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5,166자)
영원회귀
니체의 삶 · 네오
바위는 호숫가에 있었다.
질스마리아에서 실바플라나 호수 쪽으로 반 시간을 걸으면 수를레이라는 작은 마을이 나오고, 그 못 미처 호숫가에 사람 키의 두 배쯤 되는 바위가 하나 서 있었다. 피라미드처럼 위가 뾰족했다. 그는 7월 내내 그 길을 걸었다. 아침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바위 앞을 지날 때마다 바위를 보았다. 바위는 그를 보지 않았다.
8월 초의 어느 오후였다. 그는 그 길을 걷고 있었다. 머리가 가벼운 날이었다. 해발 1,800미터의 공기가 그에게 준 날 가운데 하나. 호수는 바람이 없어서 산을 거꾸로 담고 있었고, 길에는 아무도 없었으며, 소 방울 소리가 멀리서 왔다. 그는 바위 앞에서 멈추었다.
왜 멈추었는지 그는 나중에 설명하지 못했다.
생각이 왔다. 어디서 왔는지 몰랐다. 밖에서 온 것 같기도 했고 안에서 올라온 것 같기도 했다. 생각은 이것이었다. 시간은 끝이 없다. 그런데 세계를 이루는 것들은 끝이 있다. 끝이 있는 것들이 끝이 없는 시간 속에서 움직이면, 언젠가 같은 배열이 돌아온다. 한 번이 아니라 끝없이. 지금 이 오후가, 이 바위가, 이 호수가, 이 머리의 가벼움이, 그리고 118일이, 세숫대야가, 덧문을 닫은 방이, 아버지의 관이, 작은 관이, 전부 다시 온다. 똑같이. 끝없이.
그는 바위에 손을 짚었다. 바위는 오후의 햇빛으로 따뜻했다.
처음 느낀 것은 공포였다. 그다음에 온 것은 공포가 아니었다.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는 바위에 기대어 서 있었다. 얼마나 서 있었는지 몰랐다. 소 방울 소리가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 호수에 담긴 산이 조금 기울었다. 해가 움직인 것이었다. 그는 자기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그날 밤 공책에 적었다.
제목을 먼저 적었다. 동일한 것의 회귀. 그 밑에 적었다. 초안. 그 밑에 다섯 줄을 적었다. 생각이 어떤 순서로 가야 하는지. 그리고 맨 아래에 날짜와 자리를 적었다. 1881년 8월 초, 질스마리아, 해발 6천 피트, 사람과 시간 저편에서.[주 19-01]
적고 나서 그는 그 줄을 보았다. 사람과 시간 저편. 그는 자기가 그렇게 적은 것이 과장인지 아닌지 몰랐다. 과장이라면 그렇게 적은 사람이 자기였다. 과장이 아니라면 자기는 오늘 오후에 어디에 있었던 것인가.
그는 공책을 덮지 않았다. 그 생각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밤새 생각했다.
생각은 이렇게 갔다. 만약 모든 것이 똑같이 돌아온다면, 천국도 없고 지옥도 없고 끝도 없고 구원도 없다. 이 삶이 전부다. 이 삶이 전부인데 그것이 끝없이 돌아온다. 그러면 질문은 하나다. 너는 이것을 다시 원하는가. 이 오후를. 이 118일을. 작은 관을. 다시, 또다시, 끝없이. 원할 수 있는가.
원할 수 없다면 그 삶은 저주다. 원할 수 있다면.
그는 거기서 멈추었다. 원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되는지 그는 아직 몰랐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려면 몇 해가 걸릴 것이었다. 그 밤에 그가 안 것은 질문뿐이었다. 질문은 또렷했다. 너는 이것을 다시 원하는가. 그는 자기에게 그것을 물었다.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대답하면 그 대답이 평생을 결정할 것 같아서였다.
새벽에 그는 창을 열었다. 호수 위로 안개가 깔려 있었다. 그는 자기가 어제 오후의 사람과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무엇이 달라졌는지는 몰랐다.
열흘 뒤에 그는 쾨젤리츠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는 조심스러웠다. 그는 생각의 내용을 적지 않았다. 적을 수 없었다. 대신 이렇게 적었다. 자기 지평선 위에 생각들이 떠올랐는데 그런 것은 본 적이 없다고. 그 생각 때문에 산책길에서 여러 번 울었다고. 감상적인 눈물이 아니라 환호의 눈물이었다고. 그러고는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날씨, 건강, 쾨젤리츠의 오페라.
