 말. eKGWB BVN-1882(번호는 비평판에서 재확인). 한국어 작업 번역. 말링한센 타자기는 1882년 2월에 도착해 운반 중 파손된 것을 수리해 두 달 남짓 썼다.

[주 20-04] [주 20-05] 니체, 『즐거운 학문』 3권 125절 「미친 사람」. eKGWB FW-III-125. 한국어 작업 번역. 말하는 이는 책 속의 허구 인물이며 니체가 실제 시장에서 외친 것이 아니다. 「내가 너무 일찍 왔다」도 같은 절에 있다.

[주 20-06] 니체, 『즐거운 학문』 4권 341절 「가장 무거운 짐」. eKGWB FW-IV-341. 한국어 작업 번역. 악마가 건네는 사고실험의 형식이며, 이어지는 342절 「비극이 시작된다」에 차라투스트라가 처음 등장한다. 『즐거운 학문』 초판(1~4권)은 1882년 8월 말 출간.

[주 20-07] 니체가 파울 레에게 보낸 편지, 1882년 3월 21일경. eKGWB BVN-1882(번호 재확인). 한국어 작업 번역. 「그런 종류의 영혼을 탐낸다」와 「2년 결혼」이 같은 편지에 있다.

[근거 20-08] 1882년 2월 파울 레가 제노바에 머물렀고, 두 사람이 본 사라 베르나르 공연에서 배우가 무대에서 쓰러졌다 다시 나온 일은 니체가 어머니와 동생에게 보낸 2월 10일 편지(eKGWB BVN-1882,197)에 적혀 있다. 1월 30일 동생에게 보낸 편지(BVN-1882,193)에 타자기와 바이로이트 초청과 다음 책 계획이 함께 있다.

[근거 20-09] 1882년 3월 29일 제노바에서 유일한 승객으로 시칠리아 화물선을 타고 메시나로 갔다. 「메시나의 목가」 여덟 편은 그곳에서 써서 5월 「국제 월간지」에 실렸다. 4월 20일경 시로코와 레의 편지로 메시나를 떠나 로마로 갔다.

새해 아침의 생각, 수리공과의 이틀, 레와의 대화, 미친 사람에게 코지마의 말을 주었다는 것은 소설의 창작과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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