쾨젤리츠는 답장에서 묻지 않았다. 무슨 생각이냐고 묻지 않았다. 묻지 않은 것이 그는 고마웠다. 물었다면 적어야 했을 것이고, 적으면 생각이 종이 위에서 작아졌을 것이다. 생각은 아직 바위 크기였다.
바위 앞의 오후보다 몇 주 앞서, 7월 말에 그는 다른 것을 발견했다. 하숙집 아래층에 있던 낡은 철학사 책에서였다. 스피노자. 200년 전 암스테르담의 유대인, 파문당한 사람, 렌즈를 갈아 먹고살며 신과 자연이 같은 것이라고 쓴 사람. 그는 그 책의 스피노자 장을 서서 읽고 바로 오버베크에게 엽서를 썼다. 나에게 선구자가 있다! 그렇게 시작했다. 자유의지를 부정하고, 목적을 부정하고, 도덕적 세계 질서를 부정하고, 악을 부정한 사람. 다섯 가지가 자기와 같다고 그는 적었다.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의 엽서였다. 적고 나서 그는 그 엽서가 너무 기뻐 보인다는 것을 알았고 고치지 않고 보냈다.
그래서 바위 앞의 생각이 왔을 때 그는 그것을 스피노자에게 먼저 물어보았다. 스피노자는 모든 것이 필연이라고 했다. 필연이라면 돌아올 수도 있다. 그런데 스피노자는 돌아온다고는 하지 않았다. 거기서 선구자가 끝나고 자기가 시작되었다. 그는 그 자리를 알았다. 알고 나니 조금 외로웠고, 외로운 것이 싫지 않았다.
그는 8월 내내 그 길을 걸었다. 바위 앞을 지날 때마다 멈추었다. 하숙집의 두리슈 부인이 아침마다 빵과 우유를 올려 주었고, 그는 그것을 창가에서 먹으며 호수를 보았다. 두리슈의 어린 딸이 가끔 문틈으로 그를 보았다. 푸른 안경을 쓰고 혼자 사는 독일 사람. 아이는 그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는 아이에게 사탕을 주었고, 아이는 받고 도망갔고, 다음 날 또 왔다. 같은 것이 돌아왔다. 바위는 그대로였다. 그는 그 바위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 좋았다. 생각이 바위에서 온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서 왔다는 것을 바위가 매일 증명해 주었다.
9월 말에 그는 질스마리아를 떠났다. 떠나기 전날 그는 하숙집 주인 두리슈에게 내년에도 이 방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두리슈는 고개를 끄덕였다. 산골 사람의 끄덕임이었다. 그는 그 끄덕임을 믿었다.
제노바로 돌아왔다. 살리타 델레 바티스티네 8번지. 164개의 계단. 그는 그것을 다시 세었다. 같은 숫자였다. 그는 그것이 우스웠다. 같은 것이 돌아온다. 계단도 그랬다.
가을에 그는 아팠다. 산을 내려오면 늘 그랬다. 그는 다락방에 누워 바위를 생각했다. 생각하면서 자기가 지금 누워 있는 이 시간도 돌아온다는 것을 생각했다. 세숫대야도 돌아온다. 그는 그것을 원하는가. 그는 세숫대야를 보았다. 원하지 않았다. 원하지 않는다고 적지는 않았다.
11월 27일 저녁, 그는 극장에 갔다.
제노바의 폴리테아마 극장. 머리가 견딜 만한 날이었고 누군가 그에게 프랑스 오페라가 하나 온다고 했다. 비제. 「카르멘」. 그는 비제를 몰랐다. 바그너 이후로 극장에 간 일이 거의 없었다. 그는 싼 자리에 앉았다. 막이 올랐다.
첫 소절에서 그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소리가 가벼웠다. 바그너의 소리는 어둠에서 올라와 사람을 덮었다. 이 소리는 햇빛 속에서 걸어 나와 사람 앞에 섰다. 무겁지 않았다. 설명하지 않았다. 구원하지 않았다. 담배 공장의 여자가 노래했고 군인이 그 여자를 사랑했고 그 사랑이 그 둘을 죽였다. 그뿐이었다. 그런데 그뿐인 것이 그를 울렸다. 그는 두 시간 반 동안 쇠막대 없이 앉아 있었다. 머리가 아프지 않은 것이 아니라, 머리가 있다는 것을 잊었다.
극장을 나오면서 그는 생각했다. 이것은 남쪽의 음악이다. 이것은 바다의 음악이다. 이것은 걷는 사람의 음악이다. 그는 그런 생각이 자기 안에서 나오는 것을 들으면서, 자기가 지금 바그너와 반대되는 것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알면서 멈추지 않았다.
사흘 뒤에 그는 또 갔다. 같은 자리에 앉았다. 같은 첫 소절에서 같은 자세로 고쳐 앉았다. 같은 데서 울었다. 그는 극장에서 나와 밤 골목을 걸으면서 웃었다. 같은 것이 돌아왔다. 이번에는 그가 원했다.
12월 5일에 그는 쾨젤리츠에게 썼다.
「카르멘」을 두 번 들었다고. 어떤 음악인지 적었다. 그리고 비제가 이 곡을 쓰고 몇 달 뒤에 서른여섯에 죽었다는 것을 극장에서 알게 되었다고 적었다. 서른여섯. 그는 그 숫자를 적으면서 다른 숫자를 생각했다. 아버지의 숫자. 자기가 2년 전 겨울에 센 숫자. 자기는 지금 서른일곱이었다. 넘긴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편지에 적지 않았다. 적는 대신 이렇게 적었다. 이 음악은 사람을 더 좋은 철학자로 만든다고.[주 19-02]
봉투를 봉하고 그는 창을 열었다. 12월의 바다가 어두웠다. 바다는 같은 소리를 냈다. 밀려오고 물러가고 밀려오고. 그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바위를 생각했다. 그 생각은 아직 바위 크기였고, 그는 아직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데 「카르멘」을 두 번째 들으러 간 자기가 있었다. 같은 것을 다시 원한 자기가. 그것은 대답이 아니었다. 대답이 가능하다는 증거였다.
그는 창을 닫지 않고 잤다. 파도 소리가 밤새 들어왔다. 어디로 가는지 아는 소리였다.
후주
[주 19-01] 니체, 1881년 유고 11[141]. eKGWB NF-1881,11[141]. 「동일한 것의 회귀. 초안」이라는 제목 아래 다섯 항목의 구상이 있고, 끝에 「1881년 8월 초, 질스마리아, 해발 6천 피트, 사람과 시간 저편에서」라는 표기가 있다. 한국어 작업 번역. 완성 저서가 아니라 구상 노트다. 호숫가 바위 앞에서 생각이 왔다는 것은 1888년 『이 사람을 보라』의 회고에 근거하며, 바위에 손을 짚고 운 것과 그날 밤의 생각 과정은 소설의 창작이다.
[주 19-02] 니체가 하인리히 쾨젤리츠에게 보낸 편지, 1881년 12월 5일(날짜는 편집자 보충). eKGWB BVN-1881,174. 「카르멘」을 두 번째 들은 감동과 비제의 죽음을 알게 된 반응이 적혀 있다. 「더 좋은 철학자로 만든다」는 그 편지의 취지를 옮긴 것이다.
[근거 19-03] 1881년 8월 14일 쾨젤리츠에게 보낸 편지에 「내 지평선 위에 떠오른 생각들」과 산책길의 환호의 눈물이 적혀 있다. 생각의 내용은 적지 않았다.
[근거 19-04] 1881년 7월 4일부터 9월 말까지 질스마리아 체류. 하숙집 주인은 두리슈. 가을에 제노바로 돌아가 11월 27일 폴리테아마 극장에서 「카르멘」을 처음 들었고 며칠 뒤 다시 들었다. 비제는 1875년 서른여섯에 죽었다.
이 노트는 1882년 루 폰 살로메를 만나기 전의 기록이다. 영원회귀 사상이 루와의 관계 뒤에 생겼다고 쓰지 않는다. 『즐거운 학문』 341절과 『차라투스트라』 3부는 각각 뒤의 해에 둔다. 「너는 이것을 다시 원하는가」라는 질문은 소설이 이 밤의 생각으로 재구성한 것이며, 그 문장의 출전은 1882년의 『즐거운 학문』이다.